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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오더라

1.

총파업과 철도파업.

당연히 지침을 따라야 하고, 연대를 해야 하면서도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는 난 괴롭다.

 

물론 '기러기 이론 '을 들먹이며 파업대오가 20만 쯤 됐을 때 자주관리기업부터 파업에 돌입하고, 30만 쯤 됐을 때 주요 사업장부터 파업을 하겠다고 하지만, 전략 전술의 옳고 그름은 별개로 구차하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더욱이 총연맹의 총파업 지침이 떨어지고, 중부권 이북 조합원들에게 국회앞 집결투쟁의 지침이 떨어져 동지들이 속속 국회앞으로 모여드는 순간 난 상집 간부들을 이끌고 충북 영동 산 속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는 이미 오래 전에 잡혀있었고, 이번에 열지 못하면 노조 사정상 당분간은 열 수 없다는, 그래서 중요한 올해 상반기 사업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상집성원들이 공유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강행한 수련회였지만, 쉴새없이 날라오는 문자만큼이나 맘들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2.

어쨌든 수련회는 성과가 있었다.

참가대상 12명 중 11명이 참가한 것도,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었던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이왕 공기 좋은 산속(민주지산 휴양림 밑)에 왔으니 잊을 건 잊자.

산속의 공기는 너무나 좋고, 거칠 것 없는 햇살은 온풍기를 쪼이는 것 처럼 드러난 살결에 그대로 느껴졌다. 어릴적 햇볕 좋은 겨울날 양지쪽 토담벼락에 서서 해바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랜만이다.

 

수련회가 끝나면 의례 뒤풀이다.

영동 동일버스 지부장이 낸 쏘가리 매운탕 탓인가, 밤 11시 조금 넘어 시작한 술자리가 어영부영 하다보니 벌써 새벽 3시다. 내일을 위해 자자.

* 요놈이 그 유명한 황쏘가리다. 왜 먹었느냐고는 묻지마라.
 

3.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무주를 경유하는 것으로 잡았다. 그것이 빠른 길이다.

무주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남도의 음식 맛은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하지만, 우리가 들른 음식점은 기대를 하고 간 우리들조차 감탄시킬 정도였다. 너무나 맛깔스런 음식들이 아까워 낯술 한잔씩도 하고...

* 한정식집 뜰앞에 있는 목련은 봄빛이 완연하다.

 

나와보니 뜰앞 목련은 봄햇살에 봉우리가 탱탱해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저기 저놈은 막 벌어지려고 해요' 하며 거든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 벌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정말 그러네요' 하며 맛장구를 쳤다.

 

4.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커다란 누각이 있다.

이왕 늦은 거 저기나 잠깐 들렸다 가자.

올라가니 한풍루(寒風樓)란다. 루(樓)와 정(亭) 은 보통 큰 것이 루고 작은 것이 정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국가나 관청에서 관리하던 게 루고, 개인이 소유 및 관리하던 게 정이다.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 시골의 누각답지 않게 한풍루는 전면 3칸 측면 2칸 도합 6칸으로 제법 당당하다.

 

어쨌든 루(樓)가 있는 곳은 대부분 관청이 있었거나 소재지다.

한풍루도 마찬가지다. 관청이 있던 곳에 늘 그렇듯이 이곳도 예외 없이 한풍루 옆에는 공덕비가 늘어서 있다. 쓰여진 이름에 나 같은 사람은 늘 욕을 하는데, 저 비석의 주인공들은 개의치 않고 확실한 징표를 세우고 싶어했던 겐가? 가진 놈들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 무슨 나무일까 미쳐 확인을 못했다. 한풍루 앞에 있는 나무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5.

서울로 가까이 올라갈수록 상념은 깊어진다.

노래도 부르고, 실없는 우스개 소리도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근본이 바뀌랴.

 

휴게소에 들렸더니 커피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회다. 서울이다. 적어도 내 머리 속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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