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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ptimism of Uncertainty


.........  by Howard Zinn  November 06, 2004   
  
In this awful world where the efforts of caring people often pale in comparison to what is done by those who have power, how do I manage to stay involved and seemingly happy?

 

I am totally confident not that the world will get better, but that we should not give up the game before all the cards have been played. The metaphor is deliberate; life is a gamble. Not to play is to foreclose any chance of winning. To play, to act, is to create at least a possibility of changing the world.

 

There is a tendency to think that what we see in the present moment will continue. We forget how often we have been astonished by the sudden crumbling of institutions, by extraordinary changes in people's thoughts, by unexpected eruptions of rebellion against tyrannies, by the quick collapse of systems of power that seemed invincible.

 

What leaps out from the history of the past hundred years is its utter unpredictability. A revolution to overthrow the czar of Russia, in that most sluggish of semi-feudal empires, not only startled the most advanced imperial powers but took Lenin himself by surprise and sent him rushing by train to Petrograd. Who would have predicted the bizarre shifts of World War II--the Nazi-Soviet pact (those embarrassing photos of von Ribbentrop and Molotov shaking hands), and the German Army rolling through Russia, apparently invincible, causing colossal casualties, being turned back at the gates of Leningrad, on the western edge of Moscow, in the streets of Stalingrad, followed by the defeat of the German army, with Hitler huddled in his Berlin bunker, waiting to die?



And then the postwar world, taking a shape no one could have drawn in advance: The Chinese Communist revolution, the tumultuous and violent Cultural Revolution, and then another turnabout, with post-Mao China renouncing its most fervently held ideas and institutions, making overtures to the West, cuddling up to capitalist enterprise, perplexing everyone.

 

No one foresaw the disintegration of the old Western empires happening so quickly after the war, or the odd array of societies that would be created in the newly independent nations, from the benign village socialism of Nyerere's Tanzania to the madness of Idi Amin's adjacent Uganda. Spain became an astonishment. I recall a veteran of the Abraham Lincoln Brigade telling me that he could not imagine Spanish Fascism being overthrown without another bloody war. But after Franco was gone, a parliamentary democracy came into being, open to Socialists, Communists, anarchists, everyone.

 

The end of World War II left two superpowers with their respective spheres of influence and control, vying for military and political power. Yet they were unable to control events, even in those parts of the world considered to be their respective spheres of influence. The failure of the Soviet Union to have its way in Afghanistan, its decision to withdraw after almost a decade of ugly intervention, was the most striking evidence that even the possession of thermonuclear weapons does not guarantee domination over a determined population. The United States has faced the same reality. It waged a full-scale war in lndochina, conducting the most brutal bombardment of a tiny peninsula in world history, and yet was forced to withdraw. In the headlines every day we see other instances of the failure of the presumably powerful over the presumably powerless, as in Brazil, where a grassroots movement of workers and the poor elected a new president pledged to fight destructive corporate power.

 

Looking at this catalogue of huge surprises, it's clear that the struggle for justice should never be abandoned because of the apparent overwhelming power of those who have the guns and the money and who seem invincible in their determination to hold on to it. That apparent power has, again and again, proved vulnerable to human qualities less measurable than bombs and dollars: moral fervor, determination, unity, organization, sacrifice, wit, ingenuity, courage, patience--whether by blacks in Alabama and South Africa, peasants in El Salvador, Nicaragua and Vietnam, or workers and intellectuals in Poland, Hungary and the Soviet Union itself. No cold calculation of the balance of power need deter people who are persuaded that their cause is just.

 

I have tried hard to match my friends in their pessimism about the world (is it just my friends?), but I keep encountering people who, in spite of all the evidence of terrible things happening everywhere, give me hope. Especially young people, in whom the future rests. Wherever I go, I find such people. And beyond the handful of activists there seem to be hundreds, thousands, more who are open to unorthodox ideas. But they tend not to know of one another's existence, and so, while they persist, they do so with the desperate patience of Sisyphus endlessly pushing that boulder up the mountain. I try to tell each group that it is not alone, and that the very people who are disheartened by the absence of a national movement are themselves proof of the potential for such a movement.

 

Revolutionary change does not come as one cataclysmic moment (beware of such moments!) but as an endless succession of surprises, moving zigzag toward a more decent society. We don't have to engage in grand, heroic actions to participate in the process of change. Small acts, when multiplied by millions of people, can transform the world. Even when we don't "win," there is fun and fulfillment in the fact that we have been involved, with other good people, in something worthwhile. We need hope.

 

An optimist isn't necessarily a blithe, slightly sappy whistler in the dark of our time. To be hopeful in bad times is not just foolishly romantic. It is based on the fact that human history is a history not only of cruelty but also of compassion, sacrifice, courage, kindness. What we choose to emphasize in this complex history will determine our lives. If we see only the worst, it destroys our capacity to do something. If we remember those times and places--and there are so many--where people have behaved magnificently, this gives us the energy to act, and at least the possibility of sending this spinning top of a world in a different direction. And if we do act, in however small a way, we don't have to wait for some grand utopian future. The future is an infinite succession of presents, and to live now as we think human beings should live, in defiance of all that is bad around us, is itself a marvelous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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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시대?

미국 선거 결과를 두고 이래저래 말도 많다.

뉴욕타임즈에는 뉴욕 시민들의 기이한 자괴감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자기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민주당을 지지했고, 자기 주변에서 아무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다수의 미국인들이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란다. 더구나 테러를 직접 당해본 자기네들도 민주당을 찍었는데, 세상에 폭탄 한 번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저기 시골 알라바마, 네브라스카, 아이다호 이런데가 테러 위협 때문에 공화당을 찍었다니 원 얼마나 황당한가.  스스로 미국 내 왕따라는 생각이 드는가보다. 물론 내가 일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센터 소장인 Reich는 자신의 상태를 "post-election trauma syndrome"이라고 표현했다. Ichiro 는 일본에 지진 난 것보다 이게 더 충격이라고 했다.

 

마이클 무어는 이래저래 이유를 대며 그래도 이번 선거가 희망적인 이유를 쓰기도 했다. 물론 외국인들은 이해하려 하지도 말라고 했다.

 

발빠르게, 뉴욕타임즈에는 민주당의  실책(?)을 비평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종교나 도덕, 총기 등 사회적인 의제에 민주당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어쩌란 소리인지 모르겠다. 민주당도 낙태에 반대한다고, 동성결혼에 반대한다고, 총기 허용에 찬성한다고 소리를 높이라는 소리인지, 아님 더욱 적극적으로 자유주의 가치를 옹호하라는 소리인지....

 

이번 선거는 Fact 에 대한 Faith의 승리라고들 한다. 선량하고(!) 정신나간(!) 미국 복음주의자들 덕분에 온 세계가 4년 동안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생겼다. 노골적인 계급적 반동성을 "종교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내공이 이미 우화등선의 경지에 오른 공화당의 노련함이 두려울 뿐이다.

과거에 세미나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역사는 단선형으로 발전하는게 아니라 나선형 발전을 한다고 했었다. 가끔은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도 있는 법이다.  다시금 신정일치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제 이 어둠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한번 계몽주의의 불꽃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팔자에 없는 르네상스 인이라니.... 

 

하긴.. 이렇게 미국 흉보는 것도 좀 부끄럽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삼위일체 꼴통(자본과 언론과 종교)들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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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어제 밤에 선거방송 본다고 논문도 안 읽어가서 수업시간에 횡설수설했다. 남의 나라 선거를 이렇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봐야하는 우리네 처지란....

울적한 마음에 (그렇다고 케리가 되었으면 좋아했을까도 의문이지만), 영화를 보러갔다. 극장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좌석번호가 없다. 손님은 달랑 네 명, 음질과 화면도 꽤나 훌륭한데.. 고맙기도 하지.

 

영화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시종일관 두 사람의 티격태격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그리고 아름다운 남미의 자연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

가장 가슴에 남는 장면은... 오토바이도 없이 추적거리며 사막(고원)을 걷다가 마주친 젊은 부부.. 그들은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추방당해서 일자리를 찾아 광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은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에게도 일자리를 찾아 여행 중이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침묵... 우린 그냥 여행을 위해 여행하는 거다..... 그 당혹스러움이란.... 다음날 광산 입구 땡볕에 앉아 노동자로 뽑히기(!) 위해 죽치고 앉아있는 남루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건만 삭막한 광산지대, 바위들 틈에 또다른 바위처럼 고정되어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생명있는 인간이 아닌 듯 싶었다. 체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가는게 당연했다.

 

그러나, 에르네스토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물 네 살의 고민을 스물 대여섯 살 혹은 서른살을 기념하여 (잔치는 끝났다고 장탄식을 하면서) 접어버리는 반면,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천식 때문에 고생하는 그 유약한 청년이 어떻게 게릴라 투쟁을 해나갈 수 있었는지....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휴머니스틱(!)한 장면들이 없지는 않았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예비의사의 갈등... 나환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 어찌 보면 너무 진부한 모습이지만, 이게 미국식 영웅주의 모험담이 아니라 실존했던 청년의 이야기였음을 떠올린다면 결코 그렇게 폄훼할 수가 없다. 그걸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속물성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다. 더구나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실제 사진들을 보고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영화 마지막, 알베르토 옹(ㅜ.ㅜ)의 현재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마음은 한량없이 무거워졌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이 영화를 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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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사인을 받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영어 시간에 강사인 매튜가 알려주기를 최근 하워드 진의 새 책 Voices of a people's hitory of the United States 이 발간되었는데, 기념 행사가 이 근처에서 열린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다. 매튜 왈, 자기가 이 양반을 진짜 존경하는데, 나이도 이제 일흔을 넘었고, 아마도 이번에 보는게 평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거라 했다. 듣고 보니 그럴거 같기도 하고, 실제 궁금하기도 하고.. 직접 가보게 되었다.

 

가보니 예상과는 좀 다른 행사였다. 대강당에서 열리는 하워드 진의 강연회인줄로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동네(Somerville)의 소극장(지역 행사가 많이 열리는 듯했는데, 규모는 대학로의 학전보다 조금 작은 정도..)에서 낭독회 겸 저자와의 대화가 이루어졌고,예상했던 방식의 "강연"은 없었다. 시작 무렵에는  바람잡이 겸 해설자의 한바탕 원맨쇼가 열려서, 정말 어리둥절(ㅜ.ㅜ)했다. 이거 무슨 시골 악극단 공연도 아니고...

 

이번에 발표된 책은 하워드 진이 직접 저술했다기보다 책 제목대로 미국의 민중운동사에 길이 남을 "민중"들의 목소리를 모아놓고 거기에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16세기부터 2003년까지 포괄하고 있으니 광범위하기도 하다. 여기에는 노예제 반대 투쟁에 나섰다가 법정에 선 흑인의 변론,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미국 IWW의 연설문, 최근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참전 군인의 편지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 집회나 문화행사 등에서 시 낭송을 하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산문을 읽어주는 행사는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는데... 워낙 연설문, 편지, 이런 것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낭송 자체가 주는 울림이 정말 굉장했다.

 

한편, 중간의 소개말과 강독이 끝난후 질의 응답 시간에 보여준 진의 태도는 차분하면서도 낙관에 차 있는, 조금 전의 격렬한 연설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 질문하는 것을 들어보니 웃겼다. 도대체 왜 미국인들이,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부시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냐...  우리만 궁금한줄 알았더니, 자기네들도 그게 진짜 궁금했었나보다. 진의 대답은, 부시의 어젠다로부터 benefit 을 얻는 사람이 있고, benefit 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시가 감세를 내세우는데, 그게 무슨 내용인지는 대개 소개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막연하게 자기 세금이 깎이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가 가진 낙관주의의 근원에 대해서 물어봤다. 낙관주의라고 부를수도 있겠지만, 진은 우리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이걸 낙관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운동이 결정할거란다. 부시를 찍느냐, 케리를 찍느냐가 아니라 백악관 밖에서 벌어지는 사회, 진보 운동이 사회의 발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전반적인 노예해방 운동의 맥락 속에서 링컨이 마지못해 실제적인 조치에 나설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낭송과 질의 응답이 끝나갈 무렵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하나, 정말 형형한 눈빛을 가졌구나

둘, 이제 곧 세상을 뜰텐데, 안타깝구나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 얼마 전에 자크 데리다... )

셋, 뛰어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직된 운동으로서 그는 무엇을 해왔을까?

넷, 미국 사회 진보 운동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보면 대개 머리가 희끗해진 68 세대로 짐작되는 이들... 물론 젊은이도 있지만... 심지어(!) 민주당만 지지해도 "radical"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미국 진보진영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들의 실천은 무엇일까...

다섯, 미국 공식(?) 역사 교과서는 현대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특히 셋째, 넷째 궁금증은 시간 여유가 생기면 좀 확인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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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바이러스?

일욜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알람 소리와 함께 몸부림을 치며 엎어졌다 뒤집었다 하기를 몇 차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아침 먹고... 이멜 확인할게 있어서 컴을 켰는데...

 

이상하게도, 컴의 시간이 내 손목 시계보다 한 시간이 느렸다.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것이, 별 일이네.. 내가 언제 건드렸나? 시간을 고치고 일거리를 챙겨서 사무실에 나갔다. 집에서 해도 상관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괜히...

 

근데, 사무실 컴을 켠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으니... 사무실 컴도 역시 한 시간이 느린 것이었다.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바/이/러/스.... 컴의 시간을 한 시간 늦추는 신종 바이러스임이 분명하다. 이런 기괴한 바이러스가 등장하다니.... 집과 사무실의 내 컴이 동시에 감염된 걸로 보아 common source infection.. 내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에 악성 스크립트를 통해 감염된게 틀림없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길한 생각이 나래를 펴던 중...

 

혹시, 내 손목시계가 틀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지금 진짜 시간은 몇 시일까? 뭐가 진실일까?

불과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실로 엄청난 시간 정체성에 혼돈이 오고야 말았으니...

 

급히 인터넷으로 세계표준시를 확인해보았다. (인터넷 없으면 어쩔뻔 했나?). 오늘 새벽으로 미동부지역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한 시간이 늦어진단다. 앗, 그렇지...

 

컴퓨터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내 머리 속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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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2

* 이 글은 최용준님의 [이중성]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최용준 샘은 여기에 덧붙여 레빈스에 대한 글에 아래와 같은 덧글을 달아주셨다.

 

"샘이 만나셨다는 그 분, 신영전 선생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결론은 옳은 얘기인데요, 문제는 늘 그 Political movement가 구현되는 방식과 방향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끔씩은 고민되는 운동가이자 연구자로서 이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한데, 지금 그 세계를 위해 나는,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아래서 말씀하신 Kaplan의 사회 역학의 미래에 관한 글도 참 궁금하네요. 사실 전 한편으로 <사회 역학>에 관한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요. 2004/10/30"

 

이전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권력과 지성인"을 읽고 어쩌란 말인가 고민한적이 있었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고민...

그는 단호하게 쓰기를, 자신은 여태까지 학계에 몸을 담고 살아오면서 정부 위원회니 자문위원이니 이런 거를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단다. 그는 "co-opt" 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번역자는 이걸 "흡수고용"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것 같다(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물론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려갔단다.

 그는 지성인의 독립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으며 기회주의, 침묵, 혹은 애국심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었다. 그는 지성인들이 좀더 아마추어적으로 살아가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근데,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사이드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정부에서 발주하는 각종 프로젝트나 자문위원회에 곧잘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물론 명예나 어떤 사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이렇게 해서 하나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저히 어찌해볼 여지가 없이 돌아가는 미국의 시스템에 비해서 그래도 우리가 참여해서 무언가 좀 바꿀 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믿음이 있는게 사실이다 (나만 그런가?).  여기에 덧불여 생존(^^)의 문제도 부정할 수는 없지. 사이드나 되니까 자기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지, 우리야 어디 그런가 ㅜ.ㅜ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연구자, 소위 전문가들이 "아마추어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형태일까? 이전에 올렸던 포스트(항상 깨어있기)에서도 그러한 고민을 잠깐 이야기했었다. 더구나 일(직업) 따로 가치관 따로가 아니라, 일의 내용이 바로 삶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한편으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롭기도 하다)

 

 나 자신이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현실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좋은 연구결과를 많이 발표한다? 대중을 위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다? 각종 정책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 흑... 진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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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생태학...

예과 때, 이런 과목이 있었다. 누가 가르쳤는지도 기억난다. 그 때도 좀 미심쩍기는 했었지만 전혀 생태적이지(?) 않은 사람이고.. 그 이후로 이 명칭이 웬지 후져보이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긴, 학생 때 특히 예과 때 수업이 재밌거나 감동적인 적이 있었나 뭐... 

 

이번 Fall2 시즌에 Human ecology라는 강의를 듣고 있다. 번역하면 인류생태학인데, 같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가...

Richard Levins 는 오랜 기간 동안 푸에르토리코와 쿠바에서 생태주의 운동을 벌여왔단다. 물론 생물학, 통계적 방법론과 생태주의 철학에 대한 학문적 업적 또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온갖 철학적 성찰들이 오랜 동안 곰삭은 끝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는게 그냥 느껴진다. 그리고 내 머리 속이 정말 복잡해진다. 수업 두 시간 끝나고 나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내가 그동안 쥐뿔도 모르면서 eco-social epi 를 떠들어댔던게 무지하니 부끄럽게 느껴진다.

 

학기가 끝날 때면 항상 일부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한단다. 수업의 관점이 너무 편향되어 있다고... 백발이 성성한(수염까지) 노학자는 맞는 소리라고 이야기했다.

 

오전에 연구실로 잠깐 찾아갔었는데, 그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어떤 지점에서 고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나 스스로는 고민이 정리가 안 되서, 그리고 그걸 영어로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해서 답답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독심술? 나의 이런저런 횡설수설과 초절정고수의 몇 마디 조언이 오고간 후... 결국 실천은 political movement 를 통해 가능하다고,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끝을 맺었다.

 

소위 생태적 관점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가치중립적 뉘앙스 (마치 인권이나 윤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찜찜하게 만드는).. 하지만 진정한 생태주의는 그런게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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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보건의료개혁...

사실, 지금 보고서 땜시 정신이 없는데 시간 지나면 까먹을 것 같아서 몇 자 끄적..

 

요즘 하버드 보건대학원에 와 있는 동아시아(한,중,일,대만) 펠로우들이 모여 2주에 한 번 정도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첫 시간에는 김창엽 샘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의 역사와 변화를, 둘째 시간에는 대만의 Rachel이 single payer system을 특징으로 하는 healthcare reform을, 그리고 오늘은 중국의 Lyning 이 역시 최근에 이루어진 healthcare reform 에 대해 발표를 했다. 

이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동아시아에 정말 이 정도로 무지했나 하는게 마구마구 반성이 되는 그런 시간이다. 돌아보면, 미국이나 영국의  질병 분포, 의료제도에 대해서는 어쩌구저쩌구 (물론 그것도 잘 모르면서) 하면서 막상 붙어있는 옆나라, 그리고 상당부분 경험과 역사를 공유한 사회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도 모를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양의학 교과서와, 서양의 사회과학 이론들을 고금의 진리로 공부해온 탓이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어쨌든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중국의 상황은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놀란 건 아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중국의 붉은 별", "한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 "모순론" 과 아니면 구음진경, 규화보전 따위가 아니던가...

 

 



중국혁명이 일어난 이후  상당기간 동안(90년대 후반까지), 소위 의료보험은 정부 피고용인들- 즉, government officials & normal workers (국영산업체에 정식으로 고용된 노동자를 이렇게 부른단다 ㅜ.ㅜ 그럼 abnormal worker는 뭐야..)에게만 적용이 되었단다. 인구의 15%...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socialization medicine"이란다. 그리고 현재는 인구의 50% 미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혁명 직후 거의 80%)은 그냥저냥 방치되다가 68년에야 협동조합 형태의 보건의료체계(양과 질에서 모두 부족한)를 만들고 우리가 예방의학교과서에서 배웠던 "맨발의 의사"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머지 인구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어린이, 노인, 여성, 그리고 정식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아무런 사회보장 수단이 없었단다. 놀랍지 않은가... 그 힘든 대장정을 끝내고 농민과 노동자의 힘으로 건설된 나라에서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별로 사회적 요구가 없었단다 (사실 이건 대만, 한국도 마찬가지다. 건강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된 적이 없고, 건강보험제도의 변화도 상당부분 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았나. 물론 대만과 한국 모두 특별한!!! 사연이 있었지... 체제 경쟁의  파트너가 있었으니 ㅎㅎㅎ).

 

그러나... 세월은 흘러흘러 socilization medicine 의  부담이 커지고, 민영 기업들이 증가하고, 또 이들이 세금 내는 걸 싫어하고, 사람들은 도시로 밀려오고(farmer worker: 농촌에서 도시로 온 이주노동자, 대개 임시직, 불법적 지위)... 여차여차 하면서 결국 중국도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으니....

 

98년에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한 개혁은 고용주들이 보험료의 80%를 내고, 피고용인들이 20%를 부담하는 "건강보험"의 형태를 띈다.  이 돈을 정부가 모두 모아서, 일부는 savings account (1년에 1인당 100불)를 할당하여 이걸로 외래 이용을 하게 하고, 나머지는 병원 서비스의 급여에 할당한다. 한편, 농민들을 위한 제도도 바뀌는데 중앙정부, 지방정부, 농민 이렇게 3자가 보험료를 내서 "New countryside Health system"을 운영하기 시작했단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급여의 범위와 폭이 많이 넓어졌단다.

 

바뜨...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 지출은 줄어만 갔고(2001년 현재 37.2%),  당연히 보건의료기관들은 알아서 살 길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약 산업에 의한 로비와 리베이트가 판을 치게 되었고, 의사들은 이들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 좀더 고가의 서비스와 고가의 약을, 환자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되었단다 (다른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잘 이해못했는데, 나와 김창엽 샘은 단박에 이해해버렸다. 왜일까 ㅎㅎㅎ).  어디 그뿐이랴.. 민간 기업주들이 보험료 못 내겠다고 사보타지를 하고, 정부도 실업률 상승을 우려하여 보험가입을 강력히 쪼아대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지방 정부조차도 농민을 위한 보험료 부담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일반 대중은 물론 특히 농민, 실업자, 아동과 부양 가족들(중국은 보험 가입이 개인단위라서 다른 부양가족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단다)은 보건의료 체계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단다. 이게 reform 이다. .....대개,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어린이나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그것이 무늬만일지라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너네 나라 진짜 웃긴다고 말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민의 태도가 아닌지라... 발표 잘 들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나의 감정은 좀 복잡하다. 허나, 영어 수업에 가야할 시간인고로 나중에 다시 컴백하여 정리해야겠다. 며칠 전에는 미국의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그에 대해서도 좀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Kaplan의 사회역학의 미래(?)에 대한 논문도 한국 상황과 관련하여 좀 정리해야 하는데... 일단... 이번 주는 보고서의 한 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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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편지

둘째 조카 우재 생일이라 카드를 보냈더니만 답장이 왔다.

물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기 때문에 (다섯 살), 일곱 살 누나가 대신 쓴 것이다.

 

개구리고모카드보내조서고마워
개구리고모는왜바다에서안살아  우재말.

 

내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울 오빠는 나를 (청)개구리로 불러왔다. 그런데 결혼하고, 조카들이 생기고 나서도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조카들은 나를 개구리 고모라고 부른다. 바쁠(?) 때는 그냥 개구리라고 한다 (ㅜ.ㅜ) "야.. 개구리다 ~~ " 이건 내가 조카네 현관문을 들어서면 아이들이 너무 반가워하면서 지르는 소리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내 앞에서 한번씩 노래를 부른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살았니 죽었니.. 살았닷!"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꺄르르....

 

그런데... 개구리가 바다에서 산다고 생각하다니... 도대체 새언니와 오빠는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것일까?

 

아.. 보고 싶은 조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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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말의 우승

두어 시간 전부터 바깥에서 괴성들이 자꾸 들린다 싶더니만... 갑자기 메신저에 있던 친구가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날린다. 한국은 정말 뉴스가 무지하니 빠르다. 뉴욕타임즈에 들어가보니 아직도 9회 기사가 올라있던데 ㅎㅎㅎ

이어서 자동차 경적 소리에 사람들 괴성에 죽을 맛이다. 텔레비젼을 켜보니 생 난리다.

월드컵의 악몽(?)이 떠오른다.

 

저 관심과 저 열정을 반만 다른 곳(!)에 투자해준다면, 전세계인들이 좀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내가 지나치게 정치편향인가?

그렇담.. 다시 생활로 돌아와서... 우승도 했다는데 기념으로 따뜻한 빨간 양말 한켤레씩 나눠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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