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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집단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함수

이번 달 건강정책포럼 웹진에 쓴 칼럼이다.  차례 돌아오는 게 순식간이다... ㅡ.ㅡ

 

인구집단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함수

 

얼마 전,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여론이 들끓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범행의 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던 데 비해, 가해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것이 참작되어 형량이 예상 밖으로 낮게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통해 다시는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화학적 거세에 전자발찌, 신상의 완전 공개 등 사회적 분노의 수준에 걸맞는 강력한 처벌들이 제안되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나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강력한 징벌과 재발방지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일련의 사회적 반응 앞에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선구적인 역학자 제프리 로즈 (Geoffrey Rose, 1926-1993)는 유작이 되어버린 [예방의학의 전략 (The Strategy of Preventive Medicine, Oxford University Press 1992)]에서 ‘인구집단의 평균이 일탈의 발생에 미치는 효과’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 인구집단 안에서 개인들 간 변이의 범위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힘과 통일성을 지향하는 힘 사이의 균형에 의해 통제되며, 그 결과, 인구집단 평균의 변화는 전체적인 분포의 이동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52개 국가/사회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인터솔트 연구 (Intersalt Study) 결과를 살펴보면, 인구집단의 평균과 일탈 유병률의 상관성은 매우 높습니다. 예를 들면, 인구집단의 평균 혈압 수준이 매우 낮은데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고혈압 유병률이 높은 경우란 거의 없고, 마찬가지로 집단의 체질량지수 평균이 높아질수록 비만의 유병률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일탈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혈압 같은 신체 건강이든, 인지 기능 같은 정신 건강의 문제이든, 혹은 살인률 같은 사회적 일탈이든 그 양상은 비슷합니다. 보건학적, 사회학적 문제의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극소수의 일탈자들’에게만 국한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분포’라는 연속선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젠더 불평등, 여성의 성적 대상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평균’ 수준을 생각해봅니다.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던 정치인이나, 여성 기자를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서 실수를’ 저지른 국회의원,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官妓)라도 하나 넣어드렸을 텐데’라며 손님 접대의 소홀함을 부끄러워했던 도지사, 여자 대학생에게 ‘감칠 맛’을 운운하던 교육자께서는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저녁 무렵이면 ‘미녀 ○○명 항시 대기’를 알리는 매우 ‘단란한’ 주점의 전단이 주택가에 뿌려지고, 손가락으로 리모콘만 누르면 작동 가능한 노래방에 도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노래방에서 도우미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계십니다. 대중매체들은 (대중이 원한다는 명목 하에) 10대 소녀 연예인들의 성적 매력을 탐구하느라 여념이 없고,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 어린이들이 쇼프로에 등장해 선보이는 정체불명의 ‘섹시 댄스’ 앞에서 어른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합니다. 이 정도면 가히, 민관 합동의 파상공세라 할 만 합니다. 한국사회가 가진 의식의 ‘분포 (distribution)’가 어디 쯤 위치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발생률이 낮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지경입니다. 몇 년 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이 성별에 따라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남성들은 심리묘사니 미장센, 음악을 칭찬하느라 바빴지만, 여성들은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상황 - 어두운 밤길에 홀로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의 공포- 의 100% 현실성에 공감하며  ‘너무 실감나고 무서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곳이 한국사회입니다. 


  인구집단 전체의 분포가 변화하지 않으면서 일탈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분포의 꼬리를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분포 자체의 이동이 없는 한 누군가는 또 그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잘 알려진 고위험 접근법 (high risk strategy)의 단점입니다. 성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 없이, 극단적 사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만연한 성폭력의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프리 로즈의 계산에 의하면, 인구집단의 평균 혈압이 단지 3%만 낮아져도 고혈압과 관련된 임상적 문제의 규모를 25%나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인구집단 전략 (population strategy)의 이 엄청난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의 의식 분포를 조금 왼쪽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왼쪽’이라는 말에 언짢아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프의 X축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값이 커지도록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분포의 ‘평균’ 수준을 낮추려면 안타깝게도 (!) 왼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악무도한 성(性) 범죄자 대(對) 나머지 선량한 시민들이라는 이분형 분포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이 포함된) 현실의 연속형 분포를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집단 관점의 공중보건 전략은 사회적 건강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상당히 유효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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