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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6

from 2007/08/16 00:27

날씨 탓일까?

지겹게 떨어져내리는 우울하고 지치고 닳을때로 닳아빠진 물방울들 때문일까?

아니면, 무지막지한 더위 탓인가?

어떻게든 버텨볼만은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된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더위 탓인가?

 

어떤 호칭으로도 부르고 싶지않은 그 자의 탓인가?

뇌속에 엉성하게 꾸역꾸역 넣어진 건조한 솜같은 기억들, 생각들, 이어지는 기분나쁨들.

그 때문인가?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는 전화에 대고 무섭게 소리를 질러댄다.

차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를 들이마시면서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더위와 빗줄기와 21세기 도시적 고통의 상징이 된다.

 

빨간 원피스의 허리띠는 고정끈을 하나 빠뜨린 상태였다.

살짝 비틀린 고정끈이 하얀 실밥을 드러내고 뒤집혀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터질 것 같은 루이뷔통 가방과 아예 닫히지 못해 열린 또 하나의 가방,

분홍색의 무거운 악세사리들이 중력처럼 작용할 것만 같은 분홍색 핸드폰,

핸드폰에 연결된 검은 이어폰, 역시 루이뷔통의 손지갑,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의해 결박당한 손에 애처롭게 매달린 캔커피.

그녀는 높은 힐 뒤축의 끈을 대충 밟아 신고 있었다.

커다란 머리띠로 고정시킨 머리카락들 아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었고

위태롭게 지워질 것만 같은 짙은 화장이

더위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화가난 그녀를 무섭게 보이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30대 중후반임에 틀림없다.

 

그럭저럭 그녀는 특별하다.

평범한 다른 사람들보다는 재미있기라도 하다.

주렁주렁 백을 끌고 캔커피를 따서 마시며 8차선 강남의 도로를 무단횡단해버리는 그녀.

 

생각해보면 그녀는 정말 흥미롭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8차선을 횡단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잦아드는 비평과 더위와 기다림과 뜨겁고 무거운 공기의 이동,

피곤함, 무관심한 짜증 등이다.

 

아마도 날씨탓이다.

이런 날들에는 어떤 열정도 대기중에 눅눅하게 번져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대단하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미친듯이 화내는 자신을 연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의없고 번잡스러운 여자,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는 여자.

신발을 꺾어신고 8자로 무단횡단을 서슴지 않는 여자.

 

그녀의 연기는 잠시 강남의 공기를 단단하게 만들정도는 되었다.

 

홍상수 영화에 나올 법한 그자의 연기도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묘사불가능. 구토 유발.

 

어떻게도 안써지는군.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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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00:27 2007/08/16 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