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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5 - 요리 이야기

* 이 글은 molot님의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molot 님에게는 불길 시뻘겋게 타오르는 이스크라가 있지만, 나는 없다. 우리집 전기레인지는 빨갛게 달아오르기만 할 뿐 불꽃, 그 핵심이 없다. 엄청난 속도의  가열, 그리고 빠르게 식지 않는 속성 때문에 온도 조절이 쉽지 않다... 초보 요리사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지.

 

대전으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해본 요리는 무엇이 있을까?

 

1. 일상식 

 

잡곡밥

 

온갖 종류의 된장국(두부, 감자, 배추, 콩나물 등등), 미역국, 북어국, 쇠고기 무우국, 앗. 오뎅국이 있었지. 무우와 다시마를 오래오래 끓여서 만든 국물맛이 내가 먹어봐도 환상이었는데.. 

 

김치찌게(돼지고기, 스팸, 참치)

 

취나물 무침 :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할인마트에 삶은 것을 팔길래 그냥 사다가 무치면 되는 줄 알았더니만, 물에 씻어 헹구고 간을 해서 볶아야했다. 더구나 양도 많아서 프라이팬에 두 번 나누어 볶아야했고 거의 일주일을 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그 시즌에 방문한 친구들이, 나의 호화식단("자취생이 나물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비빔국수 : 김치넣고 참기름 넣고 대충만 해도 맛이 나는 고마운 음식

 

유부국수 : 유부가 남아서 그냥 해본 건데 정말 맛있더라.

 

그 외 각종 무침. 콩나물, 오이, 등등. 샐러드는 넘 쉽기 때문에 음식 목록에 안 들어간다.

 

 

 



알밥 : 대전과 캠브리지 모두에서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두부 두루치기 : 이건 영국에 갔을 때 해본 건데, 있는 재료를 그냥 쓸어넣었는데 그런 맛이 났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기적에 가깝다. 아주 호평을 받았지.

 

유부초밥 : 풀무원 재료를 사다하면 아주 쉬운데, 그냥 유부를 사다가 만들려면 손이 장난 아니게 많이 간다. 남은 재료로 주먹밥도 만들면 좋다.

 

스파게티 : 햄, 냉동 새우 등을 다양하게 이용해서... 재료만 잘 다듬어 놓으면 20분 내에 요리 완료해서 먹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맛난 음식

 

고추잡채 : 대전에 있을 때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음식이다. 그 기억을 되살려, 이번 주 주말 손님 초대에 이 비장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매워서 잘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냉동 꽃빵은 지난 번 중국 마트에서 사다놓은게 있지...

 

잡채 : 펠로우들 모임 때 역시 호평을 받았던 음식... 인도 출신의 Sangeetha 는 나에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까지 했는데(^^).. 그건 좀 무리지... 심지어 나보구 요리 잘한다고 다음에는 김치를 해가지고 오란다. 황당하지 않을가. 그건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만 "너네 엄마한테 가면 틀림없이 간단한 레시피가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꼭 맛보자"....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씻어서 갖은 양념을 만들어 적절한 온도에서 적절한 기간 익혀야 한다는 걸 어찌 인도 아줌마가 알 수 있단 말인가... -_-

 

생선전: 물론 한국에서 제사 때 수도 없이 부쳐보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생선을 사서 썰어서 전 과정을 준비해보긴 처음이었다. 사실 생선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자사전 들고 생선 진열대 앞에 가서 하나하나 이름을 쳐보고 cod 가 대구 인 것을 알았다 (ㅜ.ㅜ)

 

근데 써놓고 보니 별로 해본게 없구나. 이게 다 쓴거 맞나?

 

3.  이번 주의 도전 과제

 

아이들 손님을 위하여 특별히 치킨 데리야끼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사회역학 공부하러 와서 요리만 공부하는 느낌이다. 이러다 현모양처 되는게 아닐까 우려했더니만, 김, 전 선생님 부부께서 현모양처를 넘 우습게 보지 말라고 충고해주셨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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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4

2년 반 남짓 대전에 살면서 참으로 많은 손님치레를 했다. 유성 호텔촌에서 워낙 학회들이 많이 열리다보니, 난데없이 전화와서 "나 여기 유성인데~" 하는 돌발 손님에서부터, "누나, 이번 주에 한번 다같이 내려갈라고 하는데~" 하는 단체 엠티 손님까지... 같이 술마셔주고 밥해주고, 맛난 거 사주고... 관광 안내.. 관광이래봤자 대전에 뭐 볼게 있나, 엑스포 공원 두 번 갔는데 반응은 싸늘했고 (ㅜ.ㅜ), 시민 천문대 두 번 갔던 것은 아주 호평을 받았고, 그 밖에 금산, 계룡산, 칠갑산, 좀 멀리 진출한 변산, 전주 등은 꽤 반응이 좋았다. 의보사 후배들이 계룡산으로 엠티왔을 때... 이마트에서 선양 소주를 한 박스 들고 계산대로 가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가족끼리 단란하게 쇼핑카트 끌면서 반찬거리를 사고 있었다. 젊은 처자가 커다란 카트에 소주만 한 박스 덜렁 싣고...(-_-)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박스 크키가 훨씬 작은 "청하"로 바꾸고 나서야 부끄러움이 좀 사라졌다. 그리고는 계룡대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친구한테 찾아가 군납 맥주 몇 박스 ㅎㅎㅎ

 

이야기가 샛길로....  여기 캠브리지에 둥지를 튼지 어언 한달 반... 드뎌 첫 번째 벗이 자원방래한고로, 지난 주말을 몹시도 힘겹게 보냈다. 혹시나 관광 다니면서 찍은 사진 좀 올렸으면 하고 바라는 지인이 있을지 모르나... 내 사진기는 들고 나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진은 절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현지 방문해주시면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찰칵 ^^

 

첫 날 오후에는, 남들 다 하는대로 Harvard Square 를 중심으로 이곳 저곳, 이를테면 하버드 서림(행당 서림을 따서 내가 붙인 이름 ^^ 원래는 harvard book store), 기념품 매장 등을 둘러보고 캠퍼트 투어를 했다. 정식 가이드 투어를 한 건 아니고 그냥 대충대충 내가 안내를 했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서 가이드 체면 구겼다. 좀 많이 걸어야 하는 Radcliff와 Divinity school 들은 아예 언급도 안 했다. 가보자구 하면 다리 아프니까... ㅎㅎ 그리고 역시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harvard  동상과 Weidener library 앞에서 기념 사진 찰칵...  손님이 염치도 없이 배고프다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일찌감치 집에 와서 밥을 했는데... 세상에나 그 비싼 김치로 김치찌게를 끓여달라고 하더니, 먹기도 많이 먹는다. 2박 3일 지나고 나니 김치통이 반이나 비어버린 데다가 쌀 봉투가 바닥이 났다. 주말에야 장을 보러갈텐데, 걱정일세... 

 

 



시내 트롤리 관광을 했다. 아무래도 현지 가이드로부터 대략의 설명을 듣고 명소를 가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아저씨가 참 재미나게 설명을 하기는 했는데....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very, very nice, antique.." 그 다음 설명 들어보면 겨우 200년 된 건물, 뭐 하나 설명할 때마다 "the oldest in this country, the largest in the world" 어쩌구... 뭐 이 쪼그만 도시에 국내 최고, 세계최대가 이렇게도 많은지... 중국 사람들 뻥에 비견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나는 아저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두 마디씩 궁시렁댔다 (물론 한국말로). 설명하는 기사 아저씨도 웃기지만 승객들도 장난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별 허접한 걸 다 사진찍고, 질문하고... 우리는 점심으로 싸온 주먹밥을 까먹으면서 쉴새 없이 궁시렁대고 분개(-_-)했다. "아니, 뭐 저런걸 사진찍어, 어디 시골 촌구석에서 살다왔나, 아이고.. 신났네 신났어..." 관광 프로그램 중에 freedom trail 이란게 있는데 소위 미국의 독립전쟁과 관련된 유적을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다. 다섯 명 죽었다는데,  "massacre"라고 써있다. 이런 젠장..  유람선 타면 헌법 박물관에도 갈 수 있는데, 미국의 정신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하도 가당치도 않아서 들어가지 않고 배타고 그냥 돌아오면서 경치만 구경했다. 항구에는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의 유적이 남아 있다. 어쨌든 바다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은 꽤나 멋지다. 고담시를 연상시키는 시카고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저녁에는 야경을 본다고 행콕 빌딩에 갔는데 911 이후 안전 문제로 문을 닫았단다. 프루덴셜 타워에 갔더니만, 세상에나.... private party 때문에 통째로 임대를 해서 일반 입장이 안 된단다. 입장하는 사람들의 옷 차림새를 보아하니 우리같은 촌놈들은 감히 끼일 자리가 아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든든하게 먹고(아이고.. 내 쌀) 찰즈 강변을 산책하고, 하버드 스퀘어 가서 기념품 사고, 보스턴의 자랑이라는 fine art museum 에 갔다. 자원봉사로 박물관 투어가이드 하는 아줌마 설명이 아주 재미났다. 하지만, 세계 4대(도대체 누가 갖다붙인건지) 미술관이라는 미술관의 콜렉션은 좀 실망스러웠다. 근대 미술로는 유럽의 무수한 미술관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고대 혹은 아시아 수집품으로는 대영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미술관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맘 먹고 정리해볼 기회가 있음 좋겠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예술도 모르면서 비싼 명화들 싹쓸이해간다고 서양인들이 일본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미국 미술관에 와 보면, 그런 비판이 얼마나 어줍잖은 것인지 5분만에 깨달을 수 있다.

하여간, 마지막으로 말레이지아 식당에 가서 맛난 저녁 먹고 찰즈 강에 다시 나가서 야경까지 구경하니 길고도 힘들었던 가이드 생활이 끝이 났다. 물론 수족관, 과학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볼거리들, Jamaica Pond와 식물원 같은 곳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뭐 이번이 마지막도 아니고...  다음 번에 다른 손님이 오면 이런 데를 가봐야지. 보스턴 심포니나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 공연도 가보고...

 

하여간... 보스턴 근처에 오실 분은 꼭 연락하시라... 세계 최고(^^)의 투어 가이드와 함께 재미난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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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침몰..


어제 UMass 로웰 대학에 있는 브라질 연구자와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를 했다기보다 나는 청중(-_-). 신흥자본주의 국가로서 브라질과 한국의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가능하면 연구도 함께 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다. 거기서 그 양반(이름 에두아르도)가 발표한 내용을 잠깐 소개...

보여준 슬라이드는 이미 온라인 상에 공개되어 있는 것이었다. (http://www.picnet.com.au/resources/PicNet%20-%20Platform%20-%20PetroBra.pps)

이 사건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petrobra 는 브라질에서 가장 큰 국영 석유회사고, 그 중에서도 P-36 은 가장 큰 정유채굴 플랫폼 중 하나란다. 구조조정과 유연화 전략, 당연히 동반되는 안전/유지보수의 약화,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내부 경쟁 체제 도입, 이에 동반되는 통제 관리의 무정부성... 이런 것들이 누적되었고, 2001년 3월... 이 거대한 플랫폼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규모도 크던지, 기울어지면서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닷새나 걸려서 브라질 전역에 생생하게 그 과정이 중계가 되었단다. 물론 진상조사의 결론은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 몇몇 개인의 잘못.. 이렇게 났고, 닷새나 되는 침몰 시간 동안 구조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었단다.

 

에두아르도는 이 사건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열변을 토했다.  (사족이지만, 자기가 흥분하여 어찌나 왔다갔다하면서 발표를 하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 

 

슬라이드에 따옴표로 인용된 말과 함께 넘겨보면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차분히 한 번 보시라....

 

* 이 날은 neo-liberalism 이란 단어를 한 천번도 넘게 들었다. 오고가는 차에서까지... 나중에 에두아르도의 차에서 내리고 나니, "neoliberalism" 이 정겹게(-_-)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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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있기...

* 이 글은 뻐꾸기님의 [가을 설악산에서 있었던 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며칠 간의 공백 끝에 선배가 올린 글을 보니, 마음이 몹시도 울적하다. 

학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허겁지겁 시간에 쫓기는 발표와 접대성 멘트, 혹은 기술적 문제들만을 토론하고 끝내는 내가 속한 모 학회보다 그래도 나아보인다는 생각도 들고... 

본인 스스로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나서기 어려워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맞고 한 편으로는 들린 생각이다. 실제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혹시 잘못된 결론을 도출할까봐 우려하고 겸양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세부 갈래가 다르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으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어땠을까? 어느날, 대전 시내 택시 안에서 지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 프로에서는 신장 내과 전문의가 나와서 시민의 전화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근데, 전화를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기저기가 쑤신 나이드신 분들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서 잠을 잘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의사의 대답. 저는 그 쪽 전문의가 아닙니다. 류마티스 내과나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에 가보시요. 또다음 전화. 몇 년 전에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거 같은데 이게 왜 통 낫질 않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몇 통의 전화들... 그 날 상담시간에 의사가 한 이야기는 저는 그 전문의가 아니라는 소리 뿐... 근데, 사실 신장내과 전문의라고 해서 동네에 개업하면 관절염 환자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요통 환자를 안 보는 건 아니다. 이 프로 진짜 웃긴다고, 택시 운전사 아저씨랑 낄낄대고 웃다보니 그 의사가 별로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모든 분야에 다 기웃거리는 것도 웃기고, 그리고 실제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저는 예방의학 중 역학 분야만 전공하기 때문에 전염병 관리니, 건강보험이니, 노동자 건강문제니 이런 건 "절대" 못 한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사회역학이라는 전공을 하면서 앞으로, 소위 내가 전문가가 아닌 수많은 사회적 의제와 학술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개입해야할 것이다. 과연 그 때는 어떤 논리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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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에 의한 [빈집]과 기형도를 위한 빈집

나는돌 님 덕분에 시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다시 보아도.... 내가 이 시를 접했던 것은 김현의 평론집에서. 물론 김현 사후의 일.. 세상을 떠난 시인과, 그의 죽음을 슬퍼한 평론가의 또다른 죽음 뒤에 그렇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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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기형도의 '빈집'을 위하여

 

그는 사랑을 잃었네
사랑을 잃고 봉분 하나를 그는 얻었다 하네
익명의 소문들이 그의 생애를 지우는 동안
슬픔이 창궐한 전등불 아래서
사람들은 경악의 얼굴로 술을 마셨네
아름다운 기억들이 술잔에 가득 넘쳤네
시린 별빛 아래서 이별을 고하는 동안
어떤 편안한 잠이 그의 곁에 와 누웠네
아무도 그의 사랑 찾아주지 못했네

그가 잃은 사랑 눈 먼 자의 슬픔으로 떠돌 때
사람들은 새끼처럼 꼬여 칼잠을 자고
꿈속 어느 갈피 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네
그가 찍은 삶의 구두점이
동행 없는 모습으로 텅 빈 거리를 헤매고
안개가 그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네
아무도 그를 잡을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그의 사랑이 되어주지 못했네

 

-전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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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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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민지네에 갔더니, **님이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을 올려놓았다.

미국에 오면서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 고심했다.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 ^^

전공과 관련없는 책은 다섯 권을 가져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형도 시집.

시인의 여행 산문집도 가져올까 하다가 (생일 선물로 받은 아주 낡은 책), 그냥 시집만 들고 왔다. 밀린 빨래하고, 논문 revision 하나 해서 서울로 날리고.... 잠깐 시집을 펼쳤다.

 

 입 속의 검은 잎

 

                                                             기 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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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겨레 비빔툰 "선배형" (200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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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토론회

사무실에 뉴욕 타임즈를 구독하기 있어서 공짜로 보고 있다. 돈 주고 신문 사서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ㅜ.ㅜ)

영어가 짧아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최소한 조중동보다 신문의 질은 훨씬 높은 거 같다. 적어도 "~카더라, 아님 말구" 기사는 없다. 그리고 하나의 사안에 대해 여러 군데 자료원을 이용해 두루두루 이야기를 해주니까 이해하기가 쉽다. 근데, 이번 대선 토론회 관련 기사에 웃긴 내용이 실려 있다. 부통령 후보인 딕 체니와 존 에드워드에 대한 이야기...

 

It's a compelling matchup:

Vice President Dick Cheney, the somber voice of experience, versus Senator John Edwards, the newcomer with the dazzling smile (이거 진짜 맞는 이야기, 체니를 보고 있으면 음산하고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 방긋방긋 웃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The former chief executive of Halliburton vs the populirst trial lawyer (아니나 다를까 오늘 토론회에서도 핼리버튼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공격 대상이었지)

No hair vs good hair (넘 황당하다 ㅎㅎㅎ)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친구는 Bush 는 stupid 인 반면, 체니는 evil 이란다. 자기는 정말 싫다고.... 나도 체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으면 Phantom menace 라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편의 제목이 떠오른다.  오늘 토론회는 (내가 보기에) 에드워드의 일방적인 우세였던 것 같다. 내일 아침 신문 기사가 정말 궁금해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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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제안

제 블로그에 가끔 들러주시는 진보넷 이웃 블로거들께 .....

같이 세미나 한번 해보는건 어떨까요?

Navarro & Muntaner 가 건강 불평등, 사회역학과 관련한 그동안의 이론과 논쟁들을 비판적으로 집대성(?) 해서 책을 냈는데, 오늘 막상 우편 주문한 책을 받고 보니 혼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이럴 때 좋은 방법이 다른 사람이랑 강제로(^^) 같이 읽는 거...

 

스케쥴 정해서 1~2주일에 한 챕터 정도 읽고 각자 의견 정리해서 올리기. 발제문 같은 거는 만들지 말고... 어떠세요? 혼자 읽으면 재미도 없고, 생각도 잘 정리 안 되고 하니까....

 

어차피 한국에 있어서 다들 만나기 힘든 사람들인데...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도 불러 모아서 함 시도해보면 좋을 듯한데.... 의견 주시와요 ~

 

책 정보 :  " Political and Economic Determinants of Population Health and Well-Being: Controversies and Develop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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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궁금증을 풀어주다

나의 오랜 벗 장양이 과연 내가 어찌 차려놓고 사는지 궁금한가보다. 평소에 별로 호기심 소녀의 자태를 보이지는 않았었지만, 어쨌든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집 안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사무실 사진도 올려달라는데 거기서 찍으면 좀 민망하지 않을까? 어쨌든 기회를 함 노려봐야지.

 

1. 거실 : 상당히 우아해 보인다. 침대로 펼 수도 있는 Futon (접이식 소파)와 간접 조명, 주제를 알기 어려운 그림까지 걸려있다. 물론 내가 입주하기 전부터 있던 셋팅 그대로 ^^

아래의 사진은 거실 창문쪽에서 바라본 식탁과 화장실 입구...  식탁 위를 좀 치우고 찍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연출"의 냄새가 날까봐 그냥 평소대로 두었다. 여기에도 역시 벽면에 그림 한 점... 참고로 말하자면 이 집 주인장이 은퇴한 인류학 교수이고, 그 부인은 한국인이라 한국에 대한 조예가 굉장히 깊다고 한다. 우리 집에도 없는 한국 고가구들이 심심찮게 있다.

 



 


 

2. 담은 부엌... 불판 네 개 달린 오븐과 식기 세척기, 전자 레인지, 전기밥솥 등이 눈에 띈다. 식기 세척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 써보는 것이라 당황스럽고, 오븐은 아직 한 번도 불을 켜보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요리책을 보면서 오븐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는데,,,, 음...이제는 저걸 뭐에다 쓰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떠나기 전에 한번은 써보고 가야할텐데... 혹자는 어쩜 부엌이 저리 깨끗하냐고 놀랄 수도 있는데, 평소 모습이다 (^^)V

 


 

3. 마지막으로 침실 겸 공부방....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모습에 벗들은 이제서야 우리 집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린터, 모니터, 키보드는 모두 얻어온 것이고, 컴퓨터 책상은 야드 세일 가서 5달러(10달러 부르는 걸 깎아서)에 사온 것이다. 혼자 끌고 오는게 불쌍했던지 심지어 물건 판 아가씨가 자기 차로 우리 집까지 실어다줬다. 차 범퍼에 케리-에드우드 지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하여간... 책상이 넓어져서 공부하기는 좋다. 아직 공부를 많이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ㅎㅎㅎ

 


 

 하여간, 혼자 살기에는 과분하게 좋은 집이다 (집세가 얼만데 -_- )...

 침대 구조와 거실의 소파까지 고려하면 3명, 뭐 엠티 상황이라면 6명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곳을 친히 방문하려는 친구들은 적어도 잠자리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오늘 포스트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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