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람

* 이 글은 행인[모든 것은 상품이다.]라는 글하고 얼핏 상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앞의 글에서 이미 지적한 바가 있거니와, 교육은 자본논리로 바라볼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자꾸 돈놀이와 연관지어서 교육을 바라보는 한 공교육이고 나발이고 다 뜬구름 잡는 소리로 끝나게 된다. 그런 전제 하에서, 이번 김진표 교육부장관 내정은 매우 문제가 많다는 이야길 했다. 이러저러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항상, 그넘의 불안한 우려라는 것은 왜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 김진표, 자기 입으로 그만 대학교육을 기업논리로 풀어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야 만다. "경제부처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산학협력체제가 제대로 일어나게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얼핏 보면 참 그럴싸한 말인데 앞뒤 맥락을 보면 이게 전혀 그럴싸한 말이 아니다. 좀 더 볼까나?

 

김진표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대학 진학률 66%, 일본의 대학 진학률 53%, 한국의 대학 진학률 81%" 이건 단순히 통계치의 의미를 벗어나는 숫자다. 국민소득이 대한민국보다 월등히 높은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진학률이 한국보다 현저히 낮은 이유는 뭘까? 몇 가지 원인을 예상해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이 완전 수준 이하라서 학생들의 진학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건 전혀 아닌듯 하다. 이름이 알려진 대학들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수능 1등 대학교"보다 훨씬 뛰어난 학교 많이 있다. 유학 못가서 안달난 외국인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들은 오히려 한국의 대학보다 훨씬 더 높은 진학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이 가정은 틀렸다.

 

다음으로,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돈은 많은데 쓸데가 없어서인 경우다. 뭐 설명이 필요없겠다. 애들 사교육비마련이며 대학등록금마련을 위해 투쟙 생활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학부모들이 상당수 있을 만큼, 돈 남아 돌아서 애들 대학 보내는 학부모는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애들이 더 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자 환장을 한 경우다. 스스로의 향학열에 불타 반드시 대학을 가서 더 많이 공부를 하고싶다는 의지로 무장한 학생들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대학을 가는 경우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가정은 코메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들, 공부 이야기만 들어도 지겨워한다. 겜방에서 밤을 새는 것은 자발적으로 가능하나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부모나 선생들의 말을 가슴 절절히 새기는 것은 자발적으로 불가능하다.

 

학교, 부모, 학생, 이렇게 3주체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대한민국 진학률 81%라는 이 놀라운 수치의 근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럼 도대체 뭔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나 대표적으로 하나 쉽게 생각나는 것은 바로 "차별"이라는 단어다. 하다못해 단순작업이 주종을 이루는 생산라인에서조차 학력차별이 존재한다. 단순생산인력을 구하는 업체에서조차 "고졸 이상"이라는 말이 붙은 채용공고를 붙인다. 왜? 컨베이어 벨트의 전원조작스위치를 다루는 것도 "고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가?

 

사무직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업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대졸(전문대졸)"의 학력을 요구한다. 들어가서 하는 일이 해당 분야의 전문적 학술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도대체 사무경리직 작업을 하는데, 왜 학력이 필요할까? 회계업무 등 매우 전문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업무들을 매일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금전출납 경리업무를 하는 것이 일의 전부인데도, 대졸 자격증이 필요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뭔가?

 

학력을 근거로 하는 사회적 차별이 엄존하고 있는 이 현실이 사실은 교육황폐화를 주도하는 근본 원인임은 재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 이 사회에서는 대학을 가야 어디 이력서라도 제출할 수 있는 것일까?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하는가?

 

교육의 정상화는 학교 담벼락 안에서만의 논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의 내용과 환경을 견인하는사회적인 요구와 상황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 적어도 교육 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면 바로 이러한 부분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돌풍의 핵 김진표, 처음부터 완전 헛다리를 긁고 있다. 대학재학 중에 일자리와 연결되는 커리큘럼을 마련하겠단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이라도 지르리라고 생각했나? 이 이야기, 뒤집어서 보면 기초학문분야의 커리큘럼을 일제히 없애겠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더불어 그렇게 커리큘럼 마련한다고 해서 취업이 잘 될 것이라는 근거도 없다. 언제 기업이 대졸자들 능력 수준에 따라서 취업인력 늘리고 줄이고 했나?

 

더구나 신임 교육부장관이신 김진표, 이 사람의 눈에는 교육이라는 것이 학교, 그것도 대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갑다. 교육제도를 개선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가? 학교 교직관련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교육관련 관료들의 밥그릇을 위해서? 시루에서 콩나물 뽑듯이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만 쏙쏙 뽑아 돈만들기 쉽게 해주기 위해서? 도대체 그 잘난 교육개혁 내지 교육정상화의 목적이 뭔가? 이 사람은 지금 그 목적조차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행인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그 목적이 뭐였더라...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가 있었다. 거기서 김봉두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나온다. 학생 김봉두의 교실에서 선생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다가 밖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학교 소사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소사는 김봉두의 아버지였다.

 

대한민국 교육, 지금 딱 이 선생 수준이다. 현장에서 열심히 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보면 열받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지금 초중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이라는 미명하의 지식주입작업은 그 목적이 딱 그 선생의 안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교육 개혁 하고 교육 정상화 하려면, 학교청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소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라고 가르치는 선생들이 그 강단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학생들이 학력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진표식 교육행정마인드, 시작부터 불안하다. 저런 정신으로 과연 이 나라의 교육, 그렇지 않아도 완전히 뒤로 달려가고 있는 이 교육을 어떻게 정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걱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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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17:41 2005/02/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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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5/02/02 01:46

    김민수교수가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른 고등법원 재판에서 승소함에 따라 이제 복직의 길이 열렸습니다. 서울대가 즉시 재임용절차를 밟겠다고 합니다. '재임용절차'라는 것이 좀 황당하긴

  1. 글 올리고 기사검색을 하는데, 이번엔 서울시 교육감이 또 한 건 했다. 학생들 교육수준을 올리기 위해 뭔가 하겠다는 거다. 신났따.... 도대체 이것들 뇌 구조는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궁금하다...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500&no=209228&rel_no=1&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