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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꽃

3. 칡꽃


오전 10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다. 정시에 도착하는 모범을 보이자고 우르르 몰려갔다. 별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사실 전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걱정했다. 보건의료노조 교섭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조합원 총회 등으로 대의원들이 참석하기 어려울 것이고, 공무원노조도 정부의 탄압으로 어려움이 있다.


난 자리를 잡은 뒤에 아예 밖으로 나왔다. 장내 정리를 하기 위해 끝없이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있을 것이고, 하여간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본 대회는 시간이 좀 지나서나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아침에 정윤광 위원장님과 함께 갔던 길로 산책을 떠났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말이다.


그것은 이성의 저항을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서서히 제압하는 몽롱한 유혹이다. 유혹에 저항하지만 점점 무장해제당하는 이성이 짙은 안개 속 같은 알 수 없는 혼미한 쾌락으로 빠져드는 몸뚱아리를 힘겹게 움켜잡아도 패배는 명백하게 예정돼있다. 패배한 이성은 마지막 탄식을 하며 소멸되어간다. 아~!


내가 칡꽃의 향을 느낄 때의 감성이다. 몽롱한 달콤함. 그 꽃의 향기를 언젠가 난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표현을 매우 독특하다고 했고...


칡꽃의 향기를 제대로 맡으려면 한여름 햇볕이 왕성이 내리쬐는 오후 2시쯤이 제격이다. 이때쯤이면 작열하는 태양에 광합성은 최고로 왕성해진다. 광합성이 얼마나 왕성한지 뿌리와 줄기가 미쳐 땅속 물기를 충분히 대주지 못할 정도다. 헐떡이며 거친 숨을 토해내는 잎새들은 축축 늘어지고, 그 숨 속에는 향기가 있어 이때에는 칡꽃뿐만 아니라 칡 잎새와 줄기 모두에서 칡꽃향이 나온다.


여름, 특히 지금쯤 차를 타고 산길을 간다면 에어콘을 끄고 차창을 열어 보자. 문득 문득 알 수없는 향기가 스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칡꽃 향기일 것이다.


난 길을 걷다가 칡꽃 향기에 취해 주변을 들러보니 칡덩굴이 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아스팔트길 위로까지 여기저기 뻗어있다. 꽃은 보이지 않지만 잎이나 줄기를 들춰보면 그 속에 보랏빛 꽃송이가 숨어 있겠지. 그러나 굳이 찾아보고 싶진 않다. 거기에 있음을 안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칡향에 빠져 사진도 못 찍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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