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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어울리는 조합의 책들..

책 읽고 메모 남기는 것도 일이다. 기록 없이 기억도 없다는 슬픈 현실을 인정하고 몇 글자라도 끄적끄적... #1. 매일노동뉴스 편집국 [현장을 가다] 2008

우연히 채널을 마주치면 입이 쩍 벌어지는 달인의 솜씨에 잠시 정신줄을 놓다가도, 정말 저래도 되나 싶어 항상 마음을 찜찜하게 만드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다. 노동안전보건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완전 황당한 프로그램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나마 생활인으로서의 평범한 노동자들이 등장한다는 측면에서는 나름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생산직, 서비스직 노동자는 미디어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상생을 노래하는 공익광고나 산재예방 광고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모든 '직장인'(노동자 말고!)들은 쿨한 캐주얼 웨어 혹은 맵시나는 정장을 입고 사무실 책상앞에서 일한다. 사실은 일도 잘 안하고 연애질에 권모술수, 집안 싸움만 하는게 보통이긴 하지만 ㅡ.ㅡ 매일노동뉴스의 [현장을 가다]는 그래서 참 소중한 기록물이다. 조롱하지도, 비탄하지도, 저주하지도 말고, 그저 이해하라는 스피노자 할배의 말씀처럼, 노동의 현장을 '연대의 마음으로' 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조/건설, 금융/서비스, 공공부문의 3부로 이루어진 글들에서,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자부심, (생활의 달인에 등장할법한) 현란한 재주와 기술들, 자신이 몸담는 일터에 대한 사랑,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믿음 들을 읽을 수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노동 (그 노동없이 당연히 존재할 수 없는 생산품과 서비스를 앞에 두고도, 나는 너무 자주, 그들의 존재를 잊는다), 때로는 목숨을 내걸고 나서야 하는 험난한 출근길, 점증해가는 고용불안과 팍팍해지는 노동의 댓가... 그리고 이런 것들이 빠져있을리 없다. 현상들을 종합하고 추상을 통해 일반화를 시키는 것이 연구자의 장기이자 소명이라고 하지만, 이런 생생한 일상들을 누군가 대신 그려주지 않는다면 그런 '연구'가 가능이나 할까? 고마운 책이다. 책에 등장했던 모든 분들, 취재하느라 고생한 분들... 모두에게 연대의 마음을!!!


#2. 고종석 [어루만지다 -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마음산책 2009

하드커버에다 표지가 너무 대놓고 '어루만지다'를 표현하고 있어 살까말까 잠시 고민했었다. 그래도 고종석의 말/글 책들은 그닥 실망시킨 적이 없어서 또 질렀다. 거듭 확인하는 사실이지만, 이 분의 감수성은, 통상적인 그 세대 한국 아저씨의 것은 분명 아니다 ㅎㅎㅎ 사랑이라는 모티브와 관련된 단어들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놓았는데, 저자가 앞에서 분명히 밝히듯 이건 연애지침서나 사랑학교과서가 아니라 말글 에세이다. 그래도 주제와 관련된 저자의 평소 지론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다 ㅎㅎ 단어들은 입술, 혀놀림(?), 미끈하다(?)처럼 성애와 좀더 관련시켜 설명한 것들도 있고, 딸내미, 누이처럼 또다른 종류의 애틋한 사랑에 관한 것들도 있고... 참 다양했다. 소개된 많은 어휘들 중 가장 마음을 끄는 아름다운 한국어라면, 역시 제목에 언급한 '어루만지다' 아닐까 싶다. 그것이 누군가의 볼이던, 혹은 마음이던, 그 어루만진다는 구체적/추상적 행위를 그 어떤 다른 말로 대신 표현할 수 있을까??? 몇 가지 허거덕 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사랑을 낳는 것은 가느다란 신경일테다. 사랑은 무딘 신경. 씩씩한 마음에서 나올 수 없다..." ㅎㅎㅎ 주변사람들이 나보구 성격이 고래심줄 혹은 쇠심줄(영어로는 nerve of steel!!!) 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오늘날 이모양이구나... 큰 깨달음이었다!!! 또 사랑을 함으로써 자기자신(원래 으뜸 존재)과 사랑하는 대상 (버금 존재)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된다는 점에서 "... 사랑은 정신의 질병이랄 수도 있다" 라고 썼다. 예전에 강유원은 [책과 세계]에서 정신이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고 했었다 (마치 병든 사자가 풀을 뜯어 먹듯이!)... 고로, 고종석과 강유원의 주장을 합쳐보자면, 정신이 병든 자는 참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이다. 병원에만 가는게 아니라 무려 사랑도 하고 책도 읽는다 ㅎㅎㅎ (옆에서 사자는 풀 뜯어먹고!) #3.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벨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모티브북 2008

벨훅스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다. 어떤 독자들을 상정하고 책을 썼는지 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뭐랄까? 책 전체가 마치 서론처럼 느껴졌다. 뭔가 본론이 나올것 같으면서도 안 나오는 ㅡ.ㅡ 일단, 저자가 생각하는 '계급'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베버나 마르크스 류의 개념적 정의를 해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계급에 대해 논한 책에서 정작 본인이 생각하는 계급이 무엇인지 말해주지를 않으니, 상당히 애매하더라는... 사회과학적 훈련이 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호한 상태와 그닥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재산? 학벌? 집안? 가난??? 어쩌면 사회의 위계 그 자체를 나타내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지도 애매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 한편으로는, (흑인)공동체주의가 살아있던, 그리고 가난하지만 현명했던 부모님 세대의 그 시대에 대한 저자의 목가적 향수도 느낄 수 있었다. 일찍이 루소도 안타까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잖아요? 우째야한단 말입니까.... 이런 종류의 책도 쓰고 교육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게 첫걸음이기는 할텐데, 어째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말씀만 들어있어서 뭔가 2% 부족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달까..... ㅡ.ㅡ 한편, 가난한 흑인 노동계급출신으로서, 명문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주류세계에 편입한 저자가 마주쳤던 곤혹스러운 현실, 그리고 그렇기에 항상 깨어있을 수 있는 (어쩌면 축복받은) 조건들에 대한 기술에는 일백퍼센트 공감했다. 이런 신분상승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는 피에르 부르디외나 벨훅스같이 뛰어난 성찰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해봤어? 안해봤음 말을 마세요' 하면서 자수성가 제일주의로 주변에 상당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ㅡ.ㅡ (그 대상이 온 국민 전체가 되버리면 정말 괴롭다!) 그나저나 원제가 [Where we stand: class matters] 인데 왜 한국어판 제목은 저 모양인지? #4. 벨훅스 지음, 윤은진 옮김. [경계넘기를 가르치기] 모틔브북 2008

위의 책을 읽는 중에, 친구네 집에 놀라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빌려서 읽었다. 전자에 비해 훨씬 재미있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던져주었는데, 딱히 답은 잘 모르겠다. 베버의 지론과는 상충하는 이 열정적인 페미니스트 선생님의 스타일이 바람직해보이기는 하면서도, 나보고 하라하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ㅡ.ㅡ; 아마도 학교를 다니면서 하도 싸이코같은 인간들을 많이보고, 도덕적 감화는 고사하고 다른 거 안 바라니 선생이면 전공과목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쳐라... 이런 결론으로 살아왔기 때문인 듯... 앞서의 책보다 저자의 유연하고 민감한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이를테면 파울로 프레이리에 대한 태도 - 가부장/백인중심주의의 잔영을 비판하면서도 페다고지 이론 자체의 전복적 성격과 선생의 상호존중하는 태도를 존경하며 적극 수용하는 모습 - 몇몇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남겨둔다. ".. 나는 자아실현과 거리가 먼 대학은, 책에 쓰인 지식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외의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부적격인 이들에게 안식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육이 자유의 실천이라고 한다면 학생에게만 참여하고 고백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라고 하면서 교사 자신은 비난받기를 거부한다면 역량 강화는 일어날 수 없다." "'이론'이나 '페메니즘' 같은 특정한 용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론화를 실천하거나 페미니스트 부쟁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을 지닌 실천가는 아니다. 용어 만들기라는 특권적 행동을 함으로써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의사소통방식을 이용할 권리를 얻으며, 자신들의 연구와 행동을 설명하고 정의하고 묘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많은 환경에서 지식인들이 퇴출되고, 이론이 종적을 감추며, 침묵이 이어지는 상황을 목격해왔다. 침묵은 공범자가 되는 행위이며, 침묵은 우리가 이론 없이 혁명적인 흑인 해방과 페미니스트 투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영속시키는데 일조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 예를 들면, '흑인성'의 이론을 구축한 몇몇 엘리트 학자들은 그 흑인성을, 선택된 소수만 들어갈 수 있는 결정적 영역으로 만듦으로써 - 인종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이용하여 흑인 경험 영역의 권위를 주장하며, 이론 구축 과정에 민주적으로 접근하기를 거부한다 - 흑인 해방 투쟁을 위협한다. 우리 중 일부도 반주지주의를 조장하고 모든 이론은 가치가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이들에 호응하여 흑인 해방을 위한 공동의 투쟁을 위협한다. 이들 두 집단은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었다는 생각을 강화하거나,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조장함으로써 비판 의식을 길러주는 해방 교육의 힘을 부인하며, 그결과로 우리를 집단적ㅇ그로 착취하고 억압하도록 강화하는 환경을 영속시킨다." "정체성 정치학은 억압되거나 착취당하는 집단이 벌이는 지배 구조를 비판하는 관점, 즉 투쟁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위치를 갖고자 하는 투쟁으로부터 발생한다. "진보적인 교수 대부분은 어떻게 계급 편견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의문을 갖고 자신의 교육 과정을 개혁하는 경우보다는, 마음 편하게 기존의 연구 자료에 담긴 계급 편견에 도전하려고 애쓴다..." "학교는 낙원이 아니다. 그러나 배운다는 것은 낙원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장이다. 교실은 가 자체로 한계가 많지만, 가능성을 지닌 장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가능성의 장애서 우리는 자유를 얻으려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우리 자신과 우리의 동료에게 우리가 경계를 넘어가려 할 때 겪는 현실에 맞서게 해줄 개방된 사고와 마음을 가지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것이 자유실천으로서의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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