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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14
    <스린> 경계의 안과 밖(7)
    제이리
  2. 2005/10/14
    <쿤밍> 베트남 비자 받다.(8)
    제이리
  3. 2005/10/08
    <룽성> 뒹굴뒹굴의 진수를 맛보다.(16)
    제이리
  4. 2005/10/04
    <싱핑> 드디어(?) 사기당하다.(12)
    제이리
  5. 2005/10/04
    <양수오> 드디어 감기몸살이다.(6)
    제이리
  6. 2005/10/04
    <계림> 호수에서 보낸 오후(4)
    제이리
  7. 2005/09/26
    <황산> 걷고 또 걷다.(11)
    제이리
  8. 2005/09/26
    <항주> 조용한 호수의 도시(4)
    제이리
  9. 2005/09/26
    <소주> 음... 소주 마시고 싶다.(5)
    제이리
  10. 2005/09/20
    <상해> 대도시는 이제 그만(7)
    제이리

<스린> 경계의 안과 밖

중국에서의 마지막 관광지가 될 스린을 다녀온다. 이곳이 쿤밍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관광지일 텐데 버스로 한두 시간 가량 가면 있는 곳이다. 숙소에서 70원짜리 투어를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말도 안 통하는 웨스턴들 하고 섞여서 가기도 싫고, 정해진 시간에 돌아와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냥 로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동부터미널에서 8시 30분에 떠나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조금 서둘러 유스호스텔을 나선다. 물론 오늘도 일등으로 방을 나서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제법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인데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죄들 투어로 다녀오는 모양이다. 터미널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10분쯤 달리니 석회암 기둥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가짜학생증을 이용하여 학생표를 끊고 입장한다. 뭐 여기도 입장료가 너무 비싼 관계로 (성인80원/학생55원)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기로 한다. 스린은 석림 뭐 영어로는 스톤 포레스트라는데 석회암의 돌기둥들이 무수히 서 있는 곳이다. 바다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는 한때는 바다였을 거라는데 그 한때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고 잘 상상도 안 되지만 그저 물밑에 저런 바위들이 있었겠거니 하면 그도 그럴 듯해 뵌다. 여행 오기 전 주워들은 정보에 따라 관광지로 조성된 곳을 지나 무작정 걷는다. 공원 입구에 그리 많던 관광객들은 하나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혼자다. 그리고 앞뒤로는 무수한 돌기둥들뿐이다.



스린. 무수한 석회석 돌덩어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래도 지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니 가다보면 어디로든 연결이 되겠지 싶어 길을 따라 마냥 걷는다. 석회암 바위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도무지 되돌아 나갈 수도, 더 가기도 부담스러운 지점까지 그저 길은 한길로 이어진다. 조성된 관광지는 한참 벗어난 것 같고 한적한 길을 따라 걷던 재미는 약간의 불안감으로 변한다. 도대체 되돌아가기 전에는 이 석회석 돌덩어리를 벗어날 방법이 안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돌덩어리 사이로 길을 조성해 놔서 어떤 곳은 빠져 나가기도 힘들만큼 좁거나, 가파른 계단을 사정없이 내려가 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그렇게 그저 한적하게 혼자 있고 싶다가도 막상 아무도 안보이니 겁이 더럭 난다. 늘 그런 것 같다. 경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막상 벗어났을 때의 두려움은 항상 공존하고 그 때문에 제대로 경계 안에서는 바깥을, 밖에서는 안을 꿈꾸는 것 이 아닐까?

 


 


얘들이 생각보다 붙어있어선지 스린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방향감각이 상실된다. 


결국 그 지역 소수민족이 산다는 마을 언저리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나온다. 그래봤자 입장료 받는 넓은 테두리 안쪽일 텐데 제법 먼데까지 온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리곤 온 길을 되짚어 나온다. -그길 밖에 없더구만- 조성된 관광지와 그 밖의 경계선 근채의 풀밭에 앉아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한참을 쉰다.  적당히 가깝고 적당한 먼 자리.. 그쯤이 가장 편안한 지점이 된다. 뭐 경계가 안 보일 때 까지 멀리 나가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뭐 그게 나라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게 나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닫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곤 스린을 빠져 나온다.


 


이 돌들 사이에서도 벼며 옥수수가 자란다. 멀리 민가도 보이고..


내일이면 베트남으로 간다. 원래 일정이 불분명했던 중국이었지만 이럭저럭 계획대로 끝낸 셈이 된다.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나라였다. 문제는 한달이 넘어가면서부터 뭘 봐도 그러려니 싶다는 건데 이 병은 나라를 바꾸면 치유가 되는 건지 점점 심해지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심정적으로 사람을 많이 괴롭히는 나라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헉 이건 아니다. 뭐 어차피 갈 길 이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심정으로 간다. 바가지 까짓 꺼 너무 심하지 않은 선에선 써 준다, 거짓말 뻔히 보이는 농담 정도로 받아 준다, 뭐 이런 맘이긴 하지만 내가 베트남을 떠날 무렵에 생각보다 좋은 나라였다고 아니 그리 나쁘지 않은 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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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 베트남 비자 받다.

 

누군가가 잠든 나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6시 20분, 열차는 벌써 쿤밍역에 들어서고 있다. 긴장이 풀리기는 했나 보다. 아무리 쿤밍역이 종점이라지만 승무원이 -아니 여긴 복무원이다^^- 깨울 때까지 자다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내린다. 이제 새벽 공기가 제법 차다. 택시를 타고 차화빈관으로 간다. 기차에서 내내 차화빈관으로 갈까, 험프로 갈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택시기사가 험프의 위치를 알 것 같지 않다. 다행히 일곱 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체크인을 해준다. 자기도 뭣해서 그냥 샤워나 하고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먼저 하기로 한다.


문제는 베트남 대사관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인데.. 론리에는 쿤밍에는 아예 베트남 영사관이 없다고 나와 있는바 위치가 있을 리 만무하고 베트남이 대략 15일 무비자이다 보니 인터넷에도 대사관 위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전 하우아시아가 쓴 글에서 베트남 비자를 쿤밍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정보만 믿고 그냥 베트남 대사관을 찾기로 한 것이다.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용감해지는 것 같긴 하다. 일단 도미토리 데스크에 묻는다. 근데 문제는 이 양반들 도무지 베트남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다. 내가 아무렴 베트남 그랬겠는가^^ 나름 굴려서 비엣남 엠바시 어쩌구 해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비자 어쩌구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나가서 왼쪽 골목으로 가면 있다는 거다. 그리 가깝다니.. 역시 위치가 좋은 곳이라더니..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하며 쎄쎄하고 돌아서는 데 뭐 베리 굿이라나 나이스 플레이스라나 하는 말이 뒤통수를 친다. 대사관이 아무리 친절해도 그렇지 뭐 베리 굿에다 나이스 플레이스씩이나.. 이상하다 하고 가보니 거기는 피.자.집.이었던 것이었다. 비자랑 피자랑 헷갈렸던 모양이다^^


여튼 대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비자를 신청한다. 생각보다 나오는 건 빠른데-2박 3일만에 나온다- 가격은 400원으로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15일 만에 베트남을 주파하기는 힘들고 베트남에서 연장 신청하는 건 130달러라니 이 방법 밖에 없긴 하다. 베트남이란 곳이 좀 껄끄럽기도 하고, 남아 있는 중국 비자 일정이 아깝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막상 비자를 신청하고 나니 이제 결정이 됐다 싶어 한편으로 편안해진다.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가게 될 사파와 박하가 각각 토요 시장과 일요 시장이 유명하다니 금요일 밤차로 국경도시 하커우로 가서 토요일 아침에 국경을 넘어 사파로 들어가기로 한다.


베트남 비자 Valid from 15/10/2005 until 15/11/2005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안 선명한 건 사진을 잘못 찍은 탓이래두--:;


그러면 쿤밍에 있게 되는 날은 사오일쯤 되는 셈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으레 그렇듯이 뚜벅이 투어로 하루가 간다. 뚜벅이 투어란 대략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와 그 지도 안에서 이동 가능하다고 보여 지는 관광지들 사이를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내 지리를 익히는 건데 종일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뭐 쿤밍이라고 예외겠는가.. 거리 노점에서 파는 각종 먹거리와 좌판들에 넋을 놓고 다니다가 결국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마냥 걷는다. 이제 탑들도, 절들도, 호수도 시들해져 여기가 가이드북에 나온 거긴가벼.. 하면서 눈도장만 찍고 다니다가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발길에 채인다던 한국인 여행자 본지는 어언 삼주 가까이 되고, 매일 과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혼자 행복했다가 심심했다가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런지.. 대체 왜 다녀야 하는 건지..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내 북쪽에 추이후 공원 이렇게 않아서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는 팀이 꽤 여럿 있다.


 그러다 신나면 춤도 추고


 이 동네 아이들 안 같게 때깔이 심하게 고운 아이들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원동력이란 게 시간이란 놈이라더니 담날 늘어지게 자고 났더니 약간 낙관적으로 변한다. 계림까지는 도미토리 인간들의 바지런함에 치를 떨었는데 이곳 쿤밍에 오니 게으름뱅이들이 많다. 일단 배낭이 커지고 -이건 장기여행자들이 많다는 것 일테고- 얘들이 전반적으로 지저분해 뵈더니 이 인간들 아침에 아무도 안 일어난다. 어찌나 맘이 편안해지는지.. 결국 9시 가까이 되서야 내가 일등으로 일어난다^^ 그래도 또 습관적으로 갈 곳을 만들어 나선다. 이번엔 쿤밍에서 약간 떨어진 서산이란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 이제 로컬버스 타는 데는 거의 선수가 된 것 같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5번 버스 타고 가다가 6번 버스로 갈아타고 가는데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냥 목적지까지 갔으니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서산은 쿤밍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덴이라는 호수를 끼고 있는 산인데 이 산 중턱쯤에 있는 석굴인 룽먼 즉 용문에서 바라보는 덴호수의 경치가 때.때.로. 환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서산에서 룽먼석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네얼묘가 있다. 론리에 의하면 네얼은 뛰어난 작곡가로써 현 중국의 국가를 작곡하였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 일본에서 러시아로 가던 중 익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단다. 그의 묘에는 인민음악가 네얼묘라고 되어있고 묘를 둘러싼 담벽엔 인민들의 투쟁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요절한 천재음악가와 혁명 그리고 이제 관광지가 된 그의 묘지 사이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후에는 물론 룽먼 석굴도 갔으며, 거기서 덴호수도 바라보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덴호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길을 찾아내려고 30분간 노력하다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덴호수를 넘어 운남에 산다는 26개 소수 민족을 박제해 놓은 민족원이라는 데도 가고 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네얼묘. 동상 뒤로 그의 묘가 있고 그 뒤로 부조된 벽면이 둘러쳐져 있다.


시산 룽먼에서 바라본 덴호수. 저 호수 가까이서 봐도 물감 풀어놓은 듯한 초록색이던데.. 멀리서나 봐야 예쁘지 가까이서 보면 좀 섬뜩하다.


 민족원의 어느 소수민족 마을. 원래 민속촌이라는 게 그렇듯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눠 소수 민족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슨 동물원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좀 그렇다. 하지만 뭐 그 마을로 트레킹을 간다고 한들 뭐 다르겠는가. 다 그런거다.


여행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몸과 맘이 널럴해지기 시작한다. 고구마 왈 지나친 술은 간을 딱딱하게 만들고 지나친 경치는 마음과 눈을 딱딱하게 만든다더니 이제 어떤 관광지든 제법 특별하지 않으면 어떤 걸 봐도 그러려니 싶다. 관광지 구경이 아니라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근데 관광지 구경이 아닌 여행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도 낯선 길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아직 재미있으니 그렇게 다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님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그럴러면 동남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필리핀에 틀어박혀서 영어 공부라도 몇 달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몸 편하고 맘 복잡한 쿤밍에서의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먹는 일을 멈출 순 없다. 윈난 토속 음식 치궈지, 닭에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건데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맛은 뭐 그럭저럭..


 

 


 이것 역시 윈난 토속음식 궈챠오 미센, 위의 쟤들과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담궈서 먹는 요리이다. 같이 넣는 부재료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국물은 비교적 담백한데 그 정도 국물 온도에 부재료들이 제대로 익었을까 약간 걱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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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성> 뒹굴뒹굴의 진수를 맛보다.

결국 싱핑에서 뒹굴뒹굴 이틀 만에 짐을 싼다. 중심거리가 이백미터 남짓한 동네에서 이만하면 오래 놀았다 싶기도 하고 노트북도 연결이 안 되니 뭐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탓이다. 무엇보다 이틀을 뒹굴거리니 좀이 쑤신다. 어차피 버스가 양수오를 들러서 가니 양수오에서 하루쯤 있다 갈까 싶은 마음에 다시 방을 알아본다. 처음 도착했던 날보다 도미토리는 두 배, 싱글룸은 네 배가 올라 있다. 시제 거리는 온통 나들이 나온 중국인들 천지다. 연휴가 맞긴 맞구나 하면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이린으로 나온다. 버스가 다행히 기차역 앞에 선다.


다시 기차표를 끊으러 간다. 연휴가 9일까지고 쿤밍까지는 22시간이 걸린다니 지들도 10일에 출근은 해야 할 테고.. 그럼 대략 9일표는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래도 혹 몰라 10일, 11일까지 메모한 종이를 들고 길게 늘어선 줄 끄트머리에 선다. 다행히 9일표가 있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갑자기 표가 있다니 누구 표현대로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 같다. 하지만 9일까지는 아직 6일이나 남아 있다--;:. 구이린에 처음 왔을 때 묵었던 화만루 영어로는 플라워 유스호스텔로 다시 간다. 거기서 다시 어영부영 이틀을 보내고 -결국 호수에 가서 야경을 봤다. 예쁘더만..-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룽지티텐을 보러 다시 계림을 떠난다.


구이린에서 두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룽성이라는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한 한시간쯤 들어가면 룽지티텐이라고 불리는 계단식 논들이 있는 핑안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뭐 논씩이나 보러 그 먼 길을 가나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게다.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이 논들이 거의 800m 높이의 산봉우리까지 닿아 있다는데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꽤 볼만한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도 예외 없이 입장료가 있는데 이번에는 산 입구 마을 초입에서 버스로 올라와 직접 걷어 가신다. 입장료를 내면서 저 돈은 마을 사람들이 1/n로 나눠 가지는 것일까 아님 국가로 들어가는 것일까 궁금해졌지만 뭐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궁금한 대로 두기로 한다.


룽지티텐의 계단식 논들, 벼가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계단식 논들 사이로 보이는 일군의 기와집들이 숙소 집결지인 핑안 마을이다. 누구는 동양 버전의 알프스라는데 그럴 듯 하지?


주차장에서 내려 다시 배낭을 메고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간다.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지긴 했어도 배낭 메고 걷는 길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이다. 주변에 가마꾼도 있고 -앞뒤에서 한명씩 둘이서 대나무로 만든 가마에 사람을 태우고 계단을 오른다- 대나무 광주리에 배낭이나 여타의 짐 따위를 마을까지 실어주는 아주머니들도 계속 따라오지만 가마 타는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코미디고 내 배낭 그 광주리에다 실었다간 광주리 뜯어지기 십상이니 그저 죽어라 배낭 메고 오르는 것 이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래도 경관 좋은데 방을 잡아야지 하는 욕심에 꼭대기까지 간다. 욕심은 때로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 결국 마을 젤 꼭대기에 있는 숙소에 참대 하나를 쓰기로 하고 3인실 도미토리에 묵는다. 그러나 그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결국 본의 아니게 싱글룸에 묵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구이린으로 다시 오면서부터 제법 날씨가 선선해진다 했더니 이곳은 한낮을 제외하고는 긴팔을 입어야 할 만큼 쌀쌀하다. 짐을 풀고 마을 안내판에 적혀 있는 대로 뷰포인트 2지점에서 1지점까지 천천히 걷는다. 계단식 논들 사이로 만들어 놓은 좁은 돌길이다. 한여름에는 온통 푸르렀을 이 논들도 조금씩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걸을 때마다 마른 풀 향내가 난다. 풀이 마르면서 나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마른 풀에서는 뭔가 따뜻하면서 쓸쓸한 내음이 난다. 나 역시 뭐 고향이랄 것도 없는 서울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는 했지만 방학 때마다 들렀던 외가집이며, 그 유년 어느 언저리에서 느꼈을 법한 향수가 아련히 떠오른다. 걷다가, 앉아서 마냥 산등성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걷다가 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진다.


 

다시 달력시리즈. 이건 9월 달력


그냥 10월로 하지 뭐


다음날도 그저 그렇게 하루가 간다. 간만에 늦잠을 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뒹굴 거리다가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낮잠도 잔다. 괜시리 베트남 가이드북도 꺼내서 읽다가 오후에는 다시 마을로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온다. 어제보다 훨씬 한산해진 것이 이제 국경절 연휴가 끝나가나 싶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 저녁 먹고 맥주까지 한 잔 마셨는데도 고작 8시다. 도미토리에서 못해 본 짓을 재빨리 시작한다. 노트북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받아온 e-book을 읽는다. 하루끼의 단편들 몇 개 그리고 산울림.. 뭐 스피커 없이 듣는 노래는 노트북 전 주인의 말대로라면 딱 AM 라디오에서 듣는 노래 같다는데 뭐 산울림 노래랑 비교적 잘 어울리는 듯도 싶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님들도 번잡하던 숙소 앞 식당도 10시가 조금 넘자 조용해진다. 창 밖으로 쏟아질 듯한 별들이 보인다. 조금씩 행복해진다. 


웰빙 아침식사. 여기서 파는 고구마랑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자 비슷한 뿌리 식물, 삶은 달걀과 계림에서 사온 사과 그리고 일회용 커피


 

저녁식사. 두부가 떨어졌다고 해서 시킨 쇠고기구이.. 로스구이 같은 건데 중국식 양념이 되어 있어 꽤 맛있다. 그리고 뒤에 저 문제의 맥주. 이 지역 맥주라고 해서 시켰는데 맛이 맥주가 아니다. 캔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헉 11도다. 저거 두 캔 먹으면 소주 한 병 먹은 거랑 같다는 말씀. 어쩐지 알딸딸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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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핑> 드디어(?) 사기당하다.

아침에 서둘러 싱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잠시 요우타오(중국식 꽈배기, 아침대용으로 종종 먹는데 맛있다^^) 사러 나간 사이에 본 놀랍도록 많아진 중국관광객 숫자에 드디어 국경절이 시작되었구나 피부로 느낀 탓에 대략 체크 아웃 시간을 맞추는 게 방 잡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버스는 약 삼십분 가량을 달려 싱핑에 도착한다. 사실 싱핑에서의 또 다른 기대는 싱핑에 인터넷이 되는 숙소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나서부터인데 생긴 것이데 방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삼일도 안나가고 혼자 놀 수 있겠다, 사람들이란 하루종일 메신져나 해야지, 하면서 잔뜩 부풀어 있었던 것이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숙소 이름만 가지고도 쉽게 찾아진다. 일본인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그 숙소는 외관이 번듯하진 않았지만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좀 비싸더라도 저기서 묵는거야 하고 들어서는데 웬걸 방이 없단다. 그래서 내일은요? 했더니 심드렁하게 여긴 방이 하루에 200원이니 저기 싼 데 가서 알아보란다.


분명 내가 본 여행기에는 둘이서 60원에 그것도 한달 정도 전에 묵었다고 되어있는데 이게 국경절 특수란 말인가 슬슬 걱정이 된다. 나가서 삐기 아줌마에게 못이기는 척 방값을 물어보는데 가격을 말해주지도 않고 대뜸 전화다. 좀 있으니 웬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다. 방이 얼마냐니까 80원이란다. 저거 잘못타고 갔다가 방 맘에 안들면 다시 데려다 줄 턱도 없고 배낭 메고 돌아올 일이 꿈만 같다. 노우를 외치는데 어라 잡지도 않는다. 삐기 아줌마 얼마를 원하냐길래 50원이라고 어리버리 대답하니 이번엔 따라 오라며 앞서 걷는다. 그러더니 다리건너 들판지나 웬 농가주택에 데려다 주신다. 여기 낮에는 전원주택이라 치고 밤엔 어쩌란 말이냐.. 안 그래도 안 잘 판인데 집주인 60원 아니면 안된다길래 얼씨구하며 돌아 나온다. 정말 이러다 다시 양수오에 가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도 나고 괜시리 우울해진다.


배낭메고 다녀 본 주변 방들 가격도 만만치 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운 삐끼 아줌마가 등장하시어 또 다른 아줌마에게 넘겨주신다. 강을 등 뒤로 하고 버스 내렸던 곳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니 뭐 그저그런 숙소가 등장한다. 방이 의외로 넓고 환해서 40원에 이틀이요.. 했더니 안된단다. 40원에 잘 거면.. 하더니 1층 구석의 창고 같은 방에다 시트를 새로 깔고 부산을 떤다. 그냥 50원에 묵기로 하고 방에 들어오니 맘이 편해진다, 20일 만에 혼자 써 보는 방이다. 동네도 조용하고 정말 뒹굴뒹굴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게다가 인터넷은 시간당 2원이라는 감동적인 가격이다. 대체적으로 대도시에선 10원, 소도시에선 5원, 상해에서는 무려 20원이나 했었는데 이건 거의 횡재 수준이다.


50원짜리 숙소 동방 빈관, TV도 나온다. 중국어로 더빙된 대장금도 봤다^^^^


담날은 미뤄뒀던 배를 타기로 한다. 계림에서 양수오까지 오는 배가 외국인에게는 대략 450원 정도를 받는다는데 그 구간 중 가장 절경이라는 양디-싱핑 구간만 배를 타기로 맘을 먹는다. 숙소를 나서니 이번에는 어린 여자애가 배타라고 잡는다. 그래, 어차피 매표소도 안보이더만 가격이나 알아보자 싶다. 싱핑에서 양디가는 구간을 물어보니 거기까지는 안가고 중간쯤까지 가는데 200원이란다. 어차피 깍일 가격이라 막 부른다 이거지.. 그래 니맘대로 불러라 나야 안 타면 그만이지 하고 여유를 부리는데 자꾸 얼마면 가겠냐고 묻는다. 이게 거의 중국인들의 공통적인 흥정 방법인데 먼저 되도 안하는 금액을 부른 뒤 난색을 표하면 얼마면 사겠냐고 되묻는 식이다. 그래 얼마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양디까지 왕복을 원한다고 했더니 이번엔 300원이란다. 헉 꼬마가 간도 크지.. 양수오에서 숙소가 20원이었대니.. 참나.. 그냥 노땡큐 했더니 200원, 150원까지 내려간다. 100원에 양디까지 가자고 했더니 다시 처음에 말했던 그 중간 지점을 들먹인다. 됐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지 하고 있는데 이 꼬마 근 한시간을 내 옆을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삐끼 세상에도 의리는 있어 다른 삐기가 붙어 있으면 일단 접근을 안하는 것 같은 것이 어제만 해도 그 많던 삐끼님들이 얼씬도 안해주신다.


어영부영 얘를 어떻게 떼내나 하고 있는데 이 꼬마 드디어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100원에 양디까지 가겠다는데 분위기 아무래도 찜찜하다. 양디까지 왕복이 맞느냐고 재차 확인해도 그렇다는데 도리가 있나.. 돈은 갔다 와서 주겠다고 할까 싶었는데 보아하니 배주인에게 팔아넘겨지는 분위기니 것도 쉽지 않고 설마 흥정이 어렵지.. 내용을 속이겠냐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린앤데 싶기도 해 찜찜한 채로 100원을 주고 그냥 배를 탄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배 한시간쯤 가더니 처음 꼬마가 말한 지점에서 정확히 회선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즉 원래 약속한 지점의 반정도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배였던 것이다. 헉 이렇게도 속는구나 싶은 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니가 생각하는 딱 100원어치만 태워준거로군 싶다. 그래도 두시간은 배를 탔고 한 삼사십원쯤 바가지를 쓰긴 했지만 굳이 한시간쯤 더 가고 싶은 마음도 그리 크지 않아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뭐 나도 중국정부를 상대로 입장료 100원이나 사기치지 않았냐 말이다.^^ 배에서 내려 살짝 흘겨줄려고 했더니 요 좁은 동네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꼬마는 통 뵈질 않는다. 오늘 일당은 다 채운 것일까? 14살에 이름이 제니-웬 제니?-라는 영어도 곧잘 하던 그 꼬마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뭐 험한 세상 최소한 나보다는 잘살지 싶다.



배에서 본 풍경. 날이 잔뜩 흐리더니 내릴 무렵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를 타고 나도 시간이 한참 남는다. 시간당 2원짜리 인터넷은 노트북 연결이 안된다. 안되는 실력에 IP랑 DNS값까지 넣어봐도 그저 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나오고 일하는 애한테 물어봐도 지는 아무것두 몰라유 하는 표정이다. 컴퓨터에다 한글을 깔아볼까 하다가 에라 내 한계를 넘어서는 짓은 하지 말자 싶어 그냥 웹서핑이나 하다 나온다. 뒹굴뒹굴은 머릿속에선 황홀한데 현실에선 꼭 그렇지도 않다. 무지 심심하다. 내일은 또 뭘 하지? 마침 장날이라니 장이나 구경하고 다시 양수오로 나가야 하나..  국경절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좀이 쑤신다. 기차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 겠다.


싱핑의 3일장. 야채도 팔고


국수도 팔고


고기도 판다.


 그러다 어제 그 꼬마 여자애를 만난다. 살짝 흘겨줬더니 천연덕스럽게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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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오> 드디어 감기몸살이다.

급기야 콧물에 재채기까지 전형적인 감기 증세가 옴 몸을 휘감는다. 그래 양수오에 가면 싱글룸을 잡아서 한 며칠 뒹굴거려야겠다며 마침 국경절이니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 할 거 차라리 잘 된 거라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양수오로 떠난다. 내가 기대한 양수오는 조금 번잡하기는 해도 제법 시골티가 나는 한적한 곳 일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도착한 순간 나의 그러한 기대는 산.산.조.각. 난다. 이건 거리만 똑 따놓고 보면 카오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가장 안 중국적인 여행자 거리였던 것이다. 물론 배경은 확실히 중국 산수화인데 말이다. 사실 내가 여행자 거리를 싫어한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아직은 적당히 복잡한 여행자 거리가 맘이 더 편한 것도 사실인데 그냥 뒹굴거리기엔 생각보다 번다해 보인다는 거다.    


그래도 조금은 익숙한 거리의 느낌 때문일까, 마음은 편안해진다. 몇군데 숙소에 들어가 싱글룸을 알아보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너무 어둡거나 너무 좁거나 맘에 드는 게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다시 나를 타이른다. 여긴 쉴만한 곳이 아니니 싱핑에 가서 그때 쉬자고.. 그때까지 아픈 거 잠시만 보류하자고.. 그리곤 익숙하게 다시 유스호스텔로 간다. 가격이 정말 착해진다, 하루에 20원. 한사나흘 머무르려던 계획을 바꿔 이틀만 있기로 한다. 리셉션에선 10월 1일에는 방이 연장이 안되니 반드시 체크 아웃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둔다. 양수오에서 30km 쯤 떨어진 싱핑이란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 막상 방이 없으면 어쩌나 싶다가도 설마 나 하나 잘 데 없겠어 하며 걱정을 접는다.


시제(西街)


시제의 카페 , 카오산 저리 가라다.


주변을 이리저리 쏘다니다 도저히 몸상태가 영 엉망이라 그냥 숙소에 들어온다. 씻고 안마나 받은 뒤 약 먹고 일찍 자기로 한다. 일단 나가서 두 시간짜리 발과 바디 마시지를 받는다. 아 정말 좋다. 이렇게 하고도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안 된다. 딴 건 몰라도 마사지 받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운데 자꾸 이래도 되나 맘이 불편해진다. 여행에 무슨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행을 잘하고 있나 하는 강박도 참 버리기 힘든 병이지 싶다. 숙소로 돌아와 처음으로 사온 감기약을 먹는다. 우리나라 감기약이야 또 수면제가 다량 함유되어 있지 않은가? 양수오에 와서 초저녁부터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도미토리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담날 일어나니 온 몸이 개운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현실은 바램과 달리 그냥 견딜만한 정도였다. 양수오에 도착하면서 만난 수십명의 삐끼 아주머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냥 자전거나 타기로 한다. 동굴 투어는 사진 보니 중간 중간 기어가기도 하고 머드천 같은데서 진흙 범벅이 되기도 하던데 그거 라오스에서 다해본데다 혼자 얼마나 뻘쭘할 것이냐.. 누구 머드 묻힐 사람도 없고.. 그래서 포기. 배는 싱핑에서 탈 거니까 두 번 탈 필요는 없지.. 또 포기. 그래서 자전거만 타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법 큰 자전거다. 발이 간신히 닿는다. 양수오에서 한 시간쯤 걸린다는 월양산을 목적지로 잡고 왕복 두 시간, 산에 올라가는데 한 시간, 그럼 오후에는 뭐하지 하면서 페달을 밟는다. 


월양산 가는길


월양산 가는길2

 

월양산에는 아직도 칼을 든 강도가 출몰하니 절대 일행과 떨어지지 말라는 경고가 론리에 나와 있다. 헉 그냥 강도도 아니고 칼을 든 강도라니 좀 아니 많이 무섭다. 그래도 그렇지 입장료도 받는 곳에서 것도 대낮에 강도가 출몰한다는데 대체 공안은 뭐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 가이드북 쓸 당시에 그런 일이 한 건쯤 있었겠지 하면서도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참 혼자 가지는 못하고 같이 올라갈 만한 사람을 기다려본다. 이 사람 많은 중국에서, 게다가 이 유명한 관광지인 양수오에서, 심지어는 내일부터 지들의 2대 명절인 국경절인데, 어찌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이다지도 없단 말인가. 십 여분을 기다리다가 그냥 혼자서 올라간다. 어째 내려오는 사람도 없는지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흠칫 놀란다. 결국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 혼자 정상까지 간다. 근데 무서우니까 힘을 확실히 덜 드는 것 같다. 숨차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가 정신차려보니 정상이다. 근데 이건 또 뭔 조화속인지 밑에서 그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정상에 있으니 속속 들이닥친다.


월양산. 달모양의 구명이 있어 월양산라고 불린단다.


 

월양산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론리에서 하루쯤 일정을 잡고 떠나라고 했던 위룽허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나 갈까.. 잠시 망설이다 그 길에 들어선다. 한 100m 쯤 비포장도로를 가니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이쯤에서 자전거를 돌려 나가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다리는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무슨 춤추는 분홍신을 신은 여자애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뭐 다행히 해가 질 무렵 쯤 되면 멈추기는 한다^^한구비를 돌아 달리면 달릴수록 그림 같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돌아 나갈 수도 없을 만큼 들어왔는데 바람 한점 그늘 하나가 없다. 그저 땡볕에 비포장도로를 묵묵히 달리는 수 밖에.. 가끔 내려 담배 한대피면서 어디를 둘러봐도 달력그림 같은 마을에서 그냥 한참씩 쉬었다 간다. 오후 내내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달렸더니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다.


달력6월

 


달력7월


달력8월


그러다 마을을 만난다. 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며 지나는 집들 언저리로 보이는 남루한 살림살이들도 정겹다. 그러나 마을엔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개도 산다. 송아지만한 개들이 그냥 돌아다닌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대개는 못 본 척 지나치면 되는데 어느 마을에선가 집안에서 맹렬히 짖으며 뛰어나오는 개 두 마리와 부딪힌다. 엄마, 아부지, 하느님, 부처님 순식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도 대문 앞에 멈춰 서서 더는 나오지는 않는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담부턴 마을만 나오면 긴장이 된다. 차라리 그냥 논길을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해진다.


결국 어스름이 되서야 양수오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멍이 아니라 화상이다. 화이트닝은 커녕 피부가 화끈거려 이삼일 지나면 벗겨질 판이다. 어쩌자고 그 땡볕을 대책도 없이 달렸단 말인가? 오이라도 하나 사서 붙여볼까 하다가 도미토리 꼴불견 10위안에 들어갈까봐 참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굶었고 가이드북에서 봐둔 피쥬위라는 요리를 먹기로 한다. 양수오에 있는 리강이라는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에다 맥주를 먹였다나 아님 맥주에 담궜다나 하는 요린데 반을 남기더라도 이건 먹어야지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선다. 론리의 영향은 대단해서 메뉴보고 고민할 것도 없이 맨 앞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거주세요 밥이랑 맥주랑.. 좀 기다리니 요리가 쟁반에 나온다. 이걸 다 먹으라고? 물론 다 먹었다^^


 피쥬위.. 맛있겠지?


너무 심하게 달린 탓이지 감기도 다 나은 듯싶다. 이리되면 싱핑에서 쉴 핑계가 하나 사라지는 셈인데.. 하면서도 살짝 앓고 지나가 준 감기가 고맙다. 낼은 싱핑으로 간다. 정말 뒹굴뒹굴의 세월이 올지 그 뒹굴뒹굴을 내가 견딜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여기보다는 조용한 곳이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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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 호수에서 보낸 오후

 계림북역에 내려 계림역까지 택시를 탄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는데다 배낭까지 메고 헤맬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택시는 시내 중심가를 가로질러 가고 주변으로 동글동글한 카르스트 지형-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카르스트 지형이 뭔지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특유의 산봉우리들이 자못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도 항주처럼 시내는 제법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여기저기 맥도날드며 KFC 간판들이 시내를 점령하고 있다. 역에 내려 유스호스텔을 찾아간다. 허접한 입구에 비해 실내가 깨끗하다. 가격도 상해서부터 도시마다 5원 단위로 싸지고 있다. 앗싸!


도착한 날 비가 내리더니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 아플 때도 됐다 싶은데 그래도 양수오나 가서 아프자고 나를 추스른다. 담날 그냥 몸이 안 좋은대로 시내 구경을 나선다. 그 동글동글한 봉우리마다 계단을 만들고 담장을 쳐 입장료를 받는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봉우리는 대략 5개.. 그 중에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독수봉과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는 복파산을 제치고 <산정상에서 둘러보는 전망은 장관이다>라는 데차이샨 우리말로는 첩채산을 오른다. 황산을 오르고 나니 이까짓 산쯤이야 그저 언덕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다시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실연 말고도 면역이 안 되는 것이 사실 여럿 있다^^


첩채산에서 바라본 계림 시내, 숨차게 올라간 보람을 느낀다.


<지구 한가운데로의 여행 세트>처럼 보인다는 루디옌 우리말로 노적암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번에는 칠성공원으로 간다. 동굴 하나를 과감히 포기하고 왔더니 이건 또 무슨 유혹이라는 말이더냐.. 공원 입장료는 35원인데 공원안의 동굴을 가려면 30원을 더 내야 한단다. 그래, 그래도 동굴하나는 봐야지 하며 또 65원짜리 표를 끊는다.


공원입구의 벤치에는 중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름(?)에 전념하고 계신다.

 


낙타봉. 워쩌 낙타같은겨?


공원 안에 폭포도 있고


나는 비만 호랑이^^ 저거 올라타고 사진 찍는 데 10원이다. 근데 좁은데 가둬놓고 얼마나 먹여놨는지 차마 눈뜨고는 보기 힘든 지경이다. 에구 호랑이 팔자도 원..


칠성암.. 죄다 조명발이다.


오후 네시 무렵에 시내 중심에 있는 호수에 도착한다. 요술왕자의 부인인 고구마가 얼마 전 중국에 왔다가 쓴 글에 의하면 자기는 계림에서 호수가 특히 호수의 야경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쓴 글을 보고 야경을 꼭 보리라 다짐한 터다. 그러나 야경을 보려면 아직 세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니 그냥 호수나 한 바퀴 돌아보자고 걷는다. 근데 이게 뭐 서호도 아니고 쉬엄쉬엄 걸어도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그래도 야경을 보겠다는 욕심에 쉬었다 또 쉬었다 하면서 세시간을 보낸다. 마침 MP3나 듣자 하고 틀어보니 받아 논 노래라는 게 연가라는 이름의 CD다. 다들 알지? 이미연의 연가라고.. 모르나.. 그냥 삼사년전 유행하던 사랑 노래 묶음라고 보면 되는데 세시간 내내 줄창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아냐는 둥 내가 널 잊어주길 바라냐는 둥 이게 그때의 댓가인가 보다는 둥 둥둥둥을 듣고 있으니 괜시리 옛날 남자들도 떠오르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내가 계림 호수에 있는지 일산 호수에 있는지도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호수 위의 이란성 쌍둥이탑

여기 중국맞다니까요^^

 

드디어 해가 지고 그 아름답다는 야경은 언제 보여줄래나 기다리고 있는데 야경은 커녕 산책로에 불도 안 켜진다. 어 뭐 이래.. 좀더 기다리면 보여줄래나 했더니 일곱시에 배처럼 생긴 식당에 불하나 켜지곤 그만이다. 이제 열도 나는 것 같고 배도 고프고 더 이상 호수 구경도 싫고 이 호수가 아닌가벼 하는 맘으로 숙소로 돌아온다. 그리곤 못내 아쉬운 맘에 인터넷으로 다시 그 글을 읽는다. 그 호수가 맞다. 글 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낮에 본 것들에 죄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이거 국경일에만 켜는 거 아냐?^^ 양수오 갔다가 오는 날 혹시 가능하면 늦은 시간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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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걷고 또 걷다.

아무래도 주말이 걸리지만 별로 할 일도 없는 항주에 하루 더 묵기가 싫어져 그냥 황산으로 떠나기로 한다. 하긴 남들은 하루밤 자고 떠나는 곳에서 사흘이나 머물렀으니 떠날 때도 된 것이다. 서부버스터미널로 가서 툰시행 버스표를 끊는다. 황산 바로 입구 마을은 탕구라는 곳인데 툰시에서 한 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곳이다. 굳이 한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으로 가는 이유는 기차역이 툰시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차표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언제든 도착하자마자 기차표부터 구해 놓으라는 조언을 이래저래 들어온 터다. 국경절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국경절 탓인지 아님 원래 중국의 기차표 사정이 그런 건지 원래 떠나려던 날 표도 그 다음날표도 심지어 그 다음날 표도 메이요우(중국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절망적인 말로 없다는 뜻이다)다. 단지 있는 건 딱딱한 의자밖에 없다는데-중국 기차는 말이지, 같은 기차에 칸이 다른 네 종류의 좌석 또는 와석이 있는데 대략 가격 높은 순서에 따라 푹신한 침대-딱딱한 침대-푹신한 의자-딱딱한 의자로 나뉜단다-이 딱딱한 의자가 딱딱할 뿐만 아니라 등받이는 90도이며 심지어 입석도 있어서 한 서너시간만 가도 고문이라는 얘기가 가이드북에 나와 있다--:; 황산에서 구이린 까지 22시간..차라리 수수료를 내자 싶어 기차역 근처 여행사를 찾아가 봐도 이상하게 기차표는 취급하지 않는단다. 그렇다고 황산에 마냥 잡혀있을 수도 없어 일단 차장에게 딱딱한 침대가 있으면 바꿔 달랠 요량으로 딱딱한 의자표를 끊는다. 


상해에서 쑤저우로 올 때 탔던 푹신한 의자차. KTX보다 쾌적하다. 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쩝..  

 

황산에 도착한 날이 금요일이니 담날 황산을 올라가려면 사람들이 그리 피해야 한다는 주말을 끼고 올라가게 되는 셈이니 하루정도 툰시나 둘러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아침이 되니 그냥 올라가고 싶어진다. 어차피 내려오자마자 씻지도 못한 채로 기차를 탈 일도 꿈만 같고 무엇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루종일 산에 올라갈 걱정을 하는 것 보다야 그냥 오르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부랴부랴 슈퍼에 들러 물이랑 사발면, 과자 등속을 사고 나오다 36원(한 5,000원쯤 될거다)짜리 가짜가 너무나 분명한 아디다스다(아다디스거나 아도니스가 아니라 아디다스라고 쓰여있다^^) 가방을 집어든다. 짐은 만드는 게 아니랬는데 여튼 비닐 봉투를 들고 올라갈 수야 없는 터.. 정 안되면 쓰고 버리지는 마음으로 가방을 산다.


황산입구에서 드디어 만들어 두었던 비장의 무기! 가짜 학생증을 꺼낸다. 성인입장료 200원, 학생은 반값인 100원이다. 표 구입까지는 무사히 끝났는데 입구에서 다시 학생증을 보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학생증을 꺼내 주었더니 이 아저씨, 나 한 번보고 학생증 사진 한 번 보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안다 알어 나도 미안하다야.. 그치만 니네 입장료가 좀 비싸야 말이지.. 생글생글 웃으며 이거 나 맞아요.. 했더니 급기야 이 아저씨 너 몇 살이냔다. 가만있어보자 학생증 출생연도가 82년생으로 돼있으니까 내가 몇 살이냐? 갑자기 계산이 안 돼 그냥 트웬티 세븐하면서 나도 무지 찔린다. 뭐 아저씨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영어는 짧고 어쩔 수 없이 보내주면서도 영 개운치 않은 얼굴이다.


황산은 입구부터 정상까지 아니 반대편 하산로까지 모두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이중 좀 덜 힘들다는 구간이 서쪽으로 올라 동쪽으로 내려오는 건데 양쪽 모두 케이블카가 다닌다. 이 케이블카의 유혹이 만만치 않았지만 가격도 넘 비싸고 무엇보다 한번은 올라줘야 한 십년은 자랑할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계산에 그냥 걸어오르기로 한다. 케이블카로 10분이면 오른다는 운곡사에서 백아령까지 구간을 그냥 계단만 따라 두시간 반을 오른다. 다리는 그간 걸어다닌 덕을 봤는지 견딜 만한데 숨이 차서 오르기가 쉽지 않다.  담배를 끊든가 해야지 원 하다가 산을 끊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한삼십분은 정말 죽을 것 같더니 한 시간을 지나치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걸어진다. 산 입구부터 자욱하던 안개는 갈수록 심해져 그나마 경치라도 보면서 가면 위안이 되련만 그저 올라가는 계단만 분간될 뿐이다. 주말이라는데 사람이 별로 없네 하면서 오르고 있는데 웬걸 케이블카 내리는 곳을 지나자 한국, 중국 할 것 없이 단체 관광객이 떼로 몰려 다닌다.


 

이런 계단이 계속된다. 

 

숙소 역시 메이요우다. 그저 주말이면 좀 비싸려니 했지 숙소가 없을 거라곤 미처 생각을 못해서 잠시 당황이 된다. 게다가 여기는 산꼭대기이고 내가 아는 숙소는 두군데 뿐인데 둘다 메이요우라면 어쩌란 말이냐.. 갑자기 비박..노숙 따위의 단어가 떠오르며 몸이 굳어지더니 한국단체관광 온 아줌마들한테 사정을 해 볼까 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온 중국학생들이 사정을 눈치채고 자신들에 숙소에 사정을 해서 넣어준다. 아마 외국인은 못 묵는 곳인 것 같은데 뭐 모양새도 비슷하니 들통 날 염려도 없고 노는 침대에 돈 받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어서 숙소측에서도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 눈치다. 어쨌든 친절한 중국인들 덕분에 비박 신세는 면하게 되었으니 신세를 톡톡히 진 셈이다.


미리 사들고 온 신라면 사발면으로 저녁을 때우는데 헉 사발면이 이리 맛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라면 먹다 울 뻔했다^^일회용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이미 해가 진 숙소 주변을 배호하다 돌아와도 시간은 일곱시가 조금 넘는다.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만하고 발을 물휴지로 닦고 잠자리에 든다. 도미토리 20인실은 저녁 8시 30분에 불이 꺼진다. 산꼭대기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아침 일찍 일출도 봐야 하니 일찍 자자는 것인데 아무리 고된 길을 올라왔어도 8시 30분에 잠이 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끄면 잠은 오게 되어 있다.^^


20인실 도미토리의 일부. 일층에서 자는 사람이 몸을 뒤척이면 그 진동이 고스란히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일출지점이 어딘지 몰라 그냥 중국인들을 따라나선다. 아직 캄캄한 산길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한 20분이상 올라간다. 일출이고 뭐고 그저 주저앉고만 싶다고 생각할 무렵 일출지점에 도착한다. 내 생애 일출을 본 건 딱 한번이다. 사오년전 정동진 영화제에 갔다가 술 먹고 본 일출이 유일무이하다. 그렇게 많이 갔던 동해에서도, 수학여행에서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해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는 얘기다. 그.런.데. 황산에서 일출을 본 것이다. 기대가 과했는지 해 뜨기 전까지 에이 사진만 못하네.. 해가며 시건방을 떨다가 막상 해뜨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구름이 많아서 채 다 떠오르기도 전에 일부는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리긴 했지만 해는 분명히 봉우리 너머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대체 본 것의 반의 반도 보여줄 수가 없으니 카메라는 왜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려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지만-은 날이 환하게 개여 있다. 푸른 하늘 너머로 구름에 싸인 봉우리들이 선명하게 제 빛을 드러낸다. 비로소 내가 황산에 와 있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사실 내려오는 길이라 혼자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길은 정상으로 갔다가 내려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다시 네 시간동안 계단을 올라 정상에 다다른다. 이번에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산의 자태에 그저 힘든 줄도 모르고 걷는다. 문제는 하산길인데 내려가는 계단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던 그 길에 다리가 말썽을 부린다.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는지 간혹 짐 나르는 아저씨를 제외하곤 올라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에 다리가 거의 지 혼자 놀기 시작하는 상태가 된다. 이건 쉬어도 나아지질 않고 계단 하나를 내려가는 온 신경이 집중되는데 거짓말 쫌 보태서 차라리 올라가는 게 났겠더라는 말이다.


 

 


 

 


 

여기도 마찬가지.. 사진 좀 잘 찍었음 좋겠다.

 

여튼 황산이라는 큰 숙제를 마친 지금은 정말 숙제 마친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다. 딱딱한 의자가 걱정되긴 하지만 뭐 숨이 차거나 다리가 풀리지는 않을 거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황산으로 오면서부터 슬슬 여행하는 맛이 나기 시작한다. 주변 풍광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도 좀 찍고 싶은데 아직은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곧 국경절이다. 대체 표는 언제까지 없을 것이며 관광지에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물가는 또 얼마나 비싸질 것인지 도통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안되면 이래저래 견디는 수 밖에.. 참 그 아디다스 가방 벌써 쟈크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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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조용한 호수의 도시

 

항저우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일찍 서호를 보러 나선다. 워낙 큰 호수라고 들어서 한바퀴 둘러볼 엄두는 못 내고 그저 호숫가를 따라 걸어 다닌다. 물가에 식당이나 매점 따위가 있긴 해도 산책로며 벤치같은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생활필수품 자전거도 서호에 진입이 금지되어 오랜만에 느긋하게 거리를 걷는다. 한시간쯤 걷다보니 얼추 호수의 1/4은 돈 거 같아 보인다. 뭐야.. 별로 안 크잖아.. 다시 돌아가는 것도 어정쩡해 그냥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서호는 바다에다 제방을 쌓아 만든 인공 호수라는데 그 호수 가운데 다시 호수 강바닥의 흙을 긁어내 만든 바이디와 수디라는 둑길이 호수를 가르고 있다. 그 둑길 위로 놀며 쉬며 걸어다닌다.


 

 서호위로 한가롭게 떠다니는 배들, 사실 한가롭진 않고 열심히 고기잡이 중이다. 


 

 같은 날 서호

 

세시간쯤 걷다가 다리도 아프고 해서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섬 가운데에 무슨 삼도라는 세 개의 섬 중 두개를 돌아보고 제자리에 내려주는 배인데 이 놈의 배가 첫 번째 섬에 내려주고는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떠나버리는 거다. 섬이라야 손바닥만한 곳에 호심정이라는 정자 하나만 달랑 서 있다. 다시 선착장에 갔더니 다른 배가 서 있고 끊었던 배표를 보여주니 그냥 타란다. 그리하여 다음 섬까지는 무사히 도착을 했는데.. 이 섬 역시 이전 섬보다야 약간 크지만 한 바퀴 도는데 십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온통 공사 중이다. -뭐 중국 전체가 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다시 배를 타야 하는데 내가 탄 곳으로 내리는 배가 뭔지를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내가 탄 곳의 명칭을 알아야 적어라도 보여줄 텐데 것도 모르겠고 표를 보여주니 무조건 타란다.. 에휴 운에 맡기자 싶어 아무 배나 올라탔더니 운도 없지 이 배가 내가 한시간 반전에 걸었던 곳에다 내려준다. 


다시 걸을 엄두가 안나 택시를 탈까 하고 있는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전동차가 눈에 뛴다. 대략 서울랜드 입구에 있는 코끼리차 비슷한데 레일은 없는 자동차라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구간구간 사람을 내려준다. 두시간 전만해도 누가 저런 걸 타나 했는데 쾌재를 부르며 냉큼 올라탄다. 배 탔던 곳을 조금 지나 다시 걷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지더니 호수 서쪽은 하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서쪽에서 보면 더 이상 호수가 아니라 바다처럼 느껴진다. 이제 식당도 매점도 보이지 않고 몇몇 현지인들만 호숫가를 산책 중이다. 역시 같은 호수라도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혹은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웬지 쓸쓸해 보이는 의자


 

어디서나 염장지르는 것들은 꼭 있다^^

 

다음날은 자전거를 탄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길이라고 나섰는데 도로 한 편에 줄만 그어놓은 길이다. 내 자전거 실력이야 그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정돈데 그것도 호수공원처럼 차 절대 없는 자전거 길에서나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곳 중국의 차들과 사람들은 교통신호 절대 무시.. 차도 인도 보도 안가림.. 등등을 이미 봐 왔던터라 사거리 하나만 지나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그렇게 삽십분 정도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왜 모든 자전거가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거지? 알고 보니 나만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거다. 으.. 미안해라.. 근데 이 사람들 고맙게도 저쪽으로 가라든가 왜 이리 다니냐든가 뭐 그런 제스쳐 한 번을 안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달리니 자전거 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인가?


서호를 지나 영은사쪽으로 길을 잡는다. 중국의 도로는 안내판이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다. 어디나 이곳이 무슨 도로인지 동쪽인지 서쪽인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지도가 있고 한자를 읽을 줄 만 알면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은사를 둘러보고 다시 방향을 롱징차 마을로 잡는다. 지도상에는 그리 먼길은 아닌데 바로 가는 길이 없다. 일단 서호쪽으로 나왔다가 방향을 튼다. 엉덩이가 슬슬 아파오지만 자전거 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달린다. 그런데 롱징차 마을 가는 길에 산길이 버티고 서 있다. 롱징차마을로 간다는 버스가 다니는 걸로 봐서 이 길이 맞긴 한데 웬 산길 더구나 입구에 자전거 가지고 가지 말라는 표지까지 붙어 있다. 다시 돌아와 지도를 살펴봐도 이 길밖엔 길이 없다. 에이 설마 얼마나 멀겠어 하면서 경고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이라 타지는 못하고 그저 끌고 산길을 오르는데 땀이 비오듯 한다. 그렇게 산길을 한 한시간이나 걸었을까 이번에는 한계령에서나 볼 수 있는-내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얘기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나타난다. 포기다. 올라갈 자신도 없을뿐더러 오는 건 또 어쩐단 말이냐.. 올라왔던 길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 가는데 스릴 만점이다.


 

 영은사 입구의 석불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원래 갈 생각이 없었던 육화탑이라는 곳인데 탑 꼭대기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보인다나 어쩐다나 하는 곳이다. 육화탑 근처에 도착하니 강이 보인다. 서호가 아니라 첸탕강인가 하는 거의 한강보다도 큰 항저우의 주요 지류다. 이때쯤 그러니까 추석지나고 이삼일쯤 뒤에 만조에 의해 강물이 역류하는 모습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는데 원래 어디로 흘렀는지도 모르니 역류해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사실 강가에 모인 사람들이 역류 때문에 모인 건지 늘 그리 많은 건지도 알 수는 없다.^^


육화탑에서 내려다본 첸탕강

 

다시 자전거를 타고 까르푸로 간다. 스낵코너에서 가장 만만한 국수를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먹는 음식 중에 우리네 떡국떡 같은 것을 간장에 야채와 함께 볶아주는 것이 보인다. 앗! 저것은 궁중떡볶기가 아니더냐.. 배가 너무 불러서 더 먹을 수도 없고 낼 아침에 다시 와서 먹자니 시간이 없고 아쉬움에 입맛만 다신다. 까르푸에서 과일이랑 몇가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그래도 안 다치고 돌아온 게 어디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나중에 보니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그럼 그렇지.. 내일은 롱징차 마을만 버스로 둘러보고 황산으로 떠나야겠다. 이렇게 되면 황산 등반이 주말에 걸리긴 하지만 정 안되면 그냥 산 밑에서 하루 더 버티면 될 일이다. 근데 차마을로 가는 산길은 얼마나 더 올라갔어야 하는지 낼 버스타고 가면서 꼭 확인해 봐야겠다. 


롱징다원. 이리 큰 주전자며 다구 따위가 주위경관을 완전히 망쳐 주신다. 그리고 그 산길은 그때 포기하길 잘 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오르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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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음... 소주 마시고 싶다.

  

 

여행오기 전 가이드북 무게라도 줄여보려고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분철해 왔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쑤저우 부분이 덜렁 빠져 있다. 매번 상해-소주-항주를 세트로 놓고 분류하다보니 당연히 그 파트에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얘가 나름 다른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한나절만 둘러볼 예정이라 인터넷에서 돌아볼 곳 몇 개만 받아 적고 내려서 지도나 하나 사야지 하고 있는데 마침 유스호스텔 로비에서 쑤저우로 가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난다. 더 정확히 애기하면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공무원의 부인인데 세살박이 아이와 같이 여행 중인 중국거주 한국인이다. 이런저런 수다 끝에 쑤저우로 동행하기로 한다. 마침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 그저 가이드 앞세우고 가듯이 손쉽게 쑤저우에 도착해 따라서 숙소를 잡는다.


북경과 상해에 이어 세 번째 들어가는 유스호스텔인데 대도시와는 달리 사뭇 가족적이다. 리셉션 언니 오빠들도 어찌나 수줍음이 많은지 뭔가 부탁하는 내가 괜시리 미안해질 정도다. 마침 도착한 날이 추석이라 간단한 파티가 있다고 하는 걸 잠깐 야시장이나 둘러보고 들어가야지 하다가 버스정류장을 못찾아 두어시간 헤매다 보니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다. 마침 내 동행도 아이와 함께 근처 공원 어디선가 하는 추석맞이 축제에 참가했다가 늦는 통에 파티는 무산되었지만 밤에 맥주 한 병씩 나눠 마시는데 월병이랑 오징어포, 해바라기씨, 계란 삶은 것 등의 안주가 줄을 이어 들어온다. 파티때 먹으려고 준비해 둔 음식이라는데 조금 미안해진다. 근데 이 숙소에는 손님이 우리 셋밖에 없다는 말인가? 여튼 6인실 도미토리를 셋이서 편하게 쓴다.   


쑤저우를 흔히 물의 도시라고 한다. 과연 그 명성답게 도시 전체를 운하가 감싸고 있고 일부는 도시 사이로도 물길이 열려 있다. 그 운하 사이로 관광객을 위한 보트며 청소하는 보트 따위가 오가는데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상생활을 업으로 하지 않는 도시에서 운하를 보는 것은 꽤 색다른 느낌이다. 또한 북경이나 상해처럼 대도시가 아니어서 건물도 야트막하고 오래된 도시답게 가로수들도 모두 아름드리 나무라 색다른 운치가 있다. 보통 아침 일찍 쑤저우에 도착해 한나절 정원과 유적지만 둘러보고 가면 분명 실망할 것 같긴 하지만 머무르면서 찬찬히 여기저기 걸어다니면 어느 도시든 그 도시만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쑤저우 시내(라기 보단 약간 변두리)


 

 도시를 운하가 감싸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원이나 유적지를 안 갔느냐 하면 아직 유적지 관람병이 완치된 게 아니므로 당연지사 하루의 유적 관람 스케쥴을 짠다. 차이가 있다면 먼저 가이드북을 보고 꼭 가야할 곳과 가지 많아도 될 곳을 가려낸다는 것 정도일텐데 그래도 가야할 곳이 서너군데가 찍힌다. 그렇게 찍은 곳이 졸정원, 유원, 반문, 호구 네 군데인데 유원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유적 관람에 고민이 점점 깊어지는 이유는 첨에 언급했던 이렇게 유적지나 관람하며 다니는 여행이 과연 제대로 된 여행일까 뭐 이런 차원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입장료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주된 이유가 된다. 걸핏하면 담장 막아놓고 기본이 20원, 30십원에, 비싼 곳은 60원, 70원이니 이렇게 서너군데 돌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아진다. 더 중요한 건 그게 과연 그 입장료의 가치를 하는 걸까 하는 것인데 내가 눈이 낮아서인지 뭐 별로 그 가치를 못하는 것들도 상당수 있더라는 것이다.


유원의 경우 북경에서 이화원 봤지, 상해에서 예원 봤지, 쑤저우에서 졸정원 볼 거지 근데 뭐 내가 대단한 정원 애호가라고 40원이나 내고 유원까지 볼꺼냐 하는 생각이었는데 헉, 그 놈의 가이드북에 따르면 유원이 이화원, 졸정원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이라는 것이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쑤저우 4대 명원도 아니고 그 넓은 중국에서 네 손가락안에 꼽는다는데 여긴 들어가줘야지 하면서 또 슬쩍 들어간다. 동남아 다니면서 우스개소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기준 너무 널럴한 거 아냐 했더니 중국문화유산 기준도 꽤나 널럴한 모양이다. 졸정원을 본 후라 그런지 사람이 좀 적다는 빼곤 별 차이점을 모르겠다.


 

 


 

위가 졸정원, 아래가 유원 - 비슷하지? 나중에 사진 정리하면서도 헷갈렸다.

 

가이드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론 졸정원의 정자 네 개 주변에 심은 식물에 따라 4계절을 표현하는데 이를테면 봄의 정자에는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잇어 봄에는 도화가 피고, 가을의 정자에는 낙엽송이 심어져 있어 가을에 단풍이 든다는데  여름이나 그런지 그냥 줄창 푸르기만 해서 잘 구별도 안가더라는 말이다. 어디 졸정원뿐이랴, 유원도 비슷한데 정자마다, 나무마다, 창살 하나에도 사연도 많더만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저 잘 만든 정원이네.. 이런데 살았던 사람은 좋았겠다는 생각 이상이 안 드니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쑤저우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반문이라는 곳이다. 이전에 군사적 이유로 쌓았던 성벽이 있는 곳인데 이제 그 성벽 안 쪽을 공원화 해놓은 곳이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면 아래로 수로가 흐르고 저물녁에는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공원인가? 북경에서도 북해공원이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북해공원 위쪽에 입장료 안 내고 들어가는 그 동네 공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상해도 그저 강주변을 걷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모르겠다. 입장료를 안 내서 좋았던걸지도^^


 

반문에서 본 운하


 

 반문에서 본 해질녘

 

 그저 도시 분위기와 숙소 분위기가 좋아서 -인터넷도 로비 테이블에서 랜선이 바로 빠져 우아를 떨면서 할 수 있다. 물론 가격도 싸다- 예정보다 하루를 더 머물고 쑤저우를 떠난다. 수로 사이를 다니는 배를 타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쾌속선 밖에 탈 수 없단다. 이 조용한 도시를 쾌속선으로 달릴 일 있나.. 혼자 다니는 여행자는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아쉬운 마음에 항주로 가는 13시간짜리 밤배라도 탈까 생각하다가 이내 맘을 고쳐먹는다. 다들 후회할 거라고 말리는 코스다. 게다가 항저우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밖에 안 걸린다. 버스는 또 다른 물의 도시 항저우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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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대도시는 이제 그만

상해로 가는 밤기차는 생각보다 쾌적하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2층과 3층 침대차 승객을 위한 -침대가 3층으로 되어있다- 좌석이 통로에 작게 마련되어 있어 계속 누워서 가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도 말끔히 해소해 준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싼 이 나라는 아직도 우리나라 70년대처럼 끊임없이 안내하는 언니가 오가며 쓰레기도 치워주고 화장실도 청소하고 뭐 기타 등등의 편의를 제공해 준다. 단지 상부라고 표시되어 있는 3층간의 경우 그저 눕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당연하게도 진동이 장난이 아니며 행여나 자다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긴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상부의 티켓이 그중 저렴하다고 한다.  


 

 이 기차다. 3층에서 행여 떨어질세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무려 10시간 이상 버텼다. 뭐 밤 10시면 불을 끄기 때문에 딱히 할 일도 없다.

 

 상해에 도착하니 다시 한여름이다. 북경에서 내리는 비 때문에 제법 쌀쌀해져 챙겼던 긴팔 겉옷까지 껴입고 내리니 배낭 무게에 겹쳐 땀이 비오듯 흐른다. 대략 부산정도의 위도밖에 안되는 것 같은데 이게 웬 횡액이란 말이냐.. 당분간은 인도차이나 반도에나 가야 입겠지 했던 반바지를 꺼내 입어야 할 것 같다. 뭐 상해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략 짐작이 가는 정 안가게 높은 건물들이 나날이 올라가고 있는 대도시다. 한강보다 물살이 약간 세 보이는 황푸 강변에 서울의 63빌딩만한 건물들이 꽤 여럿 서 있는, 야경이 이쁘긴 하지만 뭐 한강다리 근처에서도 제법 만날 수 있는 그런 도시라는 말이다.


 

 그래도 야경사진 한 장.. 흔들린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도 지도 한 장 들고 걸어다닌다. 북경은 그나마 반듯반듯한 도로 덕분에 버스타고도 헤매지 않고 돌아다녔는데 여기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고 도시는 작은데 길 막히는 수준으로 봐선 택시비도 만만치 않게 나올 듯 하여 걷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걸어다니면 좋은 건 시장이나 뒷골목 언저리에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는 건데 상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층빌딩 뒤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살림살이들이 드러난다. 그저 며칠 본 것에 불과하지만 상해가 북경보다는 빈부격차가 심해 보인다. 이상하게 거지도 노숙자도 상해가 훨씬 더 많다.


 

 여행자들의 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빨래 사진.. 나도 함 찍어봤다.

 

빨리 상해를 벗어나고 싶다. 그래도 북경은 대도시지만 사람사는 냄새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는데 반해 상해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천민자본주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뿐이다. 게다가 여행 떠난 지 일주일 넘게 도시만 보고 다녔더니 이건 좀 아니지 이런 생각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쑤저우, 항저우, 황산으로 이어지는 다음 일정도, 아니 거의 모든 여행 일정이 관광지 위주로 되어 있으니 그게 그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빌딩 숲은 이제 당분간 그만 봤으면 좋겠다.


상해에서 가장 이쁜 정원이라는 예원인데.. 이 앞에다 무지 큰 쇼핑거리를 만들어 놔서 그저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다녀야 한다.



신천지라는 압구정동 카페거리쯤 되는 언저리에 있는 중국공산당 창당대회장소. 상해임시정부청사도 여기 어디라는데 론리플래닛에는 한줄의 언급도 없어 찾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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