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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3
    2009/08/23
    나르맹
  2. 2009/08/22
    기여, 소통, 현실의 공유(1)
    나르맹
  3. 2009/08/12
    Mike Seeger
    나르맹
  4. 2009/08/11
    윤진서-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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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8/11
    Nonviolent lessons from the 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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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8/09
    달리기
    나르맹
  7. 200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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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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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9. 2009/08/04
    마틴아저씨가 환갑을 자축하는 방법들
    나르맹
  10. 2009/08/02
    New inquiry into exploitation of the work-for-free interns
    나르맹

2009/08/23

Too often it seems our best lessons of “violence doesn’t solve anything” come after a dramatic and gruesome depiction of violence. Why can’t we show the failure of violence through the success of nonviolence? Why must it always be a negative to prove a positive? My hunch is that it stems from a lack of knowledge.

Nonviolence has successfully toppled some of the worst dictatorships and stifled Nazi forces in several European countries during WWII. But these stories are seldom told in popular media. If storytellers, such as Dysart, got them out to the masses, perhaps situations, such as the one in Uganda, could be preventable.

 

*출처 Comic books as political ex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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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소통, 현실의 공유

평화캠프부터 제주도 워크숍까지 일주일을 숨가쁘게 달리고 나니 이제 곧 새로 시작될 일상이 또 기다리고 있다. 뭔가 변화의 시기이긴 한 것 같다. 아무렴 뭐 무기력하게 가만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전교조 제주지회 선생님들과 비폭력대화 워크숍을 합께 했다. 자신들의 행동이 다 학생들을 위한 것인데 학생들은 그걸 몰라준다며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을 보다보니 어렸을 적 내가 공부방 교사를 하던 시절들 생각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은 '기여'의 욕구에서라고 말들을 하지만 막상 들여다 보면 선생님들 본인의 기준에 맞추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을 전제하고 있는게 나에겐 빤히 보이는데. 역시나 본인들에겐 그걸 자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 '욕구'와 '수단/방법' 그리고  '부탁'과 '강요' 사이에서 자신이 취한 입장과 행동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기여 욕구, 좀 더 친숙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게 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는거야"라는 식의 언설들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가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행동에 대해 자기 스스로 이미 전제하고 있는 고정틀이 있다는 점에서 관계에서의 활력을 불어넣기가 어렵다.

 

(워크샵을 통해 정리된 생각 ;)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동기가 관계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면 그 관계는 온전하게 유지되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욕구가 자신에게도 있는 욕구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 욕구들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수단/방법은 자연스레 따라나온다. 진정한 유대가 아닌 상대의 변화가 목적이라면 이미 상대는 자신의 눈만 보고도 관계에 대한 나의 진정성 여부를 알 수가 있다.  

 

아이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건 혹은 아이를 좌파적 이데올로기로 의식화를 시키는 것이건 이러한 일종의 수단/방법적 차원의 행위가 자신의 욕구인 것처럼 생각되는 순간 관계는 미끄러지고 비극이 시작된다. 공부방 아이들이 혹은 대학 후배가 공산당 선언을 나와 함께 읽었을 때 내게 충족되는 진짜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소통과 이해, 현실인식의 공유 뭐 이런 욕구가 아니었을까. 꼭 광역화 반대 투쟁을 함께 하고 맑스 세미나를 함께 해야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는데.

 

대학 때 교육세미나를 하면서 기존의 권위적 교사-학생 관계를 부정하고 전복시켜보고 싶은 마음에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고자 했지만 결과는 늘 모 아니면 도의 이분법 속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혹은 후배들이 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의식화 교육을 하는 것만이 나의 욕구라고 착각을 했었고, 한편으론 그렇다고 내가 비판하던 교사들처럼 권위적으로 학생들에게 '참교육'을 주입할 수는 없다는 자각도 하고 있었기에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교육'의 장으로부터 좌절하며 도망쳐 나오는 것이었다. 관계란 것이 늘 상호간에 영향과 자극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과정이거늘 나는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냥 그 관계에서 아예 손을 놓아버리고 떠나버렸고 더 가관인 것은 그러한 나의 행위를 '평등한' 관계라고 일방적으로 자기합리화를 했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한번 다시 만나보고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은 들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수단/방법을 마치 보편적인 욕구인양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먼저 아이들을 공감하기 위해서 존재를 던져 노력을 해볼 것이다. 소통, 이해, 현실의 공유라는 나의 욕구를 섣불리 '기여'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나만의 수단/방법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구분을 한다면, '기여'라는 욕구는 의도의 차원에서라기 보다는 그냥 다른 욕구들이 충족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성질의 욕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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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 Seeger

구글알리미 기능은 내가 설정해 놓은 키워드가 걸렸다 싶으면 바로 낚시를 해서 무차별적으로 나에게 보내준다. 그동안 날아온 글들 중에는 한국전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 그 당시의 병역거부 자체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주로 다른 얘기를 하면서 양념처럼 병역거부가 곁들여지는 식의 글들. 이번에도 그런 글인가 싶어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번엔 최근에 죽은 포크송 가수 마이크 시거의 생애에 관한 글(예를 들어 이런 글)들이 주루룩 걸려들어왔길래 한번 대충 훓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가수 이름이고 유튜브에서 좀 찾아서 들어봐도 익숙하지 않지만 밥 딜런이 영향을 받은 가수라고 하니. 쫌 많이 대단하긴 했던 사람인가보다. 한국전쟁 때 병역거부도 했었다니. 괜히 호감이 간다. 잘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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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서-이택근

야구기사들을 보다가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윤진서와 이택근의 연애라니........ 장률 감독의 영화 <이리>를 보고 윤진서에게 매력을 느꼈던 듯. 안에 깊은 응어리가 있어 보이지만 꾹꾹 누른채 내내 초연해 보이기만 하던 그녀의 눈빛과 말투. 한편, 기아의 팀방어율을 잡아먹는 팀의 중심타자 이택근. 리그에 드문 우투우타 중견수에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 그 성실함에 비해 팬이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 선수. 올 해 WBC 끝나고 어느 티비에 출연했다가 한 달쯤 지나고 나서 우연히 다시 식사자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이택근이 윤진서의 번호를 따내서 대시를 했다, 라고 기사에선 말하고 있다. 서로 쉽게 연결되기 힘든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의 연애여서인지 호기심을 마구 자극한다.ㅎㅎ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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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violent lessons from the Depression

 

 

 

Marching Longshoreman in San Francisco (1934)

Marching Longshoreman in San Francisco (1934)

 

"Nonviolent lessons from the Depression"


 "We need more protest to make reform possible"

 

 

이번 쌍용차 일과 관련하여 프레시안에 뜬 기사 중에 다른 노조들, 특히 같은 자동차회사 노조들에서 함께 연대하지 않은 점에 대해 지적한 기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Why is there so little protest in response to these hard economic times?

작금의 경기불황에 맞서는 시위는 왜 이리도 없는가?

 

위에 인용해놓은 링크의 글들에서는 요즘과 같은 경기침체기에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왜 그에 맞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미국에서 대공황기에 민중들이 펼친 비폭력행동들을 인용하고 있다. 예컨대 세입자들이 월세를 못 내어 집주인과 경찰들에 의해 쫓겨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달려와 항의하고 짐들을 다시 집으로 옮겨놓는 경우가 대규모로 일어나면서 결국엔 경찰들도 철거행위를 중단하고 국가에서도 혁신적인 주거정책을 새로 내놓았다는 식이다.  점거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결국은 국가와 자본에 무릎을 꿇게 되는 이 암담한 현실에 옛날엔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는 한편 지금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더 서글퍼지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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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일주일만에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뛰고 왔다. 한동안 일주일에 많게는 두세번씩 밤마다 운동을 하곤 했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뛰러 나가는 것도 힘들다. 어느새 스멀스멀 저녁마다 외출 약속들이 생겨서인 것 같다. 막 귀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아빠랑 같이 배드민턴도 적극적으로 치러 다니곤 했는데 관계가 한번 또 어그러지고 난 이후로는 배드민턴은 안 치고 혼자 달리는 것만 하고 있다.

 

한창 잘 뛸때에는 스무 바퀴까지도 어렵지 않게 뛰어졌는데 오늘 일주일만에 다시 뛰어서인지 심지어 열바퀴 채우는 것도 힘들더라. 유산소 운동을 하다보면 숨이 차차 벅차오르면서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순간이 있는데 오늘은 가슴이 아린 게 아니라 짓눌리는 듯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날 그날의 고만고만한 생각들을 가지고 뛰다가도 숨이 가파오면 자연스레 몸의 심장박동에만 신경을 기울이게 되고 그렇게 한번씩 땀을 빼고 나면 잠시나마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게 보통의 경우이다. 그런데 오늘은 뛰는 것에도 잘 집중이 되지 않고, 멈춰서서 숨을 돌리다보면 어느새 또 잡생각들이 찾아들어오는 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여느 때보다 좀 일찍 운동을 마치고 집에 걸어오며 계속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래도 달리고 나면 언어화되지 않은 상태로 침잠해 있는 여러 생각들이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드는 게 뜀박질의 좋은 점인 것 같다. 그렇게 묶여진 잡생각들을 하나씩 골라가며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상태랄까. 

 

운동장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하늘 높이 떠있는 흰구름과 그와 대조적으로 새파랗던 하늘의 색깔이 인상에 남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구름의 이름이 뭉게구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새하얀 구름덩이가 수직으로 뭉개뭉개 뚜렷한 층을 이룬 모습, 그리고 그 구름들 배경에는 마치 합성한 것처럼 선명한 비치색을 띄던 하늘의 모습.

 

*9회말 투아웃, 김원섭이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을 친 날. 이 말로 할 수 없는 감동.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살 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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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타석 홈런

집에 들어오는 길, 조은한테 문자가 왔다. 김상현이 3연타석 홈런을 쳤다는.. 집에 오자마자 다시보기를 눌렀다. 와..감동 그 자체다.. 신윤동욱의 <스포츠키드의 추억>에 언급됐던 것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이 날로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기아가 8연승을 하며 무려 2516일만에 해본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설령 포스트시즌에서 죽을 쓴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감동만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일진이 안 좋다고 혹은 다가올 수감생활을 앞두고 난 왜 이리 운이 없을까 탓하지 말고 적어도 2516일은 기다려봐야지 하는 일종의 묘한 깨달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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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의 인터뷰;

김상현은 경기 후 "홈런은 의식하지 않았다. 배트 중심에 맞추려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면서도 "군산 고향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상현은 홈런 1위에 2개차로 바짝 다가선 것에 대해 "홈런왕 보다는 타점왕에 욕심이 난다"면서 "루상에 주자가 많아 집중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상현은 "찬스에 강해진 이유는 LG에서 트레이드될 때 '이게 마지막이다'며 남다른 각오를 다진 것이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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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놈에 올라온 오늘의 베스트선수 인터뷰에서 김상현이 한 멘트 중 기억에 남는게 또 있다. 앞으로 몇년이나 더 야구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팬들의 성원 부탁드린다는 요지의 멘트. 지금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선수의 입에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야구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이라는 멘트가 나오는 것을 들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올해처럼 붙박이 1군에 있어본 적이 프로데뷔 10년 동안 한번도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내면의 은근한 불안감에서였을까. 마치 한창의 전성기에 미리 죽음을 걱정하는 듯한. 무슨 메멘토 모리도 아니고. 나에게 김상현의 그 멘트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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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일을 마치고

"yes" in the sky / "yes" in disguised
seeks satisfaction / six satisfaction
in council / in counsel
등등...

비폭력 대화 워크샵 통역을 하면서 자칼이 내 머릿 속에 자꾸만 왔다갔다 해서인지 내가 실수한 장면들만 계속 떠오른다. 기린말에 익숙해지려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어이없이' 단어를 놓칠 때마다 참으로 좌절스러웠다. "아 또 틀렸어", "거기서 왜 그걸 못 들었을까", "내가 다 아는 단어도 안 들린단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마다 호흡을 다시 가다듬고  재빨리 자기공감을. "잘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한거구나?"

통역을 하느라 활동에 직접 참여하진 못해 아쉽긴 하지만 대신에 자기공감 하면서 한숨 쉬어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버벅댈 때마다 바로 목소리도 작아지고 시선도 흔들렸지만 나중으로 가면서 아주 약간씩은 편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당시 나의 욕구 : 기여, 인정, (자존감), 배움 등등.

느낌 : 좌절, 걱정, 화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폭력대화'. 자기수행과 성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관계에서의 여유로움..? 센터에 나가면서 좋은 사람들도 새로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나에게 비폭력대화를 소개해준 아침에게 새삼 감사의 인사를.

 

어젯밤 ㅁㅅ와 통화를 하면서 정리된 생각.

욕심부리지 말고 짧게 밀어치기. 그러다 보면 단순히 진루타를 넘어 안타가 되고 타점을 올리고 심지어 운이 좋으면 홈런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 주자는 1사 만루, 타석에서 스탠딩 삼진을 당하면 단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 늘릴 뿐이다. 괜한 조바심에 당겨쳤다간 병살타의 위험이 있다. 어깨에 힘을 줬다가 어설픈 내야플라이로 끝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만약 이종범의 센스와 능력을 타고났다면 만루홈런을 상상하며 타석에 들어가겠지만, 중요한 건 난 이종범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대신 지금 1구 1구에 집중하고 이전 타석에서의 볼배합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스윙을 해보는 것이다. 이때 노리는 공이 때맞춰 들어와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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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아저씨가 환갑을 자축하는 방법들

On November the third I will be 60 years old.

To celebrate this landmark time in my life,
I’m going to visit lots of places,
and attend all sort of events,
which I’ve not done in a long time,
or have never done before.

 

The idea is to do some of the following with my various friends,
rather than have a just one celebratory party.

 

- Go to an concert of works by Janaceck and Glazunov.

- Spend a weekend in Lille.

- See a play by Bertold Brecht.

- Take a bus trip out to Hampton Court.

- Spend a day out in Canterbury.

- Go to see one of the light operas by Gilbert & Sullivan.

- Take a day trip to Ely.

- Spend an early evening with a beer at the Cheshire Cheese on
Fleet Street.

- Go to a production of Carmina Burana by Carl Orff.

- See a play at Wilton’s Music Hall.

- Spend a day out in Salisbury.

- Take a visit to the Brompton Cemetery.

- Have a day trip to Calais.

- Go to a production of Faures Requiem.

- Spend an afternoon in the Foundling Hospital.

- Take a day out in Hasting.

- See inside the Temple Church.

- Visit the Dickens Museum.

- See a production at 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 Take a day out in Warwick.

- Go see a production of the Mousetrap.

- Revisit  Liverpool and Chester over a long weekend.

- Spend a few days in Paris.

- Visit Dr Johnson’s house.

- Revisit the Sir John Soane’s Museum.

- Go to a concert at Wigmore Hall.

- Revisit the London Transport Museum.

&

- Shopping at the Vegetarian Shoe shop in Brighton.

 

So if your an old or new mate of mine,
and you fancy coming along to any of the above,
then  just let me know,
and we can arrange a time in which to do so.

  

*http://rahu.dk/martynlowe/?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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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독신남 할아버지라 그런가 60살을 맞이하는 방법도 다른 뭇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다. 저 많은 걸 혼자 하려면 아무래도 외롭긴 할 것 같다. 그래도 여기 저기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놓은 것 같으니 저 리스트 중에 한 절반 정도쯤 이상은 같이 할 만한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하나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나에겐 이른 저녁 플릿 스트릿의 decent한 곳에서 저녁과 맥주와 치즈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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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inquiry into exploitation of the work-for-free interns

http://www.guardian.co.uk/money/2009/jul/31/mps-graduate-interns-pay

 

가디언에 '인턴착취'에 관한 기사가 떴다. 고용없는 성장. 경제가 침체라지만 버는 사람들은 계속 번다. 정규직은 갈수록 하나의 진골계급처럼 되어가고, 한국은 '청년인턴제'가 대세인 듯 하다. 21세기의 노예들. 산업혁명기의 노예들과는 또 다른, 하지만 더 심각한 수준의 착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영국이든 한국이든,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 자본가들은 경기침체를 핑계로 새로운 이익을 창출해낸다. 아, 자본주의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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