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from 2006/12/20 19:58

아침에 케이가 사라졌다.

불의 제단 위에 스스로 올라가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나의 열여섯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불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나는 이제 완전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불 속에서 웃고 있었다.

 

 

 

케이는 나의 여자다.

그녀는 나와 한날 한시에 태어났다.

나를 위해 태어난 여자다.

나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나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여성과 남성이 하나인 존재이고

그녀는 나의 여성인 것이다.

그녀는 나를 위해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잉태하기 위한 밤을 보낼 때

다른 6명의 아이들과 함께 잉태되었다.

주술사는 그의 스승인 주술사로부터

한 남자가 한번에 7명의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게 하는 마술을 배운다.

그리고 평생에 단 한번, 혹은 두번 그 마술을 사용한다.

 

그 때 만들어진 아이들 중 남자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어떤 남자아이도 나와 함께 태어날 수는 없다.

여자아이들 중에서도 케이만이 살아남았다.

그녀는 운 좋게 나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조금 일찍 태어나거나 너무 늦게 태어나

나온 자리에서 물 속으로 집어넣어졌다. 나온 곳으로 돌아가 버리게 하는 것이다.

케이를 낳은 여자는 아마도 말이나 소에게 사용하는 약초다린 물을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녀 역시 죽었다.

왕이 내린,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약을 먹고 죽었다.

 

케이에게 연결된 사람은 이 세상에 나뿐이다.

그녀를 돌보는 유모는 눈도 보이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한다.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늙어 케이에게 옷을 입히고 있는지

나무토막에게 옷을 입히고 있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그녀는

케이를 처음 돌보기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늙어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그녀를 대했다.

 

케이는 아주 작다.

나는 자주 그녀의 빵이나 고기조각을 빼앗아 먹곤 했는데

그녀는 그냥 빼앗기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울거나 떼쓰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남은 야채와 빵부스러기를 먹고나면

나같은 것은 관심도 없다는 듯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성안에는 방이 아주 많아서 나는 그녀를 찾아 온 방을 헤집고 다녔다.

할머니가 계셨다는 어두운 방의 녹색커튼 뒤에서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화덕 안에서,

그녀 방에 있는 오래된 옷장 속에서 나는 그녀를 찾아냈다.

그러면 그녀는 그 서늘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자신만의 세상속에서

성안으로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것이 못내 야속하다는 듯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녀는 작고 까맣고 단단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녀를 발견하면 그녀 곁에 가만히 있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깨 옆에 앉아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며

작은 숨소리를 숨죽여 들었다.

 

그녀는 옷을 벗어 잘 펼치고 모아 그 안에 편안하게 들어가 앉는다.

자신의 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만지기 시작한다.

왼손 두번째 손가락끝을 오른손 새끼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움직여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손목에서 엄지손가락끝으로 움직인다.

손가락은 나비처럼 가볍게 앉아있다가 다시 둥글게 날기 시작한다.

손가락 하나 하나를 건드리며 날아서는 손바닥 가운데를 거쳐

손목의 돌출된 부분위에 가 앉는다.

손바닥과 손가락 전체를 이용해서 팔전체를 빠르게 흝는다.

그리고 두번째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팔안에 든 굵은 뼈들과 힘줄들을 음미한다.

양팔을 다 끝낸 후에는 머리채를 틀어올리며 머릿속을 헤집기도 한다.

눈뼈와 콧날, 귓볼, 살짝 열린 입술과 그 사이의 이까지 손가락들로 잘근잘근 씹고나면

양손의 두 손가락으로 목 뒤의 파인 곳을 거쳐 어깨와 가슴골, 가슴 아래의 흉골을

신중하게 더듬는다.

잃어버린 뼈조각이라도 찾듯, 그녀는 매우 심각하게 보인다.

흉골에서부터는 조금 빠르게

허리와 엉덩이를 지나 종아리까지를 스치듯, 그러나 빠뜨리지 않고 지나간다.

그녀의 손은 모든 순간을 아쉬워 하는 듯 하면서도 단호해서 나는 숨이 멎는다.

그리고 나면,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발이 등장한다.

그녀는 손가락 전체를 이용해서 발가락들과 손가락들을 만나게도 하고

작은 뼈들을 조곤조곤 쓰다듬는다.

 

그 의식은 언제나 그녀의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이 난다.

가늘게 열린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그 어느 곳도 바라보지 않고

그녀 내면으로만 열려있다.

입술과 이와 혀를 통해 새어나오는 작은 숨소리 역시 그녀만을 위한 것이다.

가슴이 하늘을 향해 휘어진다.

 

단 한번, 나는 그녀의 팔을 만진 적이 있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너무나 즐거워보여서,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진 것일 뿐이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눈길한 번 주지않고 옷을 입은 뒤 옷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커튼이나, 옷장, 화덕 밖의 그녀는 벽난로위의 유리인형같다.

투명하고 무겁고 위태롭다.

 

 

 

나는 이제 불완전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내 안에서 차가운 불꽃이 일렁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20 19:58 2006/12/20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