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32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8/02
    New inquiry into exploitation of the work-for-free interns
    나르맹
  2. 2009/08/01
    Psychological scars of war
    나르맹
  3. 2009/07/27
    무서운 군대
    나르맹
  4. 2009/07/25
    일본에서 온 편지
    나르맹
  5. 2009/07/24
    2009/07/24(2)
    나르맹
  6. 2009/07/16
    2009/07/16
    나르맹
  7. 2009/07/12
    2009/07/12(2)
    나르맹
  8. 2009/07/11
    Michael Jackson’s Gandhi connection
    나르맹
  9. 2009/07/08
    Police handling of protests 'needs national overhaul'
    나르맹
  10. 2009/07/06
    So You Want To Be a Librarian
    나르맹

Nonviolent lessons from the Depression

 

 

 

Marching Longshoreman in San Francisco (1934)

Marching Longshoreman in San Francisco (1934)

 

"Nonviolent lessons from the Depression"


 "We need more protest to make reform possible"

 

 

이번 쌍용차 일과 관련하여 프레시안에 뜬 기사 중에 다른 노조들, 특히 같은 자동차회사 노조들에서 함께 연대하지 않은 점에 대해 지적한 기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Why is there so little protest in response to these hard economic times?

작금의 경기불황에 맞서는 시위는 왜 이리도 없는가?

 

위에 인용해놓은 링크의 글들에서는 요즘과 같은 경기침체기에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왜 그에 맞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미국에서 대공황기에 민중들이 펼친 비폭력행동들을 인용하고 있다. 예컨대 세입자들이 월세를 못 내어 집주인과 경찰들에 의해 쫓겨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달려와 항의하고 짐들을 다시 집으로 옮겨놓는 경우가 대규모로 일어나면서 결국엔 경찰들도 철거행위를 중단하고 국가에서도 혁신적인 주거정책을 새로 내놓았다는 식이다.  점거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결국은 국가와 자본에 무릎을 꿇게 되는 이 암담한 현실에 옛날엔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는 한편 지금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더 서글퍼지는 것 같기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달리기

일주일만에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뛰고 왔다. 한동안 일주일에 많게는 두세번씩 밤마다 운동을 하곤 했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뛰러 나가는 것도 힘들다. 어느새 스멀스멀 저녁마다 외출 약속들이 생겨서인 것 같다. 막 귀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아빠랑 같이 배드민턴도 적극적으로 치러 다니곤 했는데 관계가 한번 또 어그러지고 난 이후로는 배드민턴은 안 치고 혼자 달리는 것만 하고 있다.

 

한창 잘 뛸때에는 스무 바퀴까지도 어렵지 않게 뛰어졌는데 오늘 일주일만에 다시 뛰어서인지 심지어 열바퀴 채우는 것도 힘들더라. 유산소 운동을 하다보면 숨이 차차 벅차오르면서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순간이 있는데 오늘은 가슴이 아린 게 아니라 짓눌리는 듯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날 그날의 고만고만한 생각들을 가지고 뛰다가도 숨이 가파오면 자연스레 몸의 심장박동에만 신경을 기울이게 되고 그렇게 한번씩 땀을 빼고 나면 잠시나마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게 보통의 경우이다. 그런데 오늘은 뛰는 것에도 잘 집중이 되지 않고, 멈춰서서 숨을 돌리다보면 어느새 또 잡생각들이 찾아들어오는 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여느 때보다 좀 일찍 운동을 마치고 집에 걸어오며 계속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래도 달리고 나면 언어화되지 않은 상태로 침잠해 있는 여러 생각들이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드는 게 뜀박질의 좋은 점인 것 같다. 그렇게 묶여진 잡생각들을 하나씩 골라가며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상태랄까. 

 

운동장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하늘 높이 떠있는 흰구름과 그와 대조적으로 새파랗던 하늘의 색깔이 인상에 남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구름의 이름이 뭉게구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새하얀 구름덩이가 수직으로 뭉개뭉개 뚜렷한 층을 이룬 모습, 그리고 그 구름들 배경에는 마치 합성한 것처럼 선명한 비치색을 띄던 하늘의 모습.

 

*9회말 투아웃, 김원섭이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을 친 날. 이 말로 할 수 없는 감동.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살 맛 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3연타석 홈런

집에 들어오는 길, 조은한테 문자가 왔다. 김상현이 3연타석 홈런을 쳤다는.. 집에 오자마자 다시보기를 눌렀다. 와..감동 그 자체다.. 신윤동욱의 <스포츠키드의 추억>에 언급됐던 것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이 날로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기아가 8연승을 하며 무려 2516일만에 해본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설령 포스트시즌에서 죽을 쓴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감동만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일진이 안 좋다고 혹은 다가올 수감생활을 앞두고 난 왜 이리 운이 없을까 탓하지 말고 적어도 2516일은 기다려봐야지 하는 일종의 묘한 깨달음(?)이랄까.

 

======

김상현의 인터뷰;

김상현은 경기 후 "홈런은 의식하지 않았다. 배트 중심에 맞추려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면서도 "군산 고향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상현은 홈런 1위에 2개차로 바짝 다가선 것에 대해 "홈런왕 보다는 타점왕에 욕심이 난다"면서 "루상에 주자가 많아 집중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상현은 "찬스에 강해진 이유는 LG에서 트레이드될 때 '이게 마지막이다'며 남다른 각오를 다진 것이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

 

네이놈에 올라온 오늘의 베스트선수 인터뷰에서 김상현이 한 멘트 중 기억에 남는게 또 있다. 앞으로 몇년이나 더 야구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팬들의 성원 부탁드린다는 요지의 멘트. 지금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선수의 입에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야구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이라는 멘트가 나오는 것을 들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올해처럼 붙박이 1군에 있어본 적이 프로데뷔 10년 동안 한번도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내면의 은근한 불안감에서였을까. 마치 한창의 전성기에 미리 죽음을 걱정하는 듯한. 무슨 메멘토 모리도 아니고. 나에게 김상현의 그 멘트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통역일을 마치고

"yes" in the sky / "yes" in disguised
seeks satisfaction / six satisfaction
in council / in counsel
등등...

비폭력 대화 워크샵 통역을 하면서 자칼이 내 머릿 속에 자꾸만 왔다갔다 해서인지 내가 실수한 장면들만 계속 떠오른다. 기린말에 익숙해지려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어이없이' 단어를 놓칠 때마다 참으로 좌절스러웠다. "아 또 틀렸어", "거기서 왜 그걸 못 들었을까", "내가 다 아는 단어도 안 들린단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마다 호흡을 다시 가다듬고  재빨리 자기공감을. "잘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한거구나?"

통역을 하느라 활동에 직접 참여하진 못해 아쉽긴 하지만 대신에 자기공감 하면서 한숨 쉬어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버벅댈 때마다 바로 목소리도 작아지고 시선도 흔들렸지만 나중으로 가면서 아주 약간씩은 편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당시 나의 욕구 : 기여, 인정, (자존감), 배움 등등.

느낌 : 좌절, 걱정, 화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폭력대화'. 자기수행과 성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관계에서의 여유로움..? 센터에 나가면서 좋은 사람들도 새로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나에게 비폭력대화를 소개해준 아침에게 새삼 감사의 인사를.

 

어젯밤 ㅁㅅ와 통화를 하면서 정리된 생각.

욕심부리지 말고 짧게 밀어치기. 그러다 보면 단순히 진루타를 넘어 안타가 되고 타점을 올리고 심지어 운이 좋으면 홈런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 주자는 1사 만루, 타석에서 스탠딩 삼진을 당하면 단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 늘릴 뿐이다. 괜한 조바심에 당겨쳤다간 병살타의 위험이 있다. 어깨에 힘을 줬다가 어설픈 내야플라이로 끝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만약 이종범의 센스와 능력을 타고났다면 만루홈런을 상상하며 타석에 들어가겠지만, 중요한 건 난 이종범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대신 지금 1구 1구에 집중하고 이전 타석에서의 볼배합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스윙을 해보는 것이다. 이때 노리는 공이 때맞춰 들어와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텐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마틴아저씨가 환갑을 자축하는 방법들

On November the third I will be 60 years old.

To celebrate this landmark time in my life,
I’m going to visit lots of places,
and attend all sort of events,
which I’ve not done in a long time,
or have never done before.

 

The idea is to do some of the following with my various friends,
rather than have a just one celebratory party.

 

- Go to an concert of works by Janaceck and Glazunov.

- Spend a weekend in Lille.

- See a play by Bertold Brecht.

- Take a bus trip out to Hampton Court.

- Spend a day out in Canterbury.

- Go to see one of the light operas by Gilbert & Sullivan.

- Take a day trip to Ely.

- Spend an early evening with a beer at the Cheshire Cheese on
Fleet Street.

- Go to a production of Carmina Burana by Carl Orff.

- See a play at Wilton’s Music Hall.

- Spend a day out in Salisbury.

- Take a visit to the Brompton Cemetery.

- Have a day trip to Calais.

- Go to a production of Faures Requiem.

- Spend an afternoon in the Foundling Hospital.

- Take a day out in Hasting.

- See inside the Temple Church.

- Visit the Dickens Museum.

- See a production at 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 Take a day out in Warwick.

- Go see a production of the Mousetrap.

- Revisit  Liverpool and Chester over a long weekend.

- Spend a few days in Paris.

- Visit Dr Johnson’s house.

- Revisit the Sir John Soane’s Museum.

- Go to a concert at Wigmore Hall.

- Revisit the London Transport Museum.

&

- Shopping at the Vegetarian Shoe shop in Brighton.

 

So if your an old or new mate of mine,
and you fancy coming along to any of the above,
then  just let me know,
and we can arrange a time in which to do so.

  

*http://rahu.dk/martynlowe/?p=175

 

===========================

아나키스트 독신남 할아버지라 그런가 60살을 맞이하는 방법도 다른 뭇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다. 저 많은 걸 혼자 하려면 아무래도 외롭긴 할 것 같다. 그래도 여기 저기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놓은 것 같으니 저 리스트 중에 한 절반 정도쯤 이상은 같이 할 만한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하나하나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나에겐 이른 저녁 플릿 스트릿의 decent한 곳에서 저녁과 맥주와 치즈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아보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New inquiry into exploitation of the work-for-free interns

http://www.guardian.co.uk/money/2009/jul/31/mps-graduate-interns-pay

 

가디언에 '인턴착취'에 관한 기사가 떴다. 고용없는 성장. 경제가 침체라지만 버는 사람들은 계속 번다. 정규직은 갈수록 하나의 진골계급처럼 되어가고, 한국은 '청년인턴제'가 대세인 듯 하다. 21세기의 노예들. 산업혁명기의 노예들과는 또 다른, 하지만 더 심각한 수준의 착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영국이든 한국이든,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 자본가들은 경기침체를 핑계로 새로운 이익을 창출해낸다. 아, 자본주의의 위대함이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Psychological scars of war

http://wagingnonviolence.org/2009/07/psychological-scars-of-w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서운 군대

예전에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던 시절에 병역거부 관련 뉴스클리핑을 하면서 알게된 구글 알리미라는 기능을 쭈욱 사용해오고 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으로 설정을 해놓고 관련 뉴스나 웹문서들 중에 구글이 검색해준 것을 받아보고 있는데, 덕분에 가끔씩 흥미로운 블로그나 글들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오늘 들어온 구글 알리미는 좀 때 늦은 것 같긴 하지만 최근에 병역거부를 한 하동기 관련 블로그 포스팅들을 검색해서 갖다 주었다. 기자회견 이후에 기독교 신문쪽에 기사가 많이 났다더니 그런 기사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걸어놓고 논쟁을 부추기는 포스팅들이 꽤 생겼나보다. 난 이젠 병역거부 관련 논쟁에는 스스로 좀 씨니컬해져버린 측면이 크지만, 이번에 우연히 걸려든 기독교 신자 병역거부 관련 포스팅들에 달린 댓글들을 훓어보다가 흥미로운 멘트를 하나 발견했기에 여기에 잠깐 메모를 해둔다. 다음에 나도 소견서라는 걸 쓰게 될 때에 참고하게 될지도 모르니.ㅎㅎ

 

"그냥 군대가기 무섭다고 해..거창하게 예수 핑계 대지말고.."

 

이 댓글을 따온 블로그에서는 예수와 성서 해석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난 자세한 내용을 모르기에 그냥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겠지 하며 넘어갔다. 근데 이 댓글은 새삼 참 나의 흥미를 유발하게 만들었다. 이 댓글 쓴 사람의 기본적인 입장은 병역거부자들이 아니꼬운 거다.  근데 이 사람 말대로 정말 군대 가기 무섭다고 커밍아웃하면 그럼 이제 병역거부자들을 인정해주겠다는 거냐고 묻고 싶어졌다. 물론 그 사람은 그럼 또 병역거부를 인정하겠다는 건 아니고 하면서 다른 말들을 하겠지. 왠지 나에겐 스토리 전개가 뻔히 보이는 시츄에이션이다. 

 

아마도 군대가야 사람=남자가 된다는 논리의 변용이었겠지. 군대가는 걸 무서워하다니, 역시 넌 남자도 아니었어. 겁쟁이 병역거부자들이라고 낙인을 찍고 우월성을 가지고 싶은 심리가 기저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나는 발딛고 있는 세계관 자체가 다르니 애초에 논쟁이 될래야 될 수가 없다. 남성지배적 세계관에 거부하기에 군대도 거부하는 것인데 그런 병역거부자에게 '차라리 그냥 무섭다고 인정해'라고 말하는 건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는 비판인 셈이다. 이런 논리적 오류를 비유하는 무슨 표현이 있었는데..뭐였더라.

 

암튼 위에 댓글을 인용해온 블로그에선 '아니, 군대가기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하는 식의 재반론이 나오길래 그걸 보며 뭐랄까 서글픈 마음이 한 구석에 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본에서 온 편지

 

 

며칠 전에 훗카이도 소인이 찍힌 편지가 날아왔다. 테짱이 내 주소를 물어보더니 편지를 한 통 보냈다. 새로 사귄 여친과 후카이도를 배경삼아 찍은 사진도 있을 줄 알고 뜯어보았는데 없어서 살짝 실망을. 물어봤더니 사진 보내는 걸 깜박했단다. 예쁘게 만든 책갈피와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나오는 브로셔와 허브 소금, 귀엽게 제작한 자기 명함까지 다 보냈으면서 말이다. 테짱이 자기 블로그에 가보면 여자친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거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잘 눈에 띄지 않았다.ㅋㅋ  위에 사진에 맨 왼쪽 분이 자기 상사, 중간 분은 그냥 동료라고 하는데 뭣보다 테짱 얼굴이 보기 좋아서 가져왔다. 초상권 침해? 흑, 정말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 사진이 맘에 드는데..ㅠ  저 가운데 두 술병은 무슨 술인가 싶다. 테짱 말이 요즘엔 거의 매일 같이 술을 마신다며 와인을 마실라치면 내 생각이 난단다. 너무 사랑스런 친구다.

 

답례차 나도 뭔가를 보내야겠는데 뭘 보내주면 좋을지 생각날때마다 고민해 봐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24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긴 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턴 인천(과 부천)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나를  '지방'출신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한편 집을 나와 (서울에 있는) 기숙사와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살던 대학 1,2학년 때에는 나의 동선이 고만고만한 바닥에 한정되어 있었고 따라서 종로나 신촌 강남 등등으로 나갈 때에는 지방에서 서울구경 왔을 때 느꼈을 법한 느낌들이 들곤 했다. 그 이후에 주 생활무대가 학교 바깥으로 벗어나게 되고  잠 자는 곳이 다시 부천으로 바뀌면서 매일 한시간 남짓 거리의 이동을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문학 속의 서울>이란 책을 오늘 다 읽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을 서울의 역사와 흔적들일텐데, 지금의 나는 책의 내용들이 좀 더 내 삶과 연루된 듯한 느낌으로 독서를 한 것 같다. 경인선 철도가 개화기에 놓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는 책에 나오는 경인전철 이야기와 내가 매일같이 타는 그 전철이 동일선상에 놓여져 보였다. 노량진-제물포 사이를 왕복하는 철도로 시작해서 노선이 연장되고 전철화되는 이야기, 경인선이 전철화되고 노선이 연장되면서 70년대 중산층 서울 사람들에게 송도 월미도 등등이 여가를 즐기는 새로운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등. 문득 내가 처음 부천으로 이사해왔을때 황량했던 송내역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금은 급행열차도 생기고 역사도 크게 지어졌는데. 책을 읽으며 그런 세월의 흔적들을 떠올려보게 된 것 같다. 서울시청 앞에 1호선 전철 공사를 하는 옛날 사진도 보게 되었는데, 앞으로는 전철 타고 시청역을 지나면서 30년 전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며 똑같은 일상의 팍팍함을 달래는 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헤이스팅스에 머물면서 잠 자는 곳과 낮에 머무는 곳이 아무리 멀어도 걸어서 30분 이내로 커버가 되는 삶의 방식을 경험하면서 그 이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서울과 부천을 왔다갔다 하는 삶의 양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런던에서도 비록 전철을 타고 다니긴 했지만 길어야 20분 이내였고, 사무실과 집 사이의 공간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걸어서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고 머릿 속으로도 지도가 수월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 적어도 서울에서보다는 내가 그 당시 머물고 있는 지역에 (비록 여전히 표피적이긴 하지만) 좀 더 뿌리를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집은 주로 잠만 자고 다시 나오는 곳이었고 아예 집 근처에서 소비를 해본 적도 거의 없었으니깐. 집 근처의 전철역에서 서울의 전철역까지 이동하면서 지나치는 공간들은 나에겐 그저 풍경의 일부이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으로 인식해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 좀 엉뚱하긴 하지만, 낮과 밤에 생활하는 공간이 좀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는 혹은 자전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수준의 거리에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외출을 했다하면 거의 홍대쪽으로 나가다 보니 그 지역이 친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중교통에 의존해 나는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상이한 공간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이면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직 말로 속시원히 끄집어내지 못하겠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면 내가 직접 장을 볼일이 거의 없어진다. 그래서 더욱더 이 지역에서 내가 관계를 맺는 곳은 전철역과 근처 공원, 초등학교 운동장 밖에 없어지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얼른 독립을 해야할 텐데 하는 생각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서울,,그 퀘퀘한 공기와 끊임없는 소음, 수많은 인파가 싫긴 하지만 아직은 웬지 떠나기 힘들 것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