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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신은 좀 낫잖아 - 영화 [레인]

어제, 실로 오랫만에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레인 (Let it rain)...

 

 

전작 [타인의 취향] 이나 [룩앳미]에서 보여주었던 감독 특유의 썰렁하면서도 세심하고 통찰력 있는 유머는 사그라들지 않아 있었다.

프랑스의 우디알렌이니 어쩌니 하는 칭찬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영화가 '나의 취향''인 것만은 분명하다.

 

#1.

 

가족, 일, 연애..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 사정이 좀 낫잖아.... (그러니까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줘!)

직업정치인을 꿈꾸는 인텔리페미니스트, 재능은 있지만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좀처럼 제한된 알제리 출신 이주 청년, 능력이 있는 것도 같으나 하는 일마다 엉망이 되어버리는 이혼남 다큐 감독, 무능한 남편과 드센 언니 사이에서 항상 주눅들어 있는 전업주부 여동생....   이들은 각자 조금씩 사회적으로 결핍되어 있고, 스스로를 피해자, 희생자로 여기고 있다. 성별에서, 인종에서, 사회적 지위에서... 그리고 그건 모두 사실이기도 하다. 권력 관계는 복잡하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은, 이 집의 가정부 할머니.... (ㅡ.ㅡ)

이주 노동자 인데다, 헛간에서 생활하고, 주인집의 생활고 때문에 월급이 몇 달째 밀려 있으며, 폭력 남편은 아직도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불행의 스토리라면야 팔만대장경을 쓰고도 남을 분이다........ 

 

세상에 자신의 고통이 가장 커 보이는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연민과 염치를 겸비하면, 좀더 성숙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2.

 

정치 진출을 꿈꾸는 페미니스트는,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성토 (마치 지금의 사회문제가 그녀 탓이기라도 한 것처럼)에 둘러싸여 갈등한다. 열심히 일하고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이런 것이라면 과연 정치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대사가 정확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럴 바에야 그냥 까페에서 정치 이야기나 하며 살아가는 도시특권층으로 남아버릴까?'라고 내뱉어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

작금의 정치란 고귀한 이상을 꿈꾸는 존재들이 발을 담그기에 너무나 더러운 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더러운 것이 우리 삶의 너무나 큰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에 술자리 안주거리로만 놔둘수는 없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3.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모두들,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는 갈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지금 내리는 비도,

너덜너덜해지도록 지친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치유하는 그런 비가 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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