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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단상

드디어, 오늘 창당대회가 있었다. 지난 주 내내 출장 때문에 밀린 일들이 많아 가볼 수가 없었다. 중간에 잠깐 인터넷 생중계를 틀었더니 마침 변영주 감독이 홍보대사라며 김부선, 진중권씨를 소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안티가 젤 많은 사람들이라고 ㅎㅎㅎ 지난 몇 달 - 특히 대선 이후 두 달 동안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고 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바빠서 두 가지만 적는다. 0. 운동과 진보는 소위'운동권'의 훈장 혹은 전유물인가? 인터넷 공간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하는 소리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지만, 진보신당의 전략 비례대표 명부에 대한 일부(?)의 악성댓글은 참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특정 후보를 호불호할 수는 있다. (명망가 중심, 당 외부인사에 치중되었다는 비판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소위 운동권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자들의 어줍잖은 '운동경력' 비판이다. 특히 홍보대사로 위촉된 영화배우 김부선 씨나 비례후보로 추천된 피우진 중령에 대한 비판이 그렇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진보/정치에 대해 이들이 뭘 알겠냐는 식의 댓글들 말이다. 운동이 뭐고 진보가 뭔가? 내가 팔로군 사령관 주덕을 존경하게 된 것은, 그가 혁명의식이 투철하거나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바) 서민적인 풍모 때문이 아니다. 30대 중반까지 그저 그런, 그 시대의 또다른 군벌세력의 한 명이었다가 뒤늦게 삶의 경로를 바꾸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긴 정말 힘들다. 그것도 사회에서 개인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개인에서 사회로 나아가기란.... 그런데, (스스로 운동권임을 강하게 어필하는) 이 키보드 워리어들은 자신의 사적 경험으로부터 사회에 눈을 뜨고 뒤늦게 사회를 바꾸는 대열에 참여하겠다는 이 훌륭한 사람들에게 왜 그리 족보를, 사상검증을 요구하는가?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정파도, 잘난 운동 경력도 없는 이 분들이 당 활동에서 소외되거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2004년 총선 비례대표 선출 투표에서 나는 단병호, 심상정에게 표를 던졌다. 안정된 공직을 벗어버리고 양심선언을 했던, 그리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이문옥 선생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투표하지는 않았었다. 순진하게도, 남들이 찍을 줄 알았었다. 허나 개표 결과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당시 이문옥 후보는 이주희 후보의 다음인 10번을 배정받았던 것이다. 총선이 있던 날, 일부 언론들은 드디어 20대 국회의원이 탄생하느냐 마느냐 하며 이주희의 당선 가능성을 선정적으로 보도했지만, 나는 8번 노회찬후보에서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고 염불(ㅜ.ㅜ)을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소수 키보드 워리어들 뿐 아니라, 이 바닥에는 전력/경력에 대한 숭배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듯 싶다. 하긴, 학생운동 2-3년 한 거 가지고, 2-30년씩 우려먹는 사람들도 널렸는데, 꾸준히 운동을 해온게 왜 존경할만하고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겠나!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은 다양하고, 운동의 방식도 다양하다. 뒤늦게 삶의 경로를 바꾸어 광장으로 뛰어나온 이들에게 필요한 건, 족보 확인과 사상검증이 아니라 따뜻한 동지애와 격려, 가슴으로 하는 연대가 아닌가 싶다.


0. 긴 호흡, 장기적 낙관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좌파들, 특히 초기 신당파들에게는 진보신당의 모습이 매우 성에 차지 않는 듯 하다. 물론 나도 탈당하고 얼마동안 신당 가입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는 했다.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비판은, 민주노동당에서 문제되었던 패권주의와 평당원 민주주의의 실종이 여기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인거 같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당이 명망가 중심의 선거에만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도 높은 비중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저기 안 갈래', 혹은 '망하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 안쓰겠다', 심지어 '실망해서 탈당하겠다'는 때이른 결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한창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정당에 필요한 것은 더많은 비판과 동반된 더많은 참여가 아닐까 싶다. 팔장 끼고 관전하면서, '어디 잘 하나 보자, 잘 하면 내가 들어가주마'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당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건 분명하다. 또한 현실 속에서 (주변과 동떨어진) 이상향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또한 관념론적 편향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레빈스 교수가 했던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건설하려고 하는 사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며, 우리 삶을 이에 따라 미리 형상화하려고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으로 공산당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공산당 활동을 하는 건 좋은데 ‘공산당’과 ‘공산주의 사회’를 절대 혼동하지 마라. 만일 당이 공산주의적 삶을 보장해준다면, 굳이 혁명이 필요 없을 거다. 이미 자본주의 안에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니겠냐! " (실망스럽거나 혹은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고, 우리 운동의 수준인 걸 어쩌겠나? 민주주의가, 정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닐진데, 우리가 죽는 날까지 남한사회의 문제점을 모조리 극복한 완벽한 정당 혹은 정치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무조건 악화일로만 걷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도 조금씩 세상은 나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50년 만에 민주노동당이 의석을 얻기도 하고 (이게 뭐 진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좌파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이슈로 분화되기도 하고, 또 성소수자가 백주대낮(^^)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기도 하고... 좀 천천히, 긴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근거없는 장기적 낙관주의자라고 비판하더라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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