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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4
    6kg(4)
    나르맹
  2. 2008/09/21
    2008/09/21
    나르맹
  3. 2008/09/11
    under the weather(2)
    나르맹
  4. 2008/08/13
    2008/08/13(7)
    나르맹
  5. 2008/08/04
    브라이튼 게이 퍼레이드(1)
    나르맹
  6. 2008/07/31
    비행기 예약 완료!(1)
    나르맹
  7. 2008/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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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8.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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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9. 2008/07/15
    7월 14일
    나르맹
  10. 2008/07/14
    7월 13일
    나르맹

6kg

참 재밌는 경험을 했다. 일요일 저녁부터 끊긴 전기가 일요일 밤 늦게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자정부터 끊기기 시작해서 월요일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다시 돌아왔다. 허허 이젠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아서 이번 일 역시 하나의 재밌는 해프닝으로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지만, 참 흥미로운 경험임에는 틀림 없는 듯 하다. 지난 달에 여행 다녀오고 나서 그에 관한 diary를 쓰고 있다고 홈스맘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오죽 하면 홈스맘이 오늘 그걸 기억해냈는지 영국에서의 정전 경험에 관한 diary를 써보는 건 어떻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더라.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영국도(?) 전기 공급이 민영화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양 옆으로 붙어 있는 이웃들이 모두 다른 서비스 공급 업체로부터 전기를 구매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이번 정전은 불행하게도 유독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거리의 집들만 겪었는데 이럴 경우에 그럼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홈스맘은 ‘have no idea’ 였다.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하기 전에 다른 성미 급한 이웃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민영화로 인해 전기 공급을 책임지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기민한 다른 이웃이 전기회사든 어디든 전화를 해서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조치를 취하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누군지는 홈스맘도 모른단다. 그저 전기가 돌아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만사 태평한 홈스맘의 그런 말에 혼자 맘 속으로 민영화가 영어로 뭐더라 이걸 어떻게 한번 얘기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 나만 무색해져버렸다.-_-;; 암튼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만 하루동안 정전이 벌어졌다면 아마 바로 포털 메인에 기사가 뜨면서 한전에서 해명을 하는 보도자료를 내놓지 않았을까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그나마 내가 사는 집은 전기 오븐이 아니라 가스 오븐이어서 이번 사태를 겪는 와중에도 저녁을 무사히 해먹을 수가 있었다. 홈스맘 말로는 전기 오븐을 가진 집은 밥해먹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고.. 정전이 계속 되던 일요일 저녁에는 홈스맘과 living room 에서 초들을 켜놓고 어둠 속에서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밥을(meal을?) 뚝딱뚝딱 해치워 먹었다. 월요일 저녁에는 일요일 저녁을 교훈 삼아 해 떨어져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해서 테이블에 양초들을 켜놓고 후딱 해치워버렸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고작 7시를 갓 넘기고 있었다. 저녁 7시, 평소라면 한창 홈스맘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인데. 암튼 난 홈스맘이 설거지하는데 옆에서 후레쉬를 들고 비춰주면서 전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의 삶에 대해서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홈스맘이 아일랜드에 살던 시절 얘기도 또 듣고.
여기 와서 이사를 할 때마다 내가 이걸 한국에서 왜 들고 왔지 하고 생각이 들던 것 중 하나인 후레쉬를 이번 기회에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잠시나마, 캠핑장에 밤늦게 도착해서 서로 후레쉬를 비추며 밥을 해먹던 기억이 났달까.
 
보통 생활패턴에 따르면 홈스맘이 샤워를 끝내고 나갈 준비를 할 무렵쯤 내가 일어나서 부시럭부시럭 씨리얼과 빵과 우류를 챙겨먹기 시작하는데 월요일 아침에는 홈스맘이 아침에 출근을 늦게 할거라면서 부엌에서 이리 저리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옆집 사람 말로는 (여전히 나로선 정체를 정확히 짐작할 수 없는, 왜냐면 한국처럼 한전 이런게 떠올려지지가 않으니) 전기 회사 직원이 말하길 아침 8시 반에는 다시 전기가 돌아올거라고 했다고. 그래서 그 때 전기가 돌아오면 보일러도 다시 돌테고 그럼 따순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말리며 세팅을 할 수 있을테니 홈스맘이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기는 월요일 하루가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홈스맘은 회사 상사에게 얘기해서 월요일 하루 회사를 쉰다고 말했다고 한다. 얘네 문화에서는 회사 하루 빠지는 게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얼핏 듣기로 영국이 그나마 이 주변 국가들 중에서는 휴가가 가장 적은 곳인데 그래도 일반적인 샐러리맨들이 1년에 갖는 휴일이 보통 최소 한달이라고 한다. 이걸 예컨대 여름에 5주 몰아서 쉴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씩 쪼개서 쓸 수도 있고. 휴가를 어떻게 언제 어디서 보낼지 생각하는 것도 삶의 낙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홈스맘은 화요일도 결국 휴가를 냈는데, 그녀 말에 따르면 회사 supervisor에게 전화를 걸어서 not feeling very well 이라고 말했고 그걸로 이틀을 연달아 집에서 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정전이 되니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좀 견디면 되고, 전기로 물 끓이는 대신 냄비에 가스로 끓이면 되고, 하지만 문제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월요일 저녁에 홈스맘이 아들 조나단에게 부탁해서 냉동실에 있는 음식 전부를 전 남편 집 냉장고에 넣어놓으라고 보냈다. 그런데 웬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렇게 음식들을 들려 보낸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전기가 돌아와버렸다.-_- 이럴 때 that's life 란 말을 하게 되는 걸까. 암튼 음식이 다 상해도 얘네 여건에선 이런 정전 사태를 책임질 주체가 불분명하기에 따라서 금전적인 보상 이런 건 상상하기 힘들 듯..홈스맘 왈, I don’t know who’s going to compensate for this disaster!
 
 
 
정전이 된 와중에 저녁을 먹고 우연찮게, 아주 우연찮게 몸무게를 재보게 되었다. 후레쉬로 눈금을 비추면서 말이다. 여기 와서 한번도 안 재어봤기에 내심 호기심에 가득차서 눈금을 보았는데.....
오 마이 갓, 저울의 눈금은 예전 내 몸무게보다 6kg 더 나간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unbelievable 이었다. 그래 좋아, 겉옷을 입고 있었고, 저녁을 먹은 직후였고, 저울이 약간 부정확한 걸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해보아도 6kg나 찌다니 웃어얄지 울어얄지 정말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급작스레 내 뱃속에 있는 음식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안 그래도 조여오던 바지 허리단이 더욱도 조여져오는 느낌이었다. 엄마한테 말하면 아마도 틀림없이 기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향으로 살이 찐 것 같진 않아서 영 찝찝하다. 마치 시계의 숫자로 분절된 삶 이전에 자연의 주기에 맞추던 삶이 있었던 것처럼, 저울의 숫자 이전에 내 스스로 느끼는 몸의 상태가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며, 무려 6kg나 쪘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불편해하거나 하진 않았잖아 하고 생각해보지만 영 찝찝한 것이 거참..지금 내 몸의 체성분 분석을 해보면 6kg의 대부분은 여지 없이 체지방이 아닐까..한편으론 여기와서 나름 꾸준히 많이 걸었으니 그렇게 또 우울한 결과가 나올까 싶기도 하고. 암튼 한국 돌아가면 무조건 첫째로 단식을 해야지 하는 다짐이 굳게 들어버렸다...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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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1

 
어느 날씨 좋은 가을 오후
 
한국은 아직도 많이 덥다고 하는데, 여기는 완연한 가을이다. 물론 여름에도 반팔 꺼내 입은 날이 손꼽을 정도로 드물어서 이게 정말 내가 아는 여름인가 하는 생각으로 지냈지만,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부는 쌀랑한 약간은 싸늘한 바람이 가을을 물씬 느끼게끔 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가을이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었던거다.
 
이태리에서는 찌는 듯한 공기와 따가운 태양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는데, 반대로 여기서는 이번주에 특히나 더 태양이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여전히 자외선이 따갑긴 하지만, 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정말 기분이 왔다갔다 한다. 해가 없으면 날도 우중충 기분도 우중충 해지는데 해가 나올라치면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무조건 바깥에 나와서 일광욕?을 즐긴다. 이렇게 생활패턴이 변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변화가 참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다.
 
삶이 단순해지고 새로운 자극이나 활력이 없어지면 이렇게 되는걸까 싶게도 요즘 자꾸만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특히나 몸으로 느끼는 대기의 기운이나 바람의 냄새 촉감은 예전에 경험했던 특정한 시공간을 떠오르게 한다.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에 불현듯 대학 1,2학년때 환활을 갔던 마을의 골목길들과 마을회관이 떠오르는가 하면, 아침에 학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맡는 싸늘한 공기와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을 느끼면서는 문득 2년 전 복학했을 때 아침마다 지나던 거리를 떠올리는 식이다. 온수역에서 타던 빈 열차, 신대방삼거리역에 내려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걷던 길, 학교 정문에 내려 강의실까지 걸어가던 길. 그 때 듣던 윤도현 1집과 넬의 노래들. 유럽 여행 직후에 활기 넘치던 순간들이었는데. 학교 수업 마치고 750번을 타고 경찰청에 내려 아랫집으로 걸어가던 기억들. 서대문에서 다시 부천으로. 신길역에서 갈아타는 1호선. 그렇게 긴 동선을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경이로운 생각도 잠시 든다.
 
의식 저편에서 꺼내져온 기억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하고 금세 다른 기억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학원에서 컴퓨터실 문닫을 때까지 지영이와 대화를 하다가 문닫는다는 소리에 급히 짐을 챙겨 건물을 빠져나와서 바라보는 석양에 문득 관악산 자락이 떠올라버렸다. 학교 기숙사 옆에 있던 오분산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던 장면이 생각났다가, 기숙사 살 때 운동장과 빨래방이 생각나다가 사범대 내정의 벤치가 떠오르다가 하는 식이다. 특정한 장면마다 함께 했던 사람들 얼굴도 줄줄이 스쳐지나간다. 재밌는건 최근 1,2년 간의 기억은 의외로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는 거다. 내가 요 며칠 왜 부쩍 옛날 기억들이 떠오르는걸까 생각을 하다가 언젠가 읽었던 소설 중에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캐릭터를 보았던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소설 제목이나 작가 제목은 전혀 떠오르질 않는다.
 
어느 가을 날 아침의 상쾌한 공기, 대낮의 따스한 햇살, 밤에 술한잔 하러 가는 길의 싸늘한 공기. 몸에 각인된, 그러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기억들이 이렇게 센치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적당히 사람들을 만나고 적당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하루하루들이 나중엔 어떤 식으로 떠올려질까..하는 생각까지 하는 나는 정말 한가하긴 한가보다.
 
인터넷이 안 되어서 워드에 쳐놓은 걸 유에스비에 옮겨담다가 문득 또 뎅 출소하던 날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그 날도 바람이 서늘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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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weather

- 목요일 오후. 이탈리아에서 돌아온게 월요일. 쉬지도 못하고 화요일부터 바로 아침 9시 학원 수업을 들었더니 그나마 남아있던 진이 다 빠져버린 듯 하다. 3주간의 여행, 그 동안은 보통 여행을 오래하고 돌아오면 활력에 넘쳤던 것 같은데, 그게 또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뭔가 좀 이상하다..이게 영국 날씨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요 며칠 날씨도 기분 변화에 큰 몫을..

 

- 3주 휴가에서 돌아오니 오후반 선생이 바뀌어 있었다. 여기와서 선생님들과는 다 무난하게 잘 지내왔던 것 같은데 이번 선생은 영 나랑 궁합이 안 맞는듯 하다. 논술학원에서 컴플레인을 받았을 때의 느낌들이 떠오르고 있다. 그 때 학생들이 나에게 이런 느낌을 가졌던 것일까 하는. 서로 안 건드리고 적당히 거리 유지하며 지내면 좋을텐데, 기어이 오늘 선생이 나를 건드리고 말았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서로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늘은 정말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다가 눈물이 찔끔 나버렸다. 아마 그 선생도 나처럼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을 곰곰이 곱씹고 있을까. 마치 내가 컴플레인 받고 나서 내 행동을 되돌아보며 아쉬워하고 후회하듯이 그 선생도 오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을까 그러면서 힘들어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다가 내가 왜 그 사람 감정까지 이렇게 헤아려야 하지 흥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다음 주면 어차피 다시 반이 바뀔텐데,, 내 안에서 이미 한번 틀어버져린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유감스럽게도. 물론 나도 때론 면접, 첨삭, 토론 대충 준비해서 오늘 하루만 잘 때워보자는 생각을 종종 했지만, 여기서 선생들이 가끔씩 아무 교재 복사한거 들고와서 던져놓고 알아서 잘해봐라 그러면서 정해진 수업 시간을 때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때는 정말 내가 여기 왜 앉아 있는걸까 하는 회의가 더욱더 강해진다. 어디다 대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 지금 여기 있는 도시에서 지난 달 말에 살인(?) 사건이 났다. 아랍에서 영어공부하러 온 16살 난 학생이었다는데, 이 곳에서 악명높은 10대들에게 당했다고..오늘 정말 우연찮게 이 지역 신문을 읽었는데 온통 그 사건 얘기였다. 그러면서 여기 헤이스팅스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영국의 다른 신문들을 비판하는 한편, 희생자의 가족들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헤이스팅스가 나쁜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흔적이 너무나 역력했다. 몰랐는데 이 곳에 1년에 방문하는 외국학생이 무려 35,000명..엄청난 수입을 가져다 주는 셈이다..리버풀이나 브리스톨에 며칠 머물면서 느꼈던 이 곳과는 다른 느낌들이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듯 하다. 실업자가 다른 도시보다 많고, 주요 수입원은 관광&영어학원 산업인 도시의 분위기. 내가 유색인종이구나 하는 느낌을 늘 자각하게 하는 도시. 나야 뭐 호스트패밀리와 잘 지내고 있지만, 암튼 사건 터지고 이 지역 신문에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니 급 정이 떨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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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내 몸에 줄줄이 달린 선을 뽑는다
뭣보다 먼저 핸드폰을 던져두고
시계도 풀어놓고
승용차 따윈 물론 세워둔다
태양에 꽂은 전선만 남겨 두고
배낭 하나로 집을 나선다
훌훌 씨방 떠난 풀씨처럼
이제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줄을 벗어 났으니
광막한 공간이 나를 품어줄 것이다.
 
  -조향미 시 '탈선(脫線)


- 여기 와서 변한 생활 습관 중에 하나는 예전보다 더 메일을 열심히 확인한다는 거. 생각나는 사람들, 하고 싶은 말들이 있을때 메일을 띄워놓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매일마다 메일부터 확인을 한다. 아마 한국에서라면 결코 상상 못했을 짓인데. 밤에 궁상맞아지면 문자라도 한통 보내던 버릇이 남아서 이제는 메일로 그 욕구를 충족하는가 싶다. 사실 주로 쓰는 메일함의 80 아니 90프로 이상은 hrnet 메일이다. 사무실 활동하던 한 때에는 열심히 hrnet 메일을 읽으며 감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거의 스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기륭전자 관련한 박래군의 메일에 대한 개굴의 리플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시 한 귀절에 잠시 넋을 읽고 말았다. 그래서 구글에서 시 전체를 찾아서 읽어 보았다. "줄을 벗어 났으니 광막한 공간이 나를 품어줄 것이다" 이상하게 이 구절에 위안을 받는 느낌이었다.

- 확실히 인터넷이 집에 설치되고 나서부턴 생각을 덜 하게 된다. 아니 글을 덜 쓰게 된다. 혼자 저녁 만들어 먹으면 심심하니깐 늘 노트북으로 서핑을 하며 세월아 네월아 저녁을 해치운다. 올림픽 때문에 야구가 잠시 쉬는 바람에 다시보기를 할 수 없는게 아쉬운 요즘이다. 이번 주에 플랏을 뜨고 여행 다녀와서 다시 홈스테이 들어가면 마음껏 인터넷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치 월동준비 하듯 이 영화 저 영화 이 만화 저 만화 열심히 다운을 받아놓고 있다. 덕분에 노트북은 쉴 틈이 없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학원을 다녀오는 동안에도 느려터진 속도로 꾸역꾸역 차곡차곡 하드디스크를 채워가고 있다. 처음엔 뿌듯하다가도 이제는 내가 마치 다운 중독증에 걸린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 이번 주 주말에 다시 또 한번 이사를 할 생각을 하니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특히나 냉장고에 채워놓은 갖가지 야채들을 열심히 점검하면서 무얼 더 사야할지 남은 저녁들 식단은 어떻게 짜야 효율적으로 재료를 소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게 요 며칠 주된 고민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대애충 아다리를 맞추려고 노력 중인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재료를 한 번 더 사와서 남으면 버리거나 아니면 없는 재료로 적당히 허기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만 요리를 하거나. 아님 인스턴트로 때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봐얄 듯 싶다.

- 13시간 뱅기 타고 여기 오고 나서부터 거의 매일같이 드는 느낌이었지만 요 며칠 특히나 더 뱃속에 숙변에 쌓여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여기선 두유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아침을 적당히 때우려면 가장 간단한게 씨리얼인데, 결과적으로 몇 년만에 우유를 일상적으로 다시 먹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우유 덕택에 화장실 가면 쑹쑹 일을 봤는데, 그새 또 내성이 생겼는지, 우유만으로는 아쉬운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아침마다 사과도 열심히 먹고 나름 영양섭취도 신경쓰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와는 달리 뱃속이 거북한 느낌이다. 빵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젠 뱃속에서 거부하는 걸까. 한국 돌아가면 바로 단식부터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녁에 남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 왔다갔다 하고 적당히 마트 왔다갔다 하면서 산책하는 것밖에 없는데, 늘 해야할 일 리스트는 줄지 않는 느낌이다. 리스트는 대체로 누구에게 편지 혹은 메일 보내기, 여행정보나 생활실용정보 알아보기 등이다. 삶에 기름끼가 빠져서 담백해졌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무미건조한 일상이 되어버린 건지 헷갈린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도 하루에 여러 번씩 요동을 치는가보다 싶다. "줄을 벗어났으니 광막한 공간이 나를 품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엔 내가 정말 지금 줄을 벗어난걸까 하는 회의가 더 자주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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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게이 퍼레이드

8월 2일 토요일, 큰 맘 먹고 브라이튼을 향해 기차를 타다. 그 동안 주말에는 항상 집에서 인터넷과 함께 오타쿠처럼 지내왔는데,, 1년에 한번 있다는 게이퍼레이드,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가 되어있길래 스쿨트립을 따라 함께 가기로 했다. 브라이튼 박물관에 게이&레즈비언에 대한 역사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미 1820년대부터 게이들이 이 도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레즈비언 게이들의 이동이 계속 되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제부턴가 1년에 한번씩 퍼레이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1년에 한번씩인 퍼레이드가 바로 어제였다.







브라이튼 박물관에서 본 1910년대의 와인잔. 이쁘네..



박물관의 전반적인 컨셉 중에 하나는 한창 영국이 식민지로 나갔을때 현지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기증받아 전시해놓는 것이었다. 흔들려서 잘 보이진 않지만 한창 잘 나갈 때(?)의 영국 영토를 표시한 지도.




박물관을 둘러보고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동. 비가 꾸릿꾸릿 내린다. 다 커밍아웃을 한 경찰들인가보다..한국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들텐데..효웅이 생각이 났다





십자가. 자세한 맥락은 모르겠지만 아마 진보적인 교회에서 나온 분들인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여기도 역시나 교회에서 피켓 들고 나와서 악마니 어쩌니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한국의 보수파처럼 난폭하진 않았다.





소방서 혹은 긴급출동? 뭐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아예 소방차를 꾸며서 퍼레이드에 나왔다. 온갖 싸이렌을 울려대면서..





이 것도 하나의 집회라면 집회일텐데..한국과 다른 점은 중앙 무대차가 없다는 거. 그래서 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한 그룹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 각자가 준비해온 음향장치에서 나오는 흥겨운 음악들이 사람들을 들뜨게 만든다. 소리 꽥꽥 지르면서 하는 발언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다. 보통은 저렇게 큰 트럭을 빌려서 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행진을 진행한다.





영국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bbc 뉴스에서 짐바브웨 선거 얘기를 계속 보여주던데, 자세한 맥락은 못 알아들었지만 암튼 그것과 관련한 분들인가보다. 트럭 앞 유리창 앞에 서있는 기린이 참 귀엽다.





이 지역 노조에서 나왔나보다. 한국으로 치면 아마 버스운수노조쯤 되는 곳도 보았다. 노동당 깃발도 보았고, 웬만한 그룹들에서 다들 각자의 컨셉을 가지고 나온 것 같았다.





수 영 강사들 연맹? 정도쯤 되는 곳에서 나온 사람들. 수영빤스만 입고,,,날이 꽤나 추웠는데 그래도 다들 활짝 웃는 모습..이 사람들 앞에는 수영 강사 한 명이 구르마 위에 엎드려서 자유형 수영을 하는 포즈로 계속 행진을 하는데 알아차리고 나서 한참을 낄낄 웃었다..ㅎㅎ





어딜 가나 저렇게 디자인 하는 센스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 밖에도 정말 다양한 복장 다양한 사람들이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










이 사진은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로얄 파빌리온. 옛날에 귀족들이 살았다던 곳이라고 들은 것 같다. 입장료가 있어서 밖에서 그냥 사진만. 한편 이 동네 박물관은 대부분 공짜..90년대 후반에 토니 블레어가 정권을 잡고 나서 바뀐 거라고 들은 것 같다.. 사실 여기 노동당도 좌파 색깔이 거의 없다고들 하던데, 그래도 복지 정책에는 은근히 변화가 많았던 것 같다, 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행진을 다 보고 자유시간. 혼자서 여기 저기를 걸어 헤메이다 잠깐 해가 나서 한 컷.





시내의 어느 한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서점. 왠지 모를 반가움에 들어가보다..ㅎ





제목이 맘에 든다. 서문을 잠깐 읽었는데 좋은 말들이 많이 써져있었던 것 같다.^^:; 할인해서 한국 돈 만원 정도 였던 것 같은데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ㅠ





역시나 반가움에 한 컷..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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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예약 완료!

9월 1일 브리스톨 출발 밀라노 도착.
라이언 에어에서 예약을 마치다.
딸랑 1파운드짜리 비행기, 체크인 수속비 4파운드와
데빗카드 수수료 4파운드(-_-) 해서 도합 9파운드.

플랏을 떠난다는 문자를 집주인에게 보내고 나서
뭔가 꿈속을 헤매듯 하나하나 계획을 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신월동 성당이 뭔가 익숙하다 싶어서 지도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일요일 아침마다 학원 출근하면서 지나던 곳이었다.
강철민 농성 때도 그렇고 나란 인간은 농성이랑은 인연이 없나보다 생각이
든다. 아쉽다. 지지후원 카페를 들락날락하는 것만으론 충족할 수 없는
사람 냄새가 그리운 건가,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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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7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또 지나가버린 한 주, 그리고 토요일. 매일 아침마다 고역처럼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지만 조금 버티면 주말이 찾아오고,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면 어느 새 연말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처음 접해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쓰고 나니 사뭇 새삼스럽다.

책을 좀 보다가 자다가 스카이프 통화를 하고 서핑을 좀 하다가 다시 자다가..일어나 대충 저녁을 만들어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열심히 알아보다가, 네이버 지식인을 그리워하며 오늘은 이쯤에서 포기. 슬램덩크를 마저 봐야지..ㅎ

오랜만에 찾아간 이 사람 저 사람들의 미니홈피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근황을 엿보고 나서 든 생각. 사람들 캐릭터, 고민은 쉽게 안 바뀌는구나 싶은. 오래 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런 것도 아니구나 싶은 생각. 한국에 있었어도 딱히 계기가 없으면 가끔 문자 정도 주고 받는 거 외에는 만날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 그래도 시나브로 세월의 흔적이 더 쌓여서 나중에 돌아보면 서로 변한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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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 언제부턴가 '나'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어났던 것 같다. 나는 누굴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 미래는 어떠할까 등등. 아마도 우연한 계기로 '매트릭스'를 다시 보게 되면서 이런 고민은 더 깊어져만 갔던 것 같다. 그리곤 정답을 알 수 없는 괴로움에 끊임없이 바닥을 치며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게 됐던 것 같다. 하루에도 여러번씩 감정 굴곡이 바뀌는, 일종의 조울증인 건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의 문제제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예컨대 이미 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사람들은 '소비'의 자유 이상을 고민하기가 힘들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당시에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며,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의 '바이러스'는 곧 시스템의 '오류'이며, 이는 '저항'이자 '자유'라는 식의 멘트에 혹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이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나의 모습은 그럼 과연 '오류'인 것인지, 혹은 이 마저도 이미 시스템 안에서 예측가능한 하나의 모습에 불과한 것인지 궁금증이 뒤따랐다.

그 와중에 헤이스팅스로 옮겨와서 6개월 정도 살기로 결정을 한 셈이다. 그래서 자꾸만 도피성 유학 이런 말을 스스로 하게 된다. 여기 와서나의 고민은 이제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여기 오기로 결심한 건 나였는데, 여기 왜 있나를 고민하는 내 모습이 참, 뭐랄까..기분이 복잡하다.


-일요일 오전, 빨래를 널어넣고 웨스트 힐로 산책을 나갔다. 지름길을 알았기 때문에 15분 정도면 힐에 도착해서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볼 수가 있다. 하늘에 구름이 참 특이해서 담아두고 싶었는데 챙겨야지 했던 카메라를 깜박해버렸다. 혼자 느지막이 걷다보니 또 생각이 많아져서 메모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펜과 노트도 없이 나와서 대략 좌절. 그나마 챙겨들고 나온 mp3를 들으며 바다를 향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 여기 저기를 찾아 헤메이는 갈매기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갈매기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먹고 자고 싸는 것 이상의 무언가의 재미가 나에게 있긴 한걸까 하는 생각.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문득 한편으론, 갈매기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어버렸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덜 벌고 소비를 덜 하며 좀 더 자율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하는 고민과도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한 시간 정도 하면서 앉아있었나보다. 이번에도 역시나 새롭게 알게된 지름길을 따라 모리슨으로 내려와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이 뚫리고 나니 주말 내내 노트북과 함께 지냈나보다. 사람들 연락도 하고, 여행 계획도 세우고, 열심히 영화 다운도 받고. 학원에서 내준 숙제는 손도 안 건드린 것 같다. 풉. 토요일에는 아예 밖에도 안 나갔으니 오타쿠 생활을 한 셈이다.


- 목요일 저녁부터 와있던 집주인이 도무지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보통 완전히 독립되어있는 플랏도 아니고, 방이 나란히 붙어서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다보니 자꾸만 마주치게 되어서 영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며칠 또 이렇게 같이 살면서 부딪히다 보니 집주인 캐릭터도 대충 파악이 되고 있다. 나이가 30대 초반인데,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갈수록 강하게 든다. 세입자인 나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쿨하지가 못 한 것 같다. 얘가 나보고 이것 저것 조언을 가장한, 내가 해서는 안 될 것들 목록을 여러 번에 걸쳐서 얘기해 줄 때마다 처음엔 은근히 주눅이 들었는데, 이제는 집주인이 왜 이렇게 쪼잔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예컨대, 지난 약 3주간 나 혼자 지내면서 화장실 세면대가 때가 타길래 부엌에 있는 철수세미를 가지고 한번 문질렀는데, 오늘 걔가 나더러 수세미로 문질렀냐고 물어보더라. 그러면서 이 세면대가 자기 부모님이 프랑스에서 사온 건데 역사가 있는 세면대니 어쩌니 하면서 여기 이렇게 상했다는 말을 몇 번을 반복해서 한 것 같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해서 난 몰랐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럼 집주인인 니가 좀 깨끗하게 관리 좀 해놨으면 내가 철수세미질을 안 했을 거 아니냔 생각이 들더라. 혹은 오늘 아침에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고 있는데 은근슬쩍 다가오더니, 빨래가 적을 때는 'half load' 버튼을 눌르라고 한다. 그냥 하면 물이 많이 든다고 하면서 말이다. 허 참. 그래서 나도 안다, 내가 그 버튼 누르고 해봤더니 시간이 더 걸리더라, 이렇게 말하니 걔가 그랬냐면서 그냥 돌아서버린다. 모르긴 몰라도 얘는 정작 그 버튼 누르고 사용한 적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는 인터넷 설치비만 110파운드, 한국돈으론 22만원 정도니깐 한국 인터넷을 생각하면 무지 비싼 셈이다. 그리고 나서 한달에 내는 돈은 4만 4천원 정도. 결과적으로 이제 집에서도 자유롭게 이렇게 인터넷을 쓰고 있지만 설치하는 과정에서도 지금 돌이켜보면 볼수록 얘가 쪼잔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도 밉거나 하진 않다. 그냥 귀엽단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것 같긴 하다. 암튼 결론은, 역시나 유럽 애들도 유럽 애들 나름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나는 꼬박꼬박 부엌에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서 해먹는데, 얘는 계속해서 인스턴트 음식을 사와서 해먹곤 하는 것 같다. 나야 여기서 주말에 딱히 만날 사람이 없는게 이상하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이 드는데, 집주인인 얘는 친구도 없는지 집에만 있는 걸 보면, 이 친구가 정말 친구가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ㅎㅎ 암튼 이 친구 안 마주치려고 집에서 눈치를 보느라 결과적으로 이번 주말은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 그만 여기 머물고 이쯤해서 돌아가주면 좋겠다. 결정적으로 밤에는 쌀랑하니 추워서 보일러를 좀 틀고 싶은데 괜히 틀었다가 또 얘 잔소리 들을까봐 못 트는 상황이 맘에 안 든다. 씨익.




메이화가 저번에 헤이스팅스 놀러왔을 때 찍은 사진. 이스트힐에서 바라본 모습.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이 이스트본이라고 한 것 같다.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 토요일에 사람들과 갈 뻔했는데 째버렸다. -_-




이스트힐에서 웨스트힐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 올드타운의 모습이 보인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모습을 더 담아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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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맥주를 마실까 말까 한 50번 정도 고민하다가 결국 냉장고에서 캔 하나를 꺼내오다. 오늘 저녁은 감자전에 다시 도전, 이 정도 맛이면 저번보다 훨씬 더 나아진 것 같다. 감자를 강판에 열심히 갈다가 막판에는 팔이 너무 아파서 부엌 어딘가에 믹서기가 숨겨져 있는데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어쨌든 이 동네에서 파는 빵 만들 때 쓰는 밀가루로도 맛이 괜찮게 나와서, 앞으로 종종 붙여먹게 될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놀러간 모리슨에서 인도 난을 보았다. 큰 거 두 장 한세트에 1.19파운드, 두 세트 사면 1.5파운드. 그 주변에서 잠시 서성이며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다음에 사기로 결정. 8월 초까지는 그 가격에 판다고 하니 끝나기 전에 한번쯤 사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봄이었던가, 오리랑 함께 노춘기 쌤 일로 고대병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인도 레스토랑 생각이 났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던 날이었는데.

 

저녁 먹고 8시쯤 모리슨에 가면 사람도 별로 없고 슬렁슬렁 돌아볼 수가 있다. 학교 끝나고 4시 5시 이때쯤 가면 저녁 먹기 전에 장보러 온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비는데, 저녁 먹고 나서는 그러지 않아서 맘에 든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싸게 나온 것들 중에 괜찮은 간식 거리들을 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 고른 건 pecan plait이라고 적힌 파이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무슨 미국 땅콩 종류인 것 같은데, 씹히는 맛도 있고 달달하니 맥주 안주로 딱인 것 같다.

 

오늘 아침엔 무려 5분정도나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이 지역 도서관에서 빌린 멋진 책을 방에 모셔만 놓곤 읽을 시간을 못 찾고 있는데, 아침에 해도 일찍 뜨고, 그 전날 늦게까지 노느라 못 자는 일도 없으니 아침에 약간만 더 일찍 일어나서 책을 보고 여유있게 점심 도시락도 만들면서 학교에 여유롭게 걸어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거 원 아침마다 종종 걸음으로 걷다보면 서울 살 때 바삐 전철타러 걸어가던 거랑 별 다를바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머쓱해진다.

 

상쾌하게 도착한 월요일 아침, Ian 이라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구수한 선생님이 날 보더니 반이 옮겨졌다고 다른 교실로 들어가라고 말해줬다. inter에서 upper-inter로 옮겨진건데, 나름 레벨업이어서 내심 긴장을 했는데, 생각처럼 수준이 확 높거나 한 것 같진 않았다. 전에 같이 살던 하우스메이트가 얼핏 봐도 나보다 영어가 서툰데 레벨은 나보다 높은 반에 있던 걸 경험해서 그런지 이 학원에서의 레벨이 크게 의미있게 다가오진 않는다. 다만 느낌에 왠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전처럼 편하게 물어보기 약간 뻘줌한 느낌은 있는 듯 하다. 물론 내가 모르는 단어는 다른 학생들도 다 모를 거라는 이유없는 자신감이 있긴 하지만.-_-;;

 

하루에 한번씩은 꼭 불쑥불쑥 찾아드는 외로운 감정들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 지금 여기서의 가장 큰 화두인 것 같다. 외로움, 한편으론 지금 내가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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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일요일 아침 7시. 아래층에 살던 한국 분이 히드로로 떠나다. 너무 쉽게 정을 준건가 후회가 찾아온다. 아니야.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났던 거지. 헤어질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더 쉽게 친해졌는지도 모르겠고. 새벽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 물건을 전달받고, 급 센티해져서 타이핑을 시작하다. 벌써 내가 여기서 한달 반 정도 있었고 앞으로 있을 날이 5달이 채 안 남았으니, 나에게 남은 시간도 왠지 쏜살처럼 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불쑥 들면서 그 때 되면 아쉬워서 홈스맘과 어떻게 헤어지나 싶은 느낌도 잠시 찾아든다. 여기서 떠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여기서 머물 시간도 빨리 지나가버릴 것을 미리 아쉬워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여튼 여기와서 그나마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사람이 가버리고 나니 급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부터 또 다시 학교에 오는 새로운 사람들과 좋든 싫든 만남을 시작해야겠지. Thats life.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금세 또 헤어지고..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 관한 모드 전환이 잘 안 된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의외로 쿨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했을 때, 퍽이나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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