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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후보 선출대회

지난 일요일(9월 9일)이었다.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후보 선출대회에 갔었다.

 

딱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번 투표과정에서 고양시지역에서도 부정투표 의혹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위원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가야만 했다.

 

하늘은 청명했다.

볕은 여름처럼 따가웠다.

당에서 대절한 버스는 자유로를, 강변북로를 거침없이 달렸고,

간간이 보이는 강물은, 밤섬은 참 아름다웠다.

 

대회장으로 향하는 아내와 성연이

 

이윽고 후보들의 마지막 유세가 시작되었다.

심상정 선본에 있는 아내는 대회장 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함께 따라온 성연이도 아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난, 뒷(윗)편에 앉아 편안하게 대회를 지켜봤다.

 

권영길을 지지하는 당원들과 심상정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반면 노회찬을 지지하는 당원들은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이미 대세가 기울고 있음은 분위기로 느낄 수 있었다.

 

진보정치에 찍힌 아내와 성연

 

최종 투표가 끝나고, 4시 30분 수도권 개표와 전국 개표결과 발표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권영길 후보가 49.37%, 과반에 육박하는 득표로 1위를 했다.

대단하다. 일명 자주파 사람들 말이다.

자파의 조직적 결정을 관철시키는 능력은 역시 타의 추중을 불허한다.

 

그동안 바람을 일으켰던 심상정 후보가 서울, 경기, 인천에서도 노회찬 후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결국 심상정 후보는 노회찬 후보를 제치고 결선에 올라갔다.

 

최종 투표 결과를 보면서 나는 기분이 매우 착찹했었다.

노회찬 후보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탈락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본다는 게 괴롭기까지 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돌풍을 일으킬 때 노회찬이 그 핵심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재치있고, 짧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발언은 일명 '촌철살인' 어록을 낳기도 했고, 그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기도 했었다.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들/ 최종 발표 전임에도 노회찬 후보의 표정이 어둡다.

 

난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노회찬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여전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노회찬이 후보가 되는 순간 당의 지지율은 최소한 까먹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선거는 선거인가보다.

자주파는 조직적으로 권영길을 선택했고, 노회찬을 타켓으로 하는 온갖 흑색선전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우리 민주노동당을 자랑스럽게 하였던 노회찬의 촌철살인 어법조차 자주파들은 민주노동당을 망칠 가벼운 주둥이질로 매도하였다.

 

목적을 위해서는 아무리 공이 많은, 헌신적인 동지라도 순식간에 죽일놈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능력은 이미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여러 선거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노회찬에 대해서조차 그렇게 나오는 데 대해서 난 분노보다는 슬픔을 느꼈다.

 

여물고 있는 올림픽 공원의 마로니에 열매/ 계절은 어김없이 가고 또 오고 있지만, 역사에 대한 믿음은 엷어지기만 한다.

 

노회찬은 마지막 연설에서 당의 변화와 혁신을 소리높여 외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왠지 공허했고, 그의 밝은 웃음은 쓸쓸함에 묻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전설적 스타는 무대를 떠나고, 대신 경선 과정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린 심상정이 이날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심상정을 찍었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심상정의 승리(?)보다는 노회찬의 실패가 더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실패는 노회찬 개인의 실패만이 아닌 것 같다. 그의 실패는 당을 당답게 만들고자 했던 많은 당원들의 실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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