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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교에 들르다.

* 이 글은 옛날에 썼던 [다시 능내에 가다] 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비수가 되기도 한다. 추억이 있는 곳은 지금은 없는, 함께 있던 사람이 유령처럼 떠나지 않고 기억의 영상 속에 여전히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곳은 아름답기보다는 가슴저림이 앞서는 곳이기 십상이고, 근처에 가기는커녕 생각조차 이어가기 힘들게 한다. 능내는 내게 그런 곳 중 하나였다. - 다시 능내에 가다 중 -

 

어제 외대에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로질러 지나갔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열렸다. 나는 회기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가는 코스를 택하는 대신 외대를 지나 행사장으로 가기로 했다.

 

외대는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렸다.

위의 인용 글처럼 외대는 나에게 좋든 좋지 않든 무수한 추억이 있는 곳이고, 추억이 많은 만큼 다가가기 힘든 곳이었다.

 

       까치집 : 운동장 옆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는 까치집이 있다.

 

그래도 시간은 약인가 보다. 내 마음도 많이 바랬는지 외대앞역에서 교문까지 있는 온갖 술집과 까페들을 여유롭게 지날 수 있다.

 

교문을 들어서니 뭔가 낯설다. 초라한 시골학교 같던 캠퍼스는 많이 다듬어지고 세련되었지만 빌딩가를 연상시키듯 답답하다.

 

제일 먼저 눈에 분명이 들어오는 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있는 까치집이다.

내가 이곳에 다닐 때에는 분명 없던 모습이다. 캠퍼스는 늘 독한 취루가스가 뒤덮였었기에 한곳에 머물러 사는 까치가 살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돌이켜 보면 그렇다고 꼭 장담할 수는 없다. 언제 나무 위를, 그곳에 혹시 까치가 살고 있었다고 해도 처다볼 여유가 있었을까?

 

어쨌든 내 기억으로는 까치는 없었다.

 

취루가스가 자취를 감추고, 여전히 삶은 고통스럽고 전망은 없지만 돌이켜 보면 까치가 저렇게 집을 짖고, 새끼를 낳고 또 짖고를 반복한 것처럼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대학 본관이 들어선 미네르바 동산 자리 : 미네르바 동산은 외대의 유일한 숲(?)이었다.

 

그래. 좋게 변한 건 사실이다. '난 사회주의자다'고 외친다고 잡아갈 놈 하나 없다. 느닷없는 불심건문, 늘 조심하던 미행은 없다. '직선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안기부 놈들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전망'을 찾지 못하는 '현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어' 하지만 사실 '그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었다. 그래도 '좋았다'라고 느끼는 건 그땐 '희망', '전망', '혁명' 같은 단어들이 낯설거나 우리 삶으로부터 멀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담장을 허문 캠퍼스 : 담장을 허물고, 여기 저기 길을 내었다. 그 만큼 열린 공간, 열린 세상으로 바뀐 것 같지만, 여전히 닫혀져 있는 것 같은 건 나 뿐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외대의 유일한 숲(? , 숲이라고 부르기에는 쑥쓰럽지만...)인 미네르바 동산은 이미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좁은 캠퍼스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나게 큰 대학본부 건물이 들어섰다.

 

'미네르바 동산'. 코딱지 만한 숲이지만 외대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수없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나래를 편다" 는 고색창연한 인용구는 초라한 캠퍼스의 우리들을 위로해주기에 충분한 것이기도 하였다.그런 동산이 없어졌다.

 

요즘 학교 다니는 후배들은 졸업하고 무엇으로 캠퍼스를 추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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