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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영전에 원내진출 보고합니다" (오마이뉴스)

▲ 19일 오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단병호 당선자를 안으며 축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법대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이라고 호소했던 전태일. 그가 떠난 지 34년만에 법을 만드는, 노동자·농민·민중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는 국회의원 10명이 그의 묘소를 찾아왔다.

권영길·천영세·조승수·강기갑·최순영·이영순 등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이주희 비례대표 후보 등은 19일 아침,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첫 공식행사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단병호 당선자는 당선확정 다음날인 16일 아침에 혼자 모란공원을 찾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가 70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발화점이고, 민주노동당의 뿌리라는 점에서 이들이 모란공원을 찾아 '총선보고대회 및 전태일 열사 추도식'을 가진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단병호 당선자는 추도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란공원에 묻힌 조영래 변호사, 79년 YH사태 당시 사망한 김경숙씨, 계훈제 선생, 유구영 전노협 선봉대장, 최명아 민주노총 조직1국장 등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기자들에게 이들에 대한 기억을 전해 주기도 했다.


"태일아, 엄마가 너하고 약속한 것을 지켰다"

▲ 이소선 여사와 권영길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태일 열사의 묘소에서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을 맞이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75세)는 "태일아, 너하고 한 약속을 지켰다. 너도 지하에서 기뻐할 것이다"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당선자들을 차례차례 껴안았다.

이 여사는 단병호 당선자에게 "이제는 '단 위원장'이라고 하면 안되지. 맨날 감옥에서만 만났는데. 어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고 양복 좀 입고 나오지 했는데. 구속돼 있을 때 감옥에 두고 나오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데. 참 장하고 대단합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안 죽고 사니까 이런 모습을 봅니다. 10명 채워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단 당선자는 "저 한테는 위원장이 최고의 호칭 아닙니까. 그 동안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저희가 잘 할 겁니다"라며 응수했고, 권영길 대표를 비롯한 당선자들과 민노당 관계자들 모두 얼굴이 벌개지도록 눈물을 흘리며 이 여사를 껴안았다. 권 대표와 단 당선자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이게 꿈은 아니죠."(이소선), "정말로 고맙습니다."(권영길) "이제 한 번 웃으셔야죠.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우리가 집권하는 날을 보셔야죠."(천영세) 차례차례 포옹을 하는 이 여사에게 조승수 당선자는 "어머니, 저도 좀 안아주십시오"라며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원내진출은 노동해방·인간해방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권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모란공원에 있는 열사들에게 보고 드린다"며 추도사를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의 영전에, 그리고 수많은 열사들의 영전 앞에서 오늘 민주노동당이 드디어 마침내 국회에 진출했다는 보고를 드립니다. 우리는 목숨을 뺏긴 동지들, 목숨을 버린 동지들을 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전히 노동자·농민·서민은 죽어가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목숨을 내던지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노동해방·인간해방의 한 과정이고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짐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수많은 탄압을 딛고 여기에 왔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고난의 길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한 고난이 되더라도 분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한판 대동의 춤판을 펼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새롭게 출발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성공회대 교수)씨는 "70년 11월 13일 오빠가 분신해서 죽은 뒤 18일 이곳으로 왔을 때는 나무 하나 없고, 마른풀만 있었다"며 "그때는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눈물을 찍어냈다.

양재우 모란공원 관리소장은 "모란공원에는 열사들의 묘가 90기 정도 있는데 전태일씨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며 "이소선 여사를 자주 뵀는데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소선 여사는 병색이 비치는 얼굴로, 가끔씩 숨을 몰아쉬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들에게 기쁨과 당부의 말을 전했다.

"민주화운동했던 사람들도 우리 외면…마른땅에 내리는 비가 돼 달라"

▲ 아들 전태일의 흉상앞에서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이소선 여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늘이 있기까지 투쟁하다 죽은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져 온 것을 느낍니다. 35년동안 생생하게 봐왔습니다. 어제 방송에서 모란공원에 온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할지 마음이 아픕니다. 한나라당과 다른 당들이 있는 곳에서 당당하게 해 나가기를 빕니다.

태일이가 죽기 전에 그랬습니다. 노동자가 같이 싸우지 않으면 저들이 시키는 대로 사는 노예가 될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가 하늘나라에 와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그래서 꼭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억장이 무너져 내가 쓰러졌어요.

그런데 그 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고 싸우고 한 그 노력이 없었다면 태일이가 골백번 죽어도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근로기준법 고치자고 할 때 한 명의 의원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국회앞에서 농성할 때도 우리와 같이 민주화운동을 한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국회의원 한 번 더하려고 우리를 외면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국회의원이 생겼습니다. 약한 자, 굶는 자, 멸시 당하는 자 들을 위해 계속 싸워 주십시오. 겸손하고 강하게 해야 합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바르게 가야 합니다.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렇게 해서 4년 후에는 온 국민이 갈급해 하는, 오늘처럼 마른 땅에 내리는 비처럼 돼야 합니다.

할 말이 많지만 힘이 듭니다. 국회의원 된 사람들한테 함부로 말한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기자여러분들도 노동당에 대한 여론을 정확히 감안해서 잘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 문익환 목사가 자신의 영치금을 기증해 만든, 가슴에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있는 전태일의 흉상이 민주노동당의 다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2004/04/19 오후 4:2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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