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22
    <므앙씽> 므앙씽 가는 길은 멀다(13)
    제이리
  2. 2006/02/22
    <농키아우> 시간을 죽이다(5)
    제이리
  3. 2006/02/22
    <루앙프라방> 여기는 라오스가 아니다(6)
    제이리
  4. 2006/02/22
    <폰사완> 항아리 평원을 가다.(2)
    제이리

<므앙씽> 므앙씽 가는 길은 멀다

 

보트를 타고 농키아누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트럭 버스를 탄다. 최종목적지는 라오스 최북단에 있는 므앙씽이라는 곳이지만 일단 당일에 도착은 어려울 것 같고 루앙남타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일찍 므앙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농키아누에서 루앙남타로 가는 버스 역시 없다. 일단 우돔싸이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는데 루앙남타도 거의 저녁이나 되야 도착할 것 같다. 우돔싸이행 트럭버스는 농키아우나 므앙응오이에서 지내다 나온 서양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한동안 서로의 여행루트를 묻는 여행지 질문들이 오가고 이런저런 수다가 계속된다. 뭐 나름대로 유쾌하게 우돔싸이까지는 무사히 도착한다. 우돔싸이에서도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여행자가 루앙남타행 버스로 갈아탄다.


갈아탄 버스는 트럭 버스가 아니라 조그만 미니버스이다. 루앙남타까지는 다섯시간 가량 걸리는데 점심도 거르고 달려온 여행자들은 빵이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현지인들이 먼저 예닐곱명 자리에 앉아 있어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서양애들은 보조 의자나 바닥에 앉거나 두어 명은 서서 간다. 우돔싸이에서 오는 중에 나름 친해진 인간들이 대놓고 떠들기 시작한다. 우돔싸이에서 오는 버스야 전부가 여행자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긴 현지인들도 잇는데 좀 심하다 싶다. 그 중에 맥주를 마시는 일행이 생기더니 아예 버스가 설 때마다 맥주를 더 사온다. 버스는 점점 소란스러워 가고 급기야 몇몇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비틀즈까지는 그래도 들어주겠는데 미국 군가로 추정되는 노래를 부를 때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이 새끼들은 무슨 여행자 버스타고 투어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국말도 열 번도 미친놈들을 중얼거렸지만 차마 영어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분을 삭히고 있는데 듣다 못한 영국인 아저씨 하나가 일어나 한 소리한다. 이건 현지 버스고 여긴 현지인들도 타고 있다. 현지인들을 존중한다면 이제 조용히 해라. 탈 때부터 계속 떠들고 노래 부르고 이래서 되겠냐 뭐 이런 소린데 아 이걸 내가 알아듣다니 대견하다. 근데 거기까지 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니네 미국인들은.. 하며 오버해 버리신 거다. 결국 열받은 미국애하고 둘이 싸우는 통에 버스는 더 소란스러워져 버렸으니 에구 내 팔자야..



므앙씽 가는길


아침 먹고 출발한 게 아홉신데 루앙남타에 도착한 건 밤 아홉시다. 그새 먹은 거라곤 우돔싸이 정류장에서 바게뜨 하나 사 먹은 게 고작인데도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없다. 루앙남타 터미널에서 에라 인간들아 제발 내일 므앙씽에서는 보지 말자하며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도무지 아무 것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다행히 숙소에 따뜻한 물이 나와 샤워를 하고는 그대로 뻗어 버린다. 그래도 아침엔 일찍 눈이 떠진다. 배가 몹시 고프다. 잽싸게 아침을 먹고 므앙씽행 버스를 탄다. 라오스에서 가게 되는 마지막 도시다. 므앙씽에서 이틀쯤 머물다가 다시 루앙남타로 내려와 중국 국경을 넘는 것이 라오스의 마지막 일정인 것이다.


그러나 므앙씽에 도착하자마자 막막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여기에 왜 왔단 말인가.. 아름답다는 경치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나마 므앙응오이는 앞에 강이라도 있고, 방갈로에 해먹이라도 있었건만 여긴 그냥 조그만 마을이다. 주변엔 순 논들 천지고.. 논이라면야 한국에서도 수없이 봐오지 않았냐 말이다. 그래도 행여나 무척 재밌거나 무척 아름다운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대충 투어리즘 오피스에 가 봐도 고산족 마을로 가는 트레킹 프로그랜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이제 고산족도 싫고 트레킹은 더더욱 싫다^^. 뭐 특별하게는 마을에 사우나가 두어 곳 잇는 모양인데 한국에서도 답답해 못 들어가는 사우나를 이 더운 나라에 까지 와서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므앙씽에 이틀쯤 머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음날 중국으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래도 왕창 남는 오후 시간에는 밀린 라오스 여행기나 정리한다. 그나마 낮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숙소 옥상에서 본 므앙씽 전경


저녁 무렵의 시장 앞


다음날도 고된 여정이다. 아침 7시경에 일어나 터미널까지 걸어가 8시 출발인 루앙님타행 트럭버스를 탄다. 므앙씽에서 루앙남타까지 버스로 2시간-이라지만 중간에 버스가 고장나 40분을 지체해 2시간 40분 걸렸다-, 계속해서 루앙남타에서 국경도시인 보텐까지 역시 2시간-이라지만 역시 비포장과 포장이 이어지는 도로를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며 2시간 30분은 달려야 한다-, 라오스 국경을 넘어 트럭을 타고 다시 중국 국경 도시인 모한으로 이동, 입국절차를 마치고 다시 기다리고 있는 멍라행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이라지만 중간의 도로 공사 구간에서 차를 막아 2시간 걸렸다-, 다시 멍라에서 징홍행 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북부터미널로 이동해 징홍행 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을 달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다. 시차 1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대충 13시간 가량 걸린 셈인데 차와 차의 연결 시간이 촉박하여 거의 하루종일 굶고 다녔다는 거 아닌가-그나마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너무 늦어 식사는 안 된다는ㅠㅠ-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열 몇 시간씩, 것도 말이 버스지 실제로는 ㅠ트럭 뒤에 앉아 덜컹거리고 다니다 보니 삭신이 쑤신다. 다행히 징홍에 도착해 확인한 메일에는 집이 나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와 있다. 한국에 갈 거라 생각했다가 못가게 되서 서운한 맘은 들지만 이래저래 번거롭지 않게 된 셈이다. 이곳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었으니 어디 가서 마사지나 받으며 한 며칠 쉬었다가 천천히 북부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젠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갑자기 마음이 느긋해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농키아우> 시간을 죽이다

 

<몇 년 전 왕위앙이 그랬듯 여행자의 입과 입을 통해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흐드러진 자연을 보는 일 이외에는 별 것이 없는 이곳은 라오스 북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레블 게릴라에 나온 농키아누에 대한 설명이다. 자연을 보는 일 외에는 별 것이 없는.. 헉 무서운 말이다. 그야말로 아무 할 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인데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인다. 특히 다음 행선지인 므앙씽도 <평화롭고 조용한 자연 풍경만큼이나 아직은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므앙씽은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면 순박함과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라는 표현으로 봤을 땐 할 일 없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인데 심심하다고 죄 피해간다면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야 할 판이다. 그래 내가 또 언제 라오스에 오겠어.. 하며 하루쯤 심심함을 견뎌 주기로 한다.


농키아우는 사실 농키아우와 므앙응오이를 합쳐서 편하게 부르는 말인데 므앙응오이는 농키아우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쯤 더 들어가는 곳에 있다. 아침에 루앙프라방에서 출발하여 농키아누에 도착하니 12시경이다. 므앙응오이로 가는 배는 2시에나 있다니 잠시 농키아우를 둘러보기로 한다. 뭐 흐드러진 자연이라더니 그저 대성리 비슷하다. 갑자기 무지 심심할 거란 예감이 확 들면서 그나마 전기가 들어온다는 이 마을에 그냥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둘러 게스트 하우스 몇 군데를 둘러본다. 경치가 가장 좋다는 선셋게스트하우스는 이미 풀이다. 방갈로를 더 짓는지 하루종일 전기톱 소리와 망치 소리가 요란한데도 풀인걸 보면 론리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대체 농키아우까지 와서 하루 종일 전기톱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심정은 뭔지 궁금하다^^. 그 옆에 있는 파라다이스뱀부 방갈로에 가 본다. 위치 좋은 방갈로는 4불이고, 2불짜리 방은 발코니도 없이 어두침침하다. 게다가 방안에 전기 코트도 없다. 그냥 므앙응오이로 가자고 맘을 바꿔 먹는다. 



므앙응오이 가는 길


므앙응오이의 방갈로


점심을 먹고 므앙응오이로 가는 배를 탄다. 주변 경관이 대성리 버전에서 내린천 버전으로 바뀔 무렵 배는 므앙응오이에 닿는다. 강가로 난 언덕 위로 방갈로가 즐비하게 서 있다. 중심거리가 300미터가 안되는 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18개나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배에서 내리자 동네 꼬마란 꼬마는 다 모여 든다. 이 동네 꼬마치고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애가 없다는데 말솜씨도 어른 찜쪄먹는다. 어디서 왔냐고 일일이 물어보고 그 나라말로 인사하고 방의 종류부터 가격까지 일사천리로 내뱉는다. 이 동네 방갈로는 대충 2불 정도인 모양이다. 한 꼬마를 따라 어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또 다른 꼬마가 1불짜리 방 있단다. 잠시 혹 했으나 싼 게 비지떡이다 싶어 그냥 앞서가는 꼬마를 따라 들어간다. 앞에 강도 흐르고, 방은 방이 분명하고, 발코니도 있고, 발코니에는 해먹도 걸려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그래 방갈로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그냥 묵기로 한다. 짐을 풀고 300미터가 안되는 거리를 걷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진다. 어라.. 전기 코드는 없어도 전기가 들어오네.. 그럼 인도가이드북이라도 읽을까 하는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발전기가 꺼진다. 시간을 보니 7시 42분, 그냥 잠을 청한다.



숙소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당연하게도 다음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진다. 일찍 잔 탓도 있지만 곳곳에서 울어대는 닭울음소리 때문이라도 더는 잘 수 없을 것 같다. 이곳 날씨는 북부라서 그런지, 강가라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함을 넘어 제법 추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해만 뜨면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는 그야말로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날씨다. 제법 쌀쌀한 아침 기운을 느끼면서 시간 죽이기에 들어간다. 아침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닭들이 잠잠한 틈을 타 한숨을 더 자준다. 그리곤 해먹에 누워 전자 사전에 있는 테트리스-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오락이다, 오델로, 지뢰찾기 등등의 게임이 더 있으나 할 줄을 모르니 그림의 떡이다-를 두어 시간 한다. 열두시 반이 조금 넘어 있다. 그리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해먹에 누워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한글 서적인 인도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도 지치면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한국에 남아 재미나게 놀고 있을 인간들 생각에 잠시 빠진다. 그러다 잠시 존다. 이제 네 시다. 좀만 버티면 된다. 다시 300미터의 거리를 걷고 이번엔 강변도 한 번 걸어준다. 움직였으니 샤워를 하고 다시 이른 저녁을 먹는다. 다시 해가 진다. 최후의 보루인 노트북을 켠다. 배터리 수명이 다할 때 이것저것 정리하니 한시간반 가량이 지난다. 다시 발전기가 꺼진다. 어둠 속이다. 오늘은 어제처럼 쉽게 잠이 들질 않는다. 낮잠을 너무 잔 탓이다. MP3 배터리가 다 할 때까지 음악을 듣는다. 시계는 어느새 10시를 넘어선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 미치겠다. 다시는 전기 안 들어오는 곳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다짐하다 잠이 든다.


므앙응오이의 중심거리


므앙응오이 강변


다음날 하루에 한 번 있다는 배를 놓칠세라 일찌감치 짐을 싼다. 이틀 만에 나간다니 주인 아줌마가 서운해한다. 하긴 나처럼 삼시 세때 꼬박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먹는 착한 손님이 어디 있단 말이냐^^ 저기 전기만 들어와도.. 할 수도 없어 그냥 웃는다. 아침을 먹고 계산서를 받아든다. 이곳은 보트를 타는 것 외에 따로 도망갈 방법이 없어서인지 방값이며 음식값을 나갈 때 한꺼번에 계산한다. 이틀자고, 다섯끼 먹고, 커피도 마시고, 쉐이크도 마시고 -맥주는 안 마셨다. 화장실 갈 일이 꿈만 같아서- 총 합계가 89,000낍이다. 뭐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8,900원 되겠다. 광화문에서 스파게티 한 그릇 먹을 돈으로 이틀을 자고 먹고 마신 셈이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여튼 배를 타고 나오는 맘이 날아갈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루앙프라방> 여기는 라오스가 아니다

 

비엥싸이 가는 것 보다 약간 낫다 뿐이지 루앙프라방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라오스 북부는 온통 산악 지형인지 도무지 평평한 도로가 보이질 않는다. 끊임없이 비오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버스는 그래도 8시간 만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루앙프라방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두 번째 오는 도시가 조금이라도 맘이 편한 이유는 그나마 지리를 좀 안다는 건데 그전에는 여행자 버스를 타고 와 게스트하우스 골목에 내렸던 탓에 터미널에 내리니 똑같이 낯선 곳이다. 여러 명이 같이 타는 트럭 버스가 다운타운까지 만낍-천원-에 간다며 말을 건네 온다. 루앙프라방의 크기나 론리의 지도에 따르면 시내와 그리 먼 곳 같지는 않는데 도무지 흥정이 되질 않는다. 그래, 200원 깍아서 부자되겠냐 싶어 그냥 올라탄다.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멀지 많은 강가에 차를 세워 준다. 거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가 괜찮았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본다. 게스트 하우스는 그대로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방값이 10불이란다. 분명 3년-햇수로 3년이지 만으로 2년 조금 더 된 것 같은데-전에 4불 하던 곳이었는데.. 그나마 풀이란다. 주변 게스트하우스도 거의 마찬가지다. 강가에 있는 집들은 죄다 10불이고 어떤 곳은 15불까지 부른다. 태국을 제외하고 다녀본 중 최강의 가격이다. 에효.. 그나마 뒷골목을 뒤져 6불짜리 방을 찾아낸다.



해가 지는 메콩강


루앙프라방에 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강변에 즐비한 레스토랑에서 맥주나 마시면서 해지는 모습이나 한가하게 바라보는 일이었다. 비엔티안에도 강 주변에 맥주집이 있긴 하지만강폭이 넓은 탓인지 건기인 이즈음에는 물도 잘 보이지 않는데다 뭐랄까 분위기가 매우 로컬스러운데 반해 루앙프라방은 제법 노천카페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여튼 첫 날은 강변에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술값은 그리 많이 오르지 않은 것 같다^^. 막상 다음날이 되니 별 할 일이 없다. 주변에 있는 땀짱 동굴이니 꽝씨 폭포니 하는 곳은 이미 다녀 온 곳들이고.. 뭘 할까 고민하다 막상 루앙프라방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라는 데 사원이라고 씨엥통 하나 밖에 안 다녀왔다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뒤져보니 론리에도 워킹투어라는 하루 코스의 사원 답사 프로그램이 제시되어 있다. 론리의 지령에 따르면 아침에 시장을 구경하라는데.. 음 이전에 봤으니 생략! 글구 지금은 아침도 지났잖아.. 하면서 시장 다음으로 가라는 두 개의 사원을 둘러본다. 이 두 사원을 보고 나니 사원에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다. 뭐 별로 오래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양식이나 특징은 잘 모르겠고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는 얘기다. 에이.. 사원 구경은 포기하고 강변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걷는다.


메콩 강변의 카페

 


승복이 널려 있는 사원 앞마당


다시 오후가 고스란히 남는다. 인터넷이나 하고 점심을 먹어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이번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왕궁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전에 왔을 때 시간이 없어 못 가본 곳이다. 그때는 그걸 못 보고 가야 하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는데 막상 시간이 이리 많이 남는데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적미적 거리다 들어간 왕궁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1975년 라오스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 때 까지 존재했다는 씨사봉 왕가의 유물이 전시된 곳이다. 하긴 그때까지 여기가 왕궁이었고 거기에 집기며 옷, 유물들을 전시해 두었으니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여튼 아직까지 왕이 있는 태국이나 캄보디아를 제외하면 미얀마나 베트남은 식민지시절 이전에 이미 왕가가 무너진 반면 1975년까지 왕이 있었던 탓인지 비교적 궁전의 형태나 집기들도 온전하고 심지어 왕실 일가의 가족사진도 걸려 있어 이 사람들 지금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프랑스쯤으로 망명해서 잘 먹고 잘 살지 싶은데.. 아닌지도 모르겠고..   



루앙프라방 강변


한때는 왕궁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인 왕궁박물관


저녁에는 야시장이나 둘러본다. 이 야시장은 주변의 고산족들이 만들 수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으로 베트남의 박하 시장, 치앙마이의 나이트 바자와 함께 본 중에는 규모도 있고 제법 눈길이 가는 물건들도 많은 곳이다. 아.. 혹시 한국에 가야 한다면 선물을 사야하나 싶어 유심히 이것저것 살펴본다. 역시 시장 구경은 살 거라는 마음이 있을 때 해야 더 재미있는 법이다. 한참을 둘러보다 문득 돈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태국에서 밧을 남길 때 딱 라오스에서 쓸 돈 정도만 남겨 낍으로 환전했던 것이다. 달러도 재환전하기가 번거로워서 미얀마에서 쓰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만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는데다 여기는 ATM도 안되는 나라가 아닌가.. 그래 아직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선물은 무슨.. 무겁기만 하고.. 꼭 사야 되면 중국 가서 사면 되지 뭐.. 하면서도 몇 가지 물건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루앙프라방 야시장

 

갑자기 시장 구경이 재미없어져 밥이나 먹으러 간다. 반찬 이것저것 골라 밥 위에 얹어 먹는 시장통의 500원짜리 밥집에 앉으려는데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한다. 방콕의 한국인 숙소에서 잠시 스친 어린 여학생이다. 여행 올 때 같이 태사랑에서 만난 일행과 일정이 안 맞아 헤어지고 혼자 다니고 있단다. 마침 내 다음 행선지인 농키아누에 다녀왔다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맥주나 한잔 할래요? 했더니 맥주 좋아하는데 돈이 없단다. 쇼핑이 취미라 이것저것 너무 많이 사는 통에 한달 일정에 13일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 얼마 밖에 안 남았다며 이걸로 캄보디아까지 갈 수 있을까요? 되묻는다. 지금처럼 다니면 될 것도 같은데.. 했더니 안돼요, 50불은 남겨서 리바이스 청바지랑 사 갖고 가야 되는데.. 한다. 귀엽다. 그냥 맥주 한 잔 사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가끔 단기 여행자들에게 맥주 한 잔씩 얻어먹은 기억은 나는데 여행 다니면서 누구한테 뭐 사준 적도 없는 것 같다. 일차를 하고 강변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자기가 산단다. 돈 없다며? 하며 그냥 맥주값을 낸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느즈막히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담배갑에 돌돌 말린 2000낍짜리 하나가 들어 있다. 화장실 간 사이 그 친구가 넣어 두었나 보다. 거듭 귀엽다. 이름은 송아나, 86년생이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폰사완> 항아리 평원을 가다.

 

미얀마에서 태국에 도착한 날이 1월 30일 월요일. 태국으로 넘어오면서 그 다음날인 31일에 중국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를 받는 대로 라오스로 넘어가 한 열흘 라오스 북부를 둘러본 뒤 중국으로 들어가면 대략 2월 중순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기간이라면 대충 춘절도 끝나 있을 거고 혹 2월 말에 한국에 들어가더라도 한 보름쯤 운남을 둘러 볼 시간적 여유도 있을 거란 계산도 함께 해 둔 터였다. 하지만 중국의 춘절 기간엔 대사관도 쉰다는 생각은 왜 진작 못했던 것인지 그 사실을 비자 받으러 방콕주재 중국대사관까지 가서야 깨닫는다. 중국대사관은 2월 6일에나 문을 연단다. 결국 방콕에서 6일이나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라오스로 넘어와 다시 비자를 받기까지 4일을 빈둥거리니 비엔티안을 떠나는 날이 이미 2월 10일이다. 라오스 북부를 열흘 만에 둘러본대도 중국에 들어가는 날은 20일 전후, 대충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간다 해도 2월 말까지 징홍-다리-리장-중덴의 운남 여정은 도무지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뭐 어찌 되겠지.. 하며 중국 비자를 받아들자마자 떠날 준비를 한다. 일반적으로 라오스 북부는 방비엥을 지나 루앙프라방을 둘러보고 훼이싸이를 거쳐 태국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루트는 삼년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동북부로 방향을 잡는다. 폰사완.. 항아리 평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항아리 평원이란 폰사완을 중심으로 몇 군데 지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돌항아리들이 널려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큰 것은 6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은 하고 있지만 그 용도나 쓰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모양인데 곡식을 저장하는 것이라는 설에서 술을 빚었던 것이라설, 제의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으리라는 설까지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 자칭(?)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이런 돌항아리들이 널려 있다.


비엔티안에서 폰사완까지는 버스로 약 10시간 가량 걸리는데 이상하게도 밤버스가 없어 아침 일찍 버스를 탄다. 대충 서너 시간을 지나니 밤버스가 없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한계령 올라가는 듯한 길을 거의 예닐곱 시간을 간다. 뭐 계속 올라가는 건 아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데 처음 두어 시간은 경치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없이 가다가 서너 시간이 지나니 녹초가 된다. 말은 VIP버스지만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굴러 다녔을 좌석버스는 이미 그 수명은 지난 듯 하다. 결국 폰사완을 30km 남겨두고 버스가 선다. 라오스 남부에서 한 번, 미얀마에서 한 번, 이번이 세 번째다. 누군가의 여행 무용담 중에 라오스에서 차가 퍼져 외딴 마을에서 하루밤 묵었는데 경치가 끝내줬다나 어쨌다나 하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지만 글쎄 외딴 마을에서 밤을 새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뭐 차 없으면 도리 없지.. 약간 불안한 맘으로 기다리는데 이삼십분이 흐르고 누군가, 어디선가 기름을 사와서 채워 넣으니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아니, 무슨 버스가 기름도 안 넣고 다니냔 말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 운행하는 렌트카도 아니고 하루 한번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로컬 버스가 이래도 되는지 어이가 없다.


여튼 아침 7시 30분에 떠난 버스가 폰사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 10분. 론리 지도에는 터미널이 바로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그새 이전을 했는지 게스트하우스까지는 4km가 넘는다며 무료 픽업이니 제각기 자기 게스트하우스로 가자는 호객꾼들이 즐비하다. 픽업이 무료라지만 그게 진짜로 무료겠는가, 픽업타고 가면 3불짜리 방이 4불짜리로 변신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결국 1불내고 툭툭 타고가 3불짜리 방에 묵나, 무료 픽업타고 가 3불짜리 방 4불에 묵나 그게 그거니 좀 더 편한 쪽을 택하는 거다. 버텨봐야 득 될 것도 없어 가격이 적당한 한 곳을 찍어 따라 나선다. 뭐 방은 싼 방이 으레 그렇듯 상태는 썩 좋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 싸고 좋은 방이란 없는 법이다^^. 내친 김에 다음날 항아리 평원 투어까지 신청해놓고 나니 주위가 어느새 어두워져 있다. 



폰사완 가는길. 굽이굽이 고개길이다.


폰사완은 라오스의 씨엥쾅이라는 지역에 있는 곳인데 이 씨엥쾅이란 지역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집중 폭격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보았던 TV다큐멘터리-제목도 잊혀지지 않는다. <폭탄의 땅 라오스>였다네-에서 본 바에 의하면 이곳이 그 유명한 호치민 레일의 중심지였다는데 미군이 이곳을 차단하기 무려 6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지형이 산인데다 우기가 되면 거의 정글로 변하는 이곳을 공격하는 데는 폭격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는데 그 당시 거의 10여 년간 폭격이 지속되었다니 그 참혹함이야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참혹함은 당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후유증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그 많은 포탄 중에 수많은 불발탄들이 아직도 곳곳에 묻혀 있어 땅을 개간할 수도, 건물을 지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개발은 늦어지고 라오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하는 이곳 주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발탄을 파내거나 폭탄의 잔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일 년에도 수십 명씩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발탄이 터져 팔다리가 잘리거나, 실명이 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그나마 폰사완 시내는 관광지라 특별히 다른 곳과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폰사완 주변에 있다는 항아리 평원은 현재 갈 수 있는 곳만 사이트1, 사이트2, 사이트3의 세 개의 지역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이 불발탄이며 지뢰를 제거해 안전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이드북 등에서는 그 지역 내에서도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움직일 것을 경고해 두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항아리 평원 내에도 곳곳에 폭탄이 터진 자리가 아직 메워지지 않은 채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크다는 사이트1을 먼저 방문한다. 모두 334개의 정체모를 돌항아리가 널려 있다는 곳이다. 큰 것이 6톤이라는 얘기지 보통의 것들을 까치발을 하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어쨌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고 인공적인 구조물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었던 간에 이거 만들고, 나르느라고 힘없는 사람 꽤나 죽어나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런 생각은 왕창 큰 구조물들-그것이 사원이거나 파고다거나 아님 왕궁이거나 간에-을  대하면 늘 드는 걸 보면 아마 전생에 이거 만드는 사람이었지, 만들라고 시킨 사람은 아니었던 듯 싶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이제 잡초만 무성하다.


원래는 항아리에 뚜껑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사이트2와 사이트3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사이트2에서 사이트3까지는 산등성이를 따라 약 한 시간 걸으면 갈 수 있다는데  가이드 겸 운전기사 왈 걸어가고 싶은 사람은 걸어가도 좋단다. 20대로 보이는 프랑스 청년 둘이 걸어가겠다고 나선다. 시간은 오전 11경, 잠시 고민하다 이럴 때 잘못 걸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냥 차에 올라탄다. 이제 자중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사이트 세 개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시간 남짓.. 크게 특별한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세 사이트를 오가면서 보는 주변의 경관은 라오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풀 한포기없는 붉은 평원이 저 멀리 산 밑까지 이어지는 특이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사막은 아닌 것이 제법 붉은 황토빛 흙으로 덮여 있는데 왜 풀이 안 자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이트2와 3을 잇는 고개길


부서진 항아리 사이로 나무가 자란다.


항아리 평원 투어를 마치고 나니 딱히 할일이 없어 그냥 짐을 싼다. 원래 다음 행선지는 폰사완에서 동북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생각했던 비엥싸이라는 곳이었다. 뭐 라오스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휴양지라나 하는 곳인데 이곳을 가려면 네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남능이라는 곳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쌈느아라는 곳까지 네다섯 시간을 간 뒤, 다시 트럭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들어가야 한다기에 그냥 포기한다. 새로운 휴양지 아니라 뭐래도 이제 하루 열 시간 이상 낮버스 타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들어가기면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되짚어 나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루앙프라방으로 향한다. 폰사완을 떠나는 날 아침에는 건기임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버스터미널에는 아.. 저거 아직도 굴러다니나 싶은 버스가 서 있다. 그 버스란다. 에휴..  그래도 오랜만에 비 오는 걸 보니 운치 있네 해가며 창가에 기대 음악을 들으며 주접을 떠는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창가에 고여 있던 빗물이 내 자리로 왕창 흘러든다. 인생이 그렇지 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