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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버섯을 땄다.

베짱쓰님의 [버섯따기] 에 관련된 글.

1.

어제는 연일 출장이며 회의 등 겹치는 일정을 핑계로 미뤄왔던 벌초를 했다.

 

아버지 산소 벌초를 끝내고../ 넓기도 하고 풀도 많아 이곳을 끝내면 벌초가 다 끝난 거 같다.

 

모처럼 긴 연휴 탓인지 일찍 출발했음에도 중부고속도로는 많이 막혔다.

곤지암 쯤에서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 예보에는 분명 날이 갠다고 했는데,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덮였다. 걱정이다.

 

도로 절개지에 심어놓은 싸리나무들은 군데군데 노란 단풍잎을 달고 있지만,

산들은 머나 가까우나 여름처럼 여전히 짙푸르다.

벼들은 이미 수확이 가까울 정도로 익어가고 있어, 논들은 연두와 노랑이, 가끔은 주황이 섞인듯, 푸른 산들과 참 잘 어울리고 예쁘다.

 

2.

감곡IC에서 내려 아침을 먹고, 낫과 술, 그리고 간단한 선물 따위를 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오갑산도, 국망봉도, 보련산도 먹구름에 가렸다 보였다 한다.

 

신경림의 유명한 서정서사시 <남한강>의 중심무대인 목계나루 못 미쳐 난 목계대교로 강을 건너고, 강과 나란히 난 길을 따라 고향에 이르렀다.

 

고향동네/ 앞에 있는 강이 남한강이고, 건너 빠딱한 산이 장미산성이 있는 장미산이다. 그 옆에 보이는 능선 끝이 보련산이고, 그 너머가 신경림의 고향이다. 풍수 전문가이기도 한 선배님은 저멀리 장미산이 삐딱하게 보여서 내가 삐딱하다고 하신다... ㅎ

 

고향이라지만

내 어릴 적에 비해 가구수는 절반, 인구는 절반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가까운 친척들은 대부분 외지로 떠났고,

산이나 논밭은 물론 집마저 팔아버려 내 소유라곤 단 한평의 땅도 없는 곳이라,

어쩌다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낯선이일까봐 오히려 두려운 곳이 되었다.

물론 친족으로는 내게 제일 가까운 촌수인 8촌 형 한분이 살고 있고, 어릴적 친구들과 친한 동생 등 그래도 살가운 이 몇몇이 여전히 살고 있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3

빗발은 그치기는커녕 점점 굵어진다. 하지만 어쩌랴.  늘 벌초를 함께 해주시는 선배님께는 매우 죄송하지만, 예까지 와서 말 수는 없는 일이다.

 

비가 와서 위험한 기계를 쓸 수 없다.

힘들더라도 낫으로 해야하는 수밖에...

 

산길을 접어들자 버섯이 지천이다.

동행한 선배님이 하시는 말씀이 가을 버섯은 거의 먹을 수 있는 것이란다.

못미덥다. ㅋ 그래도 못미더운(?) 지식을 믿기로 하고 버섯을 땄다. 금새 비닐 봉지로 가득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소 벌초를 하고 증조할아버지 묘소로 오르는 길은 본격적인 등반코스다.

산이 깊어질수록 버섯은 지천이다.

우리는 벌초를 끝내고 내려오면서 버섯을 따자고 다짐하고, 그때까지 딴 버섯을 길섶에 두고 올라갔다.

 

증조할아버지 묘소 벌초를 끝내고 주변을 보니 아예 버섯 밭이다. 우리는 가져간 쌀자루를 꺼내 부지런히 버섯을 따 담았다.

 

또랑가 묵은 논뚝 가득 핀 물봉숭아

 

잠시 후 인기척이 났다. 이런 산속에 왠일인가 하고 보니 버섯을 따러 온 초로의 아저씨가 보였다.

 

'그 버섯은 못 먹어요.'

'예?'

 

허탈했지만, 못 먹는다는데 늦기 전에 포기하는 게 그나마 다행 아닌가.

아저씨는 버섯에 대해 자신의 지식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따온 능이버섯을 보여준다.

물론 아저씨의 상식은 전통에 기반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버섯도 먹을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버섯을 따 먹으면 최소한 죽지는 않을 것이다.

 

4.

우리는 반이나 찬 자루를 쏟았다.

그런데, 같이 간 선배님은 실망은커녕 오히려 투지가 막 생기는 듯 했다.

자기가 능이를 따서 보여주시겠다고 하신다.

 

사실 나도 예전에 고향동네에 지금도 사시는 8촌 형님과 함께 왔다가 싸리버섯 밭을 본 적이 있었다. 나도 그곳을 한번 찾아보겠다며 선배님과 산길을 나섯다.

 

산에서 만난 아저씨는 이 산에는 버섯이나 도토리가 많아 충주며, 원주 시내 사람들이 많이 와서 버섯 찾기도 힘들 것이라고 한다.

아무렴 어쩌랴. 어차피 내려가는 길인데, 조금 돌아간다고 어디 대수랴. 더욱이 몸은 이미 비에 흠뻑 젖은 상탠데 뭘...

 

이 산에 참 많은 영지버섯/ 예쁘다.

 

이 산은 예전에 우리 소유 였고, 어릴 때부터 수십번을 왔을 텐데도, 산 속은 거기가 거기같다. 옛기억을 살려 싸리버섯밭을 찾아보려 했지만, 싸리버섯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투지에 불타는 선배님은 위험한 비탈을 흩고, 난 능선길을 한참 헤매는데, 드디어 싸리버섯이 한 송이 보였다. 한 송이가 두손 가득 담길 정도로 커다란 답싸리버섯인데, 찬찬히 둘러보니 모두 10 송이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밭으로 봤던 것에 미치기에는 어림도 없지만 반가웠다. 물론 그중 절반은 이미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삭아 있어지만... 

 

5.

싸리버섯을 딴 것으로 만족하려고 하는데, 조금 더 내려오다가 선배님이 부른다.

능이버섯을 직접 보여주시겠다는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다.

얼른 부르는 쪽으로 향하는데, 이게 왠일이란 말인가.

내 눈앞에도 능이버섯이 여러 개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심봤다'다.

 

능이버섯/ 내가 찾아낼 줄이야... 산속에서 만난 아저씨가 보여주지만 않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작은 싸리버섯을 좀 더 따다보니 어느덧 산 밑이다.

고된 벌초, 고된 산행이었지만 능이버섯을 딴 우리는 의기양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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