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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치로와 주기적인 미팅을 하는 날이라... 만난 김에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사실 좀 민망했던 것이.. 오늘 수업 시간에 어찌나 졸리던지 잠깐 졸았던거 같은데, 만나자마자 나보구 "다 아는 걸 해서 강의해서 좀 지루했지?" 하는 것 아닌가. 의례적인 인사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뜨끔한지라... 사실은 어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건데....
내가 청강하고 있는 수업 제목은 "Society & Health", 사회역학의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공통필수 과목 중 하나다. 이치로는 예의 그 현란한 사진자료, 신문기사, 만화, 그리고 논문들을 활용하여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그가 보여주는 자료 중에는 다소 자극적인(!), 혹은 선동(?)적인 내용들이 드물지 않다. 뭐 이를테면.... 소득 불평등을 이야기하면서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 - 미국의 최고 부자 두 명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부시가 지난 7월에 방문한 4개국의 국민소득을 모두 합친 것과 같다는 식의 - 를 보여주거나, 부시가 집권한 이래 부유층의 세금이 30%에서 17-8%로 줄어들었다는 등... 강의를 듣고 있자면 미국은 정말 불평등한 나라고 세계 불평등의 기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사실이지 ^^).
과연 학생들은 어찌 생각할까나?
사실 학생들의 활발한 질문이 가끔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우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한 비율이 국민 소득 대비 0.14%로 주요 선진국 중 거의 꼴등이라는 슬라이드를 보고 나면, 그 금액이 민간 기부 (이를테면 게이츠 재단)까지 다 합친 것이냐. 뭐 이런 식의 질문. 그게 뭐 그리 중요하지? 그리고 이치로의 질문에 대한 답도 가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남녀간의 임금격차가 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여성이 오래 살기 때문에,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혹은 차별 때문에.... 가장 상식적인 답은 노동의 성별 분업 때문 아닌가? 도대체 신문도 안 보나? 사실 내가 진심으로 절망하는 것은... 비장하고도 심각한 내용의 슬라이드와 그에 대한 폭포수 같은 학생들의 질문과 의견 발표가 지나간 후, 수업 종료와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옆자리 동료들과 재잘거리는 모습.... 수업은 그저 수업일 뿐.... ?
이치로가 막 웃으면서 이야기해준다. 어떤 학생들은 와서 따진단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을 그렇게 비난하느냐. 강의 평가서에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거나, 혹은 선생 그만두고 꺼져버리라고 쓰는 학생도 있단다 (믿거나 말거나 ㅎㅎㅎ ) 일부는 당신 덕에 내가 공화당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다는 학생도 있단다. 내가 학생들의 보수적인 성향에 놀랐다고 했더니만, 자기는 매년, 새록새록 놀란단다 (-_-). 다른 곳도 아니고 소위 "공중보건"을 전공하는 학생들인데도... 사담 후세인이 9/11 사건을 저질렀다고 믿는 학생, 이란과 이라크가 다른 나라인지조차 모르는 학생, 북한이 이라크와 붙어 있는지 아는 학생들도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디 붙어있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누가 죽어가던 그들이 뭔 상관이란 말인가.
내일은 첫 대선토론회가 있는 날이다. 펠로우 짝꿍인 카비(인도 출신)는 시간이 되면 함께 모여서 보잖다. 미국 사람들 빼놓고는 다들 crazy Bush 때문에 걱정이 늘어졌다. 나도 내일은 준비물(술과 안주 ^^) 챙겨서 꼭 시청해야지. 김** 선생님네 TV 는 비싼거라 그런지 자막 방송도 나오던데... 그 기능이 없는게 안타까울 따름...
* 이 글은 최용준님의 [미국에서 건강불평등 연구의 정치성 (2)]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최용준 샘의 걱정대로 송편은 구경도 못 했다. 어제 여기에서 휘영청 뜬 보름달만 확인했는데... 좀 으스스했다. 왜냐.. 영어 강좌가 끝나고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늑대나 다름없는, 하지만 필시 개로 짐작되는 짐승이 (그것도 허연 색) 어슬렁거리고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때 문득 쳐다본 하늘에는 구름이 살짝 걸치운 창백한 보.름.달.... 오홋... 갑자기 어제의 상황이 ........
그나저나 최용준 샘의 궁금해하는 이유... 내가 이론적인 지적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관대한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아직까지 (단서는 아직까지!!! 왜냐, 아직 미국 사회를 잘 모르니까) 간단하다. 내가 그동안 본 미국은 학술 영역에서의 진보적 담론이 취약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일상 생활이 탈 정치화되어 있고 변혁은 고사하고 개혁이란 단어도 씨가 먹히기 어려운 구조로 보이기 때문이다. 캐리하고 부시하고 접전을 벌이고 있는 걸 보노라면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나마 캐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 으로 보이는 것도 정말 웃기고....
이런 상황에서 건강 불평등에 관한 대중적인 교양 서적이 자본주의 생산 관계라는 근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바로의 생각은? 글쎄.... 오랜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노학자의 견해를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냐만... 이러한 비판의 대상이 극우 반동이 아니라 범 좌파 내의 우파그룹(이런 편가르기가 맞나? 이런 표현에 나바로도, 이치로도 각기 다른 이유로 기분 나빠 하려나? 이 사람들 한글 모르니까ㅎㅎ)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던 사투의 한 전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바로의 견해에 대한 하버드 그룹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한데....
* 이 글은 홍실이님의 [미국내 건강 불평등 연구의 정치학 - 나바로]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에 인터넷 서핑하고 있는 주변의 모모 인사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못했다. 이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해야 할지 원....
우선 나바로의 Health of Nations (우리말 제목 "부유한 국가, 불행한 국민") 비판을 잠시 옮겨보면....
미국에서 건강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Lancet 논설로 실릴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미국 내 좌파 -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등등 - 연구자들이 미국 공중보건학회 내에 독립적인 그룹을 만들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 기득권의 반응은? 앞서 이야기했듯, radical tradition 에 대안이 될만한 보다 건전한, 소위 "respectful left"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계급이 아닌 소득, 사회적 지위, 사회적 자본 등등.. (사회적 자본은 미국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따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새로운 용어일 뿐더러 그 영향으로 유럽과 남미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고 지적).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연구자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이들은 기득권 세력에 별 위협이 되지 못하며, 매우 학구적이고 방법론적 이슈를 중요하게 여기고 광범위한 통계도구들을 활용하며, 어떤 형태의 이데올로기적 오염(^^)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정점에 바로 The health of Nations 가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회과학 연구 재단인 MacArthur Foundation 의 지원으로 쓰여졌고, 아마티야 센의 추천사에 보면 "아마도 우파들이 싫어할 left proposal"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참고문헌들에는 그동안 계급 관점에서 불평등을 분석한 연구자료들은 거의 실려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불평등의 내용은 소득, 그리고 소비 (개인간, 국가간) 문제이다.
나바로가 지적한 문제점이라면... 우선 이 책에서는 개인들의 "소비"를 생활수준의 중요한 잣대로 파악했는데, 사회의 집합적 소비 (공공재나 사회적 이전지출)와 하부구조가 삶의 질과 안녕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국가 간의 차이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데, 이를테면 북반구에서 애완동물을 돌보는데 수백만 달러를 쓰는 사람들과 굶주림에 괴로워하는 남반구 어린이를 대조하는 형식은 독자들의 양심과 죄의식(-_-)을 부추기는 것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오히려 대립의 양상은 북반구의 경제적 지배 계급과 남반구의 일부 지배계층, 그리고 북반구의 노동계급과 대다수 개도국의 민중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실제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착취"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는 미국의 공공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예가 나오는데, 이것이 자가용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선호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에너지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의 발달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인들이 세금 감면을 선호하고 사회적 연대의식이 약하다고 지적했는데,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대다수의 노동계급은 매우 취약한 복지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고,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현재의 취약한 계급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 이 외에도 세부적인 여러 가지 지적 사항 등등등...
하여간 요약하자면, 이 책은 파워, 착취보다는 선택과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정치색을 벗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득이 물론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이는 다른 변수들에 비해 비교적 다루기가 쉽고 그보다 중요한 다른 변수(계급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쓰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들은 그동안 계급 관점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건강불평등 연구를 애써 무시한 채 소득 요인에만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잠시 딴 소리... 이 책 Health of Nations 에 대한 비판은 John Lynch & George Davey Smith 의 Rates and states: reflections on the health of nations (int J Epi 2003;32)에도 실려있다. 이 글도 조만간 소개할 생각... 하여간 뭐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책이 나오자마자 집중포화(^^)를 맞는 것을 보니 저자들이 좀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더구나 공저자인 케네디는 심한 병세 때문에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학계를 떠났다니 관점을 떠나서 ....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나저나 이치로가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책(Globalization & health)이 출간되면 또 어떤 논쟁이 벌어질까나.. 뭐 대략 짐작이야 가지만...
일단 두 가지 개인적 의견...
우선, 미국 내에서 건강 불평등과 관련한 연구, 연구네트워크의 정치적 지형에 관한 나바로의 지적은 사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세부적인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낯익은 설정 아닌가?(보건학 연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님)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분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딱히 건강 불평등이라는 이슈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예방의학/보건학 연구들이 한국사회의 고유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어떻게 접근해왔는지, 그러한 접근을 (불)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기반(이를테면 여러 정치권력과의 관계, 연구비 제도, 학풍 혹은 학연), 연구자들의 개인적 성향(^^)은 어떠한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에 건강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고유한 시대적 배경(ㅎㅎ)이 있지 않은가. 이러한 분석이 다소 이론적 작업에 치우치고 당장의 실천적 의미가 적다고 해도, 보건 분야 내에서 쟁점의 숨겨진(!!!) 성격을 드러내고 논쟁을 활성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두번째, health of nations에 대한 비판.... 사실 번역 전에는 나도 책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다. 번역을 하면서 들었던 첫번째 생각은.... 참으로 대중적으로 썼구나.. 물론 "대중적"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일단은 쉽고, 상당히 구체적인 실생활의 사례들이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이 바로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불평등의 문제를 성찰해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물론 그 불평등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나바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저자의 의도와 성향을 잘 모르겠다.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만 둔 것인지, 아님 정말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소위 근본적인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뭐 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것이라니까 ....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조심스럽게 물어봐야겠다. 과연 영어 땜시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이 특히 우리 사회의 "중산층" (정체도 없는 이 단어 정말 싫지만) 들, 그리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여전히 좋은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연구나 대중적 담론이 극도로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한편으로는 입문서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논쟁거리로서..... 그리고 바램은...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결정요인에 대한 학술적/대중적 저작들을 빨리 만날 수 있었으면....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 2004:34(1)에 발표된 나바로의 글 (원제 "the politics of health inequalities research in the United States".
2003년도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6th conference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Health Policy 에서 강연했던 내용이란다.
나바로는 미국 내에서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들이 어떻게 탈 이념화되고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미국 학문 사회의 구조를 이야기하고, 이치로와 케네디가 저술한 (그리고 내가 번역에 참가한) "the Health of Nations"에 대한 비판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주로 생의학적 이슈들을 다루는 NEJM 이나 JAMA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보건의료 정책들을 다루는 대표적인 저널들에서 계급 관점의 분석을 시도한 논문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고, 저자들이 혹시라도 "노동계급, 계급투쟁"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교조적이라고 게재거부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계급 이슈를 다룬다는 것은 그 연구자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걸 뜻하게 되고, 이는 곧 학문적 사망 선고나 다름 없다. 베버, 혹은 뒤르켐의 분석 틀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베버주의자, 뒤르켐주의자"라고 딱지를 붙이는 건 아니지만, 유독 마르크스의 경우만 특별하다 ^^
연구기금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나바로가 재직하고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만 해도 교수(와 그 비서) 월급의 80%가 연구비에서 비롯된다. 연구비를 못 딴다는 것은 일자리를 잃는 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펀딩기관, 대개 정부와 록펠러, 맥아더 등의 거대 민간 재단의 정책과 성향에 맞는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Elizabeth Fee 같이 명성자자한 사람(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공중보건 역사학자 중 한 명,[Women's Health, Politics, and Power: Essays on Sex/Gender, Medicine, and Public Health] 의 편집자 )도 연구비를 못 따서 결국 존스홉킨스를 떠났다고 한다.
사실 1960-70년대에 사회 전반적인 흐름에 맞춰 사회의 근본 구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소위 "유물론 역학" 이 성장을 했고, 사회에 매우 비판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으나... 기득권의 대응 전략은 첫째, 무시, 둘째,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을 때는 좀더 건전(^^)한 주류 연구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이 과격분자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낯익기도 하여라~). 그리고 일부 ex-radicals (우리 말로 하면 전향인사, 내지는 귀순자들 ㅎㅎ)이 이러한 순화 과정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이것도 낯익다 ㅎㅎ). 이는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외국, 개도국에 대한 지원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남미에 공산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때에는 사민주의 방식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고, 공산주의가 더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자 이제는 신자유주의적 지향의 연구들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다. 무시, 배제, 주변부화...
이런 의미에서 미국 내에 건강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한 듯 보이지만, 주류 연구들은 계급 관계보다 대개 소득, 소비, 혹은 사회적 자본, 결속력 등에 집중되어 있다. 나바로는 이 지점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health of Nations 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인데, 넘 졸리네... 글의 시작이 너무 창대했던 탓이다 ㅜ.ㅜ 오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고 낼 이어서 쓰자... 1. health of nations, 2 나바로의 글과 한국사회)
실신한 국보법
김용갑 의원이 국회 단상에서 제 분을 못 이기고 쓰러졌다. 대한민국을 한 몸으로 떠받치던 인간 국보법이 제 풀에 지쳐 졸도했다. 상징적이다. 50년 동안 선무당처럼 펄펄 뛰던 그 악법도 이제 기운이 다 쇠한 모양이다. 물론 아직도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칼로 제 배를 갈라 그 놈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이 미련한 신체 예술로 그들이 보여준 것은 ‘국산 칼, 더럽게 안 든다’는 사실뿐이다.
언뜻 보면 국보법의 폐지에 반대하는 흐름이 대세같다. 착시현상이다. 촛불도 꺼지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낼름거리는 법. 우익 시위의 격렬함은 ‘마지막 발악’이다. 그 살벌한 제스처로 저들은 국가의 안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공포는 북한의 안보위협에서 오는 게 아니다. 국보법이 폐지되면 도대체 이 사회에 자신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 저들은 그게 무서운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 또한 착시현상이다. 여론은 추이를 따라 동태적으로 읽어야 한다. 국보법에 관한 여론의 추이는 목하 ‘개정불가’에서 ‘개정가능’을 거쳐 ‘폐지가능’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게다가 반대론자들의 상당수가 사안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는 “경제가 급한데 웬 국보법 논란이냐”는 상황논리에 잠시 설득된 상태. 경제가 급한데 국보법 ‘폐지’에 목숨 거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이들은 경제가 급한데 국보법 ‘수호’에 목숨 거는 것도 이해 못한다.
50년 넘게 존속했던 법을 없애자니 시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정치권에서 자꾸 대체입법이니, 형법보완 운운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최근 형사법 전문가들은 국보법의 공백은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뭘 더 대체하고, 뭘 더 보완한단 말인가? 대체입법이니 형법보안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국가의 ‘안전’(安全)을 위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유권자의 ‘안정’(安靜)을 위한 심리요법일 뿐이다.
대체나 보완은 필요 없다. 형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권유린이다. 고작 “불안감” 따위를 해소하기 위해 시민의 권리를 법적으로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은 따로 있다. 국보법을 확실하게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미 사문화되어가는 법, 폐지해도 별 일 없다는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하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이 또 있을까?
여당 내의 기회주의 분파는 제 이름대로 개혁을 “안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어영부영 타협하거나 질질 끄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하다. 빈틈을 주면 안 된다. 선명하고 명확한 입장을 정해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보수층이 국보법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상징성 때문이다. 국보법의 폐지가 기정사실이 되면, 깃발을 잃은 저들의 반항은 순식간에 무력화할 것이다. 국보법은 죽었다. 남은 것은 진단서를 떼고 송장을 치우는 일뿐이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표면에 이는 보수의 거센 파도에 불구하고 바다 속의 조류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금 개혁정권은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도 차기정부의 성격을 묻는 설문에 시민의 56.9%가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라 응답했고, 오직 35.7%만이 “보수안정 성향의 정부”라고 대답했다. 현 정권의 보수화에 실망해 떨어져나간 지지층이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도 여전히 “진보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뭘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가?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 따위에서 국보법의 대안을 찾는 것은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다. 누군가 국보법 폐지의 ‘대안’을 요구하거든, 가령 취약한 정보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 등,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 제시할 일이다.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을 못 받아들이겠는가. 야당 역시 제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부정적 발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뭔가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 2004.9.25 진중권 (정치평론가) -
오늘은 Cambridge Center for Adult Education 에서 ESL 강좌가 개강하는 날이다. 강의 시간이 저녁 8시라, 모처럼 사무실에 늦게까지(일곱 시 ^^)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초저녁이지만, 사실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일단, 남아 있자면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먹자니 돈이 없고.. 또 밤에 혼자 남아 있는것이 괜찮을까 싶어서 아직 시도를 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할 수 없이 도시락을 두 개 (그래봤자 샌드위치 두 덩어리) 싸가지고 와서 저녁까지 떼웠는데....
여섯 시에 한 낯선 남자가 건물에 들어왔다. 하도 들락거리는 연구자들이 많다보니 또 다른 펠로우인가 싶었는데...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청소와 정리 등의 일을 한단다. 인도에서 왔고, 이곳에서 일한지 15년 째.. 그동안 수많은 펠로우들이 이 곳을 거쳐갔고 사진과 명패를 통해서 나를 이미 알고 있단다.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남아 있어도 괜찮겠냐고 했더니만.. 걱정 말란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이 전에도 여러 명의 펠로우들이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는 했으니 걱정말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쓰레기통이며 회의실 탁자며.. 아침마다 항상 치워져 있었는데, 나는 그게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셀프 서비스라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 보건대학원에서도 대개 강의가 5시 반에 끝나는데, Women, Gender & Health 강좌는 6시 반에 끝나고 이걸 듣고 나오면 계단과 복도를 부지런히 닦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이다. 우리가 일과 수업을 끝낸 후에, 이들은 유령처럼 나타나서 소리없이 일하고 사라진다. 이들은 낮동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도 용역, 혹은 파견 노동자들일까? 노조는 있을까? 일당은 얼마나 받고 있을까?
가끔씩...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나의 일상이 굴러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는 한다. 그걸 깨달을 때면.. 그냥 혼자 쪽팔리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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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하바드 그룹의 사람은 아니지만^^ 홍실이님 덕에 많이 배우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알았던건 최근 아니지 몇 년전 덴젤 워싱턴이 주연했던 ‘존 Q'가 다였답니다.첨언: 그 늑대 개는 음...된장 단지를 상비하고 다니시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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