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from 우울 2001/07/28 00:00
길을 걷다가 부딪치는 타자들은, 때때로 구역질이 나게 한다.
그들이 특별히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들이 타자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자와 동일자라는 고리타분한 이분법적 사고에 너무나 익숙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주변의 사람들을 타자와 동일자로 나누는 습관이 있었다.
오랜 세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나는 완전히 고립된 동일자로 남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고립된 동일자인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타자와 동일자를 구분하기 시작했던 때부터 나는 내가 고립된 동일자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었다.

만나지 않겠다고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친구들은 나를 열심히 설득했다.
선생님께서 내 안부를 물으셨다는 것이다.
서로 연락하고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 안 만나겠다고 하면 예의가 아니라고, 거듭거듭 쑤셔대었다.
그래서 고3담임을 만났다. 9년만인가?
만나서는, 몇시간인가를 줄창 울기만 했다.
중간에 몇마디 한 것도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술집 탁자위에 엎드려서는 어디서 뽑아내는지, 선생님 얼굴은 보지도 않고 계속 눈물만 흘려댔다.
뭐 선생이 대단한 사람이어서 그리웠다거나, 무서운 사람이어서 싫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그가 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으로써 충분했을 따름이다.

그 시절에, 나는 내가 아주 좁고 높은 기둥꼭대기에 서있는 것 같았다.
멀리에서 나를 둥글게 둘러쌓고 있는 타자들은, 그들과 나 사이의 깊고 검은 심연을 바라보고, 죽음을 상상하도록 만들었었다.
그들 각자의 사이에도 그러한 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웠다.
혼자라는 것이 두려운 그런 때였다.

나는 고3담임에게 짙게 배어있는 나의 심연과 나의 두려움을 재발견하고, 갑자기 굉장히 무서워졌다.
그래서 울었다.

사실,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다음날, 함께 고3담임을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가 전화해서는
자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친구로써 너무나 부족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결국은, [그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책이나 영화나, 그림 등을 통해서,
타자와 소통한다고 느껴질 때 행복해지는 것은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환상체험, 마치 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마법적인 능력.
뭐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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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8 00:00 2001/07/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