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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휴일근무 위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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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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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Assumptions, or Ask A Silly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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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11/18
    2009/1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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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그 말 그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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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11/05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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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근무 위헌

휴일을 비롯한 일요일에 일을 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독일에서 나왔다. 1년 중 큰 대목인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기에 올해까지는 일요일에 상점들이 문을 여는 것이 허용되지만, 내년부턴 특별히 지정된 날-예컨대 축제나 기념일이 겹치는 등 "공익"에 부합하다고 시의회가 결정할 때-를 제외하고는 상점 영업을 위해 노동자들이 근무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관련 기사)

 

이런 얘기를 들으면 지금까지 독일도 우리처럼 일요일마다 일을 해왔을 것 같지만 막상 또 그것도 아니란다. 그동안 휴일에 근무를 하는 시스템이나 문화가 전혀 없었다가, 베를린의 경우 2006년에서부터야 1년 중 열번의 일요일/공휴일에 한해 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자 신성한 주일이 노동활동으로 침범받는 것을 우려한 신/구교 모두가 휴일근무에 관한 헌법소원을 냈고 이번에 위헌판결이 난 것이다.

 

휴일에 근무를 하면 안 된다는 결정에 노동계에서도 (당연히?) 환영을 표했다고 한다. 휴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당장 생계가 절박한 약자들이다. 휴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과 그렇지 않고 휴일근무 자체를 막아놔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곳의 삶의 질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독일 상점 근무시간 얘기를 들으니 예전에 독일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던 때가 기억난다. 마인츠에서 출발하여 첫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였던 것 같다. 루데스하임이라는 마을이었나 아마도. 장을 보러 마을로 나가 마트를 찾아갔는데 아직 해도 안 졌건만 마트가 곧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24시간 편의점에 너무 익숙했던 때라 큰 마트가 저녁 7,8시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에 말그대로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상점이 아예 문을 안 연다는 것이었다. 한창 급하게 장을 보다가 다음 날 마트가 문을 안 연다는 사실에 더 급하게 그 다음 날 장까지 본다고 허둥댔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론 어느새 또 그네들의 영업시간에 적응이 되어서 여행을 하는동안 으레 토요일 저녁 장은 늘 이틀치를 보곤 했던 것 같다.

 

 

Annual work hours (source: OECD (2004), OECD in Figures, OECD, Paris. [1])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Working_time

 

 

위에 긁어다 놓은 그래프에서도 보이듯이 한국의 노동시간은 2004년 통계로 OECD 가입국중 월등한 1위이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데 아직 경제 11,12위 밖에 못 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좀 넌센스같다. 그렇게 경제성장을 외치는 한국 자본가들이 좀 더 똑똑했더라면 노동자들 일하는 시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봤을텐데 말이다. 시계만 보며 보스 퇴근하길 기다리는 시간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때도 없을 거다. 차라리 그 시간에 퇴근해서 자기 시간 가지며 재충전하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닌가?

 

단협을 지들 맘대로 파기해 놓고선 그거에 항의표시로 노동자들이 파업하니깐 또 불법이라고 몰아대고, 사람들 전철 기다리는 거 뻔히 알면서 방송으론 "불법파업으로 인해 전철이 지연되어 죄송"하단 말만 떠드는 모습이 너무 짜증난다. 그런 방송할 시간에 노조 요구를 들어줄 노력을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나. 전철 늦게 오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역내 방송으로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인해 ~~"를 외쳐대는 걸 듣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독일의 이번 위헌 판결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의 코멘트들을 아래 가져와봤다.

 

“A simple economic interest of merchants and the daily shopping interest of potential consumers are not fundamentally enough to justify exceptions for opening stores on these days,” said the court’s president, Judge Hans-Jürgen Papier.

 

Katrin Göring-Eckardt, head of Germany’s main Protestant lay organisation, called it a “gift to society from Christians.”

 

“This is very good news for the more than 100,000 sales people in Berlin,” said Erika Ritter, from the Berlin-Brandenburg chapter of services trade union

 

vs

 

“We didn't force anyone to open and we didn't force anyone to go shopping,” he said. “Shall we recognise the changing reality of life or will we ignore it?”

 

“Occasionally being able to open on Sundays is crucial – especially in regions like Berlin with low consumer demand and lots of tourists,” said director of the HDE retail association Stefan Ge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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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민 투표

어제 스위스에서 국민투표가 있었다고 하는데 사안들이 참 흥미롭다. 하나는 이슬람 사원 건물의 첨탑 건축을 금지하는 것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최근에 WRI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통해 무기수출금지 국민투표 얘기를 처음 알게 된 건데 기사를 좀 찾아보니 한국에선 연합뉴스에서만 이 국민투표 얘기를 간략하게나마 언급한 것 같다. (불어나 독어 검색을 못 하니) 영어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이번 국민투표 관련 기사들이 적잖이 보인다. '첨탑건축금지'라는 선정적이고도 상징적인 사안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프랑스 학교 내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을 때에도 논란이 컸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첨탑금지법안'에 스위스 사람들의 57%이상이 찬성했다는 사실에 프랑스 히잡 건보다 더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맘이 많이 아프다.

 

국민투표의 다른 사안이었던 무기수출 금지법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이 생긴다.

 

자국에서 생산된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국민투표는 사실 이번이 벌써 세번째였다. 1972년과 1997년 이렇게 두 번이 더 있었는데 모두 부결이 된 바 있다. 심지어 72년 국민투표 땐 49.7%가 금지법안을 찬성했다고 하니 그 당시 통과되지 못한 게 무지 아까웠을 것 같다. 97년엔 찬성비율이 22%정도로 떨어졌다는데 이 수치의 차이를 불러온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선 분위기가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에선 10만명의 서명이 모여야 국민투표로 상정을 할 수가 있는데 이 무기수출 금지법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GSwA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10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제주도지사 소환할 때는 4만 천몇명이 최소충족 요건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 무기수출반대 법안에 41%가 지지 44%가 반대였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볼만도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68%가 법안통과에 반대의사를 표함으로써 결국 또 다시 부결이 되어버렸다.

 

법안은 비록 아쉽게 부결됐지만,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 한국으로 치면 재경부장관쯤 될 듯한 사람이 나와서 앞으로 스위스가 수출하는 모든 무기 거래에 대해서 아주 엄격한 관리를 하겠으며 분쟁지역으로는 절대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하니 무기거래에 대한 한국과 스위스 사회 사이의 온도차가 실감된다. 한편 이 동네도 이 무기수출금지법안을 두고서 방산업체들은 일자리 감소를 들먹이며 줄곧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자본가들의 논리는 어디든 비슷비슷한 것 같다.

 

이번 국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활동한 그룹은 the Group for Switzerland without an Army (GSwA) 라는 그룹이다. 이 그룹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 그룹은 자국의 군대를 폐지함으로써 스위스 사회를 좀 더 "문명화civilizing"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 1982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좀 더 찾아보니 스위스에서 군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민투표를 예전에 상정시켰던 바로 그 그룹이기도 하다. 89년에 있었던 군대폐지 투표에선 무려 35.2%의 사람들이 폐지를 지지했단다. 우와.

 

링크에 링크를 타고 좀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글(abolishing the Draft in Switzerland)도 발견했다. 89년 있었던 군대 폐지 국민투표에 관한 짧은 글인데, 여성그룹이 GSwA에 함께 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 부분이 흥미롭다. 80년대 중반 스위스에서 여성징병 논의가 불거지면서 많은 여성 그룹들이 군대 폐지 캠페인에 대거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워낙 그 동네에 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한국에선 일군의 여성그룹들이 오히려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징병이 실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견고한 한국의 군사주의.

 

병역거부 자료를 찾을 때에도 스위스가 종종 회자될 때가 있었는데 이 참에 스위스 정치제도나 역사적 맥락 등 좀 더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이번 무기수출금지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었다는 플래시몹 영상이다. 영상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게 없어보이는데 마지막에 보이는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make cheese not war"가 참 귀엽다.

 

한국에서도 낼모레 12월 3일, 집속탄 금지 협약 채택을 기념하고 각 국의 서명을 촉구하는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아 홍대쪽에서 데모가 있을 예정인데 앞으로 계속 무기거래 문제를 공론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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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경찰폭력 보고서

에 관한 기사가 떴길래 이 보고서 원문을 찾으려고 저자 이름과 키워드 등등으로 검색 좀 해봤으나 잘 찾아지질 않네.-_-;;

지난 4월 런던에서 있었던 G20 반대데모 당시 경찰이 쩜 많이 심하게 나서면서 시위 현장에서 신문을 팔고 돌아가던 사람 한 명이 엄하게 죽는 일까지 발생했었다. 그 때 있었던 일련의 경찰폭력을 비판하는 200쪽짜리 보고서라고 하니 한번 목차라도 보고싶건만.

어쨌든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는 기사라도 한국에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참에 내가 직접 써서 오마이로?)

 

찾는다고 번역까지 할 수 있는 건 또 아니겠지만..암튼 이 바닥에서 낭중에 또 써먹을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참고문헌 등록 꾸욱.

 

 

 

아래는 이 보고서 저자의 주장이란다. 경찰 출신 조사관이다.

 

• The home secretary, Alan Johnson, should take the unusual step of issuing a national code of practice to ensure all 44 police forces in England, Wales and Northern Ireland deal with protest in the same way. The report found a wide variation in equipment and tactics used, as well as a divergences in their interpretation of the law.

• The government should introduce a set of "overarching principles" to guide police on the use of force, informing officers about what constitutes appropriate behaviour in "all areas of policing business". O'Connor said that, faced with aggressive protesters, some officers were replacing the notion of a "proportional" reaction with a '"reciprocal" one.

• The routine use of forward intellience teams (FITs) who film, photograph and follow protesters, and use "spotter cards" to identify activists and store their information on databases raises fundamental privacy issues and should be reviewed. The Home Office should provide legal guidance on surveillance of protesters and retention of their images.

• Public order training should be overhauled, with a new emphasis on schooling the 22,500 officers trained for protests in communication and diplomacy rather than riot scenarios. "Time spent on suppressing mass urban disorder should be reduced and time spent on planning and keeping the peace should be increased," O'Connor said.

• The Association of Chief Police Officers (Acpo) should be made more transparent, with mechanisms introduced to hold the body to account for "quasi-operational" policing units that collate and retain intelligence on databases. O'Connor is known to be concerned with Acpo's three "domestic extremism" units, which the Guardian last month revealed were storing data on thousands of protesters in a £9m government scheme.

 

 

 

 

뜨씨.. 보고서 파일을 찾았는데 영어 뭉탱이를 보니 가슴이 턱하니 막히는게..ㅋㅋ

보고서 다운로드

관련 비비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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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st of killing

Germans in the Woods from Rauch Brothers on Vimeo.

 

"We often hear about the trauma inflicted on those who fought in some of the U.S.’s less glorious wars—Vietnam, Iraq, and Afghanistan. Less often do we hear about the toll that World War II exacted on the souls of those who came home alive and “victorious.” It doesn’t take defeat and rampant war crimes inflicted on non-Europeans to damage a psyche. This remarkable video, from the people at Story Corps, reminds us how even the most ordinary act of killing in a “good” war leaves the survivor scarred forever.

 

86-year-old World War II veteran Joseph Robertson fought at the Battle of the Bulge. Over 60 years later, he still can’t forget one soldier he killed there."

 

 

 86세 할아버지가 60년도 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자신이 죽인 적병 한 명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쟁은 그것이 이긴 전쟁이든 패배한 전쟁이든 거기에 참여한 개인들에게 자기 몫의 트라우마를 안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쟁을 두번이나 치른 한국에선 위의 할아버지와 같은 증언을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좀 더 기다린다 해도 상황이 쉬 변할 것 같지 않다. 한국전, 베트남전을 경험했던 수많은 개인들의 트라우마, 목소리가 한국사회에선 왜 들리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상처를 쉽사리 말할 수 없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게 되는 한국 사회가 새삼 너무 무섭다. 튼튼한 국방과 강한 군인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다른 목소리들을 잠식하는 동안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감받고 싶었던 혹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참전 군인들은 하나둘 저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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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

사골떡국, 고기완자전, 햄잡채, 청경채, 깻잎, 김치 그리고 김. 아 그리고 흰쌀밥도.

 

밥에 김싸서 김치랑 먹는 것도 맛있긴 하지만 이렇게 먹으면 웬만큼 먹어도 배가 잘 부르질 않는다. 헛배만 차고 마치 도 닦는 기분이다. 밥만이라도 흰 쌀 대신에 잡곡밥이 나오면 좋으련만.

 

이런 메뉴를 접한게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오늘은 급식실로 가기 전에 교무실에서 이미 위의 저 메뉴를 들어버린게 충격이 컸다(난 정규교원이 아니라 급식실메뉴를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 접근권한이 없다). 교무실을 나서면서 이미 입맛이 뚝 떨어져버렸다.

 

영양사 선생님에게 좀 더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내 존재감을 알려야하나?

채식하는 사람을 다양한 스타일 중 하나로 보고 존중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별난 혹은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특이한 사람이니 메뉴가 불공정해도 자기가 다 감수하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다.

 

채식으로도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 넘치는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육식 삭단을 고수하는 게 평균/정상/다수를 배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안타까울 뿐이다.

 

단백질과 적절한 비타민 보충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집에 도착하면 뭘 막 먹게 된다.

 

두 끼씩 도시락 싸다니긴 귀찮은데..

 

감옥은 공짜밥이라 치지만 여긴 하루에 식대가 삼천 칠백 몇십원이다. 워메 아까워라..

 

 

덧.

학교에서 밥 먹는 게 늘 이렇게 우울하다보니 이젠 급식실에 들어가면 메뉴부터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미리 파악한 뒤에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보통량보다 더 많이 담는 것이다.

 

근데 메뉴에 관심을 갖다보니 아쉬움이 들기 시작했다. 메뉴만 봐서는 채식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은 것이다. 광우병 파동 덕분인지 고기가 들어가는 메뉴 옆에는 예를 들어 "돼지고기: 순 국내산" 이렇게 써있지만 그렇다고 원산지가 안 적혀 있는 메뉴라고 해서 죄다 채식이냐 그런 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고기 원산지를 보며 이건 미국산이니 안 먹고 저건 호주산이니 먹어야지 생각하는 건 아닌데, 외국의 식당들처럼 채식 표시는 안 되어 있으면서 고기에 대해서만 친절하게 표시를 해주는 메뉴를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지난 주였나 한번은 또 죄다 고기반찬인데 그 와중에 "김치전"이 내 눈을 확 사로잡는 것이다. 안 그래도 내가 와방 좋아하는 김치전인데 다른 먹을 것도 없으니 김치전만 이빠이 떠왔다. 전으로 배채울 생각에 밥도 조금 떠왔고. 그렇게 열심히 김치전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영양사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옆에 다가와선 "선생님 이 김치전 고기 들어갔는데"라며 너무 발랄한 목소리로 알려주시는 거다.ㅋㅋㅋ

순간 울컥했다. 그 말을 들은 난 겉으론 "아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웃었지만 그 순간의 좌절감과 치미는 이 분노. 예전에 김치전 한번 나왔을 땐 고기가 안 들어갔길래 이번에도 그냥 먹었더니만..왜 그럼 김치전에 들어가는 고기는 원산지 표시도 없었던 거냐고.. 차라리 고기 들어갔단 얘기를 해주지나 말던가 그럼 아무 문제 없이 잘 먹었을텐데. 고기 냄새도 전혀 못 느끼고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단 말이다.

영양사 선생님 덕분에 친절도 타이밍이라는 좋은 교훈을 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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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Assumptions, or Ask A Silly Question.

* 마틴아저씨의 블로그에 가봤다가 좀 뜬금없긴 하지만 내가 마틴아저씨한테 호감을 느끼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아마도 마틴아저씨의 개인적 배경이 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올해로 환갑 게다가 남성 심지어 결혼도 안 한 싱글이라는 요소 때문에 그의 말들이 더 미더워보인다. 그이 때문에 나도 사서란 직업을 염두해 둘 정도이니.

한국에서 환갑맞은  남성 중에 권위적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자기 나이 절반도 안 되는 젊은 남성과  아무런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 정말 한번 만나보고 싶다.

 

번역을 하자면 아마 "전제들 혹은 어리석은 질문들" 정도가 될 듯한 제목으로 포스팅이 올라왔다. 꽤 긴 글인데 그냥 읽다보면 마틴 할아버지 말투가 떠올라서 므흣해진다. 지난 겨울 마틴아저씨와 함께 거닐던 거리 곳곳 그리고 함께 마시던 파인트들이 떠오른다. 그립다.

 

"Another assumption I keep hearing is that I should buy rather than rent a flat.
Yet the very same people will tell me just difficult it is to pay
their mortgage, even though they may be earning a lot more
than anyone in libraries will ever be able to earn.

 

Then there are the questions people will make about my family,
and even grandchildren.

 

Here the assumption is that one must be married and have
children of ones own."

 

대충 번역했더니

 

“내가 자주 듣는 또 다른 전제 중 하나는 내가 [내 나잇살 정도라면] 이제 렌트가 아니라 집 하나는 사야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으론 자기들이 집을 사면서 안게 된 대출상환금을 갚기가 벅차다는 하소연을 하곤 한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평생 뼈 빠지게 일해서 벌 돈보다 훨씬 더 많은 재산을 어쨌든 종내에는 갖게 될텐데 말이다.

 

집에 관한 얘기가 끝나면 이제 사람들은 내 가족에 대해 심지어는 손자손녀는 두었냐면서 질문들을 나에게 던진다. 여기서의 질문들에 전제된 것은 누구나 결혼을 해야한다는 것이고 결혼을 통해서 자기 핏줄을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

오늘 평화도서관모임 뒷풀이 때 진진과 얘기를 하면서 일본에서 세입자로 사는 것에 대한 얘기를 좀 들었다. 평화도서관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지 얘기나누던 중이었던 것 같다. 한국엔 그나마 '전세'라는 게 있으니까 자기 여건만 된다면 아까운 월세 안 내고 살수도 있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일본엔 전세 이런게 아예 없고 심지어 월세로 처음 들어갈 때 일정량의 돈을 미리 내는데 이 돈은 돌려받을 생각을 포기하고 내는 돈이라고. 그래서 이사를 자주 다니면 거지가 된다는 일본 말도 있단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 난다.ㅠ

 

1 년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지금 사는 집을 나와 독립할 생각을 하니 어디를 구하든 '1년 계약' 이런 식의 약속들이 부담스럽다. 전세가 없는 건 일본과 같지만 그래도 영국에선 기본 주당 페이였고 이를 바탕으로 월세도 계산되고, 보증금의 경우는 예컨대 몇 주치 페이를 미리 냈다가 그 집 계약을 끝내고 싶을 땐 몇 주 전 노티스만 해주면 보증금도 다 돌려 받을 수 있는 문화였는데. 다만 런던 같은 경우는 좀 살만하다 싶은 집은 rent fee 가 다 최소 주당 100파운드(한 20만원)가 넘어서 그렇긴 했지만. 사실 한 달 400파운드짜리도 zone 1,2 정도에서는 찾기 힘들었지.

 

 헤이스팅스에서 살던 플랏은 주당 65파운드였나? deposit은 2주치 였던 것 같고. 부엌 큰 창문으론 바다도 보이고 참 괜찮은 방이었는데..

 

* 오늘은 급작스레 영어 텍스트 타이핑을 부탁받았다. 요즘 좀 한가해지나 싶었는데 다른 선생님들한테 이런 부탁들을 받으니 참 거시기하다.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내 계약서엔 그런 내용까진 없었는데. 그러고 보면 안 바쁠땐 일부러 다른 일 만들어서 주지 않는 내 보스가 최고다. 씨익.

 

 

 

저 창문 뒤로 멀리 바다가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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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8

*영국의 한 통신회사가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경쟁업체에 팔아넘긴 것이 밝혀졌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T-mobile 이란 회사인데 여기 등록된 고객명부가 170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거기에는 고객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약정이 끝나는 날짜가 적혀있었다고. 1700만명에게 광고전화가 돌아갔을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pay as you go' 방식의 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는 넘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해보니 나도 영국폰 쓸때 topup 폰이어서 그랬는지 스팸 전화 이런 건 단 한통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계좌 개설한 은행에서 전화온 적 한번 정도?

사람들과 연락할 때도 거의 문자였고 그래서인지 밧데리 한번 충전하면 일주일은 거뜬히 버틴 듯.ㅎ 

 

한국 돌아와서 핸드폰 번호 새로 받은 뒤에는 인터넷 회원가입 이런 데에 번호를 안 적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더랬다. 근데 한번 소방소에 신고한 일 때문에 소방관한테 내 번호를 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광고문자 전화가 시작된 것 같다. 소방소를 의심하는 건 물론 심증이긴 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이 스팸문자들. 정말 한국은 정보유출과 관련해서는 믿을 데가 없다. 주민등록번호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세상을 읽는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구체적 시공간 속에 처한 개인이 집단의 구성원이 됐을 때에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근데 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안에는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들이 있다. 그걸 사람들은 허드렛일, 단순업무, 잡일, 몸으로 때우는 일, 귀찮은 일 등으로 부른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심지어 돈도 벌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반면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자기가 하게 될때, 그것도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타인에 의한 '명령'이나 '의무'에 의해서 하게 될 때 사람은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품는다. 한 집단 안에서 누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남으로부터 떠안아 꾸역꾸역 해야 하지만 다른 누구는 그런 일을 손쉽게 타인에게 넘길 수 있다면 그건 그 집단 안에 인간 사이의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각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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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눈물

그 새는 포도가 익는 시기에 오지요. 석류 열매를 따서 붉은 씨를 비우고, 포도나무에서 잘 익은 열매를 따 석류 속에 채워 넣어요. 석류가 포도로 가득 차면, 그 새는 진흙으로 구멍을 덮고 즙이 술로 익을 때까지 보관한답니다. 술이 익으면 새는 그것을 열고 신성한 술을 마신 후,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하늘까지 날아 올라가지요. 행복하게 취해서 새는 노래를 부르고, 하늘과 땅은 그 붉은 노래를 듣게 된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늘 그 새가 나와 함꼐 있다고 느꼈다. 매년 가을에 나는 그 새를 찾기 위해서 하늘을 훑어본다. 그 새처럼 할 수 있기를 나는 열망한다. 신성한 술에 내 부리를 담갔다가, 취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오르기를.

-자카리아 무함마드, 취한 새, <팔레스타인의 눈물> 110쪽.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제 팔레스타인 장교도 말없이 자기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방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고, 둘 다 혼자였다. 그 방에서 나는 '그곳'으로 후퇴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누구나 내면에 감춘 침묵과 성찰의 장소로. 바깥 세계가 부조리하거나 불가해하게 느껴질 때마다 들어가 숨는 어둡고 내밀한 곳. 마치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비밀커튼이 있는 것처럼, 나는 필요할 때마다 커튼을 쳐서 바깥세계로부터 내 내면세계를 가려버린다. 내가 생각하고 관찰한 것을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들 때나, 내 생각과 관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릴 수밖에 없을 때, 즉각 커튼이 자동적으로 쳐진다.

- 모리드 바르구티,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157쪽

 

그들은 우리에게서 희생자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지만, 우리 희생자들로부터 나오는 빛이 없다면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들은 우리한테서 나오는 빛으로 자신을 비춰보아야 하는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 자신만으로는 앞에 있는 거울이 캄캄할 뿐이다. 그들의 초상은 거울에 결코 비치지 않는다.

- 주하이르 아부 샤이브, 집을지키는 선인장을 남겨두고, 234쪽

 

 

 

 

일상의 노곤함을 덜어주는 노래. 미카 볼 수록 하비엘 닮았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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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그 말 그만


 

그만 그 말 그만 - 오소영

 

달이 지면 떠나갈 너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오.. 나의 눈물 번지던
그 날 덧없던 시간
그만 그 말 그만
남겨진 말들도 산산이 부서지겠지

다가서면 돌아설 너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오.. 그만 멈춰버린
그 날 덧없던 시간
그만 그 말 그만
남겨진 말들도 산산이 부서지겠지

이제는 남겨진 아픔도 사라져 아...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먼 길 아...

 

그만 그 말 그만

남겨진 말들도 산산이 부서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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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마르케스의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끝을 보았다. 어색함 없이 자유자재로 시점을 옮겨가면서도 기억의 퍼즐을 맞춰나가듯 자연스레 서술해가는, 뭔가 자기 목소리를 말할 듯 말 듯 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마르케스의 능력에 감탄을 하며 읽었다.

산 띠아고 나사르가 죽임을 당한 그 하룻밤의 사건을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이야기.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범행 자체가 아니라 '집단적 책임'이라는 문학 테마"였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일 것이라고 그렇게 두 형제가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살인을 방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간접적인 공범이 된다. 다들 각자의 판단과 핑계들이 있었지만 결국 돌아온 결과는 산띠아고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책을 놓고 나니 산띠아고 나사르를 살해하겠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도 살인이 제지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왜 이 질문에 자꾸 맘이 쓰이나 했더니, 결국 지금 사람들이 타인의 희생, 죽음을 묵과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편한 진실이 상기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용산에서 다섯 명의 목숨이 희생됐고, 검찰과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죄로 5, 6년씩 징역형이 떨어졌다. 문제의 원인이었던 뉴타운개발은 멈추지 않는다. 인간이라는게 원래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종족이었던가 싶은 생각에 매우 서글퍼진다.

 

어제는 아프간에서 영국 군인이 다섯 명이 총격으로 한번에 숨졌다고 한다. 아무런 명분이 없는 점령지인데도 한국정부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어이 다시금 아프간으로 파병을 한다. 마치 산띠아고 나사르의 예고된 죽음을 알고서도 다들 방조를 했던 것처럼 지금 한국의 상황도 꼭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 예전엔 인도적 지원의 일환이라느니 비무장 군인이라느니 등의 언사가 동반되어 있었지만 이번엔 심지어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불가피한 교전이 발생할 수”있다는 말이 나온다. 교전이 있다는 건 그게 한국 군인이건 탈레반이건 현지 민간인이건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도 파병을 한단다. 집단적으로 이성이 마비된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죽을 걸 알고도 보낼 수가 있을까. 누군가는 명백히 죽음의 위협에 놓일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예고된 죽음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것이 아닌 이상 애써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살인은 발생했지만 책임지는 가해자는 없는.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이 아닌 것이 된다.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것 처럼 보이는) 윤리. 정말 없는 게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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