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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리거 2008/07/03

트리거

from 2008/07/03 18:37

날 김을 입안에 부석부석 소리를 내면서 집어넣고 씹어먹으면서,

 

트리거에 대해 생각한다.

 

트리거를 한국말로 뭐라고 하더라?

방아쇠.

방아쇠라니, 너무 귀엽지 않은가?

 

트리거쪽이 훨씬 트리거답다.

트리거 트리거 트리거 트리거 트리거 트리거 트리거 트리거

트리 쪽을 빠르게 발음하고 거어 한다.

 

날 김으로 배를 채울 수 있을까?

채울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데.

 

내 머리속에도 몇 개인가 트리거가 있는데,

그걸 자극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문을 열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문은, 인간의 힘으로 해독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암호가 있어야만 열 수 있는 자물쇠로 잠겨있다.

 

보이지 않는 문을 찾아, 인간의 힘으로 해독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암호를 입력하고 트리거를 당기다.

 

천재적인 해커들이 있다.

 

생각보다는 드물지 않게 있다.

 

내 인생에 한 명쯤.

 

그가 암호를 알게된 것은 천재들이 다 그렇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밤낮으로 책상밑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피자나 식은 통닭, 조미 김 등으로 배를 채우고,

머릿속은 나로 가득 채우고

갖은 부호들과 비논리적 혹은 논리적 체계들을 읽어내기를 몇 년 정도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라는 것은 나의 상상이고,

 

막상 그는 와인과 잘 차려진 밥상 등으로 머리를 채우면서,

뱃 속은 나로 가득 채우고

온갖 부호들과 비논리적 혹은  논리적 체계들을 만들어내기를 몇 년 정도 하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트리거.

 

트리거를 당겨주었으면 해.

 

남의 트리거나 당기는 건 열정과 힘이 넘치는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는 떠났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는 보안요원이 되었다.

철이 든 것이다.

 

자본주의에 건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쇼스타코비치에 건배.

 

보안요원은 암호가 해킹되지 않도록 교묘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돈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해킹당하지 않는다.

 

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더이상 해킹당하지 않게 된지 셀 수 없는 해를 지났다.

 

쇼스타코비치를 들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들어올릴 수 없다.

살아있다고 해도 내 팔로 그를 들어올리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쇼스타코비치'라고 말한 것을 들었을까?

그랬을 지도 모른다.

분명, 나는 쇼스타코비치를 알고 있으니, 누군가 말한 것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디선가 읽기만 했던 건지도 모른다.

 

쇼스타코비치를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혹시, 트리거를 당겨주지 않을까 해서.

 

show star co bitch

 

끈적끈적하고 진하고 역한 무언가를 뒤집어 쓰고

구석에 쳐박히면

아무것도 먹지않고 삶과 잠의 중간영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보이지 않는 문 너머로 트리거가 보인다.

 

트리거는 작지만,

당기면 굉장한 폭발이 일어나곤 했다.

 

한동안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될 만큼 귓청을 울리는 폭발음,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와

무엇보다, 몸 전체를 퉁겨내는 둔중한 충격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게 된다.

입안은 쓰고 머릿속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눈앞이 새하얗다.

 

나는 머릿속에 트리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었다.

 

역시 트리거가 있다는 걸 아는 편이 마음이 놓인다.

 

암호는 더러운 것들과 관련이 있다.

 

상쾌한 공기나 부드러운 바람, 푸른 하늘이라던가 파릇파릇한 새싹, 말랑말랑한 아기 같은 걸

짓밟고 뭉개고 오물로 채워진 늪에 담궈 질식시키고 싶다.

 

무딘 칼로 짓이기며 갈라내서 그 안의 액체를 몸에 바르고

썩을 때까지 누워있고 싶다.

 

건배.

 

맥주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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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3 18:37 2008/07/03 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