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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계급..?

  • 등록일
    2009/08/11 13:18
  • 수정일
    2009/08/11 13:18

음...

어렸을때

그러니까 내가 초등 5학년일때 우리집은 정육점을 했다.

시골동네라서 정육점 겸 시골 구판장 겸 음식점이랄까 ?

 

당시 소작농이었던 우리집은 사는것이 녹녹치 않아서

언제나 이런저런 일들을 벌리시곤 하셨는데

어느날 아버지께서 큰 맘 먹고 정육점을 시작하신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신다고 하더니 돼지 한마리를 사 오셔서 경운기에 싣고

청주 도축장으로 향하셨다.

왕복 5시간은 걸리는 길을 경운기로 탈탈탈 다녀 오시면

돼지고기랑 돼지부속이랑 잔뜩(?) 가져 오셨고

그것을 하루종일 칼로 부위별로 작업하시어 판매하셨다.

 

문제는

그렇게 청주도축장을 매주 갔다 오시는게 힘드셨던 모양이다,.

(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아버지는 잔머리(?)의 대가이시다.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지만 조금만 편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하신다.

그것이 불법이든 아니든....ㅎㅎ)

 

그래서 그러셨는지 몇달만에 드뎌 우리 아버지가 집에서 직접 도축을 하셨다

아 물론 불법이다.
그래서 한 주는 도축장을 다녀오시고 한 주는 집에서 밀도살을 하시고...

뭐 시골동네라서 단속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집에서 밀도살을 하실때마다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초등5학년인 나였다.

 

우선 울고불고 난리인 돼지를 잠깐 기절시키고 소위 멱을 따면

그 상처에서 피가 엄청나게 나왔다.

세수대야를 가져다가 그 피를 받는 일은 언제나 나의 역할이었다.

(그 돼지피는 선지가 된다...ㅎㅎ)

 

문제는 내가 너무 겁이 났다는 거다.

일요일마다

벌벌벌 떨면서 그 피를 받는 다는 것은 어린 나이의 나에게

진짜로 죽기보다 무서운 ....그래서 몇 달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곤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피를 받아내면 아버지가 칼로 부위별로 헤체를 하시고

그러고 나면 내장을 닦는 것은 나와 누나의 역할이었다.

오전 10시쯤 내장을 빨기(?) 시작하면 거의 오후 3-4시 쯤 끝나는 고된 일이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눈물만 그렁그렁하면서도 끝까지 시키는 일은 했었던 것 같다...ㅎㅎ

 

그렇게 내장을 다 닦고나면 밤에는 어머니랑 순대를 만드는 일들을 했었다.

그때 쯤이면 누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방에 들어가 버리고

그래서 화내시는 부모님 눈치보다가 결국은 나만 잡혀서 일하곤 했었다.

뭐...순대만드는 일이야 어머니 도와서 돼지 내장을 잡고만 있는 단순한 일이어서 어렵진 않았지만

문제는 새벽부터 시작된 일들이 저녁때 쯤이면 거의 나를 녹초로 만들곤 하였다.

 

그렇게 지옥같은 일요일을 보내고 나서

월요일 학교가면 언제나

난 놀림감이 되곤 하였었던 것 같다.

뭐 다 그렇지만 백정의 자식이니 하면서 놀려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몸에서 돼지피 냄새가 진동한다고 놀려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일요일에 하는 돼지 도축일보다도 더 끔찍한 마음이 들었었던 것도 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난 소작농의 자식이라는 소리에 둔감하다.

뭐...원래 그러니까........ㅎㅎ

하지만 그 백정의 자식이라는 말은 언제나 나를 화나게 했었던 것 같고

그런 것들로 아버지를 숱하게 원망했었던 것 같다.

 

물론 돼지피를 받는 일도 싫었지만

학교에서 놀림당하는 것이 더 싫었었던 거다.

 

그래서

어느날 큰맘 먹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정육점 안하면 안되냐고....

 

그 날 아버지는 말없이 술을 무척 많이 드셨던 것 같다.

그렇게 술드시고 주무시는 사이에

난 어머니에게 잡혀서 무지하게 맞았다.....ㅋㅋ

부모 맘도 모르는 후레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ㅎㅎ

 

뭐 그랬다는 거다.

그 이후로도 중 3때가정

우리집은 정육점을 했고

언제나 한주는 도축장에 한주는 집에서의 밀도살을 이어 갔었다.

 

생각해 보면

소작농이나 백정이나 뭐 별반 다르지 않은 궁색한 살림이었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백정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을까 ..?...싶다.

 

어렸을때 부터

애 늙은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아버지 혹은 집안일에는 무덤덤하게 시키는 일들을 묵묵히 하던 나였었는데

그 날 딱한번 대들었던 기억은

언제나 생생하다.

후레자식이라....ㅎㅎ...그 날 뒷동산에 올라서 많이도 울었었는데....ㅎㅎ

 

우리 집은 여전히 가난하다.

믿지도 않으셨겠지만 장남이라는 나란 놈은

돈벌이보다도 다른 일들에 더 많은 신경을 쓰면서

딱히 부자로 살 생각도 안하고...그저 몸뚱아리로 먹고 산다.

그러다 보니 늙으신 부모가 여전히 소작농으로 먹고 사신다.

 

아 !! 물론 딱히 풍족하거나 부자로 살아 본 적이 없는 관계로

가난하다는 것이 불편하지도 않다....뭐 언제나 그랬으니까....ㅎㅎ

 

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백정]이라는 소리에 민감했었던 것은

그것이 왠지 죽음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죽을때까지 시뻘건 피를 쏟아내는 돼지를 보면서

그 [백정]이라는 소리가 마치 내가 그 피를 뽑아내는 듯한 생각을 나에게 주었던 듯 싶다.

그런 피의 이미지때문에 끔찍히도 백정의 자식이라는 말이 싫어서

학교다니는 내내 그 말만 나오면 동네친구녀석들과 대판 싸우곤 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이야 무슨 생각이 있었겠나 싶다.

다만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 한 것일 뿐일텐데....ㅎㅎ

 

[백정]의 자식이라.....

음.....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 일...

내가 혹은 우리 집이 언제나 처해있는 그저그런 경제적 상황일 뿐인 일이

어느 순간 나의 출신성분처럼 낙인찍힌다는 것이 싫었었을까 ?

아마도 실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질 못할 거라는 마음이 더 강했었던 것 같다.

난 절대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 시뻘건 피와 함께 나를 괴롭혔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유치하고 못난 던 것이겠지....ㅎㅎ

 

지금은

덤덤하다.

아버지가하시는 일이라는 것

어차피 먹고살기위해서 하시는 일이고

뭐 이젠 나도 다 커서 그런 일들에 둔감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ㅎㅎ

 

다만 그 시뻘건 피는....^^;;

난 영화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오는 영화들은 보질 못한다.

무섭기도 하고...싫기도 하고.....ㅎㅎ

뭐 그 정도의 후유증은 있는듯 하다.

가끔 돼지 피를 받는 어릴때 나를 꿈에서 보기도 하지만.....ㅎㅎ

 

비도 오는데

아버지는 잘 계시는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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