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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1)
    나르맹
  2. 2009/09/23
    '끕'이 다른 공직자들(1)
    나르맹
  3. 2009/09/20
    2009/09/20
    나르맹
  4. 2009/09/15
    '싸가지 없는 애'(3)
    나르맹
  5. 2009/09/15
    The nitty-gritty of solitary confinement
    나르맹
  6. 2009/09/13
    Another case to challenge the unconstitutionality of Clause 1 in Article 88 of the Military Service Act
    나르맹
  7. 2009/09/08
    2009/09/08(2)
    나르맹
  8. 2009/09/08
    What is bureaucracy(2)
    나르맹
  9. 2009/09/06
    Queen vs. Outkast - Hey We Will Rock You Ya
    나르맹
  10. 2009/09/03
    김상현(2)
    나르맹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아내 폭력"은 명백히 성별화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성별의 문제는 가장 쉽게 간과된다. 가정 폭력적 접근 방식은 왜 언제나 때리는 사람은 "남성"이고 맞는 사람은 "어성"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남편이 스트레스 때문에 때린다면 왜 아내들은 술을 먹고도 남편을 때리지 않는지, 분노 처리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라면 왜 그 분노를 언제나 "집안에서만" 표출하는지, 폭력 행위가 손실(형사상 제재, 이혼)보다 보상(분노발산, 타인을 통제)이 크기 때문에 사용된다면 왜 여성들은 이 방법을 쓰지 않는지, 종교와 성격 차이 등 부부 갈등 때문에 때린다면 왜 남성들은 이혼한 이후에도 전 부인을 때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84쪽) (중략)

가해 남편과 당한 아내 모두 "피해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 경험의 간극은 세상 그 어떤 정치적 적대자들보다도 크다. 폭력 남편들에게 아내는 자신의 욕구, 요구, 의지, 이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대상 즉 남편의 권리 행사 대상이기 때문에 폭력 상황에서 인간적인 호소나 대화는 불가능하다. 폭력 남편이 자신의 푹력 행위를 반성하거나 정당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권력이 가족이라는 정치적 구조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그 자체로부터 보장되기 때문이다.(106쪽)

- 정희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지난 6월? 가출 아닌 가출을 했을 때 너무나 보고싶었는데 막상 찾으려니 안 보여서 읽지 못했던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는 중이다. 읽다보니 내가 엄마를 뺀 가족들과 대판 '싸웠던' 그 날의 장면들이 자꾸 떠오른다.. 다가오는 추석, 내게 명절은 가족이란 존재에 다시 떠올려보게 되는 때인듯. 너무 끈적끈적해서 뗄래야 떼지지도 않고 벗어나려해도 선뜻 벗어날 용기도 안 생기는 그런..

 

 

* 기아가 12년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이룬 날. 김상현과 최희섭이 홈런을 치고 로페즈가 잘 던지고 있는 동안 나는 극도로 높아진 일 스트레스에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쥐고 있더랬다. 칼퇴근은 하고 싶고 근데 업무는 남아있고, 내 스스로의 업무능력에 대해 회의가 먼저 찾아왔다. 집에 돌아와 기아 우승 확정 소식을 듣고 인터넷으로 오늘 경기를 다시 보니 새삼 감동이.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끼리 환호를 하던 순간 카메라에 잡힌 이종범 이대진 김상현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얼굴은 잔잔히 웃지만 그냥 웃는 것만은 아닌 듯한 표정이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가뿐한 마음으로 일 하려 했더니 뜬금없이 일에 대한 승부욕에 발동이 걸려버린 듯. 미친 듯이 끝내줄테다.

 

 

 

 

배설욕-_-;;

 

 

가을 바람이 솔솔 부는 출근길. 지난 겨울 오리가 파일을 보내줘서 날마다 들었던 이소라 앨범을 다시 꺼내 들으니 바로 감정의 과잉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어폰을 꼽고 걷던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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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끕'이 다른 공직자들

나에겐 공직자란 표현이 기사에서나 보고 듣게 되는 말이긴 한데, 오늘 가디언에 난 기사 를 읽고 나서 느낀 바를 메모하려다 보니 공무원 대신 공직자란 말을 쓰게 된다.

 

영국 법무부 장관(성이 'Scotland'인 사람은 처음 봤다)이 자기 집에 고용한 가정부가 알고 봤더니 취업 비자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통가에서 온 가정부라고 하는데 스코틀랜드 장관은 이 가정부가 영국인과 결혼을 했기에 당연히 취업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암튼 강화된 영국 이민법에 따르면 고용주가 알고도 '불법' 고용을 할 경우에 최대 10,000파운드(한 2천만원)의 벌금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 여성 법무부 장관은 이 일로 5,000파운드의 벌금을 징수받았다 한다.

 

유색 여성 법무부 장관의 존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된 영국 내각의 논쟁과 지금 한국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관료들 인사청문회의 논쟁이 오버랩되며 내게 찾아든 감흥도 꽤나 흥미롭다. 영국도 일본처럼 곧 내각 선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암튼 지금 영국 내각의 수상은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이 사람이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법무부 장관을 토리세력의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안고 가겠다고 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관이 'unreservedly'하게 사과문을 발표했고 통가 출신 가정부를 고용한게 법리상으론 불법이 맞지만 벌금도 다 지불했으며 가정부와의 고용관계에 있어 깊은 상호 신뢰가 있었던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유임의 요지인 듯 하다. 이에 반해 토리쪽에서는 지난 2006년 본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민법 개정의 결과물을 자신이 어긴 것이고 따라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법무 장관은 핑계조차 댈 자격도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걸 얼핏 보면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논리의 근거나 구조는 비슷해 보이지만, 지금 웨스트민스터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왠지 한국 인사청문회에서 다뤄지는 이슈들과는 뭔가 논의의 질이 달라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인 것일까?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세금탈루, 명의신탁 등등..병역비리를 제외하고는 익숙하지도 않은 말들이지만 그래도 이 모든 논쟁 사안들이 부동산, 재테크 뭐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이 얼마나 천박한 자본주의의 산물들인지. 법치주의와 서민경제를 날마다 입에 달고 사는 위정자들부터가 자기모순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에 반해 '불법' 이민자를 고용시켜주었다가 벌금을 물게 된 걸 가지고 싸우는 것은 적어도 재테크 방식을 두고 싸우는 것보단 나아보인다. 내가 영국에서 막판에 비자문제 때문에 골머리 썩이다가 결국엔 여권에 '불법' 낙인 도장을 받고 나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 영국 법무부 장관이 저질렀다는 '범죄'에는 오히려 일말의 호감마저 드는 이 미묘한 기분.

 

안 그래도 지금 학교에서 일 시작하고부터는 사람들이 비인격화되어 공무원 집단으로 뭉뚱그려진 상태에서 그 집단의 미운 것들만 자꾸 보이는데, 공무원들의 최고봉(?)인 장관급 각료들이 국회에서 하는 말들을 보고 있으니 차라리 안 보는게 속이라도 편하지 싶다. 심지어 정운찬 이 사람은 옛날에 본부 점거 농성 하던 시절 젤 미운 사람이었는데. (난 진중권이나 재범처럼 영향력 있는 인사가 아니니 설마 이렇게 썼다고 날 잡아가진 않겠지--;;)

 

"Hate the sin and not the sinner"

 

내 스스로를 비폭력이라는 가치로 학대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의심도 살짝 들지만 그래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내가 먼저 벽을 쌓으면 내가 더 힘들어질테니. 귀족의 도덕, 강자의 도덕을 위하여. 아래 영상은 은행 광고인데 이 광고에서 간디의 아힘사Ahimsa를 유추해낸 글이 있길래 링크를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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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0

학교에서 학생들 자습시간에 감독을 하는데 요 며칠 새에 애들 사이에 구글 어스 바람이 불어서 공부는 안 하고 노트북으로 가고싶은 대학을 검색해서 보느라 바쁜 것이다. 구글 어스 기능이 대단하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애들이 너무 삼매경에 빠져 있길래 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조용히 공부 다시 시작하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애들이 구글 어스로 보던 모습이 떠올라 나도 호기심 반에 런던을 찍어봤는데 왠걸 street view 기능을 통해서 정말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장면이 뜨는 거다. 그냥 위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위성사진을 기대한 거였는데, 나도 학생들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드래깅을 하며 한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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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caleroad에 있는 housman  책가게. 이 건물 2층에 wri가 있다. 지난 겨울의 기억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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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내가 3개월 정도 머물던 플랏과 그 앞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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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스퀘어..그 때가 춥긴 추웠나보다. 내 기억엔 우중충하니 스산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햇살 가득한 모습을 보니 왠지 낯이 설다..

완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오른쪽으로 붙어있는 national portrait gallery도..그 쪽으로 더 올라가면 소호가 나오고 한쪽으론 피카딜리서커스 다른 쪽으로 가면 코벤트가든이 나오는.. 주말마다 꾸준히 돌아다녀도 아직 못 가본 미술관들이 산재했던 런던. 미술관 박물관은 게다가 죄다 공짜. 혼자 지내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와우북 페스티벌 구경하러 홍대에 나가긴 했지만 홍대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헤이스팅스도 찍어봤는데 안타깝게 거리 사진이 뜨진 않는다. 시골은 시골인갑다.. 구글 어스로 북한이나 한국 군부대 내부도 다 보이려나..문득 궁금해지는.. 암튼 구글 어스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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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애'

*다른 선생님들한텐 고분고분한데 나에게는 싹수가 별로 없어보이는 학생 때문에 오늘 오후 내내 그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나의 평가가 덧씌워지면서 그 학생이 자꾸 얄미워지고 일말의 적개심 혹은 증오의 감정들이 감지되길래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보려 노력했다. 근데 바쁘고 다른 일에 치여 퇴근할 때 쯤엔 진이 다 빠져버려서 다시 곱씹어볼 기운도 없더라. 그래도 까먹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메모를.

 

"오늘 에세이 시험은 안 보면 안 되요?"

"왜요?"

"아 에세이는 봐도 별 의미도 없잖아요(!)"

"아 근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저는 권한이 없고 xx 선생님하고 얘기해보세요"

 

언제부턴가 내 안에 있는 '착한 선생 컴플렉스'에 대해 자각을 했다. 그리고 학생과의 관계에서 내가 학생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반대로 무조건 받아주거나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한 대화방식에 대해 고민을 계속 하는 중이다. 변화하려는 과도기에 있어서인지 종종 대화가 이도 저도 아니면서 내 말투에 은근슬쩍 가시들이 묻어날 때가 있다. 나중에 후회할 거 알면서도 일단은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치 탁구칠 때 2,3구 뒤를 생각하며 스윙을 하듯 말할 때에도 대화전개양상을 미리 상상하며 말을 꺼내보려 하지만 조금만 긴장줄을 놓쳤다 싶으면 이내 나를 자극하는 말들에 대해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다.

 

위 학생과의 관계를 복기하면서 처음에 내가 찾은 내 욕구는 자율성, (권한?)이었다. 근데 그건 그 학생보다는 내 보스와 더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욕구인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마치 종로에서 (보스한테) 뺨맞고 한강가서 (그 학생에게) 화풀이하는 상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학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 진짜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힘겹게 찾아낸 욕구는 '존중'이었다. 근데 막상 내 욕구를 그 학생에게 얘기를 한다고 상상해보니 왠지 그 학생은 바로 "저는 선생님 존중 안 한적 없는데요" 뭐 이런 식의 반응을 할 것 같았다. 마치 상대에게 자기 느낌을 말할 때 '난 무시당한 기분이야'라고 생각을 말하면 바로 상대가 그 말에 반발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 욕구를 더 찾아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학생을 공감해보려고 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병행을? 비폭력대화 연습 모임에 나가면 이 사례로 좀 도움을 받아볼텐데, 아쉽다. 도움/지원, 명료함이 필요한 것 같다.

 

외고 국제반 3학년. 1년에 최소 오천이 든다는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처음 학교 갔을 때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이 애들은 영악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자꾸 생각이 난다. 진정한 소통, 진정한 관계 이런 걸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안에 자꾸 젤 먼저 찾아오는 '싸가지 없는 놈'라는 이미지는 없애고 관계를 맺고 싶은데.

 

덧.

저녁에도 그 학생이 내 바로 앞에서 다른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가길래 내가 인사를 먼저 했건만 본척 만척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 때 난 속으로 '오오 자 날맹 릴랙스 릴랙스'를 연발했더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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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tty-gritty of solitary confinement

*수감자를 독방에 가두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미국 이야기에 관한 을 읽었다.

 

in spite of the known mental-health deterioration stemming from long-term isolation.” As one expert explained to me, “Their behavior is destined to deteriorate under those conditions. Then their poor behavior is used to justify why they should be there.”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은 Human Rights Watch 도 독방 수감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다. 감옥 갔다온 병역거부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독방을 원했던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출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옆에 없는 타지에서 한동안 생활해보면서 나는 설령 내게 독방의 기회가 온다할 지라도 독방을 선뜻 택하진 않겠구나 싶은게 독방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말 그대로 정말 내 이익과 관련해서만 생각을 해오다가 이번에 이렇게 독방 수감이라는 문제를 인권차원에서 접근하는 글을 읽고 나니 아 이런 접근도 가능하구나 생각이 들어서 링크를 걸어둔다.

 

 

*집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길래 잠깐 우쿠레레를 혼자 띵가띵가 치다가 문득 작년 겨울 더블린 공항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더블린 시내로 들어가던 때가 떠올랐다. 버스 안에서 따땃하니 잠에 빠져들었는데 깨고 나니 꽉차 있던 2층 버스가 어느 새 한가해지고 버스도 한적한 곳을 달리고 있는 거다. 그래도 설마 더블린 시내를 지나쳤겠어 믿었지만 내가 자느라 시내에서 못 내린게 맞았다. 휴우.

살짝 당황을 한 채로 바로 내려 맞은편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메던 바로 그 때 그 마을의 흐릿한 이미지와 깨끗한 하늘 차가운 공기가 함께 떠오른다. 근데 그 땐 왜 그렇게 잽싸게 다시 버스를 갈아탔을까. 그 마을을 좀 더 둘러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90분짜리 버스패스를 끊어서 탄 버스였고 잠에서 깼을땐 그 90분이 다 되가고 있었기에 돈을 아껴보려는 마음에 잽싸게 다른 버스를 갈아탔었겠지. 너무 낯선 곳이 불안도 했을거고. 하지만, 자다 깨어보니 나타난, 원래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우연한 곳을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매력이겠건만. 쩝, 이 아쉬움이 왜 오늘 갑자기 찾아드는 건지 모르겠다. 

다음에 더블린 갈일이 만약 다시 생긴다면 그 땐 그곳을 꼭 한번 다시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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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case to challenge the unconstitutionality of Clause 1 in Article 88 of the Military Service Act

"Judge Park Min-jeong of Daejeon District Court has filed a petition with the Constitutional Court on behalf of a 22-year-old man, challenging the constitutionality of Clause 1 in Article 88 of the Military Service Act,"

 

For more details related this issue, plz visit the following link below.

http://joongangdaily.joins.com/article/view.asp?aid=2909881

 

 

약간 의아하기도 한 것이, 같은 중앙일보인데도 영어판 기사가 먼저 뜨고 한글본이 며칠 더 뒤에 올라온 것 같다. 뭐 용어가 그리 대수겠냐 싶기도 하지만, 중앙일보라 그런지 아니면 영역한 인간의 의도가 반영이 된 것인지 기사제목엔 CO가 아니라 dratf dodger로 표현을 해놓았다.

 

판사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다. 이 관음증. 생년월일과 출신대학까진 뜨고 그 이상의 정보는 유료회원만 열람이 가능하단다. 돈을 내고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지 새삼 궁금해진다. 사진을 보니 여성 판사이다. 법정에도 여성비율이 높아지면 고압적인 분위기가 좀 덜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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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푸핫, 어젯밤 꿈에 양현종을 만났다. ㅋㅋㅋ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동네 슈퍼에 갔다가 양현종 선수가 사과를 깎아줬다. 어느 동네였는진 모르겠다. 높은 건물이 없는 좀 한적한 동네였는데.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걸어가며 계속 얘기를 나눴다. 요즘 팀 분위기와 윤석민 이야기 등등 뒷담화 비슷한 얘기들도 들은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새 보니 ㅁㅅ와 함께 제주의 시내에 있더라. 어느 데모 현장에 같이 와 있는거다. 참 희한한 꿈이다. ㅋㅋㅋㅋ

 

오늘도 출근을...ㅁㅅ말처럼 신경 많이 쓰면 암 걸려서 치료비가 더 드니 속 편히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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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bureaucracy

나에게 주어진 업무(의무)들은 있는데 정작 권한은 없는. 결정권한과 관련해서는 내가 담당자가 아닌데 직접 일을 수행하고 1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존재는 다름아닌 나라는 걸 깨닫고 경악을 했다. 소름이 끼쳤다. 이게 관료제의 본질이구나. 이것이야말로 '보신주의'의 기원이 아닐까. 의무는 명확한데 권한은 흐릿흐릿한,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프레임이잖아..-_-

내게 주어진 '학생인솔'이라는 업무를 하며 꼬이고 꼬인 소통구조(정확한 '담당자'의 부재 but 뒷처리는 내가 다 하는 듯한)를 절감하며 다른 사람을 자꾸 평가하려 하는 자칼들이 한 대여섯 마리쯤 나를 찾아온 하루였다. 나에게 일을 넘겨준 다른 사람이 뭇 공무원 중의 한명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 맘은 요동치기 시작했으나 열심히 자기공감을 노력한 덕인지 집에 돌아올 때쯤엔 비로소 그 선생님의 느낌과 욕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오늘 필요로 했던 것? 예측가능성, 명료함, 소통, 편안함. 그리고 공정함..?

 

컴퓨터를 업데이트 하느라 북마크를 다 잃어버렸다며 내게 다시 블로그 주소를 물어본 러블리 마틴아저씨를 위해..깔짝깔짝

 

A sort of idea/lesson of what bureaucracy is suddenly occurred to me today after I finished all the work I was supposed to do. As far as I know, in the world of bureaucracy being perfomed in a school-though it seems to work in a less dehuminising way-, while I'm supposed to finish up what's given to me as a duty, desirably without questioning too much about it, I haven't got any power to be engaged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where my job comes from. Again, while I have no ideas who I'm regulated by, I can sense it's pretty clear that I'm being definitely identified by those who are in any occasion to charge me if something unexpected happens. This is how I define what bureaucracy is, from the very experience I had today. This idea is becoming clear to my mind as I get used to working in a school setting. The only thing that I'm really concerned about is that even without noticing, I might someday lose the sense of trust that anyone can change even though I try no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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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vs. Outkast - Hey We Will Rock You Ya

 

 

주말의 끝. 토요일 밤의 홍대. 일요일 저녁 동네 운동장. 가을 밤 높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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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슬럼프'란 단어는 잘하다가 못해야 슬럼프지 꾸준히 못해왔는데 무슨 슬럼프가 있었겠어요. 프로입단 때부터 슬럼프였다가 이제 겨우 슬럼프에서 극복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거예요. 야구 10년 차가 된 후에야 지독한 슬럼프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선수한테 기억나는 슬럼프를 물어보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요. 야구를 못했던 기억이 너무 많거든요. 팬들은 제 마음을 잘 몰라요. 말하기 쉽게 '저 선수는 LG에선 헤매다가 KIA에서 왜 이렇게 잘하지?'하며 비난도 하고,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밑바닥에서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를 아는 선수들은 지금의 제 모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줘요.

 

-스물네 살 때인가? 정말 황당한 실수를 반복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김재박 감독님이 현대 유니콘스를 맡고 계실 때인데 9회 말에 플라이 볼이 떴어요. 그런데 그걸 놓쳐버린 거예요. 다행히 게임은 이겼고 한숨 돌린다 싶었더니 다음날 경기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그 플라이 볼을 놓쳤고 경기는 제 실수로 인해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임 끝나고 관중들이 다 보는 데서 타격코치님이 플라이 볼 잡는 연습을 시키시더라고요. 창피하기도 하고 너무 속상해서 연습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어요. 2군 경기는 낮에만 하니까 야간 경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에요. 라이트가 켜진 상태에서 공이 허공으로 뜨면 그냥 하얗게만 보이거든요. 잡을 것 같아서 서 있으면 공이 뒤로 빠지고, 정말 뭐가 팔릴 정도였죠. 그런 공을 자주 놓치면 자신감이 사라져요. 또 다시 그런 상황에 닥치면 두려운 나머지 자꾸 다른 수비수들을 쳐다보게 되고요. 한마디로 '헬프 미'인 거죠. 기사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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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중순까지만 해도 내가 전혀 모르던 존재였던 김상현 선수가 지금은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다니. 직접 만나본 적 한번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사실 10년간의 슬럼프'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공 스토리에 맘이 짠해지고 감정이 이입되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신파 스토리를 봄으로써 얻는 자기 위안? 뭐 이렇게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차원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10년 동안의 슬럼프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경지일 것 같으나, 모든 자신감이 사라지며 그냥 정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의 느낌들은 왠지 공감이 많이 되는 듯..

 

콘트롤 씨와 콘트롤 브이가 하루에 가장 많이 누르는 자판이고, 야구기사 검색은 커녕 심지어 메일 확인할 시간도 없이 일만 하고 있는데 어느덧 내일 하루만 더 버티면 주말이라니, 이렇게 주말이 반가울 수가. 논술 학원 처음 들어갔을 때 남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나이가 이제야 되었건만, 정작 지금은 또 차라리 그 당시의 나이가 되었으면 하는 기분이 든다. 학교에서 나는 군대 '아직' 안 간 대학 4학년인데 나이는 '의외로' 많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  불편함, 찝찝함, 걱정 등등. 편안함과 가벼움이 나에겐 필요한데. 그동안 배운 눈칫밥으로 '적응(!)'하려 노력하는데, '행복주'로 불리는 폭탄주를 신입 선생들이 마시는 것이 이미 기정 사실화 된채로 한편으론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실 수 있는' 선택권이 또 제공되는 이 묘한(한국적 글로벌리즘/개인주의?) 분위기에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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