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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앙씽> 므앙씽 가는 길은 멀다

 

보트를 타고 농키아누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트럭 버스를 탄다. 최종목적지는 라오스 최북단에 있는 므앙씽이라는 곳이지만 일단 당일에 도착은 어려울 것 같고 루앙남타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일찍 므앙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농키아누에서 루앙남타로 가는 버스 역시 없다. 일단 우돔싸이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는데 루앙남타도 거의 저녁이나 되야 도착할 것 같다. 우돔싸이행 트럭버스는 농키아우나 므앙응오이에서 지내다 나온 서양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한동안 서로의 여행루트를 묻는 여행지 질문들이 오가고 이런저런 수다가 계속된다. 뭐 나름대로 유쾌하게 우돔싸이까지는 무사히 도착한다. 우돔싸이에서도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여행자가 루앙남타행 버스로 갈아탄다.


갈아탄 버스는 트럭 버스가 아니라 조그만 미니버스이다. 루앙남타까지는 다섯시간 가량 걸리는데 점심도 거르고 달려온 여행자들은 빵이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현지인들이 먼저 예닐곱명 자리에 앉아 있어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서양애들은 보조 의자나 바닥에 앉거나 두어 명은 서서 간다. 우돔싸이에서 오는 중에 나름 친해진 인간들이 대놓고 떠들기 시작한다. 우돔싸이에서 오는 버스야 전부가 여행자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긴 현지인들도 잇는데 좀 심하다 싶다. 그 중에 맥주를 마시는 일행이 생기더니 아예 버스가 설 때마다 맥주를 더 사온다. 버스는 점점 소란스러워 가고 급기야 몇몇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비틀즈까지는 그래도 들어주겠는데 미국 군가로 추정되는 노래를 부를 때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이 새끼들은 무슨 여행자 버스타고 투어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국말도 열 번도 미친놈들을 중얼거렸지만 차마 영어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분을 삭히고 있는데 듣다 못한 영국인 아저씨 하나가 일어나 한 소리한다. 이건 현지 버스고 여긴 현지인들도 타고 있다. 현지인들을 존중한다면 이제 조용히 해라. 탈 때부터 계속 떠들고 노래 부르고 이래서 되겠냐 뭐 이런 소린데 아 이걸 내가 알아듣다니 대견하다. 근데 거기까지 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니네 미국인들은.. 하며 오버해 버리신 거다. 결국 열받은 미국애하고 둘이 싸우는 통에 버스는 더 소란스러워져 버렸으니 에구 내 팔자야..



므앙씽 가는길


아침 먹고 출발한 게 아홉신데 루앙남타에 도착한 건 밤 아홉시다. 그새 먹은 거라곤 우돔싸이 정류장에서 바게뜨 하나 사 먹은 게 고작인데도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없다. 루앙남타 터미널에서 에라 인간들아 제발 내일 므앙씽에서는 보지 말자하며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도무지 아무 것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다행히 숙소에 따뜻한 물이 나와 샤워를 하고는 그대로 뻗어 버린다. 그래도 아침엔 일찍 눈이 떠진다. 배가 몹시 고프다. 잽싸게 아침을 먹고 므앙씽행 버스를 탄다. 라오스에서 가게 되는 마지막 도시다. 므앙씽에서 이틀쯤 머물다가 다시 루앙남타로 내려와 중국 국경을 넘는 것이 라오스의 마지막 일정인 것이다.


그러나 므앙씽에 도착하자마자 막막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여기에 왜 왔단 말인가.. 아름답다는 경치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나마 므앙응오이는 앞에 강이라도 있고, 방갈로에 해먹이라도 있었건만 여긴 그냥 조그만 마을이다. 주변엔 순 논들 천지고.. 논이라면야 한국에서도 수없이 봐오지 않았냐 말이다. 그래도 행여나 무척 재밌거나 무척 아름다운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대충 투어리즘 오피스에 가 봐도 고산족 마을로 가는 트레킹 프로그랜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이제 고산족도 싫고 트레킹은 더더욱 싫다^^. 뭐 특별하게는 마을에 사우나가 두어 곳 잇는 모양인데 한국에서도 답답해 못 들어가는 사우나를 이 더운 나라에 까지 와서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므앙씽에 이틀쯤 머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음날 중국으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래도 왕창 남는 오후 시간에는 밀린 라오스 여행기나 정리한다. 그나마 낮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숙소 옥상에서 본 므앙씽 전경


저녁 무렵의 시장 앞


다음날도 고된 여정이다. 아침 7시경에 일어나 터미널까지 걸어가 8시 출발인 루앙님타행 트럭버스를 탄다. 므앙씽에서 루앙남타까지 버스로 2시간-이라지만 중간에 버스가 고장나 40분을 지체해 2시간 40분 걸렸다-, 계속해서 루앙남타에서 국경도시인 보텐까지 역시 2시간-이라지만 역시 비포장과 포장이 이어지는 도로를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며 2시간 30분은 달려야 한다-, 라오스 국경을 넘어 트럭을 타고 다시 중국 국경 도시인 모한으로 이동, 입국절차를 마치고 다시 기다리고 있는 멍라행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이라지만 중간의 도로 공사 구간에서 차를 막아 2시간 걸렸다-, 다시 멍라에서 징홍행 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북부터미널로 이동해 징홍행 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을 달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다. 시차 1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대충 13시간 가량 걸린 셈인데 차와 차의 연결 시간이 촉박하여 거의 하루종일 굶고 다녔다는 거 아닌가-그나마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너무 늦어 식사는 안 된다는ㅠㅠ-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열 몇 시간씩, 것도 말이 버스지 실제로는 ㅠ트럭 뒤에 앉아 덜컹거리고 다니다 보니 삭신이 쑤신다. 다행히 징홍에 도착해 확인한 메일에는 집이 나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와 있다. 한국에 갈 거라 생각했다가 못가게 되서 서운한 맘은 들지만 이래저래 번거롭지 않게 된 셈이다. 이곳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었으니 어디 가서 마사지나 받으며 한 며칠 쉬었다가 천천히 북부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젠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갑자기 마음이 느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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