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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단> 또 삽질이다

 

이란 측 출입국사무소에 들어서니 입국도장을 찍어주는 창구는 이란에 들어가려는 파키스타니들로 거의 아수라장이다. 창구 앞에 거의 이삼십 명이 모여들어 저마다 여권을 들고 이리저리 밀리는 통에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 줄을 서 있는 것도 아니니 저기를 통과하려면 같이 몸싸움이라도 벌여야 하는 판인데  배낭은 앞뒤로 메고 게다가 스카프까지 쓰고 할 짓은 아니다 싶다. 그저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잠시 기다려본다. 30분이 지나도 창구 앞의 사람들은 줄어들 줄 모르고 이러고 있다간 도무지 언제 국경을 넘게 될지 모르겠다 싶어 슬며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보지만 창구 앞의 사람들은 거의 필사적이다. 다시 대기실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사무실로 불러 여권을 먼저 처리해준다. 아마 파키스타니가 아니라 특혜를 주는 것 같은데 고맙기는 하지만 이러느니 창구 앞에 줄서는 칸이나 만들지 싶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여권을 받아 나오니 어떤 남자가 다가와 너는 외국인이니 여기서 자헤단까지는 반드시 폴리스 보디가드와 함께 가야 한단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니 자헤단은 위험한 도시라서 그렇단다. 공짜는 당연 아닐테고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불이란다. 내가 미리 알고 있는 정보로는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합승택시를 타면 일인당 2,3불선에 갈 수 있다고 들었거니와 폴리스 보디가드 얘기는 처음이라 이거 신종 사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됐다고 난 그냥 혼자 갈 거라고 뿌리치고 나와 택시를 잡으니 웬걸 택시들마다 모두 같은 소리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 다시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가 폴리스 보디가드가 꼭 필요하냐고 물어봐도 확실한 대답은 해주지 않고 폴리스 보디가드가 필요하면 불러 줄테니 기다리라는 소리만 한다. 아무래도 꼭 필요한 건 아니고 니가 원하면 불러주겠다인 거 같은데 그냥 가려 해도 이놈의 택시들이 도무지 태워 주지를 않는 거다.


이란측 출입국 사무소. 이란 혁명지도자 호메이니와 지금의 최고통치권자 하메이니의 초상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두 양반은 이란의 다른 도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하릴없이 국경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서 택시를 타는 사람들마다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본다. 그 중 빈자리가 있어 타려고 하면 꼭 누군가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 그러다가 파키스타니 몇몇이 자헤단으로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결국 택시를 탈 때 잠깐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택시가시가 또 폴리스 어쩌구 하는 걸 파키스탄 아저씨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하네 뭐 이 정도로 무마했다는^^-  결국 그냥 택시를 타고 자헤단까지 온다. 아직도 이게 신종 사기인건지 아님 규정이 그런 건데 내가 무시를 하고 온 건지는 잘 판단이 되질 않는다.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국경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해 다음 도시로 넘어갈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잠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이란은 파키스탄보다 1시간 30분이 빨라 자헤단에 도착하니 여전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헤단 터미널에서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대략 이란의 고도인 밤이나 그 다음 도시인 케르만까지 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밤은 몇 년 전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으로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여행자 중의 하나가 밤은 지금 인심이 흉흉하니 가급적이면 하루를 묵지 말고 그냥 케르만으로 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케르만은 볼거리가 있는 도시도 아닌데 그냥 하루밤 묵어가려고 들린다는 게 별로 내키지를 않는다. 다음 대안은 야즈드라는 도시까지 가는 건데 이 도시는 오후에 차를 타더라도 새벽 한두시쯤 떨어지게 되니 대략 터미널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 이것도 대안으로는 신통치가 않다. 결국 고민 끝에 그냥 밤으로 가는 표를 끊는다. 부자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아무리 지진으로 무너졌다 해도 고도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 거고 인심이 흉흉하다고 뭐 지나가는 여행자를 납치야 하겠냐 싶은 생각이다. 


두시가 조금 넘어 버스는 자헤단을 벗어난다. 이란의 버스는 거의 볼보 버스로 에어컨은 기본에 좌석도 넓고 깨끗해 아주 쾌적하다. 그간 네팔이랑 인도, 파키스탄의 고물 버스만 타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게다가 도로는 거의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잘 닦여 있어 간만에 편안하게 이동을 한다. 에어콘을 틀어 놓은 탓인지 창문이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데 슬쩍슬쩍 들춰봐도 창밖으로는 그저 황량한 벌판만 이어진다. 가이드북에 밤까지는 다섯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으니 6시나 7시쯤에 도착하겠다 싶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깨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스카프가 벗겨졌단다. 에구.. 친절도 하셔라 뭐 깨워서까지 지적해 주실거야 있나.. 싶지만 여기는 이란인 것이다. 다시 졸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6시가 가까워 있다. 안내군에게 밤이 아직 멀었냐고 물으니-사실 이란은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나라라 손짓발짓을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다- 이게 왠일인가. 밤은 벌써 지났다는 것이다. 이 버스는 밤이 종점이 아니라 밤을 지나 어느 도시인가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보통은 미리 버스표룰 보여주기 때문에 대충 알아서 내려주는데.. 방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이란은 도시와 도시를 있는 거의 모든 길이 황량한 사막이다. 누구말대로 그렇게 본다면 이란의 모든 도시는 오아시스인 셈이다.


승객 중에 영어가 좀 되는 사람이 있어 어디까지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니 케르만을 거쳐 쉬라즈까지 가는 버스라고 한다. 쉬라즈는 야즈드 다음으로 가려고 생각했던 도시다. 가이드북을 펼쳐 대충 지도를 보니 어차피 쉬라즈를 거쳐 야즈드를 가더라도 다음 도시인 에스파한 가는 길은 큰 차이가 없다. 케르만에서 내릴까 하는 마음을 바꿔 그냥 쉬라즈까지 가기로 한다. 자헤단에서는 쉬라즈가 조금 더 머니 새벽 한 두시에 터미널에 떨어지진 않겠다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한 삽질은 여행 최대의 삽질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흘간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하루를 더 버스에서 보낸다. 버스는 새벽 3시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파키스탄에서는 매번 두세 시간씩 늦게 도착하던 버스가 여기서는 매번 한두 시간 빨리 도착한다. 우씨- 아직 채 밝지도 않았으니 숙소 문도 안 열었을 거고 어두운데 택시 타는 일도 그리 안전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터미널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다행히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많아 그리 위험해보이지는 않는다.


날이 밝자마자 택시를 타고 점찍어둔 숙소를 찾아간다. 문을 두드려서야 나온 주인은 방이 모두 찼다며 딴 데로 가보란다. 다음 숙소도 마찬가지다. 이제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를 찾아다닐 여력도 없어 그냥 현지인 숙소로 들어간다. 다행히 방이 있다. 적당히 깨끗한데다 가격도 여행자 숙소보다 저렴하다. 여행자 숙소에 방이 차면 가끔 외국인도 오는지 주인은 생존 영어 정도는 가능하다. 결국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방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눕는다. 잠은 오지 않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할 기력도 없다. 도대체 국경 넘을 때 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여튼 이란에 오기는 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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