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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스트의 식탐...

접미사처럼 항상 입에 붙어있는 말 중에 하나가 '어이구,귀찮아!' 울 오마니가 가끔 물어보신다. "숨쉬는 건 안 귀찮냐?" 그럼 대답한다. "숨도 엄마가 쉬어주면 좋겠네!" ㅎㅎㅎ 이런 귀차니스트가 꼬박꼬박 밥을 해먹으며 (심지어 가끔 도시락까지 싸간다!)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게으름을 이겨내는 놀라운 식탐의 힘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귀차니즘의 파워도 결코 만만치는 않은지라, 나의 살림살이는 뜻하지 아니한 과학과 효율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요리 시작 전에 치밀한 동선 구상, 잠시의 자투리 시간도 용납치 않는 입체적 시간 관리... 그래서 가끔씩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뭔가를 떡하니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는 한다. 정이는 나의 요리에 대해 가끔씩 의구심을 표명했다. "언니가 한 건, 맛은 괜찮은데 너무 정성이 안 들어간거 같애. 뭐 이렇게 후딱 하는 거야?" 이런 나의 요리 철학에 비추어볼 때, 오랜 시간 국물을 우린다거나, 사전 다듬기 작업으로 시간을 많이 요하는 품목은 진정 레어아이템이다. 그동안 보스턴이나 대전에서 튀김(복잡한 전처리 과정과 두번 튀겨내야 하는 과중한 업무 부담), 짬뽕 (복잡한 전치과정 더하기 국수삶고, 오랜 시간 육수 만들고... ㅜ.ㅜ 진정 필생의 역작!), 오뎅탕 (오랜 시간 국물 우려내기 ㅜ.ㅜ), 월남쌈 (채썰기 죽음 ㅜ.ㅜ), 멜론 (엄청난 해체작업!) 등등을 드신 분들은 스스로를 스페셜 게스트라 여기며 어디 가서 자랑하실만 하다! 최근 나의 요리철학을 배신한 소소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주에, 갑자기 상큼한 부추김치가 먹고 싶어서 생협에 부추 한 단을 주문해버렸다. (이미 이 단계에서 정신줄이 살짝 놓였음) 받아본 물품상자에 곱게 놓은 부추를 보고 순간 흠칫했으나, 되돌릴 수 없는지라 월욜 밤에 요리작업 시작... 일단, 부추를 씻는게 영~ 번거로웠다. 나의 평소 전처리과정 철학 (물에 담가두었다가 대충 헹군다)에 부합하지 않는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식물이었다. 겨우겨우 씻어 3등분으로 잘라놓고 나물이 홈페이지를 들어갔다가 나는 기절할 뻔했다! '밀가루풀'이 필요하단다. 이런 경천동지할... 밀가루풀이라니??? 풀칠하는게 싫어서 항상 스카치테이프 쓰는 사람에게 심지어 풀을 쒀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닌가!!!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찬장을 뒤져보니, 아뿔싸... 밀가루는 없고 튀김가루 한 봉지와 녹말가루 약간이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rawfish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 중 뭐를 써야겠냐고. 천하의 장금이도 대답을 못하며 망설이더라 ㅡ.ㅡ 그래도 끈적거림의 강도가 튀김가루가 덜할것 같아, 일단 튀김가루로 풀을 쑤었다. 들어나봤나? 튀김가루 풀... 이걸 또 식히고, 마늘 다지고, 기타 양념 추가하여 버무리고 나니까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지나가버렸다. 정말... 슬펐다. ㅜ.ㅜ 허나 놀라운 것은, 하루를 상온에서 익힌 후 다음날 냉장고에 두었다가 맛을 봤는데, 맛이 썩 괜찮지뭔가! 난 정말 요리 영재인가봐??? 하지만 다시는 이런 뻘짓은 안 하리라 결심했다. 양념이 배어 숨이 죽고 나니까 부추 한 단이 작은 밀폐용기 하나도 가득 채우지 못하더라는... 효율이 너무 낮아 ㅡ.ㅡ 끼니 때마다 몇 올씩, 엄청 아껴먹고 있다. 회한의 부추김치!!! * 뱀발... 어제는 비장의 요리 캐슈넛호두멸치볶음 만든다고 간장양념 만드는데, 맛술 대신 식초를 부어 대박날 뻔 했다. 다행이 아직 멸치에 붓기 전에 사태 파악... 정신줄 놓고 사는게 여기저기서 뽀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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