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천상의 화원 8월 곰배령에 가다.

우여곡절과 악전고투 끝에 곰배령에 닿았다.
다행이 날씨는 개었고, 곰배령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고개마루에 수만평 넓은 초원을 이고 있는 곰배령은 특히 8월이 되면 초원이 온통 꽃밭으로 변해 「천상의 화원」으로 불린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철이 약간 지난 감은 있지만, "절정"이라고 말해도 누가 이의를 달지 못할 정도로 온통 황홀한 꽃밭이었다.

 

8월의 곰배령은 온통 꽃밭으로 천상의 화원이라는 별칭 그대로이다.


 


작년 가을 단풍을 보려고 이곳 곰배령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단풍 든 원시림도 감탄의 연속이었지만 8월의 곰배령 또한 비경이라는 말에 8월에 꼭 다시 와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어찌 됐든 다짐은 현실이 되었다. 8월 21일 일요일 우리는 곰배령에 올랐다.

 

곰배령 가는길은 작년과 달리 순탄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갈지말지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막상 가기로 결정하자 멤버가 짜지지 않았다. 이준 위원장의 차량에 단둘이 달랑 가기에는 경비 등 부담이 너무 크다. 막판까지 내리는 비 또한 여행을 망설이게 했다.

 

'단둘이라도 갑시다'
이준 위원장은 결정을 내리자 단호해졌다.
신권호가 동참하기로 했다는 전화가 왔다. 이어 이경숙 씨가 뜸금없이 전화를 했다.
'양희는 안 가요.'
'예. 학교 나가야 된데요.'
'양희 가면 따라가려고 했는데. 잘 다녀오세요.'

 

미천골 미인송. 이보다 굵은 소나무들이 지천이다.

 

전화를 끊고, 생각을 바꿨다. 꼭 새벽에 출발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12시 이전에 끝난다고 한다. 잘 됐다. 이준 위원장에게 전화하고, 이경숙 씨에게 전화하고, 아내에게 전화하여 약속시간을 토요일(20일) 11시 화정 아내 학교 앞으로 정했다.

 

토요일 오전 11시, 일행은 정시에 약속장소에 모두 모였다. 출발이다. 전날까지 비를 흩뿌리던 하늘은 얇은 구름만 있을 뿐 화창하게 개었다.
당초 계획은 곰배령 밑에서 텐트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가 오락가락하여 이준 위원장이 몇 시간을 노력해서 인근 미천골휴양림에 방갈로를 하나 잡았다. 우리는 우선 미천골로 향했다.

 

도로는 예상보다 밀렸지만 들뜬 우리들은 개의치 않았다. 서울을 벗어나 양평으로 가는 강변길도, 양평에서 홍천으로 가는 들판길도, 홍천에서 서석으로 이어지는 산골길도 모두 아름다운 풍경 그대로였다. 아름답고 안온한 풍경이다.

 

우리가 머문 미천골 휴양림 내 방갈로

 

서석면소재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장기가 한창 돌 2시에 들어간 장터 식당에선 주문한 지 30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아 '왜 이렇게 늦지' 하는 찰나 아줌마가 와 '손님들 뭘 드시겠어요?' 다시 묻는다. 오 마이 갓!

 

서석에서 남면을 지나는 길은 산록에 짧게 자리잡은 밭들과 냇물과 길이 수평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밭들 위로는 울창한 수림이 이어지고...
이윽고 구룡령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그 좋던 날씨가 고개를 앞두고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구룡령은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고개로 정상의 해발고도는 무려 1,060m이다. 고개를 오르며 오른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기 협곡이다. 맑은 날씨에 경치가 그만이라고 하는데, 비안개에 쌓인 협곡은 그것대로 운치가 있고, 고개이름처럼 어디선가 용이 승천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고개를 오르고, 넘고, 미천골에 다가가도록 빗발은 세어지다 가늘어지다 반복한다. 빗발의 굵기에 따라 우리는 기대와 실망을 오갔다.

 

미천골 계류/ 이슬비 속으로 시원한 새벽바람이 섞이고, 수량 풍부한 계류는 새벽숲의 정적을 깼다.

 

이윽고 미천골휴양림 방갈로에 도착했다. 텐트를 친 사람들도 많았지만 비속에서 텐트를 친다는 건 무리다. 우리는 4평 작은 방갈로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오후 5시가 넘었다. 우선 짐을 풀고, 먹을거리를 내놨다. 이번 여행을 주도하고, 전날 먹을거리 장을 본 이준 위원장은 이번 여행의 컨셉이 '먹는 여행'이란다. 좋다. 먹자.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숯불을 방안으로 들일 수 없어 문가 작은 차양 밑에서 고기를 구웠다. 누군가는 고기를 굽는 일을 해야 했는데, 신권호가 그일을 자원했다. 우리는 그를 '마당쇠' 놀리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마당쇠는 고기를 최대한 맛있게 굽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숯불에 잘 구워진 양질의 고기는 산속에서 더욱 맛을 뽑냈고, 듬뿍 사온 각종 수제 쏘시지의 맛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술병을 꺼내고 잔을 꺼냈다. 비는 여름날 장맛비처럼 꾸준하게 내렸다.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다. 술이나 마시자. 술을 못하는 아내와 성연이를 빼고는 채우기 바쁘게 잔을 비웠다.

 

어느덧 600ml 소주 피티 3병, 맥주 큰 피티 3병이 날아갔다. 고기로 배를 채운 우리들은 배불러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술도 떨어질 즈음은 이미 취기도 충분히 올랐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잠 이외에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아쉬움도 없었다.

 

일어나서 보니 새벽6시다. 모두 잠에 떨어져 있다. 전날 먹은 술기운 때문인지, 고단해서인지 대부분 코를 곤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내린다. 나는 불바라기 약수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슬비 속으로 시원한 새벽바람이 섞이고, 수량 풍부한 계류는 새벽숲의 정적을 깬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상직폭포/ 높이 70m의 폭포지만 폭이 좁아 아담한 느낌을 준다.

 

상직폭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정자에 올라 상직폭포를 바라본다. 높이 70m의 높은 폭포지만 여러 단으로 떨어지는 데다 폭이 좁아 아담하다는 느낌을 준다.

 

돌아오니 성연이가 깨어있고,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침을 준비하려니 성연이도 함께 하겠단다. 우리는 아침'마당쇠'를 자임하면서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버너에 앉혔다.

 

아침을 먹고 나니 빗방울이 오히려 굵어졌다. 난감하다. 깊은 산속이라 핸드폰은 모두 불통이다. 공중전화를 찾아 곰배령에 먼저 가 있는 산오리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어찌해야 할까. 곰배령 '꽃님이네 집'에 전화하려 114에 물으니 그런 이름 없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인근 방태산 휴양림에 전화를 하니 그곳도 비가 온다고 한다.

 

'곰배령도 비가 오겠지요.'
이준 위원장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우리들은 우산을 들고, 우비를 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상직폭포를 지나 그 위까지 올랐다. 빗발은 점점 세어진다.

 

비는 끊임없이 내렸고, 지친 여행객들은 널부러져 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온 우리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술도 떨어지고, 4천만 민중의 놀이인 고스톱은 좋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화투조차 없다. 우리들은 맥없이 널브러져 있다가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곰배령으로 넘어갑시다.'는 이준 위원장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후다닥 라면을 끌이고, 먹었다.

 

짐을 싸서 미천골 긴 골짜기를 나오는 내내 비는 오락가락한다. 빗줄기가 엷어지면 우리는 '그쳤다'하고 현실을 희망으로 바꿔 외쳤다. 골짜기를 어지간히 빠져나오자 핸드폰이 된다. 문자와 음성이 여러개 왔다. 곰배령에서 산오리가 보낸 것이다. 민박집 위치를 알려주는 메시지다. 10시 34분이라고 발신시간이 찍혀있다. '음, 그렇다면 그곳도 비가 와서 민박집에 죽치고 있군'하고 나는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골짜기를 빠져나오자 비가 그쳤다. 그뿐이 아니다. 도로 아스팔트가 말라있다. 그럼 이곳은 비가 안 내렸다는 말인가. 우리는 믿어지지 않았다. 불과 5km, 아니 바로 코앞까지 비가 내리는데 이곳은 오지 않는다.

 

곰배령 추장과 그 집앞에 핀 달맞이꽃

 

기름도 넣을 겸 주유소에 들러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 비 왔나요.'
'아니요.'
'아~~~.'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졌다. 세상에 이럴 수가.
조침령(鳥寢嶺)을 넘기 전 마지막 가게를 지났다. '비옷을 살까요' 묻는 이준 위원장에게 '그냥 가요.'하고 난 경쾌하게 대꾸했다. '풀소리가 책임져요.' 이준 위원장은 밝은 협박에 난 '예'하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책임을 못 지면 또 어떠리.

 

조침령 비포장길은 양수발전소 건설로 헤집어놓은 데다 빗물에 쓸려 울퉁불퉁하다. 거의 수직으로 솟은 산줄기를 길은 갈지자를 수없이 그리며 올라간다. 빼꼼이 보인 정상 쪽으로는 구름이 걸려있다. 불안하다. 비를 머금은 구름같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정상이 가까워지자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또 다시 실망이다.

 

곰배령 입구/ 가을이 되면 온통 불바다가 된다.

 

고개마루에서 산오리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여전히 불통이다. 음성을 남겼다.
이왕 내친걸음이다. 우리는 곰배령으로 향했다. 그런데 불과 몇백 미터 가기도 전에 비가 그친다. 하늘에서는 파란 하늘이 내비치기도 하고. 산오리가 묶었다는 민박집 주인은 일행이 이미 11시쯤 떠났다고 한다.

 

곰배령은 출입증을 받아야 오를 수 있다. 꽃님이네 집 앞에서 감시인이 차를 막는다. 우리는 산오리를 통해 신청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시인에게 그런 사실을 밝혔더니, 감시인은 이름을 묻고는 들여보낸다. 산오리가 당부를 해놨나 보다.

곰배령 입구에 있는 추장네 가게에 들렸다. 추장은 변함이 없다. 주차장에 산오리 차가 있다. 지금 저 산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원시림 속으로 난 곰배령 가는 길은 강선마을까지는 평지나 다름없이 평탄하다. 작은 들꽃을 카메라에 담던 아내는 숲길에서도 꽃만 보면 걸음을 멈춘다. '더 올라가면 (꽃이) 더 많아.' 하자 그때서야 아내는 카메라를 접는다.

 

강선마을을 지나며 길은 등산로다워진다. 길은 조금씩 가파라지고, 돌부리 거칠게 나온 길은 아이가 가기엔 험하다. 성연이는 힘들다고 불평을 시작한다. 그렇게 쉬지도 않던 개구짓도 못하고 말이다.

 

곰배령 꽃밭/ 멀리 보이는 구름이 실제로는 바람에 빠르게 넘어간다.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곽장영씨 아시죠.'
'네.'
산오리의 '역사와 산' 동료들이다. 그러고 앞을 보니 산오리가 있다. 산밑에서 만나길 기약하고 산을 올랐다.

 

성연이가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지점에서 양갱 따위를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냇물 돌을 들추니 꼬마 가재가 있다. 작은 크기에 실망한 성연이가 더 잡자고 하는데 늦어질까 봐 마음 급한 난 길을 서둘렀다.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지친 성연이를 데리고 오르는 내겐 길이 지난 가을보다 두배도 더 길어 보였다. 애 힘도 덜어주고, 재미도 줄 겸 가지고 간 우산을 꽁지 삼아 기차놀이를 하면서 오르지만 아이의 보챔은 더 잦아진다.

 

곰배령 꽃밭

 

이윽고 나무들 키가 작아지고, 정상쪽으로 밝은 하늘이 점점 낮아졌다. 곰배령이다.
천상의 화원. 들꽃으로 가득찬 8월 곰배령 초원은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멀리 산등성이로는 골바람에 구름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춥다.

 

이준 위원장은 팥배나무 밑으로 가보자고 한다. 지난 가을 이곳에 올랐다 하도 추워 바람이 잠잠한 팥배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은 기억을 떠올렸을 거다.

가까이 가보니 팥배나무는 사실은 돌배나무였다. 이파리가 달려 있으니 돌배나무임이 확연하다.

 

곰배령 돌배나무 아래서 이준 위원장과 성연이/ 심술꾸러기 성연이는 사진찍는 것을 방해하려 우산을 펴고 있다. 메롱이다. 이놈아~

 

돌배나무에 자라는 이끼와 기생식물이 연륜을 느끼게 한다.

 

사진을 찍고 난 성연이와 함께 길을 서둘렀다. 힘들다고 주저앉은 성연이를 일으켜세웠다.
'아빠가 업어줄게. 어른 눈높이에서 보면 꽃밭이 더 멋있지 않을까?'
'응. 그런데 더 멋있지는 않아.'

 

말은 그렇게 해도 등에 업힌 성연이는 좋은가보다. 초원길을 지나면서 '에너지가 1초에 10씩 올라가는 것 같아. 그런데 1초가 조금 천천히 가. 똑----- 딱-----.' 하면서 재롱을 피운다.

 

내리막길에서 뛰겠다는 성연이를 말리면서 빠르게 내려왔다. 구경이 아니라 내려오는 게 목표다. 중간쯤 왔을 때 일행이 우리를 따라잡았다. 물가에서 잠시 쉬며 숨을 골랐다. 과자를 꺼내 먹고 계곡물을 그대로 마셨다. 맛있다. 이번엔 가재잡이에 나선 이준 위원장이 가재 한 마리를 잡았다. 우리들은 신기다는 듯 돌려보았다.

 

이준 위원장이 잡은 가재/ 여러번 잡아주어도 매번 신기해한다. 집에가서 키우자고 했지만 끝내 놓아줬다.

 

산을 내려오니 산오리가 있다.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러 산오리 일행과 추장네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관광버스에서 내린 손님으로 가득찬 추장네 집은 막걸리가 이미 동나 있었다. 산행에 지친 나와 신권호는 막걸리가 고팠다. 우리는 진동계곡을 거의 빠져나와서야 막국수집에서 막걸리를 먹을 수 있었다. 인제막걸리. 맛있다.

 

차량에 탄 난 고단했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미안하여 웬만하면 승용차에선 자지 않는데, 앞좌석에 앉은 신권호 핑계로 잠을 청했다.

 

깜빡한 사이 홍천을 지난 휴게소에서 이준 위원장이 우리를 깨웠다. 양평을 지나면서 길이 막혔다. 아마 휴가 끝물과 이른 벌초가 겹쳐서일 것이다.

 

집에 오니 2시 30분이다. 집집이 배달하는 이준 위원장은 몇시에나 도착했으려나. 모두모두 고생 많았다. 그래도 가을에 또 가자고들 다짐했다. 힘들어도 기꺼울 뭔가가 있는 게 여행이다. 특히 곰배령은 더 그렇다.


그밖의 사진들은 아래와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