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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와 컨텍스트 - 기형도

기형도 시인의 20주기가 되었노라고, 백수 (!) 친구를 꼬드겨 책 선물을 받았다. 완전히 자발적인(!!!) 선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ㅎㅎㅎ # 박해현, 성석제, 이광호 엮음 [정거장에서의 충고] 문학과 지성사 2009

사실, 나는 기형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 줄 몰랐었다. 그의 인기가 이렇게 드높은 줄 안 것은 최근 몇 년... 몇몇이서만 은밀하게 몰두하는 그런 아티스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이돌이었어... 이런 약간의 배신감도 없지않아 들었더랬다 ㅎㅎ 심지어 얼마 전에 들렀던 대학가 앞 서점, 내 앞에 선 대학생이 계산대에 올려놓은 책은 [기형도 전집]이었다. 저 또래의 학생들과 20년이 넘은 시들이 어떤 교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붙잡고 물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 세대로서의 공감 책 앞부분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시인들의 대담이 실려있다. 어떻게 그를 만나게 되었고, 무엇에 공명했으며, 자신들의 삶에서 혹은 시에서 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세대론에 그닥 공감하는 편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또 비슷한 것에 감흥했던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좀 애틋하게 느껴졌다. 시인의 죽음이 가져온 신비화와 극적 효과를 떨쳐버리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 - 내가 괜히 유행에 편승하는게 아닌가, 죽음으로 인해 그의 시들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외부를 향한 의심!!! - 들에는 참으로 공감이 갔다. 우리는 이미 '요절하기에도 늦은 나이'라는 한 시인의 날카로운 지적과 '지금 죽으면 그냥 사망'이라는 시시껄렁한 농담마저도 ㅎㅎ 한편으로, 요절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망 시점의 나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진정성이 사라진 이 시대, 지금은 어느 나이에 죽어도 요절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은 참... 80년대 학번들이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낮에는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고 밤이면 그들이 허용해준 동시상영관에서 에로영화를 즐기는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학교에서는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를 읽고 (또 대자보에 베껴쓰고), 밤이면 기형도의 시를 홀로 읽으며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는 증언...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과 한편으로 (기이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을 얻는 이들이 지닌 윤리적 감수성이 머무는 지점에 바로 기형도 시인이 위치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 어쨌든,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분리될 수 없고, 그것이 부당한 혹은 과도한 아우라를 낳던 그렇지 않던 간에,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그의 시, 또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시를 분리하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것 같다.


# 시인과 시 기형도의 시는 (몹시도) 어두워보인다. 혹자는 그의 시가 죽음을 예감했다고 사후 논평을 하기도 했고, 누구는 또 그 어두움의 기원을 찾으려 애쓰기도 했다. 불우했던 유년 시절... 하지만 그의 절친했던 동료들이 이야기하는 그의 삶은 그렇게 멜랑콜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가 어둡다고 시인이 어두운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그 시가 글쓴이와는 아주 무관한 그저 허구의 말장난 인것도 분명 아니리라. 50대 아저씨가 10대 소녀의 아바타로 위장하고 사이버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와 시인의 관계는 약간, 서로 독립적인 것 같다. 이미 2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다 살아버린 듯 치기어린(?) 단정어를 구사하고 끊임없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들이 감정의 과잉이나 작렬하는 자기애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일상의 유쾌함과 꼼꼼한 성정 탓이 아닌가 싶다. 예의 그 껄렁한 문장으로 그려진 성석제의 회고는 우리가 대학시절 친구를 추억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 저녁이 되면 시장 안의 술집으로 가곤 했다. 기형도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술자리에 자주 어울리다보니 알코올의 도움이 없이도 웬만한 술꾼 정도의 주정을 부릴 줄 알게 되었다. 그 재간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았다." ㅎㅎㅎ # 자기 통제와 죽음 기형도는 무척이나 꼼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짧은 여행의 기록] 앞부분에 보면 그의 누이가, 동생 허락도 받지 않고 이렇게 그의 글을 세상에 내보여도 되는 것인지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의 유고시집과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더랬다. 어쩜 이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들을 세상에 알려준 누이와 친구들에게 독자로서의 고마움과, 자기통제를 열렬히 지지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살짝의 원망... 이 양가감정은 뭐다냐...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느날 준비되지 못한 죽음을 맞는다면 과연 나의 생을 온전히 '파악'하고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확신컨데,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ㅎㅎㅎ 특별히 사생활(?)이 복잡하고 비밀이 많은 건 아닌데??? 혹시 다중인격??? 그래서, 통장번호나 연루된 인간관계 종류와 특성, 명단 같은 거를 일목요연하게 만들어둬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갑자기 포스팅이 삼천포로 흐르고 있다.ㅡ.ㅡ #. 김훈의 글 그에 대한 송가 중 애절하기로는 전연욱의 [안개]가 으뜸인 것 같고, 산문으로는 김훈의 것이 아마도... "... 형도야, 네가 나보다 먼저 가서 내 선배가 되었구나. 하기야 먼저 가고 나중 가는 것이 무슨 큰 대수랴. 기왕지사 그렇게 되었으니 뒤돌아 보지 말고 가거라. 너의 관을 붙들고 '이놈아 거긴 왜 들어가 있니. 빨리 나오라니깐' 하고 울부짖던 너의 모친의 울음도, 그리고 너의 빈소에서 집단 최면 식의 쌈움판을 벌인 너의 동료 시쟁이들의 슬픔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空)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시인이 살아있었더라면 향년 50세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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