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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함과 유토피아 사이의 노동 앙드레 고르

앙드레 고르가 쓴 Arbeit zwischen Misere und Utopia라는 책의 2장 1-3절까지의 번역입니다.

 

The Latest Forms of Work

 

 

POST-FORDISM

 

 

포드주의적 성장이 끝나면서 기업들은 스테그네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가지 시도를 했다. 그들은 첫째, 시장 점유율을 늘리거나 둘째, 제품의 범위를 보다 빠른 속도로 갱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식이 되도록 만든 상품들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것에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미개척된 시장에서는 전망이 밝았다. 따라서 기업들은 신흥국가들에서 거점을 마련하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금방 구식화하는 방식에 관해서 말하자면, 혁신과 관련된 보다 강렬하고 지속적인 노력뿐 만 아니라, 보다 낮은 단위비용으로 보다 소량을 생산할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 두 가지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포드주의 생산 방식과의 결별을 수반했다. 경쟁력은 대량생산으로 달성된 규모의 경제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었다. 경쟁력은 도리어 점점 더 짧은 시간 안에, 보다 적은 양을, 보다 낮은 가격에, 얼마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가에 의해 달려있다. 과거에 성장이 양적이고 물질적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성장은 질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이 되었다. 곧 이미지와, 참신함, 상징적 가치가 제품을 파는 힘이 되었다. 경쟁력은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해 내는데 있어서 최대한의 유동성과 가변성과 신속성을 요구했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임기응변의 능력을 가져야만했다. 즉, 기업들은 일시적 유행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유행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했다. 사실상 포화상태의 시장에서, 유일한 성장의 방식은 기호나 유행을 다양하게 하고 그리고 유행이 변화시키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방식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단지 증가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요구에 기업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들은 평범한 것들에 반해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려고 변덕스럽고 주기가 짧은 유행을 예견하고 강조하고 창출해야만 했다. 평범한 것은 수요를 억제하는 경직성의 한 요소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수요는 놀랍고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의 공급에 의해서만 촉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경직성이든지 떨쳐버려야 할 족쇄가 되었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에서 이러한 경직성이 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포드주의 생산방식에서는 노동은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생산을 위해 고안된 긴 조립라인에서 수행되는 세분화되고 비숙련적인 업무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것은 노동력의 세분화(narrow specialization)와 생산조직의 경직성 때문에 새 제품을 계획하고 계발할 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드주의에는 경직되고 준군사적인 위계가 있었고 노동자를 감시하는 많은 감독관들이 있었다. 각자의 작업장에서 고립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감독관은 그들이 부과하고 조직한 파편화된 분업을 동시에 그리고 공동으로 작업하도록 감독했다. 생산목표와 각 분업에 할당된 시간은 내부 경직성의 원인이 되었고 한 작업장의 연체는 모든 공정라인에 충격을 미쳤다. 게다가 기업노동력의 1/4가까이를 차지하는, 하지만 직접적인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는 많은 수의 관리자가 있었고 재고 및 창고관리비용 도 높은 수준을 차지했다.

 

 

 

1950년대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보았듯이, 경영은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확립하려는 노력에 너무나 정신이 팔려 있어서 기업의 진정한 목적을 상실한다. 우연히 공장을 방문한 이는 공장의 목적이 생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랐을 것이다. 확실히, 묘사된 몇가지 룰을 강화하는게 가능했다면..., 결과는 생산의 점진적 감소였을 것이다.

 

 

이런 통제에 대한 강박은 대량생산의 기술적 요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테일러가 명시적으로 말했듯이, 그것은 ‘당연히’ 소극적이고 멍청한 것으로 간주되는 노동력에 대한 경영의 근본적 불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노동의 ‘과학적’ 조직화는 모든 자발적 결단을 제거한 강제의 시스템에 노동자를 감금시켜서 가능한 한 최대로 착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업이 사용하는 조직이나 기술은 노동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려는 자본의 결단을 보여준다. 그것은 나태, 빈둥거림, 규율 없음, 반항하려는 경향들과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 공장은 감독관의 감시의 눈초리로부터 추가 생산력(최대 20%)의 상당한 여지를 숨기기 위해 요령을 피우는 비숙련노동자와의 끊임없는 국지전의 장이었다. 노동자의 모든 기술과 창의성은 그들의 자율성을 숨기는데(추가생산력의 여지) 쓰여졌다.

 

 

기업의 목표가 점점 증가하는 반항적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인 한, 공장자동화는 비싸긴 하지만 실망스러운 것들의 원천 인채로 남아있었다. 이와 관련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1980년대 초의 카시노의 피아트 공장이다, 그곳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되고 자동화된 공장이었다. 테일러주의적으로 훈련받은 기술자들의 전형적인 제품이 되기 위해, 피아트 공장은 공장자동화를 중앙집권적 감시 및 작업의 순서와 시간에 대한 정밀한 프로그램화와 결합시키려고 애썼다.

 

 

일본인들은 다른 회사를 인수하거나 합작기업을 운영했고, 동시에 ‘앞으로 세상을 바꾸게 될’ 린 생산방식을 미국에 소개했다. 예를 들어 마쓰시타사가 시카고에 있는 모토로라 TV공장을 인수했을 때,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근로자를 제외한 모든 관리직을 해고했다. 일본 의 한 경영자가 설명했듯이, ‘미국인들’은 노동력을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육체노동자가 동시에 정신노동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 직원의 절반만 있으면 된다. 2년이내에 마쓰시타는 시카고에서 TV생산량을 두 배로 증가시키면서 인원은 최종적으로 처음 조정하려던 인원보다 50배나 감축했다.

 

 

캘리포니아 프레몬트에서 도요타와 제네럴 모터스의 합작기업의 최고책임자로 있는 코스케 이케부치는 2100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작업현장에서 하루 8시간씩 시간을 보내는데 반해 엔지니어들은 단지 3시간씩만 작업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도요타의 철학을 요약했다. 그 결과, 엔지니어들의 주요한 역할은 생산직 노동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생산직 노동자들의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 외 다른 어떤 태도도 막대한 자원낭비에 불과하다고 이케부치는 주장한다.

 

 

사실상 ‘도요타’나 ‘오노(발명자의 이름을 딴)’ 시스템은 일본기업가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서구산업에서는 이제야 부닥치는 문제에 대해 이상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오노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즉, ‘생산해야 할 양이 늘어나지 않을 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그러나 오노의 대답은, 산업화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와 완전히 일치하는 서양사회에 있어서는 문화적인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필수 원칙 중 한 가지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자기 관리의 폭넓은 허용은 최대치의 유용성과 생산성, 기술계발의 속도 및 생산을 수요에 맞추는 속도 둘 다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테일러주의에서 자기조직화와 노동자의 창의성 및 재간은 반란과 무질서의 원천이기에 물리쳐져야할 것이었다면, 도요티즘에서는 이런 것들이야 말로 발전되고 이용되어야 할 하나의 자원이었다. 노동자의 개성에 대한 총체적이며 억업적인 지배는 이제 개성을 활성화(mobilization)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경직되고 고정된 기술은 쓸어내버려졌고 이제 그것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제조공정에서 지속적 조정과 개선을 담당하게 하는 ‘Kaizen'으로 대체되었다. 공식적인 지시가 그렇게 없어짐으로써 자발적이고 유연한 생산적 협동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생산에서의 유연성과 최적의 시간관리가 가능해졌고, 생산과정의 각 단계가 그 앞 단계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 즉 ’Kan-ban‘이 가능해졌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들은 생산과정 전체와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그들은 그 시스템을 ‘소유’ 하고, 통제해야하며, 시스템의 작동을 장악한다고 느껴야 한다. 그들은 생산의 개선과 합리화를 위한 방법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시스템의 총체적인 조직과 절차에 대한 가능한 개선책을 항상 숙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조언을 듣고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즉 노동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책임에 대해 질문하고, 학습하고, 발전할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한다.

 

 

벤자민 코리아트가 쓴 바에 의하면, 노동자는 동시에 생산자이자, 기술자이자,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일정한 공정범위에 대한 책임자이자, 다양한 기능을 하는 개인이자, 노동 수단의 한 단위로서의 개인으로, 각각의 노동자는 자기가 속한 그룹의 구성원들과 접촉해야 하고, 생산 공정의 상하라인을 담당하는 다른 그룹과 접촉해서 공동노력의 총체적(collective)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생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노동은 이제 노동자들의 다양한 노동 중 한 측면에 불과하다. 그것은 더 이상 가장 중요한 측면이 아니라, 단지 생산품, 비물질적인 것의 물질적 적용과 지속, 지적인 노동, (즉 생각, 협의, 정보 교환, 관찰과 지식의 수집)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노동은 생산의 맥락에서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것 만큼이나 노동 전에도 수행되는 것이다. 요컨대, 생산적 노동은 노동자들로부터 ‘일반적general 사회 지식’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생산성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생산의 직접적 힘’으로 생산과정에 들어간다. 우리는 다음 단계에서 이 ‘일반 지성’에 대해 다시 논할 텐데, 대부분의 맑시스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일반지성’은 비물질적 활동에 지배를 받는 경제에서는 노동력의 지배적 형식이 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이것은 포스트 포디즘 기업의 이상적 모델이다. 그러한 기업에서 조직의 패러다임은 상호교차적인 흐름들의 네트워크, 즉 자체 조직된 집단들(그중 어떤 집단도 중심을 차지하지는 않는다.)에 의해 그 흐름들의 교차점에서 조정되는 네트워크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서로 다르게 조직된 시스템(마치 포드주의 모델처럼)대신에, 우리는 중심이 없는 자기 조직 시스템(이것은 신경계와 비슷하다.)을 가지고 있다. 이는 즉 상호교차적인 네트워크가 모방하려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 개념이 노동자의 힘에 전례 없는 여지를 열어주는지 , 그리고 그 개념이 노동 안에서 그리고 노동으로부터의 가능한 해방 양 쪽 다를 예고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또는, 오히려 그 개념이 노동자들에게 경영의 역할과 경쟁의 명령 둘 다를 맡기면서, 또 회사의 이익을 그들의 건강 및 생명까지를 포함한 모든 것보다도 우선시하게 하면서 노동자를 새로운 단계에 예속시킬 것인가? 그 개념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에 새로운 봉건제(노동자는 회사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하라는 의무를 지는 자랑스러운 가신이 되는 그러한 봉건제)를 도입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가? 혹은 그 개념은 그 안에 노동자 -이들은 회사의 자본적 소유를 한물가고 기생된 구조로 보게 될 것이다.- 에 의한 힘의 총체적 장악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후기 포디즘의 원칙들이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적용 되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 광범위하게 의존한다. 후기 포드주의 원칙이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벤자민 코리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획기적인 전환은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이다. 포디즘의 위기와 붕괴 그리고 포디즘의 특정한 타협은-심지어 오늘날에도- 힘의 균형이 피고 용자와 그들의 대리인에게 불리한 조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들에게 혁 신적 과정에 착수하도록 하는 동기를 거의 주지 못한다. 그 동기란 너무나 작은 것이어서 이미 하 고 있는 것만을 더 확고하게 할 뿐이다. .....

 

 

그리고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적 방식이 사라진 모든 곳에서는, 포스트 포디즘은 노동자에 의한 노동의 재전유를 예고하는 것으로도 나타나며, 노동자에 대한 예속과 노동자의 가신화로의 퇴행으로도 나타난다. 그러한 양 측면은 언제나 나타난다. 포스트 포디즘의 해방적 성격은 노동자가 요구하는 개입이 노동조합(역사적 패배에 의해 아직 약화되지 않은)에 의해 타협될 수 있는 드문 경우에만 얻어질 수 있다.

 

 

 

 

uddevalla

 

 

이러한 케이스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볼보의 우데발라 공장이다. 이 공장의 구상과 창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그 노동조합은 테일러주의에서 경영자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에게 작업분배 및 시간 관리를 포함한 노동조직에 대한 진정한 통제권을 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노동조합은 고텐부르그 학자들(최적의 노동조건을 지닌 조합단위를 구상할 책임이 있는)이 충족시켜야 할 4가지 요구사항을 정했었다.

 

 

 1. 노동은 지정된 노동 구역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2. 작업속도에 대한 규제가 없어야 한다. 그 의미는 노동자는 중앙에서 프로그램화된 규칙 적인 속도에 의해 흘러가는 라인에 의해 부과된 속      도    (칼마에서 여전히 그런 것처럼)가 아니라, 자기 속도대로 일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3. 작업 사이클은 최소 20분은 되어야 한다.(칼마에서 4분, 독일공장에서 2분인데 반해서) 그것은 각 노동자들이 자기 작업벨트위의 작업의 다양하고 복잡한 세트에 책임이 있다는 걸 의미 했다.

 

4. 대개 감독자나 기술자에게 부과되는 간접 노동은 노동자들의 작업에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한 간접노동은 그 중에서도 자재조달, 부품이나 장비들의 준비 및 조직화, 질에 대 한 통제, 최종 점검과 조정, 신입사원의 훈련, 그룹 리더쉽 등을 포함했다.

 

 

그 목적은 ‘자기 자신의 노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제품과 기계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역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생산결정에 의견을 내고 궁극적으로 생산결정을 경제적 우선권과 소비모델에 대한 노동조합의 생각에 종속시키려 하는 노동조합에게는 특히 중요했다.

 

 

우데발라는 8명의 조립 노동자와 판매점을 이어주는 한 명으로, 즉 9개의 강력한 노동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들의 적성과 희망에 따라, 각 그룹은 전체공정에서 1/4, 1/2, 3/4, 또는 전체의 조립을 담당할 수 있다.(전체를 조립 하는데는 총 열 시간이 필요하다.) 보너스 제도는 노동자들이 전체 차를 조립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동기를 제공했다. 한 팀의 8명 각각은 다른 멤버와 한 팀을 구성하면서 다른 멤버와 교체됨으로써 노동을 더욱 다양하게 하기 위해 적어도 공정과정의 1/4은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그룹은 어떤 이유로 구성원 중 한 둘이 빠졌을 때에도 돌아가야 했다.

 

 

작업장의 조직은 특별히 ‘자발적 유연성’에 대한 여지도 허용했는데, 이는 곧 그룹의 각 구성원들은 사전에 동료들과 조정을 했을 경우 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하루당, 주당 혹은 한 주에서 다음 주까지 노동의 작업속도를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달별로 정해진 표준도 다양화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각 그룹은 옴부즈맨 제도도 가지고 있었는데, 옴부즈맨은 그와 연관된 훈련을 받은 모든 멤버들이 차례로 거치는 자리이다. 각 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은 역시나 차례대로 탈의실에서 멤버들의 작업복을 세탁하는 일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과 생산품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고, 노동의 소외를 초월하기 위한 세가지 조건이 부분적으로 충족되고 있는 중이다.

그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노동자 스스로에 의한 노동의 자기 조직화, 거기서 노동자는 생산적 협업에서 스스로 능 동적 주체가 된다.

 

2. 노동과 협업 방식; 모든 사람들이 수행하는 동시에, 자기의 능력과 기술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그런 노동과 협업 방식.

 

3.생산품을 통한 노동의 물질화(materialization); 즉 노동자는 제품을 자기 행위의 수단과 목표로 인정할 수 있다.

 

 

주로 이 마지막 지점과 관련해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계속되었다. 무엇을 생산할지 정하는 생산 결정만은 유일하게 자본의 대리인의 손아귀 안에 남아있었다. 제품의 질은 전례 없는 정도로까지 노동자 집단의 개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그러한 개입(그 개입이 비록 조건적이고 타협된 것이긴 해도)은 여전히 생산결정에 종속돼 있었다. 노동자나 시민/소비자들이나 그 생산결정에 대해서 논의한 적은 없다. 노동의 목표는 노동자들에게 부과되고, 노동자들에게는 은폐된 노동의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런데 그 목표와 의미는 결국은 자본의 안정화인 것이었다. 따라서 필립 자리피안이 주장한 것처럼, 포스트 포디즘 노동자들의 노동은 각각의 노동자들이 ‘그 행위에 선행하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고’ 그 맥락을 통해.....소비자들에게 종속된.....‘생산체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의 결과로서 완전한 의미를 띤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것이다. 사실 가능한 가장 좋은 관점을 취하자면, 그 생산체계는 구매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 필요를 위해 고안된 상품의 개인 사용자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늘 그렇듯이, 이것은 대중교통체계의 발전을 배제하는 타협이며, 더 일반적으로는 집단적 수단에 의해 집단적 수요의 비물질적 충족을 배제하는 타협이다.

 

 

이제 자본과 살아있는 노동간의 적대적 정치관계는 생산결정의 층위에 놓여있다. 그 층위는 욕구의 내용과 욕구 만족의 방법이 결정되는 층위이다. 정치적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의 사회적 이용과 목적을 결정하는 힘이다. 즉 이것은 곧 그 힘이 목표하는 소비양태와 그 소비 양태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적 관계이다.

 

 

우데발라 공장은 1984년에서 1988년 사이에 계획되고 세워져서 완전고용시기인 1989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시기에 볼보는 생산성과 제품의 질에 대한 관심에서, 여전히 젊고 잘 훈련되고 높은 동기를 가진 노동력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우데발라 공장은 1993년에 폐쇄되었다. 그 사이 경제적 상황은 바뀌었고 사회적 힘의 균형은 역전되었다. 즉 스웨덴 실업률은 1990년 1.8%에서 1992년 7%, 1994년에는 10%를 넘어섰다. 1960년대에 30%를 넘었던 이직률은 1990년에는 11.5%로 낮아졌고 1993년에는 5%에 이르렀다. 노동력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개입을 보장해 주기 위해 매력적인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비록 우데발라의 생산성이 칼마보다 높았고 전통적인 공장에 비하면 훨씬 높았으며, 제품의 질도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것보다 훨씬 훌륭하긴 했지만, 경영자 측이 결국 폐쇄하기로 한 것은 발전의 전도사였던 바로 그 모범적인 공장이었다.칼마도 이듬해 문을 닫았다. 장 피에르 듀란드는 이 결정에 두 가지 설명을 제공한다.

 

우데발라에서 사라졌던 반복적인 업무 때문에, 그 공장은 보다 철저한 자동화로 나아갈 수 없었다. 반면 겐트 공장에서는 린생산방식을 유지한 공장과 마찬가지로, 반복적인 업무는 여전히 존재했고, 이것은 이후에 완전한 규모의 로봇화로 발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립라인의 규정 속도와 중앙 프로그램을 폐지함으로써, 우데발라 공장의 유연한 작동은, 다른 어떤 것 보다도, 노동력의 개입과 헌신에 의존했다. 그들은 더 이상 어떤 위계적 통제 및 힘에도 종속되지 않았고, 다른 공장들(노동자들을 미리 프로그램화된 요소를 가진 시스템에 종속시키는)에서 노동자들에게 부여하는 제약에도 종속되지 않았다. 요컨대, 생산에 미치는 노동자의 힘은 결국 의미 없이 위험하게 확대된 것으로 보였다.....세계화와 실업이 자본으로 하여금 분리되지 않은 권력을 다시 되찾게 했다. 이것이 그들이 수행하게 되어있는 역할이었다.

 

 

 

 

Subjection

 

 

코리아트가 표현했듯이, 문제는 포스트테일러주의의 해방적 잠재력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넘어서는 움직임에 의해서 실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은 어떤 포스트테일러주의의 원칙을 적용한다. 그 원칙 중 하나는 자본이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허용된 제한된 힘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비했었다는 것이다.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린생산방식의 원칙들-혹은 그 원칙들의 일부-을 채택했던 기업들은 노동조합 가입전력이 없는 젊고, 매우 신중하게 미리 뽑은 노동자들만 고용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고용계약 때 한 가지 약속을 강요하는데, 그것은 해고의 고통이 있더라도 결코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가 만든 어용 조합 외에는 가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들이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노동자에게서 계급정체성을 박탈하고 보다 넓은 사회에서의 위치와 보다 넓은 사회에서의 소속감을 박탈한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대신에, 기업들은 그들의 젊은 노동자들에게 기업문화에서 파생된 정체성을 제공한다. 기업문화는 여러 다른 층위에서 각각의 다른 기업들에 의해 개발되는 상징주의이다. 예를 들어그 기업의 직업 훈련의 품질, 특정한 내부용어와 행동 양식, 특정한 드레스 코드, 즉 일본에서 특히 선호하는 기업 유니폼에 근접한 드레스 코드 등이다.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사회통합에 대한 추구는 계속적으로 좌절된 그런 해체된 사회에서는, 기업이 심어놓은 ‘기업문화’나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다 넓은 사회의 소속감에 대한 대체물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감의 일종의 도피처가 된다.

 

기업은 그들에게 수도원이나 종파, 작업공동체가 제공하는 것과 같은 안정을 제공한다. 회사는 젊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몸과 마음을 회사에 바치기 위해 모든 것-다른 어떤 형태의 충성, 개인적 이익, 심지어 개인적 삶까지-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그 대가로 회사는 그들에게 정체성, 사회적 위치, 개성, 그리고 그들이 자랑스러워할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그들은 ‘대가족’의 구성원이 된다. 회사와 노동집단과의 관계가 유일한 사회적 관계가 된다. 그것은 노동자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인간 전체를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언젠가 더 이상 그 노동자가 회사의 신뢰와 팀 동료들의 배려(이 두 가지는 노동자가 작업 수행을 개선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를 받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 가치를 완전한 상실하게될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포스트 포디즘 노동자들의 노동 안에서의 실질적인 해방은 강화된 사회적 통제에 수반된다. 그러한 통제는, 코리아트가 말하듯이, 오스트라시즘(도편추방제)이라는 특정형태를 띤다. 이는 곧 개인이 그룹의 순응주의적, 전체주의적 압력에 종속되는 것을 뜻한다. 통합된 공장, 즉 합작회사라는 개념은 준봉건적 방식으로 보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방식은 회사가 노동과 충성의 공동체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그 공동체 안에서는 사회적 적대나 이익의 충돌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러한 회사는 공동의 이익 및 모든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게 되어있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는 모든 관계자들의 주의 깊은 조사를 바탕으로 합의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포디즘과 비교해보자면 여기에는 명백한 퇴보가 있다. 즉 도요티즘은 현대적 사회관계를 전근대적 사회관계로 대체한다. 포디즘은 사실 살아있는 노동과 자본의 각각의 이해관계의 특수함 및 그 둘간의 적대감을 인정하는 한에서 사실상 현대적이다. 기업과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적대적 관계였고 이해당사자들에게서 계속적으로 검토되는 타협을 요구했다. 노동자는 기업에 속하지 않았다. 노동자는 기업에게 노동계약에서 정해진 시간, 기간, 조건으로 규정된 노동에 대한 의무만을 지고 있다. 그들은 기업에게 업무완수를 위해 자신을 내주어야할 의무가 있는데, 그 업무란 관련된 특정 목적에 헌신하지 않으면서도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업무일 뿐이다. 그 목적의 수행은 미리 정해진 작업 절차에 의해 보장되었는데 이런 작업절차들은 작업자의 의도, 개성, 호의와 무관한 결과를 낳도록 디자인된 것이었다. 그러한 결과는 그 노동자들 개인에게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작업하는 노동자들의 주관적 개입을 요구하지 않았고 요구한다 해도 그것은 우연일 뿐이었다.

 

주체로서 그들의 소속감, 즉 노동조합이나 계급이나 사회에 대한 소속감은 기업에 대한 속속감보다 더 강했다. 사회적 정치적 시민의식에 내재한 권리는 그들의 노동, 능력, 그들의 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그들은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그 자신을 위해 유지했고, 그 상당부분은 생산의 도구화 즉 착취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었다. 그들은 공동행위와 타협 그리고 노동법의 한정된 영역에서는 소외를 조건적으로 수용했다. 포디즘의 생산관계의 갈등의 역동은 자본이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더 제한하고 착취의 범위 역시 보다 크게 제한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포스트 포디즘에서 첫 번째로 중단되고 역전된 것이 바로 이러한 역동이었다.

 

 

경쟁의 필요라는 명목으로, 포스트 포디즘은 포디즘 기간 동안 생산을 담당해야했던 기반사업을 되찾았다. 그것은 노동법이나 단체교섭 합의서의 조항들에 점점 더 큰 구멍을 만들었다. 피고용자는 계급이나 사회에 충성하는 것보다 회사에 더 많이 충성해야 하고,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권리는 사회 경제적 시민권에 의해 부여된 권리보다 훨씬 더 커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기업은 기업의 목표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인격적인 헌신을 요구했고, 언어 능력, 학습, 예측, 분석력을 갖춘 온전한 인간을 회사의 목표를 위해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기업은 우선 개인 자체와 그들의 헌신을 샀고, 그런 다음에야 그들의 추상적 노동에 대한 능력을 발전시켰다. 개인의 형체를 만들고 길들였으며 ‘그들의 시야를 공장에만 머물게 했다. 공장에서 펼쳐지는 주체성은 자유로운 주체성의 반대편에 있었고, ’사물들의 세계‘에 등을 돌린 채로 있었다. 그것은 노동자라는 주체의 생활세계는 기업 체계의 목표와 가치에 둘러싸여져 있기 때문이다......기업논리에 점령되지 않은 어떠한 신체적 심리적 공간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추상적 노동의 왕국을 영영 떠났는데, 추상적 노동은 피고용자와 사용자의 인격과 무관한 비인격적 업무로 수행되기 때문에 맑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이전의 개인의 복종 관계에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인격화된 ‘봉사’로 되돌아왔는데, 그것은 공식적인 용어로 묘사해 계약의 형태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파울로 비르노가 표현하듯이, 인격화된 봉사는 보편적인 개인의 의존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사용주에 대한 관계를 두 가지 의미에서 재정립한다. 첫 번째 의미는, 노동자는 익명의 강제력을 지닌 규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에게 의존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의미는종속되는 것은 전인격, 즉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한 마디로 유적 존재로서의 개인인 것이다.- 그 결과는 전반적인 굴종의 노동 즉, 총체적 예속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과의 관계 또는 그의 언어능력이 유급노동의 상태로 환원되는 사람만큼 불쌍하지는 않다.

 

 

이런류의 분석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즉 전인격의 완전한 종속은진취성, 창조성, 자율성과(노동자들이 공동작업에 전인격을 바치면서 함께 바치는 특성들)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조사하고 숙고하고 계획하고 토의할 것을, 즉 생산의 자율적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자로 하여금 정해진 한도 내에 자신의 자율성을 가두고 노동자들의 자율성이 이미 정해진 목표를 향해가도록 명령한다. 마우리조 라자라토는 이러한 모순을 다음과 같이 아주 잘 요약한다. ‘ “능동적 주체가 되어라”는 오늘날 서구 사회에 울려퍼지는 새로운 명령이다.....너는 자신을 표현해야하고 말해야하고 소통해야하고 협력해야 한다.......그러나 의사소통적 관계는 내용과 형식 두 가지 면에서 이미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소통능력은 기호화된 정보가 특정 속도로 순환되어야 하는 기술체계의 역할(봉사에 있어서의 도구-서비스의 도구)을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라자라토가 보듯이, ‘주체는 단지 암호화되고 해독화되는 장소이다.....이런 의사소통 관계는 주체의 고유성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특성을 제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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