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32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6/13
    6월 11일
    나르맹
  2. 2008/06/13
    6월 9일(1)
    나르맹
  3. 2008/06/13
    첫 주말
    나르맹
  4. 2008/06/08
    2008/06/07
    나르맹
  5. 2008/06/03
    헤이스팅스(1)
    나르맹
  6. 2008/05/31
    인천공항에서
    나르맹
  7. 2008/05/29
    2008/05/29
    나르맹
  8. 2008/05/19
    이별
    나르맹
  9. 2008/05/11
    출국을 앞둔 요즘의 일상
    나르맹
  10. 2008/05/02
    일본 여행의 여파
    나르맹

올드보이

6월 28일

 

올드보이를 여기 tv를 통해서 보다. 한국에서 2003년에 개봉됐던 영화가 5년 뒤 영국에서 방영이 되다니. 금요일 밤 11시 30분에 방영이 되는 건데 나의 러블리 홈스맘이 녹화를 해두어서 오늘 함께 쇼파에 앉아 보았다. 평소엔 영어 방송에 영어 자막으로 티비를 보다가 갑작스레 한국어 방송에 영어 자막으로 된 걸 보려니 기분이 묘했다.


홈스맘이 올드보이를 같이 보자고 얘기를 하길래 내가 영화의 대략의 줄거리를 설명해주었건만,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먼저 자러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오늘 출근하는 날도 아닌데 하루 종일 청소, 빨래, 요리만으로도 하루를 꼬박 보냈으니 피곤해서일 수도 있고, 올드보이 초반 도입부가 맥락을 잡기가 어려워서 흥미를 못 느껴서 일수도 있고. 혹은 보통 한국 사람들이 자막 달린 영화를 보는 것에 비해 잉글리시 사람들은 자막으로 보는게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 근데 난 마치 올드보이가 마치 내 영화인 마냥 홈스맘이 즐겁게 시청하면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 함께 영화를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오늘 새 플랏으로 짐을 절반 정도 옮겼고, 내일 나머지 반을 옮길 예정이다. 랜드로드를 만나서 디파짓과 8주치 렌트 비용을 지불했다. 대화라고 해봐야 그 사람 말의 반도 못 알아들었지만, 암튼 재밌는 사람인 것 같긴 하다. 나름 아티스트라고 해야하나. 하긴 여기 사람들은 다들 아티스트의 기질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나 같은 먹물(-_-)은 못 본 것 같다.


역시나 먹을 걸 어떻게 챙겨먹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 될 것 같다. 인터넷 설치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다고 랜드로드에게 말했더니 적잖이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이것 저것 달고 사람 부르고 자기도 또 헤이스팅스에 다시 와야 되고, 귀찮긴 귀찮겠지. 그래도 난 꿋꿋이 요즘 플랏에 인터넷 안 되면 인기가 떨어진다, 여기보다 더 싼데도 인터넷 다 된다 등등 안 되는 영어로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상식적인 요구일 수 있는데도 늘 남에게 뭘 부탁하거나 청하는 걸 너무나 어려워해서,, 그래도 이번엔 잘 끝낸 거라고 믿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체코학생과 펩시콜라

6월 25일

-헤이스팅스에 단 하나 있는 영화관

 

-벌써 25일이라니. 앞으로 남은 5개월 정도의 시간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지만, 특히나 여기 와서 갓 사귄 사람들이 지난 주 이번 주 다음 주 줄줄이 떠나는 걸 보면서 더더욱 앞으로 여기서 보낼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데, 한편으론 내가 비행기를 탄 날이 5월 마지막 날이었고, 이제 월말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금세 또 이렇게 흘렀구나 싶다.

 

-같은 하우스 메이트인 빅터는 이제 여기 온지 2주째인데 이틀에 한번씩은 타운센터에 나가 펍에서 노는 것 같다. 지난 주 이번 주 그리고 다음 주까지, 학원에 길어야 한 달정도 머물다 돌아갈 학생들이 매주 월요일마다 몰려들고 있다. 왜 이리 체코,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많은지. 물론 걔네가 보기엔 아시아 사람들이 많다고 느낄런지도.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담이 이럴 때 쓰이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체코, 슬로바키안들이 한 그룹을 이뤄서 주로 놀고, 일본에서 온 친구 한 명을 포함한 한국인들끼리 한 그룹을 이뤄서 주로 노는 것 같다. 이렇게 분석하고 있는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확실한 건, 체코, 슬로바키안들하고 어울리진 않는다는 거.

 

이번 주에 새로 시작한 친구들 중에는 이제 겨우 18살인, 아직 secondary school 도 졸업을 안 한 친구 두 명이 내가 속한 반으로 배정이 되었다. 역시나 남자들이 같은 나이의 여자들에 비해 어리구나 싶은 생각이 또 들었던 게, 같은 18살인데 약간 덜 자란 듯 보이는 체코 남자 아이(?)에 비해 슬로바키아에서 온 여자 분은 훨씬 더 성숙해보인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편견이 개입된 주관적인 판단. 어찌됐든. 난 그네들 나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집 학교 집 학교 이렇게밖에 못 살았는데. 부러운 마음 반, 가족을 떠나 올 수 있는 용기에 감탄 반, 대충 그런 느낌이다. 나이주의를 싫어하면서도 스스로 무의식중에 타인을 나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버릇인가보다.

 

-나랑 같은 반 친구 중에 리비아에서 온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은행에서 일을 하다 왔다고 한다. 요 근래에 온 사람중에 드물게 올해 말까지 머무를 예정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쉽게 친해지기가 어렵다. 다만, 한번 우연찮게,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같은 유색인종이라는 일종의 동류의식을 확인하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리비아에서 왔고, 나이(!)도 꽤 있는 것 같아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나 리비아 내에서의 여론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서로 다른 맥락을 커버하기엔 우리 둘 다의 영어가 너무 짧았던 것 같다. 사족을 달자면, 이 동네 뉴스를 보면 거의 매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관련된 뉴스가 나온다. 물론 주로 오늘은 어느 군인이 죽었다, 그 군인은 이라크에 간 첫번째 여군이었다, 그 군인은 참 성실한 사람이었다 등의 뉴스와 한편으론, 총리가 사망한 군인에 대해 애도를 표하면서 영국 군인은 그래도 용감히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뉴스나, 오늘 영국 왕자가 에딘버러에서 있었던 참전 사망 군인 추모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등등이 대부분이다. 내가 여기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전쟁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발견하긴 힘든 것 같다. 적어도 bbc 뉴스에서는 그렇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여기 있는 한국 사람이 대여섯명 정도 되는데, 3명 정도의 여성분들은 회사를 다니다 때려치고 여길 왔다고 하고, 두 명 정도의 여성분들은 대학을 다니다 온 것 같고, 한 명의 남자 분은 군대를 마치고 여기로 온 대학생이다. 다 더하면? 딱 여섯 명이구나. 이번 주에 여자 분 한분이 새로 왔는데 아마 나처럼 12월까지 머물 예정인 것 같다. 여튼. 한국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이를 물어보고, 남자의 경우엔 군대를 다녀왔는지, 그 다음 질문은 뭘 하다 왔는지, 여기엔 얼마나 머물 건지, 이렇게 질문 3종 세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첫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다른 남자분 한 명은 여기선 나랑 같은 나이인데 한국 나이로는 한 살 차이가 난다. 어찌나 나에게 꼬박 이라고 부르면서 존대를 하는지.

 

군대 다녀왔냐는 질문에 안 다녀왔다고 했더니 다행히도 더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다. 한국에선 군대 아직도 안 다녀왔다는 사실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핑계가 늘 필요했는데, 그렇게 물어봐주지 않아서 정말 땡큐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무언가 아직 군대를 안 다녀온 타당한 이유를 내가 그네들에게 입증해야할 것 같은 자격지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 더러 대학생이냐고 물어봐서, 왠지 대학생이라고 말하면 같은 한국인들, 특히나 회사 다니다 온 여자 분들한테 무시를 당할 것만 같은 묘한 자존심에 학원에서 돈 벌다가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나랑 지금은 같은 나이인 다른 남자분은 동생 취급을 받지만(물론 그 남자분 스스로가 누님들에게 깍듯이 대하는 측면도 크다) 나는 서로 존댓말 하고 누구씨 하고 부르는 관계로 지내고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내가 맺던 관계 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내가 보살핌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또 내 스스로도 그런 관계를 원했던 것 같은데, 여기 와선 이유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스스로 나이 많고 경험 많고 연륜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려는 태도를 보여온 것 같다. 원인은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영화관에 가서 받았던 몇가지 느낌. 유럽 하면 떠올리게 되던 일종의 환타지, 예컨대 그들이 갖고 있는 역사성 혹은 같은 자본주의 사회지만 왠지 덜 천박할 것 같은 이미지 혹은 얘네 사회의 예술에 대한 감수성? 이런 것들이 오늘 영화관에 가서 많이 깨졌던 것 같다. 3시 영화였는데 3시 10분이 넘어가도록 줄줄이 다른 영화 예고편을 틀어주고, 게다가 모든 영화는 미국 영화 혹은 자막이 필요없는 영화들이었던 점. 영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모든 사람이 자리를 떠버리는 모습. 사실 한국에서도 흔한 모습이지만 막상 여기서도 한국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고 나니 묘한 느낌이었다. 너무 많이 기대를 했나보다. 아니면 예컨대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다른 모습을 가진 것일 지도 모르는 거고. 자본주의의 위대함이랄까. 안젤리나 졸리가 나오는, 오늘 갓 개봉한 unwanted라는 영화였는데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고, 다른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한국처럼 번역가가 많은 곳도 없겠단 생각도 문득 들었고.

 

- 체코인과 콜라. 다시 하우스메이트 이야기. 나보다 1년 더 늦게 태어난 친구이다. 89년 90년에 소위 동구권이 붕괴됐으니 적어도 이 친구는 어린 시절 몇 년 간은 공산주의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 친구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이 홈스테이에 들어온 바로 다음 날부터 마트에 가서 펩시콜라를 사와서 자긴 콜라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너도 좀 줄까 이렇게 물어보는거다. 역시나 내 환상에 기인한 묘한 궁금증에, 딴에는 고민해서, 너 일부러 코카콜라 말고 펩시콜라 사온거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별거 없었다. 그냥 펩시가 땡겨서 샀고, 자기는 코카콜라도 좋아한단다. 그래서 체코가 옛날에는 공산 치하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콜라를 많이 좋아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둘 다 영어가 모자라고 괜히 물어보다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진 않을까 싶어서 꾹 참았다.

그런데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그 친구도 나처럼 노트북을 들고 왔는데, 도시바 모델에 꽤나 쌔끈해보이는 노트북이다. 결정적으로 스피커가 내꺼보다 더 빠방하다. 너 노트북 스피커 좋아보인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길, 도시바가 스피커에 강하다고 말을 하더라. 여튼. 그 친구 노트북에 무슨 놈의 음악이 그리도 많던지, 난 조심스럽게 내 엠피쓰리로 옮겨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후훗. 또다시 조심스럽게 묻기를, 이 많은 음악 다 너가 씨디로 샀냐고 물었다. 이 역시 유럽 애들은 지재권에 더 민감하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 생긴 일종의 편견에서 기인한 질문이었다. 근데 이 귀여운 친구 말하길, 당연하단 표정으로 자기 친구한테 옮겨받은 거라고 한다. 속으로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불법 다운로드는 어디에나 있구나 싶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음악이 별로 없었다. 물론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게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팝송도 많았지만. 그 친구 말하길 자긴 아메리칸 팝송이 많다고 한다. 역시나 내 호기심을 자극해서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했더니, 체코에 아메리칸 송이 무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네 나라 가수도 보통 영어로 음반을 녹음한다고. 논술지문에서나 보던 미국 문화의 세계화를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 친구를 비롯한 몇몇 체코인들이 아메리칸 헤피엔딩이란 표현을 쓰면서 헤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를 평하는 걸 보면 또 속으로 아 얘네가 그래도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또 혼자 속으로 재단하게 된다. 허허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걸 쓰려했는데 너무 길어져버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22일. 헤이스팅스에서 맞는 세번째 주말.

6월 22일. 헤이스팅스에서 맞는 세번째 주말.

 

오늘은 일요일. 홈스테이하는 집에 딸려 있는 정원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 정착 준비를 끝내고 있다. 여기 온지 벌써 3주째인데 아직 정착 준비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긴 하다.

 

어제 내가 살 플랏 주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Scott. 이 근처 도시인 Rye에 주로 머문다고 한다. 덕분에 플랏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나 혼자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문제는 거기도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아래층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무선인터넷 접속 비밀번호를 물어봐야할 것 같은데, 별로 친한 사람들도 아니고 약간 거시기 하다.

 

내 홈스맘은 내가 플랏에 나가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이후부터 하루에 한 번씩은 이제 너가 여기 머물 날이 며칠밖에 안 남았구나 얘기하면서 너무 아쉬워하신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내가 나가도 저녁엔 밥 먹으러 오라는 말까지 하신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고 이후에 잉글랜드에서 정착을 하신 분. 맘 같아선 여기서 계속 머물고 싶지만, 잘 모르겠다. 사실 한달에 100파운드짜리 홈스테이와 65파운드(+식비)짜리 플랏 중에서 비용만으로 보면 플랏에 살아야 할 것 같지만, 하루하루를 보낼수록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도 커진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여기 있는 다른 한국 학생의 플랏에서 술을 함께 했다. 한국 학생 서너명, 일본에서 온 학생 한 명 이렇게 해서 놀았다. 그날 함께 했던 한국에서 온 여자 분들은 모두 일을 하다고 여기로 오신 분들이고 남자 분 한 분은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여기에 오신 분이었다. 므스가 남미 여행 가서 만났다는, 은퇴 여행을 하고 있던 몇몇 여성 분들 얘기를 들은 것도 있고 해서 나름 일 하다가 때려치고 훌쩍 떠나온 여자 분들에 대한 모종의 환타지가 있었는데, 금요일에 술을 같이 마시고 나니 환타지 같은 건 다 사라졌다. 역시나 미래의 취직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고 있는, 예전의 나였다면 세속적인 사람들이라고 지칭했을 그런 분들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지금의 나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그 사람들의 고민보다 무언가 좀 더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난 오히려 그들만큼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띵가띵가 노는 걸 좋아하는 한량밖에 안 된다는 자괴감도 살짝 든다. 어떻게 하면 굶어죽지 않고 입에 풀칠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몰아치듯 일하긴 싫고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빌붙어 지내긴 싫고. 답이 잘 안 보이는 고민이다.

 

여기 홈스맘의 아들인 조나단은 노래를 만들고 불러서 돈을 번다. 꾸준히 작곡을 하고 데모씨디를 만들어서 곳곳의 펍이나 요양센터에 뿌리고 자신을 부르는 곳에 가서 노래를 하고 돈을 번다.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꾸리고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방식이 아니라면, 조나단의 삶은 나에겐 그야말로 하나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왠지 그의 삶에는 노동에서의 소외가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환상. 그나저나 난 여기서 알바를 과연 잘 구할 수 있을까.

 

이번 주에는 꾸준히 알바를 찾아 다녔다. 이곳에 cosmo 라는 차이니스 레스토랑이 있어서 방문을 했다. 수요일에 처음 방문을 해서 매일 방문을 한 끝에 금요일에 겨우 매니저를 만날 수 있었다. 수요일에 갔을 때 목요일에 오면 매니저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목요일에 찾아갔는데 매니저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 사실 적지 않게 좌절을 했었다. 그까짓 레스토랑 알바 자리 따위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일종의 비굴함도 느꼈고.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역시 난 먹물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결국 금요일엔 여기 학교에 있는 타이완 학생이 선뜻 나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같이 동행을 해주었다. 다행히(!!) 매니저를 만났고, 너무나 간단하게 면접이 끝나버렸다. 사실 면접도 아니라 단지 만나서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고 이름과 전화번호와 나이를 적어가는 걸로 끝이었다. 나름 충격적이었던 건, 내가 그 레스토랑 알바자리를 바라고 있는 다섯 번째 대기자라는 거다. 허허.

 

사실 오늘은 이 근처에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rye에 놀러가려 했는데, 특유의 귀차니즘이 발동해버렸다. 아마 수요일 오후쯤 갈지 말지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다. 일주일 뒤면 플랏으로 이사를 하니 대충 준비도 하고. 무엇보다 모리슨에 가서 내가 직접 요리해 먹을 재료들을 잘 찾아놔야 할 것 같다.ㅋㅋ 영어공부에 대한 생각들도 적어보고 싶은데 이건 다음 기회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런던 놀러간 날






일요일에 런던에 다녀오다. 좀 더 싸게 가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하루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티켓을 10파운드에 구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4명이 모이면 20파운드에 티켓을 살 수 있다. 그럼
한 사람당 5파운드니깐 만원 정도면 런던을 왕복할 수 있는 거다. 여기 처음 오던 날 무려 23파운드나
주고 편도 티켓을 샀던 걸 생각하면..후

두 시간 정도 걸려 런던 빅토리아 역에 도착, 지도를 들고 혼자 여기 저기 찾아 돌아다니다.
하이드 파크, 버킹엄 궁전과 주변의 공원들, 트라팔가르 스퀘어, 내셔널 뮤지엄, 웨스트민스터 다리,
사우스뱅크, 채링크로스역, 코벤트가든까지, 무진장 걸었던 것 같다.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지도상으로만 보고 걸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나중엔 약간 힘들었다. 그래도 뭐.

첫 런던 여행 치곤 나름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미화를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고, 부시의 런던 방문에
맞춰서 있었던 반전(?) 집회도 구경을 했다. 펍에서 저녁과 맥주 한잔까지. 덕분에 메이화는 다음 날
시험을 잘 보았을지는 모르겠다.

다시 한번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걸 실감한다.
지난 주말에 홈스테이에 새로운 하우스메이트가 들어왔다.
내가 독차지하던 홈스맘의 사랑을 빼앗길 것 만 같은 묘한 질투감이랄까. 그래서인지
어제 저녁에는 홈스맘에게 평소보다 친한 척을 많이 했다. 친한 척이라봐야 말 계속 걸고, 이것 저것
물어보고, 눈치껏 상 차리고 치우고 하는 정도? 내가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무언가 새로운 음식
이름 혹은 조리 방법 혹은 여기서 보고 듣는 특정한 일상의 행동양식들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기꺼이 언제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홈스맘.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점점 더 들고있다.

플랏에 살기로 결심한 걸 재고해봐야 싶나 싶을 정도로 지금 홈스테이가 너무 좋다. 앞으로
홈스테이에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생각이 들면서, 어느 새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식으로 여기서의 삶에 익숙해지는 걸까 싶다.

학교 수업은 시간이 갈 수록 초등학교 교실에 대학생이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강해진다. 아마도
내 귀와 입이 자꾸 트여가고 동시에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겨서이리라. 그래도 지금 클래스메이트들과
있는 게 편해서 당분간 반을 이동할 것 같진 않다.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자꾸만 늘어간다. 학원에서보다는,
일자리를 구하고 여행을 다니며 좀 더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삶을 갈구하게 되는 것 같다.

내일은 해변에 있는 차이니스 레스토랑에 한번 방문해봐야겠다. 파트타임 자리가 있는지,
나에겐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될 것 같다.








버킹엄 궁전에서 트라팔가르 스퀘어로 이어지는 길. 미화의 말에 따르면 이 곳은 여왕이 땅이라서
영국 국기가 많이 걸려있는 거라고..길 양편으론 큰 녹지와 공원이 있다.




미화를 만나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다 한 컷. 약간 파리 세느강변의 느낌을 받기도. 오른편에 보이는게
런던아이. 한번 들어가는 데 얼마더라..2-3만원 돈 정도인듯. 대관람차처럼 생겨서 공중에서 삐잉 런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을 뭐라 부르더라. 한국으로 치면 국회가 있는 곳. 반전시위가 열렸던 곳. 메이화 뒤로 사람들과 빅벤이 보인다.




런던 가는 기차안에서 설레임에 마구 카메라를 들이댔다. 러블리 론리플래닛과 안내소에서 받은 런던 지도
그리고 엽서. 기차안에서 호젓하게 사람들에게 엽서를 써야지 했는데, 아뿔사 펜을 안 들고 나온 것이다. 혼자 속으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나란 인간은, 하면서..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11일

6월 11일

 

오늘은 수요일. 오전 수업밖에 없는 날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 배틀 애비에 갔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오늘은 수, 아만다, 캐롤린과 함께 타운센터로 쇼핑을 나갔다. 내일 저녁에 팬시 드레스 파티가 있다고 해서 썩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처음 가보는 학교 파티인데 하는 생각에 동네 구경 더 한다고 생각하고 샵을 찾아 돌아다녔다. 결국 싸고 적절한 것을 구하진 못했지만, 인포메이션 센터도 가봤고, 같이 간 사람들 캐릭터도 좀 더 알게 된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랄까.

 

홈스테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좋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플랏에 안 살고 여기 계속 눌러살기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살짝 들 정도로. 나에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다. 홈스맘은 늘 새로운 베지테리안 요리로 나의 입을 즐겁게 해주시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은근슬쩍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까지 만들어 주신다.(사실 점심용 샌드위치는 내가 좀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 얼마든지 홈스맘도 모른채 할 수 있는 건데, 눈치로 봐선 내가 다른 얘길 하지 않는 한 계속 싸주실 것 같다. 다만 내가 스스로 좀 미안한 것과, 다음 주부턴 체코에서 새로운 학생이 오게 되는데 그럼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다.)

 

오늘은 나의 사랑스러운 조나단이 집에 방문해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지난 월요일에 얘기를 나누다가 여기 맥주 추천해줄 게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와우 오늘 기네스 맥주를 선물로 사와서 함께 먹었다. 사실 홈스테이에서 주는 밥은 얼마든지 잘 먹지만, 방에서 밤에 혼자 잠들기 전에 맥주 한 캔씩 홀짝홀짝 먹는게 뭔가 꺼림칙하기도 하고 신경쓰였는데 오늘은 공식적으로 함께 맥주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_- 게다가 다른 맥주도 아니고 기네스 맥주를.ㅎㅎ 심지어 오늘 저녁은 안남미(특이한건 만두 찌듯 쌀을 쪄서 밥을 만든다는 거)에 볼로네즈 소스를 얹어 먹어서 너무나 맛있었다. 역시나 평소 나의 양의 두 배였지만 느리게 먹는 다는 점을 강조하며 꾸역꾸역 먹었다. 배가 불룩 나오고 있다. 여전히 전체적으론 홀쭉하지만. 배만 나오는 건 싫은데. 허허

 

은행 계좌 만드는 일을 끝냈다. 300파운드를 입금 시켜놓았다. 초 절약 모드라 플랏 돈을 내기 전까지는 큰 돈을 쓸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술 값과 기차 값 정도?

 

일요일에 겸사겸사 런던에 가볼 것 같다. 하비엘이나 안드레아스와 연락을 해봐야겠다. 내일은 결국 노트북을 들고 학교에 가야만 할 것 같다. 홈스테이 다 좋은데 인터넷을 못 쓰는 게 쥐약이다. 메이화가 알려준 자원봉사 센터도 알아보고, 8월로 생각하고 있는 에딘버러 여행도 알아보고. 9월에 있는 공식 2주간의 기간 동안에는 어디로 무슨 여행을 갈지도 미리 고민해보고. 후후 그렇지 않으면 똑 같은 스케줄로 점철된 일상에 파묻혀버릴 것 같다. 문제는 다시 돈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 좀 우울하다. 뭘 하든 돈이 필요한 것처럼만 느껴지니..파트타임 잡을 계속 알아봐얄 것 같다.

 

, 홈스테이 맘과 조나단이 결국 나의 파티 의상까지 다 마련을 해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진을 꼭 찍어놔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9일

라이스푸딩

 

여전히 무언가 길어보이는 하루, 그러나 조금씩은 익숙해지는 느낌. 두 번째 맞는 월요일이다. 9시에 시작해서 3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나는 수업은 질릴만도 한데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몸이 항상 뻐근한 느낌이다. 학교에는 배드민턴, 탁구, 배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 하루에 늘 근 4km 이상씩은 걷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뻐근한 이유는?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야겠다.

 

저녁에 홈스테이에 돌아왔더니 홈스맘의 아들과 그 친구분이 집에 있었다. 인상 좋은, 덩치 크고 목소리도 우렁찬, 자신의 데모 앨범을 갖고 있는 28살 난 멋진 분이다. 홈스맘에 따르면 몸은 느리지만 말은 무지 빠르다. 그래도 몇 단어씩 알아들을 때는 기분이 므흣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potato jacket 이었다. 무언가 앞뒤로 수식어가 더 붙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난다. 감자와 토마토소스와 함께 끓인 콩, coleslaw, 샐러드까지 오늘도 역시나 엄청난 양의 음식이었다. 나의 러블리 홈스맘은 나보고 많이 먹으라면서 음식들을 많이 퍼주셨다. As usual I tried to eat them all, but today was very difficult to do that. 감자에 버터를 가득 발라서 주시면서 자기는 살찌니깐 그러면 안 된다고, 근데 난 살이 쪄야하니 많이 먹으라고 하시는데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기꺼이 먹으려고 했지만 오늘은 어찌나 느끼함에 오바이트를 하고 싶어지던지.ㅠ 정말 처음으로 김치와 고추장과 쌈장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크림스파게티도 좋아했으니깐, 느끼한 음식에 질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오늘은 좀 괴로웠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의 디저트는 (나중에 미화한테 들어서 알게 된 이름이지만) 라이스푸딩이었다.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먹는 동안 설거지를 다 하고 디저트를 준비해 온 홈스테이 맘에게 평소처럼 이건 뭐냐 물었더니 라이스와 아이스크림과 딸기잼을 함께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웁스, 안 그래도 배가 터져서 꾸역꾸역 남은 내 몫의 감자를 처리했는데, 또 다시 라이스라니 그것도 딸기잼이 함께 있는.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먹었을 텐데 그 순간만큼은 마치 한국에서 아플때만 먹는 흰 쌀죽에 딸기잼이 들어있는 언발란스한 그림이 자꾸 그려지면서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나오려고만 했다. 흰쌀밥에 우유를 말아먹는 듯한 느낌이랄까. 뭐 그래도, 바로 어제만 해도 너무나 맛있는 디저트-요거트와 딸기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난 두 종류의 위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나는 식사용 하나는 디저트용이라면서 잘 먹었기 때문에, 오늘 ooh Im full enough 라고 해도 나의 러블리 홈스맘이 말하길 but you have two stomach, dont you 하시는데 속으론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ㅋㅋ

 

어찌 보면 재밌는 에피소드. 난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디비디가 다 공짜인줄로만 알았다. 브록백 마운티과 원스와 본 얼티메이텀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빅피쉬와 등등 보고 싶은 디비디들 사이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당장 세편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행복한 고민 끝에 세개를 골라서 당당히 내밀었는데 알고 보니 일주일에 한편당 3파운드씩이라고 한다. 웁스. 그 때의 난감함이란. 안 그래도 안 되는 영어가 속 깊숙히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도서관 직원이 너무나 친절한 분이셔서 머쓱한 상황을 잘 모면했지만, 생각하면 진짜 웃긴 시츄에이션이었던 것 같다. 그 직원은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ㅎㅎ

 

오늘 해야할 숙제는.단어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공부하면 할 게 많은데 난 여전히 수업에서 자극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내일은 늦잠 자지 말아야지. 여유롭게 학교에 가보자구.


 


 


나의 사랑스러운 홈스맘과 아들 조나단, 그리고 조나단의 친구. 앞에는 너무나 느끼해서 힘들었던 자켓 포테이토. ㅎ

 


 



이 곳은 여기 학생들이 미팅 포인트로 삼는 '언더더브리지'. 위에는 철길이고 아래는 차도이다. 근처에는 모리슨이 있다. 사진으론 잘 안 보이지만 다리 밑으로는 새똥들이 수두룩 하다. 안 맞으려면 긴장하고 걷게 된다. 으흐.


시내로 걸어가는 길에 발견한 청소기 수리점. 보자 마자 원스가 생각나서 한 컷 찍었다. 원스가 보고싶어져서 노트북을 낑낑 들고 학교로 가서 인터넷 다운을 받을랬더니 웬걸, 영화 하나 다운 받으려면 하루종일 걸릴 것 같다.ㅠ

 


시내 바로 옆에 붙어있는 헤이스팅스 성에 올라가 바로본 해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첫 주말

헤이스팅스. 내가 듣기론 10만명이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이다. 처음으로 타운센터에 나가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핸드폰을 만들었는데, 저녁에 홈스테이 들어와서 이것 저것을 만지다가 뭘 잘못 건드렸는지 내가 알 수 없는 비밀번호를 대라고 해서 급 당황, 홈스맘에게 말했더니 일요일에도 핸드폰 가게가 문을 여니깐 걱정말라고 말한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작았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고, 난 외국인이라서 혹은 6개월밖에 안 머물거라서 총 4권의 책 혹은 디비디를 빌릴 수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말이 더 되면 더 물어볼텐데. 허허. 무선인터넷은 잡히는게 없어서 쓰질 못했고 대신에 거기 있는 컴퓨터를 썼다. 비용은 공짜.ㅎㅎ 메일 확인도 하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에딘버러에 가는 비행기 티켓도 대충 살펴보았다.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에는 숙소를 잡기가 힘들다고 하니 미리 예약을 하려면 일정도 대충 생각을 해보아얄 것 같다.  

 

타운센터에서 학교 학생을 한 명 만났고, 도서관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에 홈스맘을 발견, 짐을 들어드리면서 같이 걸어왔다. 러블리 모리슨에서 내가 좋아하는 파블로를 만났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파블로, 그의 표정이 너무나 좋은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냈더니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으흐. 모리슨에선 한국 학생들을 무려 3명이나 만났다. 토요일 오후, 다들 저녁 먹기 전에 나와서 쇼핑을 하는 시간이었나 보다. 헤이스팅스 가 아니라 무슨 망원동쯤 되는 곳에 다들 함께 사는 것 처럼 느껴진다. 동네가 작긴 작다.

 

홈스테이 저녁은 정말 맛있었다. 토마토, 호박비슷한것, 당근, 그리고 또를 썰고 그 위에 달걀을 푼 요거트를 얹고 페타 치즈를 얹어서 오븐에 구워낸 음식. 너무 맛있었다. 오븐에 데워진 마늘빵도 너무 맛있었다. 러블리를 일상에서 연발하시는 나의 홈스맘. 정말 러블리하시다.

 

눈치있는 사람은 어딜 가든 환영받는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살기에 얼마든지 당당해질 수도 있겠지만, 남의 집에 눌러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기에 홈스맘의 기분과 눈치를 잘 살피면 의외로 떡고물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히. 다음 주부터는 홈스맘이 점심도 챙겨줄 것 같다. 호호호. 홈스테이를 옮긴 것이 전화위복이 된 건 확실한 것 같다.

 

오늘 여기와서 처음으로 잠깐이나마 연수가 끝나면 돌아가서 무얼 할까, 졸업을 하게 될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하게될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얼른 귀가 트였으면 좋겠다.

도서관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빌려와서 보아야겠다. 밥딜런 씨디도 빌려서 노트북에 옮겨야지.ㅋ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6/07

Now I'm accessing the internet in the library of Hastings.

I want to write in Korean, feeling comfortably, but it's not possible here

with this computer.

 

Today is Saturday,  I don't have schools so I come to the towncentre here.

Weather is fine and I can see many people walking on the street and relaxing

themselves on the beautiful beach.

 

Yesterday I joined a party held by one Korean studying in same school,

and I could meet some more student that I didn't know.

 

When I was walking to here along the street, I feel somewhat uncomfortable, cause

I felt like everybody's watching me due to color of my face. I mean there seems

to be not many people in this city who are from east asian countries.

I'm not sure where the problem is caused from,  whether I'm just overreacting to

the people here or,,I don't know. But one thing I'm assured of is that so far

I haven't been fully accustomed to live here by myself. I hope my feelings when

I'm walking along the street could be better with the time passed by.

 

I still feel nervous about what to do in my freetime, but it will be okay, I believe.

 

I hope Tomorrow would be a also sunny day so I could visit the castle of Hasings

and take some pictures and buy some postcards to send to Korea.

 

+44(this is for international phonecall access) 07530525496

 

That is my mobile phone number here. ^^

 


 


 

첫번째 살던 홈스테이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

 




이 동네는 언덕이 많다. 중고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니려던 계획은 재고해봐얄 듯



여긴 두번째 옮긴 홈스테이 집 앞 거리. 저 멀리 ore station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헤이스팅스

갑자기 문득 오리가 예전에 술 마시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일본 자전거 여행에서 돌아와 그걸 글로 쓰는 거에 대해 얘기 중이었는데
자전거 여행은 특히나 더 '소중한' 경험이기에 그걸 글로 남겨서
일종의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었다.

흠, 지금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건 꼭 의식적으로 한다기보단 여기 와서
느끼는 바가 있어서, 평소의 여행이라면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 일기장에
끄적끄적하겠지만 지금은 노트북에 인터넷도 되고 하니 겸사겸사 쓰게 된다.ㅎ

이제 영국에 들어온 지 만 하루가 넘어가는 것 같다.

오사카에서는 여행사에서 예약해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싱글룸에 들어섰는데 어찌나 낯설던지. 자꾸 누군가 나를 뒤따라 더 들어올
사람이 있을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디 혼자 가서 자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어색함에 옷도
갈아입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혼자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호텔 들어오는 길에 보아두었던 로손에 내려가서 맥주를
사왔다. 사람들이랑 어디 같이 여행을 가면 씻는 문제에 상당히 예민해지다가도
혼자 그렇게 남겨지니 씻기도 귀찮아지고, 기분이 참 묘한것이..

아침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부페식을 먹었다. 공짜로 먹고 자고 하는건데,
욕심을 부릴만도 한데 식욕이 당기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먹고 일어섰다.
보니깐 나처럼 혼자 먹는 사람들도 참 많아보였다. 오사카 공항 입국 심사를
할때부터 보았던 한 여자분이 있었는데 그분도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나처럼 혼자 어학연수를 가는 포스가 느껴졌는데, 말을 걸어볼까
싶다가도 그 분에게서 풍기는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울할 포스에 압도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그 분이 나를 봐도 그런 암울한 기운이 풍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런던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아침에 좀 늑장을 부려서 발권 시간이 좀 늦어져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좋은 자리를 못 받고 양 옆으로 모르는 사람이 앉아있는 좌석으로 배정을 받았다.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되게 신경쓰이는 자리였다. 잠도 잘 안오고, 영화는 세 편이나
봤다. 식객, 버킷 리스트, 밴티지 포인트. 일본어 자막이 나오는데 들리는 것도 거의 안 들리고
그냥 그림보면서 스토리 대충 짐작하면서 보았다. 버킷 리스트에서는 왠지 멋진 대사들도
나오고 했을 것 같은데 그걸 다 놓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국 심사. 스쿨레터를 요구받았다. 영국에 얼마나 있을 거냐고, 왜 6개월이나 있냐고
묻길래 학교를 등록했다고 말했다. 속으론 내 학생비자를 보고도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
궁금했지만 말이 안 되니 뭐...미화에게 연락을 해야하는데 동전은 없고 지폐밖에 없는 상황.
뭘 사먹고 바꾸기도 어렵고, 환전 카운터에서는 못 바꿔준다고 하고, 결국엔 나 같은 유학생
혹은 출장 온 사람을 픽업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분이 동전으로 바꿔다
주었다. 국내용 전화카드를 어디서 사야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핸드폰으로 걸어주겠다고
해주었던 사람이었다. 내심 그 사람이 자기가 동전으로 바꾸어다 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럼 커미션을 때는 거 아닌가 의심 반 두려움 반이었는데, 허허.

어렵게 미화를 만나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 기차를 타려고 했던 캐논스트리트 역에선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_-;; 처음엔 운전사가 실수한 줄 알고 무거운 짐을
낑낑 대며 반대편 플랫폼으로 다시 옮겨서 전철을 다시 탔는데 또다시 역을 지나쳐 버렸다.
후. 결국 그냥 한 정거장을 걸어서 이동을 했다. 처음 밟아보는 런던 거리. 무거운 짐들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둘러볼 엄두가 안 났다.

........................


어렵게 도착한 홈스테이. 세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12살 난 랜지라는 친구가
나하고 말동무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서 귀엽다고 해얄지 고맙다고 해얄지.
나름 그간 주워들은 지식으로 영국의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대화를 시도해보려다
포기했다. 으흐.

내가 등록한 학교?학원?에는 한국인이 대여섯명 정도 있는 것 같다. 나름 눈치를 보면서
접근. 오늘 다운센터까지 동행을 해서 생존 정보들을 주워 모았다. 어허. 모리슨이라는
큰 마트가 내 레이더에 들어와버렸다. 굶어죽진 않을 것 같다. 자취를 할 방과 아르바이트를
좀 알아보면 될 것 같은데 이번 주 다음 주 시간을 좀 두고 알아봐얄 것 같다.

여행은...욕심은 나는데 일단 이곳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더 원하는 것 같다, 내 몸이.

정말 조용한 도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용하다. 내일은 좀 더 나가서 우체국 위치와
도서관 위치를 파악해보아야겠다. 머릿 속에 지도를 그려보면서.

영국 발음을 알아듣는게 예상한 것보다 더 어렵다. 수업 내용은 원체 기대를 하진
않아서 생각보다 선생들이 더 재미있고 학생들도 적극적이어서,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일 것 같다. 까칠하게 그들 하나하나 분위기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면 역시나
기대에 못 미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ㅎㅎ 내가 특별한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자각이 들지 않도록 잘 어울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같은 곳에 던져놔도 각자의 습성 습속에 따라 어떻게 적응하는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어떻게
잘 조율할지, 스트레스 안 받으며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서울 떠나기 전에 집회 제대로 참석 못하고 온게 아쉽다. 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천공항에서

노트북으로 무선인터넷이 되니 공항에서도 이렇게 글을 쓸수가 있다.

어제는 황사때문에 하늘이 뿌옇더니 오늘은 날이 화창한 편인 것 같다.

 

수화물 제한 30KG에 걸릴까봐 노심초사 하며 어젯밤부터 짐을 쌌다 풀었다를

계속 반복했는데 의외로 쉽게 지나갔다. 26.4kg 정도? 왜 이리도 다 못 채운 3.6kg에

미련이 남는지.ㅋㅋ 덕분에 다른 캐리어 하나와 등에 맨 가방 하나는 꽉꽉 채워넣어서

벌써 어깨가 뻐근하다.

 

집에서 여유있게 출발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공항에 도착.

환전을 하고, 우체통을 찾아 편지를 넣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티케을 발권하고 나니 이제 겨우 4시였다. 비행기는 5시 55분 출발인데. 혼자 떠난다는

생각에 혹여나 늦을까 하는 노파심에 서둘렀더니 이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랫집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때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시간에 대해서도 많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마 그 동안의 여행경험에서 얻은 큰 수확인

것 같다. 안 그랬으면 난 지금쯤 패닉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 워낙 이것저것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면세점에서 무얼 살 것도 없고 아직 비행기 입장은 시작도 않은 시각에 혼자 창가

소파에 앉아 이렇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가 여전히 낯설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너무나 많이 울어버려서 정작 마지막에 엄마와 헤어질 때는

눈물이 안 나왔다. 뒤돌아서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순간 나도 목이

뜨거워질 뻔 했지만 엑스레이 검사대를 눈앞에 보니 금세 긴장이 되어 감정이

드라이해진다. 결정적으로 내가 핸드폰을 엄마한테 안 넘겨주고 내가 쥐고 들어가는

바람에 엑스레이 검사대에서 다시 밖으로 나가 엄마를 찾으려니 울다 웃는 꼴이

되어버렸다. 씨익.

 

이렇게 쓰고 있으려니 또 눈물이 찔금하는 건,,,런던에 도착하면

이 기분에 좀 변화가 오려나.

 

나름 스스로 내 상황에 거리두기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덜 쿨해지고 더 따뜻해지려고

노력했었는데, 이번에 떠나는 여행은 스스로 거리두기가 잘 안된다. 그래서 계속

찔찔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왜 영국으로 떠나는 거지 질문이 던져지는 것을

무의식중에 꾹꾹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제 비행기가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비행기 운전은 어떻게 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운전에 대한 관심이란.ㅋ

이런 걸 보면 영국에 가서도 난 변하지 않고 왠지 평소 일상의 습관들 생각들을

그대로 하며 지낼 것 같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에서 보면 배두나가 사는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한데. 여기서 청소하시는 분들은 역시나 아마도

비정규직이겠지 하는 생각. 그래도 공항에서 일을 하면 무언가 들고 나는 사람들의

기운을 받아 좀 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

 

지금 보니 비행기가 일본에서 도착해서 사람들을 다 내리고 나면 거기에 다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타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와보고 이런 저런

수속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항은 뭔가 내가 파악할 수 없는, 손에 잡을 수 없는 거대한

덩어리로만 보였는데, 이제 슬슬 공항의 시스템이 파악되고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노동자들처럼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니 좀 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이젠 공항에 들어와서 뭔가 두렵고 울렁울렁한 마음들은 차차 없어지게 될 것 같다.

 

내일도 다시 탑승 수속을 하려면 뺏다 풀었다 하는 과정을 밟아야 할텐데,

이 많은 짐을 바리바리 들고 풀고 할 생각에,,,으 정말 끝이 없는 걱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