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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투블로거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블로거 to 블로거] 에 관련된 글.

1.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근 1달 동안 글쓰기를 게을리해왔는데, 이 글은 더 늦기 전에 써야 될 것 같다.


진보넷에서 발행하는 월간 「네트워커」에서 ‘블로거투블로거’라는 꼭지를 마련해 블로거가 다른 블로거를 소개하는 글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과분하게도 지지난달에 소개됐고, 지난달에 글을 썼으니 다음 주자를 위해서도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원고를 대략 매월 20일 쯤 받는 것으로 보이니 다음 주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도 하겠다. ㅎㅎ


지지난달에 감비님이 나를 네트워커 블로거투블로거 란에 소개했다.

감비님이 나를 소개한 글을 보고는 나는 너무 놀라 “꽥~~ 산오리, 살려줘요~”외쳤다. 칭찬은 좋지만 과분한 것은 과분한 것이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것 같은 산오리가 감비님에게 나의 실체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물타기’가 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그래도 칭찬은 좋은 것이다. 특히 좋은 사람으로부터 듣는 칭찬은 더욱 그럴 것이다. 감비님과 같이 ‘순수’하면서도 ‘열정’과 ‘책임성’ 그리고 ‘성실성’을 두루 갖춘 사람이 하는 칭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다.


공자님 말씀에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좋지 않은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던가. 그 기준으로 본다면 난 이미 절반은 좋은 사람인 것 같다.

 


2.

감비님이 내게 대해 쓴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가 ‘나’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내공의 깊이와 연관이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흔들림이 없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미운 오리새끼’와 ‘우아한 백조’는 같으면서도 다른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이기도 하면서 ‘다른 이에 의해 규정된’ 또는 ‘다른 이의 눈에 비춰진’ ‘나’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한 두개 또는 여러 개의 ‘상’이 뭉뚱그려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나’겠지.

 

▶ 잠자리의 겹눈/ 수만 개의 홑눈으로 수만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상이 비추어 오고, 그것이 ‘거울’처럼 ‘나’에 대한 영상을 만드는 건 아닐까.

 


3.

감비님의 글을 읽고 나도 누군가를 ‘블로거투블로거’로 끌어들여야 하는 사명(?)을 받은 게 아닐까하고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그분’은 오셨고, ‘사명’은 주어졌다. 나는 따를 수밖에...


‘이왕 할 거면 잘 해야지’ 했지만, 어디 뜻대로 되는 게 그리 많으랴. 걱정하는 내게 아내는 ‘스머프’에 대해 쓰라고 권하고 나도 그리해보려고 했다. 물론 최후의 보루로 ‘산오리’는 꿍쳐두고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가고, 업무(특히 출장업무)는 계속 겹치는지라 ‘스머프’에 대한 도전은 포기했다. 혹시 다행으로 생각하신다면 스머프는 내게 술 한 잔을 사시라!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누군가에게는 불행일지 모르지만 ㅎㅎ) 순번이 이르니 고를 사람이 많고, 더욱이 산오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까지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마감)시간에 쫓겨 원고 손질도 못하고, 맞춤법을 포함한 모든 걸 담당자에게 미뤘으니 산오리님에게 우선적으로 미안할 수밖에. 좀 더 멋지게 소개해줬어야 하는데...


산오리님. 제가 술 한 잔 살게요.



산오리의 단순한 삶(http://blog.jinbo.net/sanori)


요즈음은 가히 블로그시대(?)인 것 같다. 주변을 들러보면 블로그 하나 갖지 않은 이가 없고, 어떤 블로그에는 하루에 만명 단위의 네티즌이 방문한다는 소문도 들리니 말이다.

블로그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업 홈페이지 등 각종 홈페이지, 심지어 내가 속한 운수연대(www.woonsoo.in)에도 블로그가 있다. 그야말로 블로그 홍수다.

블로그 홍수 속에서 진보 블로그는 독특한 것 같다. 불과 1000여명이 활동할 뿐인 숫자에서도 그렇고, 화장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맨얼굴의 담백함이 미덕인 동네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그렇다. 맨얼굴의 담백함. 굳이 꾸미지 않는 데서 오는 편안함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솔직함. 이것이 진보 블로그와 블로거의 특징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블로거 산오리와 블로그 「산오리의 단순한 삶」은 진보 블로그의 전형 또는 대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단순한 삶”. 어찌 보면 세상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오리의 단순한 삶은 그런 ‘단순한’ 삶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사업장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대하여 소극적인 것에 대하여 “겉으로는 절차와 의견수렴을 얘기하지만, (속내는) 한 푼이라도 나눠 먹지 못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질타하고, 나아가 사내 게시판에서 앞장서 투쟁(?)하는 게 산오리 식의 “단순한 삶”이다.

그러고 보면 ‘원칙’은 ‘단순’한 것이다. 산오리가 말하는 ‘단순’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고 실천이겠지만, 내게는 ‘세상에 대한 풍부한 애정을 가지고, 우직하게 일관된 원칙을 적용한다면 뭐 세상이 그렇게 복잡하겠는가’ 하는 일갈로 들린다.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산오리는 원칙만 확고한 것만도 아니다. 성실한 실천이 켜켜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삶” 카테고리 안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들은 도무지 1년 반 동안에 올린 것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 많은 글들은 또한 단순히 머리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자신이 활동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것들이다. 그만큼 활동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산오리는 시인이기도 하다. 산오리와 산오리 블로그의 열열한 팬이기도 한 내 아내가 ‘산오리가 시집도 냈다’는 소식을 전한 게 꽤 오래 전인 것 같다. 하지만 산오리 블로그를 보면 의외로 시가 적다. 시가 필요 ‘없는’ 세상이어서 인가? 아님 의외의 낯가림인가?

그래도 몇 편의 시들 속에서 산오리의 시 세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시 “오만(傲慢)”을 보자.


그는 낡은 자전거로/ 나는 걸어 산책하다가/ 우연히 소진로에서 만났다/ 몇 년 만이던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 집’/ 사람들이 필요한 건 ‘일자리’/ 이걸 만들려 노력하고,/ 싸워야 하는 게 당인데/ 민주노동당은/ 집도 일자리도 다 가졌는지/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며/ 되돌아오지 않겠단다, 그는//

내 집도 가지고 있고,/ 정규직 일자리도 지키고 있는/ 나는/ 가슴 한 켠이/ 뭉턱/ 잘려 나간 걸/ 뒤늦게 알았다


세상의 잘못에 대하여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기 전에 자신을 성찰하고, 그 성찰을 분노의 용광로로 삼는 것이 그에게는 실천이고, 삶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깊은 상처와 상실감, 분노는 또 한 측면에 있는 깊은 애정에 비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오리를 소개할 때 난 격의 없는 자리에서는 ‘한량’,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풍류객’이라고 소개한다. 둘 다 찬사를 담은 명칭이다. 비록 본인은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나서고, 하다못해 주변에 있는 ‘소진로’라도 다닌다. 심지어 지난 부산 아펙투쟁 때도 앞뒤 시간을 쪼개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한때 ‘감성이 풍부해야 투쟁도 힘 있게 한다’는 말이 돌면서 운동권 내에서 문화적 소양(?)을 쌓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유치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풍부한 감성이 파도가 아닌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강력한 파도인 ‘쓰나미’처럼 거대한 힘을 만드는 원천이 아닐까?


블로그 전체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산오리는 참 따뜻하기도 하다. 비록 스스로는 ‘무섭다’고 하지만 말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성심을 다하는 모습은 그의 글 ‘분재’에서도 드러난다. 선물 받은 분재를 며칠 돌보지 못해 땡볕에 말라 입이 다 졌을 때, 출근을 하자마자 물을 주고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화분을 갖다 주신 분의 그 착한 마음씨를 생각하니 이렇게 빨리 죽으면 안 된 다’는 그의 기도의 변이다.


산오리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꾸밈이 없다 못해 투박하기까지 하다. 특히 공부 못한다는 걸 빗대 ‘돌맹이’라고 부르는 둘째 아들 동명이에 대한 사랑은 산오리 식의 가족 사랑법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의 멘트를 하나 들어보자. "야, 돌멩아!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냥 놀지..." 거기에 대한 아들의 대꾸, "별로 열심히 안 해..." 짧은 대화 속에서도 아빠와 아들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지고,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어디 완전한 사람이 있으랴. 산오리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회의(會議)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하고, 나아가 회의가 조금만 길어져도 눈총을 마다않고 잠을 청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도 원칙인 듯 꿋꿋하게 실천하는 걸 보면 도통하여 약점을 강점으로 바꿨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강점으로 통할 정도로 이 사회가 단순하고 유머가 있는 사회가 아니니 산오리의 고달픔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회의에서 실제 나온 얘기를 전해보자.

“이번 지자체 선거에 시장 후보로 누가 좋을까요?” “산오리는 어때요?” “산오리는 안 돼요!” “왜요?” “시장 후보는 방송토론을 해야 하는데, 길어지고 재미없다고 토론 도중에 잠자면 어떻게 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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