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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31
    Religious Freedom Report 2008
    나르맹
  2. 2008/12/23
    International Standards on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나르맹
  3. 2008/12/23
    2008/12/23
    나르맹
  4. 2008/12/06
    goodbye hastings(2)
    나르맹
  5. 2008/12/02
    2008/12/02(1)
    나르맹
  6.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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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11/28
    use of articles(2)
    나르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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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9. 2008/11/26
    2008/11/26
    나르맹
  10. 2008/11/24
    2008/11/24
    나르맹

Religious Freedom Report 2008

http://www.jw-media.org/frames/081211.htm


South Korea: Progress as promised?
In September 2008, a three-judge panel of an appellate division of a the Choonchun District Court in Korea requested that the Constitutional Court review the constitutionality of Korea’s current military service act, which has been used as a basis to penalize conscientious objectors. The appellate court’s action is particularly significant since it was recently reported that the Ministry of Defense of Korea was no longer in favor of revamping the alternative service plan for conscientious objectors. This is an about-face from what the Ministry had originally announced one year earlier.




wri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한국 관련 CO-updates를 보면서 이걸 다 누가 썼지 했는데 안드레아스가 한국 신문 영문본을 보면서 썼다고 한다. 구글에 자신이 입력한 키워드와 관련한 뉴스를 스크랩해서 자신의 메일로 보내주는 기능이 있는데, 난 그동안 한글 키워드 입력할 생각만 했지, 영어로 병역거부를 쳐 넣는건 생각도 못하고 있던 차라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ㅎㅎ

어쨌든 그 덕택에 여호와의 증인쪽에서 나온 한국 리포트도 찾아내고 정말 구글은 똑똑한 것 같다.........

다들 그럼 해피 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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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Standards on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http://www.unhcr.org/refworld/docid/494f8e422.html

구글에서 걸린 최근 자료,,앞으로 한번이나마 인용이라도 하게 될런지,.에효

병역거부권에 대한 유엔 관련한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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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3




아란 아일랜드까지 다녀왔으니 처음 영국 올 때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들은 이제 다 가본 듯 하다.

wri 사무실,,법제처 홈페이지 접속이 안 된다는 핑계로 열심히 놀고 있다. 플랏도 찾아야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야겠고 뭔가에 쫓기는 듯한 나날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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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hastings




금요일 오후 네시 다섯시 즈음은 모리슨의 일주일중에 가장 붐비는 시간,,





테스코나 세인즈버리, 아스다, 엠엔에스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모리슨,, 런던에서 모리슨을 보면 왠지 기분이 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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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http://cfs9.tistory.com/image/11/tistory/2008/07/09/20/28/4874a0cb33abc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고 압도당했던 그림.. 냉정해 보이는
저 표정..
Guido Reni, 골리앗의 머리를 쳐든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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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London tower bridge, last Sat.




 
오후 3시가 지나면 어둑해지기 시작해서 4시면 완전히 깜깜해진다. 사진만으론 아침인지 석양인지 알 수가 없다. 쩝





딱 6개월이 지났다

오늘 문득 깨달은 바,, 여기 사람들은 밥에다 버터를 발라서 비벼먹는다...-_-';; 덕분에 약간은 찰진 밥이 만들어지긴 한다. 밥 옆에 샐러드를 덜어먹는데 샐러드 소스는 마요네즈...뜨씨,,  밥과 버터와 마요네즈라니,,,거기에 후식으로 라이스푸딩까지 먹으면 정말 절묘한 조합이지 않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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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of articles

영작문을 하면 가장 쥐약 중에 하나가 바로 관사를 붙여야 되나 말아야 되나, 붙이면 a/the 중에 뭘 붙여야 하는 거다. 예외들이 많다곤 하지만 헷갈리는 건 이참에 여기에 적어놓고 볼 때마다 기억을 해야겠다.ㅎㅎ

He works in the insurance industry. / He works in insurance.
I went for a walk in Alexandra park. /  I went for a walk in the park.
in the near future / in future
If you think you're getting the flu,
We had been at school together.

오늘 수업 시간에 지리적인 맥락이나 특별한 목적과 연관되는 경우가 아니면 관사를 붙이지 않는 명사의 예로 'school, hospital, prison, church' 의 예를 들었는데, 선생님 말이 이 단어들이  'institution'의 범주에 드는 것들이란 얘기를 했다. 푸코가 규율의 공간으로 학교, 병원, 감옥을 얘기했을 때 원서에는 'institution'이라는 단어가 쓰였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불어에도 그런 단어가 있으려나.. 아무튼 영영 사전에서 찾아본 뜻 중에는 'A place for the care of persons who are destitute, disabled, or mentally ill' 이란 뜻이 마지막에 나와있더라. 영어에서 관사를 붙이지 않는 이 단어들이 같은 범주에 들게 된 이유가 푸코가 지적했던 사회적 배경과 연관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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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7

오늘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2차 대전 종료 이후 영국이 군사적인 개입에 연루되지 않은 적이 단 2,3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식적인 전쟁이든 비공식적인 무력 행사 모두를 합해서 말이다. 여기 모병 광고를 보면 되게 얼핏 그럴듯한 멘트들을 날리는데 'power, money, career' 등의 가치를 내거는 것 같다. 실제론 흔히 말하는 '인생의 loser' 들이 마지막 선택으로 입대를 많이 한다고. 입대하면 첫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 훈련 중간 중간에 한달 정도씩 쉬는 텀이 있는데 그 기간 중에 할일 없는 직업 군인들이 술이나 마약에 많이 중독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11월 11일이었나, 얘네 remembrance day에 기념하는 건 양대 세계 대전이라고 한다. 2,3년의 기간을 제외하곤 수도없이 파병을 하고 군사분쟁을 겪으면서 죽은 군인이 적지 않을텐데 그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대 대전은 영국 사회에서 명예로운 전쟁으로 기억되지만 예컨대 한국 전쟁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에겐 흥미로운 발견이었던 게, 양대 대전에 참전한 군인은 모두 징병된, 하지만 국가를 위해 명예롭게 죽어갔기 때문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모병제로 바뀌고 갈수록 영국 군대는 (특히나 아프리카에서) 일종의 용병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죽거나 다쳐도 사람들은 그냥 당연한 일이려니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들은 월급도 충분히 받았으니 죽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논리랄까. 모병제가 운영되는 사회의 멘탈리티를 일부나마 맛본듯한 느낌이다.


* 왠지 이 화두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리저리 혼자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예전에 전쟁수혜자 모임에서 읽었던 정유진씨 글이 떠올라서 파일을 찾아냈다. 여전히 나에겐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니 좀 더 이해가 된 듯한 느낌도 든다.


"모병제 추진 논의는 군사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문제를 사회 구성원들이 고통을 둘러싼 관계에 개입하여 교섭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간주되는 그들’에게 군대와 관련되는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논의는 자업자득이라는 미명아래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을 스스로 간과하거나 묵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때의 간과와 묵인은 군사력에 의존한 국가안보에 대한 암묵적 동의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묵인은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고통에 개입하여 문제를 공론화/정치화하기 보다는 고통을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로 격리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습니다. 제도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베트남전에 미군의 정신과 의사로서 참전했던 스코트 펙은 “특정 집단을 ‘전문 살상 집단’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우리가 전쟁을 통해 누군가를 꼭 죽여야만 한다면 사회구성원이 ‘떳떳하게’ 자기 자신을 개입시켜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병제 보다는 징병제가 전쟁 억지 효과가 있다, (군대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군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복무기간을 대폭 줄이고 남녀 모두 참가하는 (전문화되지 않는 형태의)군대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1)

 “만약 우리가 징병제를 실시하여 의원들과 행정부 관리들의 자녀가 위험한 장소에 가게 된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대통령과 행정부는 결코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미 의회 세입위원회 위원장 찰스 랭겔 의원의 발언2)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서 마이클 무어가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의원들을 향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라”라고 입대 원서를 들이대자 의원들이 황급히 도망치는 장면에서, 왜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는지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징병제가 모병제보다 전쟁 억지 효과가 있다는 스코트 펙의 지적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고통을 사회적인 것으로 제기하면서 구성원들이 그 고통과의 관계의 끈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성찰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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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 여기 한국 학생 중에 군대를 다녀온 부산 출신 남학생이 한 명 있다. 내가 지난 여름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을 때 막 코스를 시작했던 학생인데, 처음 보자 마자 영어로 내 나이를 물어보던 사람이다. 초면에 나이부터 물어보는 전형적인 예비역 냄새가 나서 그닥 별로 말을 트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유머센스가 있고 바탕은 선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럭저럭 잘 지내온 것 같다. 덕분에 프리즌브레이크 파일도 전해받고 말이다.
오늘 수업 시간 중에 자기 의견을 말하는 speaking task가 있었다. 여러 주제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그 분은 숱한 주제 중에서도 military service를 고르셨다. 그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서 뒷골이 살짝 땡기기 시작했다. 어쩜 그렇게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토씨 하나 다름없이 똑같은 말들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군생활은 참으로 지루했다, 밤에 보초를 설 때면 2시간씩 나눠서 4시간밖에 못자곤 했다, 무릎에 무리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군생활을 마치고 나니 참으로 보람있었다, 남자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become a man'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등등. 입대를 하기 전에는 군대가 무섭고 피하고만 싶었는데, 아버지 왈 자신이 군복무를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 힘든 일을 해야한다고 하셔서 기꺼이 입대를 했다는 말도 했다. 사실 이런 얘기를 듣는게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물건너에서도 이런 지겹고 똑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보게 되다니 문득 소름이 다 끼쳤다. 한국 군대의 위대함이란!

* 열심히 런던으로의 이주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일랜드에 가서 어떻게 하면 숙박비를 좀 더 줄여볼 수 있을까 요리조리 알아보는데 쉽지가 않다. 공항에서 총 두 밤을 자려고 했는데 왠지 춥고 몸 삭을 것 같은 두려움에 하룻밤만 지샐까 고민중이다. 푸훗.






베니스에서,,그 땐 무지 더워서 싫었는데 지금처럼 추우니 또 그때의 땡볕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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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 지금 하우스메이트는 체코에서 2주간 공부하러 온, 두 아이를 둔 아저씨이다. 나이를 듣고 나서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인상 좋은 아저씨이다. 19살 먹은, 아마 한국 나이론 20살이나 21살일 딸은 'floor hockey'(?) 국가대표급 선수라고 한다. 7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을 했고, 자신을 닮은 틴에이저 아들을 두고 있다.

그렇게 인상이 좋아보이는데 자신은 공산주의가 싫다고 말한다. 내가 그동안 만난 사람중에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들 꼴통보수에 얼굴도 greedy하게 생겼기 때문에, 이 체코 아저씨가 하는 말은 자뭇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무슨 맥락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1988년에, 이 아저씨의 표현에 따르면 'revolution against communism' 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곧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졌고. 이 아저씨는 그 당시에 직장에 갓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바로 월급이 100파운드에서 400파운드로 올랐다고 한다. 우와, 아저씨 그럼 생활이 무지 넉넉해졌겠네요, 했더니 월급이 오른 만큼 생활물가도 무진장 올라서 실상 생활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저씨가 공산주의보단 지금이 낫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spy' 라는 표현을 썼다. 영어가 무척이나 서툰 편이어서 자신의 의사전달을 정확히 하는 편이 아닌데, 아저씨가 스파이란 말을 했을땐 바로 무슨 얘긴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나서 스파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freedom'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holiday'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했다.
'idea of communism'은 좋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하지만 흔히 들어왔던 것처럼, 실제로 당간부들의 삶과 뭇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고 한다. 이런 저런 맥락으로 볼 때 아저씨는 그 상황이 너무나 싫었던 것 같다. 차라리 대놓고 빈부의 격차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겉으론 민중이니 정의니 말하면서 실제론 간부들만 살찌우는 그런 시스템을 긍정하기는 쉽지 않을게다. 예전에 러시아 학생을 만나서 들었던 얘기와 비슷하게, 체코에도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나오고 그에 따라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들도 사회적으로 묻어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문득 오늘 호스트맘이 말하던 'the grass on the other side is greener than here.' 이 문장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말한 얘기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건, 법/질서에 대한 뭇 사람들의 멘탈리티에 관한 얘기였다. 처음엔 아저씨가 자꾸 'order' 얘기를 하면서 비유를 들어서 못 알아들었는데, 나중엔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요지인 즉은, 공산주의 하에 있던 시절 사람들 사이에서 당의 결정에 대한 불신이 워낙 극에 달해서 뭔가 법이나 질서가 만들어지면 그걸 무시하는 게 일상적이었는데, 그런 마인드가 시스템이 바뀐 지금에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며,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부정부패를 떠올렸는데 얼추 아저씨의 얘기의 맥락에 부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렇게 당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 당시엔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의 그러한 습속이 남아있어서 문제가 된다는게 아저씨의 의견이었다.

이런 저런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유드리'와 '근대성'은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유드리는 푸근한 정이 될 수도 있지만 무원칙으로 여기지기도 한다. 한편 근대성은 질서정연하고 모든 것이 예측가능하지만 대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차갑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일본 한 캠핑장에서 일주일 전에 받아야 하는 허가를 못 받았다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캠핑장을 뒤로 한채 나왔을 때의 그 기분이 떠오른다. 흥미로운 건, 전근대성이 대개는 가부장적 질서와 연결된다는 점이랄까. 그래서 더욱더 근대성에 대한 고민을 할때면 이런 저런 생각이 겹치곤한다.

아저씨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그리고 언어적 장애로 인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한 대화였지만, 아저씨의 이야기가 나에겐 전근대적인 가치(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를 무기로 전근대적으로 운영되던 공산주의를 붕괴시켰다는 말로 들렸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글로 막상 쓰고 나니 나의 이런 느낌이 어떤 유의미한 맥락을 더 이상 파생시키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암튼 아저씨가 지금 체코 사람들의 가치관을 말하면서 문제라고 했을때, 공무원들을 못 믿는 한국 사람들의 분위기도 떠오르고 한편으론 법치주의를 끊임없이 반복해대는 경찰, 법무부, 정부 등등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산주의 시절의 빈부격차보다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빈부격차가 그래도 더 낫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얘기를 들으며 무언가 반응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소비할 자유에요 아저씨, 하고 말하기엔 아저씨 경험의 무게 앞에서 내 생각이 한갓 머릿 속의 불면 휙 날아갈 가벼운 관념처럼만 느껴졌다.

한국에선 갈수록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더니 아저씨가 그럼 주변 나라에서 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난 그동안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나 영국 등 소위 1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변국 출신 노동자들만 떠올렸지 나 자신을 이주노동자로 위치지어본 적은 없었기에 아저씨의 그 말에 꽤나 자극을 받았다.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힘들면 유럽에 와서 구하면 되지 않냐고, 내가 유럽은 너무 멀다고 그랬더니 그럼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에서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론 나 자신이 일주일에 5일씩 일하는 보통의 직장에 취업할 생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저씨가 말하는 게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삶 아닌가싶은 생각. 예컨대, 이란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라는 개념틀에 적합해보이지만, 영국에서 한국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온 사람은 흔히 말하는 이주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고 나니 한국이 세계 경제규모 10위(11위?)의 1세계국가인거구나생각이 든다.

불과 약 20-30년전까지만 해도 영국에 '통금시간' 비슷한 법이 잇었다고 한다. 펍에서 요일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밤 10시 반, 금요일은 11시면 모든 펍이 문을 닫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닫기 5분 전인가 30분 전에는 펍마다 종을 치며 문닫기 얼마 전이니 마지막 주문들을 하라는 광고를 하곤 했다고. 이 통금시간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건 일요일이었는데, 그 이유인 즉은 사람들이 다음 날 출근을 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초기 자본주의 형성 과정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가 불과 30년전까지 존재했던 셈이다.

얼마전에 켄 로치 감독의 <자유로운 세계>를 봤는데 런던에 즐비한 수많은 동유럽 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온갖 규율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질서가 성공적으로 잡힌 국가의 자본들은 싼 노동력을 찾아 소위 말하는 3세계 국가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 3세계 국가의 노동자들은 거꾸로 1세계 국가로 목숨을 걸고 넘어온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걸까. 그런데 이렇게 웃기게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불황이라며 위기라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면, 200년을 갓 넘겼을 법한 자본주의도 곧 종말은 언제쯤 올려나. 이런 왠지 사치스럽고 추상적인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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