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버지.....가출하시다...^^::

  • 등록일
    2009/02/23 15:20
  • 수정일
    2009/02/23 15:20

아버지가 가출했다.

 

밤일을 끝내고

아침부터 술한잔에 느긋해있다가

점심때쯤 어머니에게 아버지 가출 소식을 들었다.

뭐랄까.....울컥하기도 하고...승질도 나고.....ㅋㅋ

 

생각해 보면 불쌍하시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언제까지 저러실까 싶기도 하고.....^^;;

 

한때는 우리 아버지..... 대단하셨던 것 같다.....부러울 정도로.....^^

 

내가 아는 것도 없이 학생운동한다고 껍죽댈때도

그래서 생전 처음 경찰서라는 곳에 잡혀가 벌벌 떨때도

아버진 내가 학생운동한다는 것 보다 경찰서에서 벌벌떠는 등신(??)같은 모습을 욕하시구

아들 앞에서 자랑스레 이런저런 잘난척하시던......잘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골 농부로만 살아오시던 아버지가

서울대 나오신 후배.....그것도 중앙의 전농에서 정책국장인가 뭔가를 하시던

그야말로 높은 자리에 있다가 내려오신 그 잘난 후배를 위해 밤낮 뛰어다니시던 때가

어쩌면 아버지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래저래 촌동네에서 없는 살림에 발벗고 나서기 쉽지 않으셨을텐데도

뭘그리 신나하시던지........ㅋㅋ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한 철, 한 시절의 그리움(?)인것 같다.

 

당시 농민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것 같던 그 잘난 아버지 후배는

몇 년째 선거판을 기웃거리며 없는 사람들 들쑤셔 놓다가

나중엔 그 잘난 보수여당까지도 기웃거리고...... 그야말로 정치꾼이 되어 이리저리

사람들 망가뜨리곤 했던 그 잘난 서울대 후배, 그 잘난 정책국장님.....^^

 

(  기억에 이날 아버지는 진탕 술먹고 들어오셔서 며칠째 끙끙 앓으셨던 것 같다....그 잘난 후배때문에......

그덕에 그 잘난 학생운동한답시고 돌아다니던 내가 덩달아 혼났다.....다...사기꾼같은 놈들이라구...!!)

 

그 분은 이제는 보란듯이  잘나가는(?) 영농회사 사장님이 되셔서 아버지와는 담쌓고 지내시구

지금도 사회단체 기웃...??...아 ! 시집도 내셨단다.....ㅋㅋ..ㅋㅋ....우리집에도 있던가 ......??...ㅎㅎ

뭐 !! 어쨋든 그 분이라도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있으니 다행이기는 하다....ㅎㅎ

 

아버지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시고

그러시다가......그러시다가.......오토바이 사고로 

뇌의 절반을 잃으셨다.

삶의 절반을 잃으셨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그 잘나신 자존감...자신감을 잃으셨다....!!

 

어머니를 알아보는데 3년

다시 자식들 알아보는데 2년

그렇게 서서히 되돌아온 정신이......이제 장애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돌아온 정신이...

유독 ...아버지를 지탱하게 해준....

가난하지만 언제나 활기차고 생생하셨던 그 잘난 아버지를 지탱해준...

그 자신감과 자존감만 복구하질 못했다.

 

정신이....정신이....모든 기억을 제자리로 돌려 놓았으면서도....

왜 유독 그 부분만 놓치고 왔을까 ??? 

 

일년에도 몇번씩

어머니의 사소한 한마디.....아버지의 그 잘나신 존심을 건들라 치면

먹으면 죽는 다는 소주 몇잔 드시고 가출을 하신다....

 

처음엔 하루종일 온가족이 찾으러 다녔었는데

이젠 우리도 만성이 되었는지 곧 돌아오시겠지 하며 한숨만 쉬고 있다.

아 !! 물론 어머니는 우시고.....나는 물끄러미 어머니 우는 모습만 쳐다보다가....

뭐 그러고 있다......승질내기도 그렇고.....울기도 그렇고....

더더구나 아버질 원망하기도 그렇고......뭐... 모든 것들이....그렇다......ㅎㅎㅎ

 

아버지가 복구하지 못하신 그 자존감이라는 건

어쩌면 아버지 생에서 번쩍하며 충만한 감응들로 뒤덮힌 신천지 였을까 ??

 

당시 우리동네 최초로 농민회에 가입하시고

(??....실은 우리동네에서 농민회원 이었던 분은 아버지가 유일하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다들 윗동네....서울대출신 후배는 아랫동네....ㅋㅋ)

한국의 농촌현실을 바꿔보자고 막걸리 몇잔에 밤새 이야기 나누시던 그 때

경운기 몰고 도로를 막고 면사무소가서 대판 싸우시고

나중엔 서울대 후밸 위해 밤낮으로 선거운동하러 다니시고....

당시의 환한 아버지의 얼굴........그 때의 그 목소리......그 때의 그 웃음.....

 

이제는 어눌한 아버지 얼굴의 어느 한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때의 그 생기들.....!!

 

당시 아버지의 친구들은 이미 다 잊고 지내시는데

왜 우리 아버지는 당시의 당신을 아직도 움껴쥐고 계실까.....??

 

왜 가끔씩 정신을 놓을때마다

유독 당시로 돌아가시고......그래서 슬퍼하시고.....그래서 정신줄을 더 놓으시고.....

이제 편하게 쉬시라는 자식들도 싫어하시고

그만하라 말리는 어머니를 미워하시고

그러면서도 당시의 당신을 절대 놓으려 하지 않으실까 ??

 

 

몇 분은 광풍처럼 몰아닥친 도박으로 고향을 등지시고

몇 분은 다단계로 쫓겨나시고

몇 분은 그 잘난 서울대 후배처럼 영농회사 차리고 보란듯이 돈자랑하시며 사시는데

왜 아버지는 여전히 그때의 그 감응들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것일까 ??

 

 

몇년 째 아버지에게 시달리며 나름 생각해 본것은

어쩌면 아버지는 많이 늙고 많이 약해져서 그렇다는 생각이다....^^

안늙고 약해지지도 않을 것 같은 아버지가

사고로 순식간에 잃어버린 신체의 일부처럼

순식간에 늙어버리신듯......................!! 아니면 아버지의 남아있는 뇌의 반쪽이

그 순간에서 멈추어 버렸든지......!!

 

얼마전 읽은 책의 내용에

나쁜 아버지는 없고 단지 약한 아버지만 있다고 하더라......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약해졌나 보다...

 

한나절 동안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몸이 달아서 모든 여관과 모텔들, 아버지의 지인들을 돌아다니면서도.......!!

우두커니 아버지의 빈방을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몸이 지치는 만큼 짜증이 울컥울컥 쌓이면서도.......!!

못내 아버질 미워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늙어버린 아버지가 못내 서럽기때문일까.......?

아님 8년동안 앓고 있는 아버지 수발에 더 이상 못하겠다고 우시는 어머님 때문일까.......?

 

아님

아님 내가

아님 내가 내가

어쩌면 당시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걸까 ...?

아버지가 놓지 못하듯이 나도 당시의 아버지를 보내드리지 못하기 때문일까 ?

내가 어렸을 때 잠깐 훔쳐 본

아버지의 그 밝게 빛나는 감응을 공유하기 때문일까...?

 

다시 아버질 찾으러 가봐야 겠다....!!

뭐......몇달전 처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오시겠지만......그래도 이렇게 넋놓고 지낼순 없으니......읍내라도 가서 찾아봐야 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