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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기록 [3]

오만가지 다른 잡다한 일들이 많았던거 같은데 짧게 했던 일들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최근의 두 가지 일은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5. 부적 다듬기

이게 뭔 황당한 일인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것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대전에서 지내다가 주말에 모처럼 집에 갔더니 마루에 금박 문양이 찍힌 새빨간 부적들이 널부러져 있다. 울 부모님 두분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 (ㅜ.ㅜ). 진상 파악에 나서본 즉..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 잘 나가는 부업 중 하나란다. 금박 찍힌 빨간 천이 테이프처럼 길게 말려서 나오면 그걸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반을 접어 (인쇄한 쪽이 나오게) 투명한 비닐 커버 안에  끼우는 작업이었다. 울 엄마의 설명으로는 그게 외국으로 수출되는 거라는데, 여태까지 집에서 한 일 치고 외국에 수출한다는 설명이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도 당당한 수출 역군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가위질, 그리고 자연히 날리는 섬유먼지들이 좀 고달프기는 했지만 커버에 끼우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크기가 꼭맞는 플라스틱 자를 찾아내서 이 작업 할 때 엄마의 수고를 반으로 줄이는 기특한 일을 하기도 했다. 하나 끼우는데  십원 정도 했으니까 단가도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 당시에 집에 귀신이라도 찾아왔으면 혼비백산해서 도망갔을 거다. 집에 수 천개의 부적이 그득이... 쌓여 있었으니...

 

6. 딱지 다듬기?

다듬기.. 라는 표현말고 뭐가 적합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최근, 내가 미국에 오기 거의 직전까지 엄마가 드문드문 하시던 일이다. 여기서 딱지라 함은 우리가 어렸을 때 달력 종이나 신문지, 공책 표지 등으로 접어서 가지고 놀던 사각형의 그 딱지를 말한다. 처음에는 나도 이 품목을 보고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고 의아했는데, 그것이 딱지 재료라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랐다. 요즘 아이들은 남는 종이를 가지고 딱지를 만드는게 아니라 포켓몬이나 디지몬이 그려진 이런 "고급" 재료를 이용하는구나..... 각종 만화캐릭터가 접이면마다 인쇄된 딱지 재료(ㅎㅎ)가 여러개 줄줄이 붙어있는 형태로 배달이 되는데, 이걸 뜯어서 반을 접고, 그걸 10장씩 묶어서 얇은 종이봉투에 담으면 끝나는 일이다. 종이를 뜯다보니 먼지가 좀 난다는 단점은 있지만 정말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로 주말에 서울에 가다보니, 이 딱지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토욜 밤에 일을 하면서 보던 "느낌표" 와 일욜 아침 "서프라이즈"가 떠오른다. 그러나 암 생각 없이 TV 보면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 일어날 때면 어깨,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울 엄마도 아파 죽겠다고 했다. 후딱 해치우려는 욕심에 자세도 바꾸지 않고 열중한 탓이다. 이거는 단가가 기억이 안 나네...

 

밖에 나가면 의과대학에서 일하는 교원이요, 집안에서는 딱지 접기를 돕는 무급가족봉사자...어떻게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ㅎㅎㅎ

또하나..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가설... 표준직업 분류 상 "주부"로 표기되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런 비공식 노동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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