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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발췌

당신의 목표는 임금노동의 노예?

-로날트 블라쉬케의 라이너 로트의 조건없는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반비판 진보평론 39호 2009년 봄호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권리에 대한 국제조약 3부8조(1966)

누구도 강제노동 혹은 의무노동을 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안된다.

 

 

국제노동기구의 강제노동 혹은 의무노동에 대한 협정91930)

누군가에 의해 그 어떤 처벌위협으로 요구되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에 맡겨지지 않은, 모든 노동 혹은 서비스는 강제노동 혹은 의무노동으로 간주된다.

 

 

임금노동은 소외되지 않고 자유로운 연합과 협력에 근거한 인간의 자기활동의 반대이다.

소외되지 않은 따라서 인간의 자기활동의 본질은 칼 맑스에 의하면, 자기활동의 자유로운 선택성, 활동의 목적에 대한 그리고 활동을 위해 필요한 수단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가능성이다. 더 나아가서 노동 저편의 활동들은 물질적 필연성과 외적 합목적성과 독립적으로 실행된다.

 

 

맑스의 경철수고에서 발췌

만약 그가 부자유스러운 활동으로서의 그 자신의 활동과 관계한다면, 그는 다른사람에 대한 굴종, 강제, 지배하에 있는, 예속의 활동으로서 그 자신의 활동과 관계하는 것이다......그가 그 자신의 활동을 자신에게서 소외시키는 것처럼, 그는 낯선 자가 그 사람에게 본래적이지 않은 활동을 제 것으로 하도록 한다.

 

우리는 물론 사적소유의 운동의 결과로서의 국민경제학으로부터....외화된 노동 개념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 개념의 분석에서 만약 사적 소유가 외화된 노동의 원인으로, 근거로 나타난다면, 사적 소유가 오히려 외화된 노동의 결과라는 것이 드러난다. 마치 신들 역시 원래 인간의 이성오류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후에 이 관계는 상호작용으로 바뀐다.

 

 

 

따라서 소외된 노동과 이에 조응하는 종속관계들은 자본과 자본관계들에 대한 근본적 전제이다. 그것들은 맑스에 의하면 단순히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노동관계들, 자본관계들은 그들이 매일 그들의 행동을 통해 재생산하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들이다. 단순 소유로서 그리고 임금정치적이자 협정임금정치적 문제로서의 이러한 관계들의 ‘사물화’는 인간들의 관계에 대한, 따라서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실제로적 해방적인 문제제기를 소실시킨다. 그리고 어떤 이들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으로 구체적인 임금노동조건들을 단순히 개선하고, 다른 이들(시장-예비군 지위에 있는 임금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국가의 강제와 결합된 최저소득으로 빈곤-상태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접근은, 임금노동관계들/자본관계들 너머를 가리키지 못한다. - 그것은 사람들을 이 종속관계들에 고정시킨다. 종속적인 고용활동자를 위함 최저임금과 실업자를 위한 최저소득은 반자본주의적 접근이 아니다.

 

 

 

인간은 다름 아닌 대상적 세계의 가공속에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신을 유적 존재로서 증명한다. 이 생산은 그의 활동적인 유적 생활이다. 이 생산에 의하여 자연은 인간의 작품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현실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의 대상은 인간의 유적 생활의 대상화이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그의 생산의 대상을 빼앗음으로써 그의 유적 생활, 즉 그의 현실적인 유적 대상성을 빼앗고, 동물에 대한 그의 장점을 단점으로 변화시켜 그의 비유기적 몸, 즉 자연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경철수고 박종철 출판사 79페이지

 

 

 

맑스의 혁명적 사고-자본이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방식을 드러냄으로서 역사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변증법을 보임

맑스의 한계-노동을 인간의 본질이자 역사의 본질로 보는 노동중심주의적 사고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근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

 

 

 

맑스의 네 가지 소외

1. 노동자는 낯선 물건과 관계를 맺듯이 자신의 노동의 생산물과 관계를 맺는다. 그 생산물은 노동자 위에 서 있으며, 독립된 힘으로 노동자와 대립한다.

2. 노동자는 생산이라는 활동 자체에서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노동자는 그의 일을 그의 진짜 삶의 일부로 여기지 못함으로 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3.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의 조화로운 노력들이 배제된 노동에서 그의 유적 생명, 그의 사회적 본질을 박탈당한다.

4. 인간은 다른 인간들로부터 소외된다. 노동의 소외로 인해, 맑스가 아래 인용문에서 쓰고 있듯, 노동은 역설적으로 존재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국민경제학은 노동자와 생산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고찰하지 않음으로서 노동의 본질 내부의 소외를 은폐한다. 이 점은 틀림없다.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그것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움막집을 생산한다. 그것은 미를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불구를 생산한다. 그것은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지만 노동자의 일부를 야만적인 노동으로 되던지며, 또 다른 일부를 기계로 만든다. 그것은 정신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정신박약과 백치병을 생산한다.

경철수고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박종철출판사 75페이지

 

 

예컨대, 가정 내의 일과 같이 우리가 사적 영역에서 행하는 자활노동(work for oneself)은, 따라서, 임금노동과 동일시 될 수r 없다. 왜냐면, 자활노동은 자기 자신의 유지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형성한 생활공동체의 사람들을 위해서만 봉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은 사회의 필요의 영역에 종속되지 않을때에 한해, 사회적 관계의 시스템을 지탱하거나 재생산하기 위해 사회적 노동의 과정속으로 들어가지 않을때에 한해, 적실하고 내재적인 의미를 유지할 수 있다. 사적 영역의 의미는 자신의 삶과 뜻을 사회의 목표에 종속시키지 않아도 되는, 서로 특별한 사람들로서 존재하는 개인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 『capitalism, socialism, ecology』53-54 chris turner(london verso1994)

 

 

경제적 이성에 의한 합리적 이유들 때문에 임노동wage work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서로를 위한 진정한 노동work을 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 고르의 판단이다.

노동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정의함으로써 정치경제학의 탄생을 알린 사람은 스미스였고, 그것이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의 원천이라고 말한 사람은 리카르도였다. 또 이러한 노동 개념을 확장하여 절대정신의 활동에까지 적용한 사람은 헤겔이었다. 맑스의 인간본질은 노동이라는 명제는 이러한 영향하에서 이루어졌다.

 

스미스는 노동을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인 척도로서 간주한다. 그것은 부를 표상하는 여러 가지 척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부를 비교하고 평가하게 해주는 단일한 척도이며, 주관적인 가치평가에 좌우되는 표상의 일종이 아니라 표상의 외부에 있는 객체적이고 불변적인 척도인 것이다. -국부론, 스미스, 김수행역, 상권 동아출판사1992 36쪽이하

 

 

 

리카르도는 여기서 좀더 심층으로 밀고 들어간다. 즉 노동은 가치를 측정하는 절대적 단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원천이다. 생산활동으로서 노동이 바로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가치는 부를 표상하고 표시하는 기호가 아니라,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산물이 되었다. 노동은 척도에서 기원과 생산의 차원으로 그 위상을 바꾼다. 노동은 모든 가치의 기원이며 생산자라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제 분석의 중심은 교환에서 생산으로 이동한다. 그 결과 시장이나 교환을 다루는 유통이론에 앞서 가치의 생산을 다루는 생산이론이 일차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스미스와의 이러한 차이는 보통 스미스의 지배노동가치설과 투하노동가치설이라는 말로 표시된다. 즉 리카르도는 스미스의 가치개념이 어떤 생산물이 시장엣 지배할 수 있는 노동량이라고 보는 것을 비판하면서, 어떤 생산물에 투하된 노동량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함으로서 상품간의 상대적 비교관계에서 가치 개념을 독립시켜 절대화한다.

리카르도-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정윤형 역 비봉출판사 1992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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