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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01
    <팔미라> 가짜 학생증을 만들다(9)
    제이리
  2. 2006/12/01
    <하마> 잠시 쉬었다 가다(2)
    제이리
  3. 2006/12/01
    <라타키아> 더 우울하다(5)
    제이리
  4. 2006/12/01
    <알레포> 우울하다(2)
    제이리
  5. 2006/12/01
    <산리우르파> 국경을 넘다
    제이리
  6. 2006/12/01
    <넴룻> 자전거팀을 다시 만나다(4)
    제이리
  7. 2006/12/01
    <카파도키아> 슬슬 추워진다(2)
    제이리
  8. 2006/12/01
    <페티예-올림푸스> 바다가 있는 풍경(4)
    제이리
  9. 2006/12/01
    <파묵칼레>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다(2)
    제이리
  10. 2006/12/01
    <셀축> 에페스 유적을 가다(2)
    제이리

<팔미라> 가짜 학생증을 만들다

버스는 황량한 사막을 달리더니 팔미라가 가까워진 어느 길가에서 갑자기 멈춰 선다. 그러더니 반대편 호텔에서 남자 하나가 달려오더니 무조건 웰컴이란다. 이건 또 뭔가 했더니 막무가내로 내리란다. 우린 선호텔에 갈거라고 해도 일단 방부터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선호텔에 데려다 주겠다는데 안 봐도 뻔한 수작이다. 아마 이곳은 타운과는 좀 떨어진 곳일거고 주인과 기사는 이미 모종의 약속이 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결국 유리가 내리지 않고 버티자 버스는 타운 근처에 우리를 내려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번에는 택시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분명히 호텔 이름까지 대고 탔는데도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 내내 다른 호텔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니 그 말이 먹혀들지 않자 내려서는 미리 약속한 택시비보다 돈을 더 내놓으라며 시비다. 좀 싸게 왔다 싶은 생각도 있고 숙소 주인도 조금 더 주라고 하니 많지 않은 돈을 더 주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유적지 하나 파먹고 사는 마을에 온 것 같아 영 찜찜하다.

 

숙소의 도미토리가 4인실뿐이라 여자친구 넷이 한 방에 묵고 나는 그냥 싱글룸에 묵는다. 도미도리와 싱글룸의 가격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손님에 따라 방값이며 식사값이 달라진다거나, 주인이 장삿속이라거나 하는 여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굳이 이 호텔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 호텔에서 가짜 학생증을 만들어 준다는 정보 때문이다. 여자친구 네 명도 학생은 아닌지라 당연히 학생증 없이 왔다는데 너무 차이가 심한 입장료 가격에 놀라 학생증을 만들 생각을 하고 왔다고 한다. 어떻게 말을 꺼내나 고민도 무색하게 방을 잡자마자 학생이냐며 학생증은 있냐고 물어온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일인당 15불이란다. 한국에서 진짜를 발급받는데도 그만큼의 돈은 드니 할말은 없지만 어차피 가짠데 너무 부른다 싶다. 다섯명이 다 만들거라니까 가격이 12, 10, 8불까지 내려간다. 누구는 5불에도 만들었다지만 이정도면 됐다 싶어 그냥 8불에 만들기로 합의를 본다. 호텔 주인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신신당부다. 하긴 유적지가 코앞이니 신경이 쓰일 만도 하다. 다음날 받아든 학생증은 좀 조악하기는해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팔미라 유적1


팔미라 유적2

 

학생증도 받아 들었으니 일단 유적지를 향해 간다. 팔미라 유적지는 입구의 박물관을 시작으로 벨신전과 원형극장 등이 거의 걸어서 볼 수 있는 거리에 밀집되어 있다. 삼형제의 무덤이라나 하는 일군의 무덤군들은 유적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입구에서 박물관을 한바퀴 돌고 벨신전을 향해 걸어간다. 벨신전은 남아있는 팔미라의 유적지 중 가장 거대한 신전인데 2000여년 전 동서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였던 이곳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장대하다. 벨신전 앞쪽에는 길게 뻗어 있는 회랑을 따라 원형극장과 아고라, 신전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여는 유적지와는 달리 황량한 사막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주변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형극장까지 둘러보고 나니 오전이 조금 지나 있다.

 

팔미라, 벨신전


팔미라, 원형극장

 

점심을 먹고 나서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아랍성에 가려고 길을 나선다. 팔미라 유적 한 켠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아랍성이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일몰이 장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전에 맑았던 날씨는 간곳없고 어느새 길에는 돌풍이 불고 잇고 이 사막에 비라도 내리려는지 마른번개가 우르릉거린다. 설마 비야 오겠어.. 하면서 아랍성까지 올라간다. 라마단 기간이라 성문은 이미 닫힌 지 오래고 바람은 점점 심해진다. 어차피 굶 때문에 일몰은 볼 수도 없는 형편이라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온다. 일몰이고 일출이고 간에 최근에는 도무지 제대로 된 걸 볼 수가 없으니 마가 꼈냐 싶은 생각이 든다. 붉은 사막 위로 떨어지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시와 사막에서는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랍성


아랍성에서 본 팔미라

 

저녁을 먹고 나서 다마스커스로 간다는 일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차피 레바논은 하마국경이나 다마스커스 국경 어느 쪽으로 넘던 48시간은 프리 비자다. 단 한달 프리 비자는 하마국경에서만 나온다는 건데 이 친구들은 어차피 48시간안에 돌아올 생각이라 다마스커스를 돌아본 뒤 레바논으로 떠날 생각이라고 한다. 그냥 하마에서 가는 게 어떠냐고 의사를 타진해본다. 어차피 48시간 비자보다야 한달 비자가 맘 편하고 좋은 거 아니냐 그리고 다마스커스는 어차피 오는 길에 들를 수 있다고 설득을 해 본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시리아 재입국비자인데 레바논에서 시리아로 다시 오려면 정식 비자나 통과 비자 둘 중 하나를 받아야 한다. 통과비자는 역시 48시간 안에 시리아를 떠나야 하는데 다마스커스를 미리 봐두면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통과만 하면 되니 통과 비자만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통과 비자는 정시비자보다 8불 가량 저렴하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마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상당히 고역이라는 말에 일행이 있으면 택시로 넘어볼까 싶어 말을 꺼냈던 건데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국 하마 국경을 같이 넘기로 한다. 여자 친구 중 하나는 다마스커스를 보고 다시 터키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아침 일찍 다마스커스로 떠나고 나머지 세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하마로 돌아온다. 하마에서 하루를 머물고 아침 일찍 택시를 수소문해본다.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까지 500시리안 파운드 정도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행이 넷이라 그런지 400시리안 파운드까지 깍인다. 택시로 서너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그것도 국경까지 넘는데 일인당 팔천원 정도의 돈으로 가능하다니 참 시리아 물가가 싸긴 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 일찍 트렁크 가득 짐을 싣고 레바논으로 떠난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어보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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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잠시 쉬었다 가다

하마는 사실 별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볼거리라고는 시내를 관통하는 오른테스강에 돌고 있는 몇백년 된 수차가 전부다. 그렇다고 교통의 요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시간 남짓 떨어진 홈스라는 곳까지 나가야 외부로 떠나는 차를 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이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아무래도 숙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곳 하마에는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리아드호텔이 있는데 시설도 깨끗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게다가 이삼년전 시리아의 배낭여행 정보 없음을 한탄한 어떤 여행자가 한국여행자 전용 정보노트까지 만들어 두고 간 탓에 이곳저곳의 먹거리며 볼거리에 대한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많지는 않아도 여행자들이 두고 간 한국책도 서너권 눈에 뛴다. 결국 며칠 쉬었다 갈 곳을 발견한 셈이다. 이제 조금 조금 느긋해진다.

 

한글책을 뒤적이거나 이북을 보는 걸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도 심심해지면 시내를 산책한다. 시내 산책이라야 강을 끼고 수차가 보이는 곳을 따라 걷거나 한때 성채였다고는 하나 이제는 흔적만 남은 언덕을 오르거나 하는 게 전부지만 시간은 어느새 며칠이 흘러 있다. 처음 체크인할 때 매니저가 한국사람 한명이 묵고 있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다 저녁 무렵 로비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난다. 숙소 스탭들과 같이 저녁을 먹자며 어차피 라마단 기간이라 식사는 다 같이 하는 게 이쪽 관습이니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바람에 저녁 식사에 슬며시 끼어든다. 이 친구, 이곳 하마에서만 두달 넘게 머무르고 있다는데 그것도 여행 중에 멈춰선 게 아니라 아예 한국에서 시리아로 바로 날아 왔단다. 그 다음날부터 저녁은 자연스럽게 숙소 스텝들과 같이 먹게 된다. 하마가 다른 도시보다 낫긴 해도 매번 먹는 게 고민이었던 탓에 한시름 덜었다 싶다. 라마단 덕을 볼 때도 있다.


오른테스강의 수차


오른테스강변

 

이 친구를 만나자 다시 고민이 생긴다. 이 친구 레바논이 너무 좋다며 여기까지 와서 레바논을 가지 않는 건 너무 아깝다며 꼭 가보라고 한다. 사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폭격을 퍼부은 셈이긴 하지만  전쟁이 막 끝난 나라에 들어간다는 게 선뜻 내키지는 않는지만 한편으론 가볼까하는 마음이 슬며시 든다. 레바논은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상당히 서구화되어 있는데다 도시들도 모두 해안가에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상당히 독특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시리아에서 넘어가는 방법은 이곳 하마에서 가는 방법과 다마스커스에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하마 국경에서만 한달짜리 프리비자가 나오니 갈거면 꼭 하마에서 넘어가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차피 시리아비자는 2주짜리니 비자연장을 해야하는데 팔미라를 다녀와서 하마 국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들어오면 굳이 비자를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팔미라에서 이틀정도 있다가 다시 하마로 돌아와 레바논으로 넘어갈 결심을 한다.

 

그렇다면 팔미라나 빨리 다녀오자 싶은데 이곳 하마에서 일주일 넘게 뒹굴거리면서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떠오른다. 크락 데 슈발리에.. 크락 데 슈발리에는 중세십자군의 성이다. 결국 하루 시간을 내 부랴부랴 다녀온다. 하마에서 홈스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 다시 한시간쯤을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이곳은 외관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믿거나 말거나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된 성이라는 말도 있다. 이 중세 시대의 성은 거의 견고한 요새처럼 보인다. 외부에 성곽을 높이 올려 쌓고 외성과 내성 사이엔 다시 물이 흐르는 해자를 파고 적의 침입에 대비한 흔적이 보인다. 내성의 내부는 많이 손상되긴 했어도 아직 성의 망루는 무너지지 않아 올라가서 보면 멀리 마을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왔으니 시간에 여유가 있다. 마지막 버스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천천히 성을 돌아보고 나서 성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까지 먹고 오후쯤 숙소로 돌아온다.


크락 데 슈발리에


크락 데 슈발리에서 바라본 마을

 

숙소에 돌아오니 한국 여행자들 몇몇이 눈에 뛴다. 터키에서 본 적이 있는 남자친구 하나와 여자친구 넷이 함께 알레포에서 왔다고 한다. 그 중 일본인 일행이 있는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하마에서 이틀을 지낸 뒤 팔미라를 거쳐 다마스커스를 본 후 레바논을 다녀 올 예정이라고 한다. 어차피 다음날 당장 팔미라로 떠날 예정은 아니었으니 그 다음날 팔미라에 같이 가기로 한다. 이틀 뒤 네 명의 여자친구들과 함께 팔미라로 떠난다. 어차피 이틀 뒤면 돌아올 예정이니 배낭은 아예 숙소에 맡겨 둔다. 간만에 가뿐한 짐을 지고 길을 나서니 잠시 트레킹이라도 다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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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타키아> 더 우울하다

알레포에서 라타키아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시리아에서 기차를 탈만한 구간은 여기뿐인데다 무엇보다 가는 길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나가본다. 라타키아로 가는 기차는 자주 있는 편이라 쉽게 표가 끊어진다. 표를 끊을때 퍼스트 클래스를 원하냐고 물어보길래 가격을 물어 보앗더니 일반석과 별 차이가 많이 나질 않는다그냥 그걸로 끊는다. 이럴 때 일등석 한번 타보자 싶다. 기차에 올라타니.. 흐흐 시설은 그만그만한데 좌석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보통의 객차 크기에 우리나라 우등 고속버스에서 있음직한 큼지막한 의자가 두개, 한개의 배열로 한줄에 세개씩 놓여 있다. 옛날 러시아에서 들여 온 열차라는데 열차 좌석이 이렇게 넓은 건 처음이다. 게다가 한좌석짜리 의자는 여행하고는 처음 앉아 본다. 싸가지고 온 빵을 먹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어느새 잠이 들어 버린 탓에 그 아름답다는 경치는 하나도 못 봤는데 어느새 열차는 라타키아로 들어서고 있다.

 

라타키아는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도시 전체가 항구로 둘러싸여 있어 푸른 바다를 보기가 쉽지 않다. 바닷가에 있는 숙소를 잡아도 그저 컨테이너 박스만 보일 것 같아 그냥 시내에 있는 숙소에 머물기로 한다. 한국게스트북에 나오는 숙소답게 한글 간판까지 있건만 이 숙소에 한국인은 나 혼자인 것 같다. 아니 한국인 여행자는커녕 숙소 손님 중에 외국인은 나 하나 뿐인 것 같다. 게다가 이 놈의 라마단은 소도시로 갈수록 더 철저하게 지켜지는지 이곳엔 아예 문 연 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도착한 날 점심이나 먹으려고 거리에 나가본다. 거리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고 문 연 식당은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삼십분남짓을 걸어 호텔 식당을 하나 찾아내긴 했는데 되는 음식이라곤 음료와 샌드위치가 고작이다. 한 며칠 조용히 쉬어볼까 생각하고 왔지만 아무래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다른 도시로 가는 수밖에 없지 싶다^^. 결국 라타키아에서 처박히려던 계획도 도시에 도착하는 날 바로 포기가 된다. 그냥 주변의 유적이나 둘러보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라딘성1


살라딘성2

 

다음날 도시 근처에 있다는 살라딘성과 우가리트 유적을 다녀온다. 살라딘성은 중세시대 유럽에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은 아랍의 왕인 살라딘-정확한 이름은 살라흐 앗 딘인데 그저 영어식으로 살라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이 세운 성으로 시리아에서 십자군의 성인 크락 데 슈발리에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택시로 10분가량 들어가야 하는 이곳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멀리서 보면 만화에나 나옴직한 곳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시간 기다려주는 조건으로 택시를 타고 들어간 탓이지 막상 성에서는 괜히 마음이 바쁘다. 게다가 입장료건으로 또 한차례 실랑이를 벌인 탓에 남아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맘 같아선 성꼭대기에서 주변이나 바라보며 설렁설렁 놀다갔으면 싶은데 결국 한시간만에 택시를 타고 나와 다시 라타키아로 돌아온다.


우가리트 유적


우가리트 유적, 심심해서 셀카나 찍었다는..

 

오후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우가리트 유적에 다녀온다. 우가리트는 알파벳의 원형이 발견되었다는 고대 유적지인데 지금은 거의 그 흔적만 남아 있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탓이지 프랑스인 단체관광객 한팀을 제외하고 유적지는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나 역시 남아 있는 돌덩이들만 가지고 그 시대를 상상하기엔 지식도 상상력도 너무 빈약하다. 그냥 마을 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다 다시 라타키아로 돌아온다. 저녁은 다시 통닭이다. 한국에서도 파는 유리상자안에서 꼬치에 꿰인 채 몇줄씩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통닭 말이다. 대충 그 통닭 반마리에 사람들이 흔히 걸레빵이라고 부르는 희고 넓적한 빵한조각 그리고 오이와 토마토가 전부인 샐러드가 따라 나오는데 그 닭, 사실 먹을만하다. 단 매 끼니를 그걸로 때워야 할 경우는 예외지만^^. 통닭을 뜯으며 이번에는 하마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근데 내가 뭘 찾아다니는 거지.. 그새 심심해진건가.. 아마 그런 것 같다. 그냥 맘이 편한 곳에서 며칠 책이나 읽으며 푹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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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 우울하다

알레포 시내 어디에선가 버스는 우리를 내려준다. 이곳이 종점이라는데 터미널도 아닌 것이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목적지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영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결국 지나가는 택시를 잡는다. 우리가 찾는 숙소 근처에 있는 큰 호텔의 이름을 대며 얼마냐고 물었더니 1달러란다. 택시 기사가 외국인에게 처음 부르는 가격은 거의 바가지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갑자기 낮아진 물가에 멍해진 우리는 흥정하는 것고 잊고 그냥 택시에 오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4배나 더 주고 탄 게 밝혀지긴 했지만^^- 짐작했던 대로 택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를 내려 준다. 지도를 보고 대층 방향을 잡아 숙소가 있다는 신시가지 시계탑으로 향한다. 거리는 말이 신시가지지 낡은 건물들과 사람들, 차들로 혼잡하기 그지없다.

 

숙소 찾기에서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힌다. 처음 찾아간 숙소는 시설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두 번째 찾아간 숙소는 가격은 그럭저럭인데 시설이 으악이다. 시리아는 숙소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이 두 군데로 이름을 들어 본 숙소는 동이 난다. 결국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근처 숙소를 이잡듯 뒤져 본다. 그러나 들어가 본 숙소마다 비싸거나 으악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결국 두어 시간을 헤매다가 그만그만한 숙소 하나를 찾아낸다. 방이 5층에 있다는 것만 빼면-시리아의 건물은 한층이 무지 높다- 그럭저럭 견딜만한 수준이다.

 

두 번째 난관은 먹는 문제다. 사실 시리아에서 먹을 거라고 통닭밖에 없다는 소문을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통닭밖에 먹을 게 없을 줄이야.. 더구나 라마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날라리 무슬림 국가인 터키와는 달리 이곳은 낮에 거의 식당도 열지를 않는다. 도착한 날은 저녁이라 통닭으로 저녁을 때웠지만 다음날부터는 대략 난감해진다. 전날 저녁에 빵을 좀 사두었다가 먹거나 유적지 근처에 문을 여는 몇몇 식당으로 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나마 알레포에서는 생과일 쥬스가 싸고 맛있는 걸로 유명한데 이 집조차 저녁에만 문을 연다ㅠㅠ.    

 

세 번째 난관은 입장료다. 시리아는 학생증이, 그것도 ISIC 학생증이 거의 괴력을 발휘하는데 이게 있으면 입장료가 1/15로 낮아진다. 거의 모든 유적지의 외국인 입장료가 150파운드(3천원)인 것에 비해 학생증이 있으면 시리아인들의 입장료인 10파운드(200)로 낮아진다. 아쉽게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내 가짜 학생증은 ISEC. 박물관에서 문제가 생긴다. 내 학생증을 보여주니 오로지 그린원-ISEC 학생증은 초록색이다- 만 된다며 ISIC의 복사본까지 보여준다. 벽에는 학생증의 조건이 써 있다. 인터내셔날, 프린트 그리고 30세 이하가 그 조건이다.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우겨본다. 내 학생증도 인터내셔날이고 프린트되어 있으며 나는 30세 이하라고-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 학생증의 생년월일도 가짜다^^- 결국 아저씨가 포기했는지 그냥 들어가란다. 다행히 알래포성에서는 별 문제없이 통과가 돤다. 하지만 모든 유적지가 다 알레포성 같지는 않을테니 어디가서 가짜 ISIC를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알레포성


알레포성에서 본 도시, 온통 회색빛이다

 

일행이 먼저 알레포를 떠난다. 나도 오래 있을 생각을 아니지만 그래도 도착한 다음날 짐을 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행을 보내고 결국 다음날 나도 짐을 싼다. 이 도시는 별로 정이 가질 않는다. 온통 회색빛 건물들이며 낮에는 전부 문을 닫는 가게들, 무엇보다 쉴만한 곳이 없다. 물가가 싸져서 좋기는 한데 터키에서는 잠시 잠잠했던 아랍민족 특유의 유별난 관심들이 다시 시작되니 슬쩍 피곤해지기까지 한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라타키아로 가기로 맘을 먹는다. 지중해에 면해있는 항구도시라니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고 며칠 처박히면 좋을 듯싶다. 여행자의 좋은 점은 이런 게 아닐까.. 좋으면 머무르고 아니면 떠나면 그만이다. 알레포에 온지 고작 이틀 만에 결국 알레포를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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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리우르파> 국경을 넘다

산리우르파로 향하는 길에 가이드 겸 기사아저씨가 산리우르파 다음에 어디로 갈거냐며 은근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하란 거쳐서 하란 근처에 있는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갈 예정이라고 대답하니 아저씨 얼굴이 환해진다. 이 차는 산리우르파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하란을 들렀다가 다시 산리우르파로 돌아와 시내를 돌아보고 다음날 가지안텝을 거쳐 카파도키아로 돌아간다며 하란 국경을 넘을 게 아니라 가지안텝 근처에 있는 킬리스 국경을 넘어가면 알레포에서 더 가까우니 내일까지 이 차로 같이 다니자고 한다. 그러면서 차비는 버스비만 받고 먹는 거나 자는 건 특별한 가격에 해 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오신다. 그러면서 하란 국경에서 알레포까지는 차가 자주 다니지 않아서 국경을 넘고 나면 고생이라는 엄포도 잊지 않으신다.

 

솔깃한 제안이긴 한데 워낙 투어로 끌려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다 산리우르파에서 하루이틀 지낼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내일 당장 터키를 떠나야 한다는 것도 조금 망설여진다. 어쩔까 싶어 일행을 쳐다보니 자기는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단다. 이 친구 어차피 한달 남짓 남은 기간에 시리아와 요르단, 이스라엘까지 갈 예정이니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다. 어차피 하루 이틀인데 나만 산리우르파에서 내리겠다고 할 수도 없어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한다. 그날 오후로 하란과 산리우르파까지 일사천리로 일정이 진행된다. 문 앞에 내려 설명 듣고 오분 내지 십분 돌아보고 다시 차로 이동하고... 밥 주면 밥 먹고...뭐 편하긴 하지만 도대체 이사람들, 이걸 어떻게 견디나 싶다. 결국 일행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음날 가지안텝에서 일행들과 헤어진다. 가지안텝에서 시리아 국경이 있는 킬리스까지는 한시간 가량 돌무쉬를 타고 가야 한다


하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고깔모자 형태로 만들어진 집들로 유명한 곳이다


더불어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의 선조로 추정되는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집은 아브라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킬리스 터미널에 내리니 막막하다. 이 국경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도 않은데다 애초에 넘을려고 했던 곳도 아니니 이곳에서 국경까지 이동 방법도 막막하다. 게다가 이곳에 계신 분들 중 영어가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결국 시리아, 시리아를 외쳤더니 우리를 태우고 왔던 기사가 돈을 조금 더 주면 국경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의사표시를 한다. 도대체 국경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니 부르는 가격이 얼마나 바가지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일단 적당히 깍아서 타긴 했는데 이 아저씨 터미널을 벗어나자마자 택시정류장에서 내리란다. 그러면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단다. 다행히 택시기사가 영어가 된다. 여기서 알레포까지 40불이란다. 됐거든.. 그랬더니 국경만 넘으면 20불이란다. 것도 됐거든.. 그냥 국경까지 이동해 걸어서 국경을 넘은 다음 버스를 타면 될 일인데 싶은데 버스기사도 택시기사도 무조건 택시를 티야 한단다. 버스 기사에게 국경으로 가지 않으면 돈을 안 주겠다고 했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타란다. 결국 국경에 도착한다.


산리우르파, 괼바쉬공원


산리우르파, 괼바쉬공원에서 만난 아이들

 

.. 근데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이 국경은 걸어서는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택시를 타고 넘어야 한다는데 대체 이 말이 진짠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입구에 있는 군인들에게 물어봐도 택시 타란 소리뿐이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으며 터미널 뒤편에 있던 택시를 섭외해 오는 편이 더 싸게 먹히는 게 아니었나 생각해보지만 정보가 없으면 몸이 고생하던가 돈이 나가던가 둘 중에 하나는 감수해야 한다. 결국 두 사람이 10불에 시리아 국경 마을까지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탄다. 국경만 오가는 이 독과점 택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상태가 말이 아니다. 파키스탄 즈음에서 마지막으로 본 상태 안좋은 택시를 다시 타고 보니 아.. 시리아로 가는 구나하는 실감이 난다. 터키 출국시에 잠시 문제가 생긴다. 내가 터키에서 그리스를 다녀왔기 때문에 터키 입국이 두 번 기재되어 있는 반면에 출국이 한번 누락되어 있단다. 뭔 소리래.. 입출국 스템프 다 받았다면서 여권을 보여주자 컴퓨터 모니터를 돌려서 보여 준다. 그리스 가느라고 터키를 출국했던 사항이 누락되어 있다. 황당하다. 그러면 재입국할 때는 왜 문제가 없었던거지?. 출국 심사관은 나만 쳐다보고 있다.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입력했냐고.. 여튼 나는 스템프를 받았으니 내 잘못은 아니라고 했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결국 출국스템프를 찍어 준다. 참 문제도 가지가지 생긴다. 대신 시리아 입국 비자는 요즈음엔 받기 어렵지 않다는 말대로 20여 분만에 발급이 된다.

 

시리아 비자를 받아드니 택시 기사 아저씨.. 다른 택시로 짐을 주섬주섬 옮겨 싣는다. 이 차는 국경을 빠져 나갈 수 없는 차라며 다른 차를 타라고 한다. 그러면서 택시비를 달란다. 국경 마을까지 계약했으니 거기에 도착한 후에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 돈 달라고 땡깡이다. 이 경우 돈을 주면 100% 국경 마을까지 가는 다른 차도 돈을 요구한다. 절대 미리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텼더니 그제서야 옮겨탄 차 기사에게 돈을 주라며 물러선다. 여튼 국경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관광객을 봉으로 여기는 것 같다. 대부분의 육로 국경이 외진 곳에 있어 일단은 택시를 타야 움직이는 게 가능한데다 그 나라 물가도 익숙지 않으니 그 어리버리한 틈을 타 각종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일단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알레포가는 미니봉고가 기다리고 있다. 알레포까지는 한 시간 걸린단다. 국경에서 환전한 돈을 어리버리 살펴보며 차비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대신 차비를 내준다. 드디어 거의 모든 여행자가 말하던,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잊을 수 없다는 나라, 시리아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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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룻> 자전거팀을 다시 만나다

넴룻은 터키의 소왕국이었던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왕의 무덤과 그 무덤의 주변에 있는 거석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산꼭대기에 신들과 그 수호신무사들의 형상을 본뜬 거대한 돌들이 흩어져 있는 이곳은 론리 플래닛이 터키 개정판을 내면서 표지 사진으로 채택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넴룻은 산 아래의 여러 도시에서 올라갈 수 있는데 묵쪽에 위치한 말라타에서 가면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저녁 무렵에 정상 아래에 있는 산장에 도착해 일몰을 본 후 내려 와 저녁을 먹고 아침 일찍 다시 올라가 일몰을 보는 코스로 투어가 진행된다. 반면 남쪽에 있는 카흐타에서 올라갈 경우 새벽 일찍 올라가 일출을 보고 내려오게 되는데 이 경우 추운 산장에서 하루를 자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일단 괴뢰메에서는 말라타로 가는 길이 더 쉬우니 말라타로 향한다.

 

말라타에 도착하자마자 투어를 신청하러 간다. 어차피 이곳은 넴룻으로 떠나기 위한 곳일뿐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될 이유는 없다. 배낭을 맨 채로 말라타 시내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로 찾아간다. 다행히 투어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내 경우 투어가 끝난 뒤 굳이 말라타로 내려올 필요는 없어 카흐타로 내려갈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아침에 일출을 보러 몰라갈 때 배낭을 지고 올라갔다가 반대편으로 내려가서 카흐타로 가는 차를 수소문해 보란다.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라니.. .. 이건 쉬운 일이 아닌데.. 일단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날 떠나는 투어를 신청해 둔다. 숙소를 정하러 가는 길에 뿌옇게 흐려 있던 하늘에서 결국 비가 쏟아진다. 일몰이고 일출이고 하나도 못 보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그렇지만 내일 산에서 무지 춥겠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다가 자전거팀을 만난다. 한국에서 포루트칼까지 자전거로 이동한다던 대륙 횡단팀이다. 훈자에서 헤어지고 거의 석달만의 해후다. 가끔 그 친구들의 홈페이지를 들러 본 적이 있어 터키에 들어온 건 알고 있었지만 카파도키아에서 만나지지 않으면 거의 볼 수 없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우연히 만나 버린 것이다. 몇 달만에 본 그들은 더 마르고 검어 지긴 했지만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여름내내 그 무더운 파키스탄과 이란을 거쳐 온 그들은 이제 추위와 싸우며 유럽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참 대단한 친구들이다 싶다가도 이게 뭔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일정이 늦어져서 고민이라면서도 이 친구들 넴룻행에 흔쾌히 동행해준다. 결국 우리 네 명과 독일 아줌마 세 명 그리고 국적이 생각나지 않는 남자 한 명 이렇게 여덟 명이 넴룻으로 떠난다. 혼자가면 투어가 없을까 고민했던 일이 우스워진다.


왕의 무덤 앞에 세워진 테라스


무덤 뒤편에 흩어져 있는 거석들

 

산장은 소문만큼 춥지는 않다. 짐을 풀어 놓고 일몰을 보러 산 위로 올라간다. 상상했던 것 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넴룻의 조각들은 인상적이다. 특히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들어 갈 무렵의 조상들은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는 것 같다. 한때 사진 기자였다는 자전거팀의 영호씨와 여행 중에 사진전문가가 다된 다운씨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다음날 카흐타로 내려가는 차를 알아본다. 다행히 차가 있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올라오면 기사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반대로 내려가면 된단다. 올라 온 길과 내려 갈 길을 가늠해 보니 이 정도면 배낭 메고 걸을 만 하다 싶다. 게다가 카파도키아에서 같이 온 일행이 동부로 가려던 일정을 바꿔 시리아로 내려가기로 했다니 당분간은 같이 움직일 수 잇을 것 같다. 내려 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일출을 보려면 거의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매일 뜨는 해 한번 보겠다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다음날 배낭을 메고 다시 산을 오른다. 어제 저녁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미 산 가득히 모여 있다. 반대편에서 새벽에 올라온 사람들이다. 침낭까지 둘러쓰고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잔뜩 흐린 탓인지 일출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해가 뜨고 다시 이별이다. 이 친구들은 다시 산장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말라타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아쉽지만 가는 길이 다르니 어쩌랴.. 건강하게 여정을 마치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해뜨기 전의 넴룻산


자전거팀이 찍어 준 사진,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카흐타로 내려가는 차에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분명히 카흐타까지 가는 걸로 이야기를 하고 파를 탔건만 기사는 카흐타까지 갈 수 없다고 고집이다. 산아래 마을까지 밖에 데려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카흐타까지 가는 차비를 지불했으니 거기까지 가야겠다는 것이고 기사는 그렇게는 안된다는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진다. 결국 기사가 묘안을 생각해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카파도키아에서 투어로 넴룻을 다녀가는데 이 경우 넴룻뿐 아니라 산리우르파외 하란을 묶어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기사가 이런 투어버스를 하나 섭외해오더니 카흐타에서 산리우르파가는 차비만 내고 이 차로 바꿔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단 이 차는 그냥 산리우르파까지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댐 하나를 들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별로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다. 어차피 카흐타까지 이 차를 타고 간다 치더라도 버스가 바로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댐하나 더 들른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축날 일도 없거니와 애초에 시간은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결국 산 아래 마을에서 버스를 바꿔 탄다. 카파도키아에서 온 투어버스엔 한국인 여자 둘과 외국인 커플, 그리고 기사 겸 가이드 모두 다섯 명이 타고 있다. 아마 우리가 내는 차비는 이 기사 겸 가이드 아저씨의 부수입이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이 아침 먹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아 있던 빵으로 요기를 하고 함께 산리우르파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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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슬슬 추워진다

다시 밤차다. 이번에는 차를 타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폭우다. 버스는 퍼붓듯이 쏟아지는 빗길을 잘도 달리는데 갑자기 버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멀쩡하기 이를 데 없는 볼보 버스가 새기 시작한 것이다. 천장에 있는 창문 틈새로 흘러든 빗물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진다. 당황한 안내군이 와서 걸레로 닦고 수건으로 막아 봐도 그때뿐이다. 버스가 만원이라 어디 다른 곳으로 옮겨 앉을 수도 없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물세례를 받고 있다. 이 멀쩡하게 생긴 버스가 물이 새다니.. 내 자리에 물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자꾸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이 한밤의 코미디는 한 시간쯤 뒤 비가 그치고 서야 끝이 난다. 차안은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잠시 자고 나니 어느새 아침이다.

 

카파도키아에는 페티예의 헥토르만큼이나 유명한 이가 있으니 그는 카파도카아에서 트래블러스 펜션을 운영하는 베컴이다. 본명은 베키르라는데 그저 부르기 쉽게 베컴이라 불리는 이 아저씨 역시 철저한 픽업서비스와 정가제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다. 헥토르와 베키르, 터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름을 듣게 된다는 이 사람들은 같은 서비스를 주변보다는 약간 싸게 그러나 절대로 깍아 주지는 않는 전법을 고수하고 있는데 남들이 나보다 천원이라도 싸게 했다면 무조건 우울 모드(?)에 돌입하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잘 간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믿거나 말거나 헥토르가 자기네 회사용 티셔츠를 한국인 누군가가 달라고 해서 줬다가 거의 삼개월간 나는 왜 티셔츠 안주냐는 사람들의 항의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한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인포메이션에 부탁하자 5분도 채 안 걸려 픽업이 도착한다. 그래, 이 공짜 픽업서비스도 한국인들에게 먹혀드는 전법인 것이다^^

 

픽업온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다. 카파도키아는 사실 지명은 아니라 버섯 모양의 기괴한 형태의 바위들이 밀집해 있는 여러 도시를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고 실제로는 카파도키아 안에 제 이름이 있는 여러 마을들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괴뢰메라는 마을에서 묵게 되는데 이 마을 역시 마을 전체가 버섯 모양의 봉우리로 되어 이루어져 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날아온 화산재가 바위산을 덮었다가 설로 다른 풍화 작용 탓에 만들어 졌다는 이 봉우리는 봉우리의 모양만으로도 신기한데 옛날 로마 시절 박해를 피해 피난 온 기독교도들이 그 안을 파고 주거시설과 교회 등을 만들아 놓아 그 신비함이 한층 더 느껴지는 곳이다. 당연히 숙소의 방들도 이 바위 모양의 봉우리들을 파서-혹은 이미 파져 있는 것을 보완해서-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괴뢰메의 숙소들의 대부분은 케이브펜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동굴 방들은 약간 어둡고 눅눅하긴 하지만 따뜻하고 운치가 있다.


파샤바, 버섯 모양의 바위들


이 바위들을 파서 교회나 주거 시설로 사용했단다.   

 

이곳에 오니 제법 쌀쌀하다. 이곳이 다른 곳보다 약간 일찍 추워지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9월 중순인데.. 좀 당황스럽다. 한낮에 쏟아지는 햇살이야 여전히 따갑지만 해가 지고 나면 바로 한기가 몰려온다. .. 사리아와 요르단까지 내려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좀더 빨리 움직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카파도키아에서 도착한 날부터 라마단이 시작된다.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라마단은 일년에 한 번, 한 달간 해가 뜨고 나서 해가 질때까지 전체 무슬림들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단식 기간이다. 독실한 무슬리들은 침도 섬키지 않는다는 이 기간엔 술이나 담배도 당근 삼가야 한다. 터키야 널럴한 이슬람 국가인데다 그나마 관광지에선 식당들도 다 연다고는 하니 큰 걱정은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 굶고 있는데 아구아구 먹는 것도 못할 노릇이니 이거 춥고 배고픈 나날들이 한동안 이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하도시, 서서 다닐 수 있을 만큼 넓다


셀리메 빌리지, 스타워즈의 촬영 장소란다

 

일행들과 함께 그린투어를 가는 날 아침부터 비가 추적거린다.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 일대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돌아보는 투어인데 지하도시나 으흘랄라 계곡 등 혼자서 가기엔 교통이 애매한 곳들이 포함되어 있어 거의 모든 여행자가 한번은 다녀오는 투어이다. 일단 전체적으로 돌아본 뒤 나머지 것들은 천천히 산책삼아 돌아보자 싶어 도착한 다음날 신청을 했더니 날씨가 이 모양이다. 오전에 버섯 바위 몇 개와 지하도시를 둘러본다. 박해를 피해 온 초기기독교인들이 건설했다는 지하 도시는 그 규모가 굉장하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지하 6층 규모의 만 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었다는 이 데린쿠유 지하도시 외에도 서너개의 지하도시가 더 있다고 한다. 주거시설은 물론이고 교회며 학교까지 갖추어진 이곳은 겨우 한층의 일부만 돌아보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자꾸 베트남에서 보았던 구찌터널이 오버랩된다. 하긴 이곳은 서서 걸어다닐 정도는 되는데.. 외부의 탄압에 막선 인간 의지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경이로운 한편 오죽하면 이런 곳에서 생활했을까 싶은 생각이 마음 한켠이 아릿하다. 터널을 나오니 어느새 비는 폭우로 변해 있다. 결국 계곡 트래킹은 포기하고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 버섯 바위 몇 개를 더 보고 도자기 공장-판매가 주목적인- 들러서 돌아온다. 하루지만 투어는 정말 고역이다. 이제부터 슬슬 주변이나 산책하며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마다 관광객을 태운 벌룬이 계곡 위로 날아 오른다


러브밸리에서 본 일몰, 멀리 우치히사르성이 보인다.

 

나머지 날들은 동네를 산책하거나 숙소에서 놀면서 보낸다. 숙소 손님의 칠팔십 퍼센트는 한국인이다. 대부분 이삼일 머무르다 떠나는 사람들이라 한동안 있으면 사람들이 들고 나는데 무감해진다. 각자야 다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일텐데 이상하게 모아놓으면 비슷한 무리들로만 기억이 된다. 이삼일 머무르던 내 일행들도 동부로 떠난다. 어차피 바쁜 일정인 것이다. 다행이 이곳에서 훈자에서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 일본에서 한국어 강사를 한다는 이 친구, 중앙아시아 쪽으로 올라가려고 터키에 왔다가 이곳에 발이 묶여 한달 가까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영어, 일어는 물론이고 약간의 터키어까지 구사하는 이 친구는 방값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숙소의 일을 거들고 있어 사람들이 투어를 나간 낮에는 그저 커피나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일단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몇군데 비자를 신청해 두긴 했는데 터키어에도 관심이 생겨 몇 달간 터키어 공부나 할까 고민 중이란다. .. 나도 터키에 확 눌러 앉아 버려.. 아니다. 난 터키어에 별 관삼이 없지^^

 

첨에 그리도 신기하던 카파도키아의 풍경들이 익숙해질 무렵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이곳만 지나면 슬슬 시리아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든다. 일단 넴룻을 거쳐 산리우르파, 하란을 거쳐 시리아 국경으로 내려가는 코스다. 넴룻은 날이 추워지면 투어프로그램이 끊긴다는데 너무 늦어지면 안될 것 같지만 혼자서는 또 투어가 쉽지 않다니 고민이 된다. 어찌할까 하고 있는데 넴룻을 거쳐 동부로 간다는 한국 남자 한 분이 등장한다. 일행이 생겼으니 또 움직이기로 한다. 어차피 하루 이틀 더 있어도 움직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듯싶다. 한국어 강사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이란 또 그만큼이라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그 친구도 담담하게 인사를 한다.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 보게 되겠지.. 그러면서도 가끔씩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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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티예-올림푸스> 바다가 있는 풍경

미니버스를 타고 여섯시간을 달려 페티예에 내린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만났다는 세 친구 가운데 하나가 굳이 헥토르네 여행사를 찾겠다고 고집이다. 헥토르는 여행사 이름이자 이 여행사 주인의 이름이기도 한데 저렴하면서도 깔끔한 상술로 터키에 오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 명성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한다. 픽업도 나오고 숙소도 소개해준다는데.. 이곳 페티예에는 보트투어, 지프투어,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투어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이미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온 것이다. 어차피 그곳은 숙소는 아니니 그냥 숙소부터 잡고 패러글라이딩 할때나 연락하자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그 친구는 못내 아쉬운 얼굴이다. 터미널에 도착해 페티예의 숙소 밀집지역으로 돌무쉬를 타고 이동한다. 숙소를 찾아 움직이려는데 봉고차 한대가 앞에 와서 선다. 그리곤 또 한국말이 들려온다. 한국분이시죠?

 

헥토르네 숙소에서 묵다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터미널에 가는 길이란다. 픽업해주는 기사가 한국 사람들이 분명하다고 말 좀 시켜보라고 해서 하는 거라나,, 뭐라나.. 가짜 헥토르도 있는지 이곳이 진짜 헥토르 맞다며 숙소 안 정하셨으면 이거 타면 된단다. .. 언젠가 론리에서 당신이 그를 찾지 않아도 그가 당신을 찾아올 거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친구도 그 말처럼 우리를 찾아낸 것일까? 이왕 이리 된 거 그냥 차에 올라탄다. 헥토르네가 연결해 준 숙소는 페티예에서 조금 떨어진 울루데니즈 해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즉 페티예에서도, 울루데니즈에서도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헥토르는 이런 불리한 입지조건을 저렴한 숙소비와 깔끔한 숙소 시설 그리고 무료 픽업서비스로 돌파하고 있는데 어느 해변이든 24시간 무료 픽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숙소 역시 4명이 묵을 경우 거의 우리나라의 콘도같은 방에 머물 수 있고 숙소에는 수영장까지 달려 있다.

 

짐을 풀고 나니 예의 헥토르가 찾아온다. 그리곤 농담까지 섞어 가며 능숙한 솜씨로 투어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한다. 이 친구의 주종목은 패러글라이딩이다. 울루데니즈 뒷산에서 해변으로 내려오는 이 패러글라이딩은 30분내지 40분가량 진행되는데 70불이 정가라고 한다, 세 친구는 패러글라이딩과 보트투어를 신청하고 나는 그냥 보트투어만 신청한다. 어차피 높은데서 내려오는 건 내 취향은 아니다. -알다시피 나 겁 무지 많다- 그나마 보트투어도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텐데 일행이 여러 명이니 그냥 하루 시간이나 때우자 싶은 생각이다. 점심도 주고 10불이면 물가 비싼 터키임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지 싶다. 일행이 있고 부엌이 있으니 다시 밥해먹는 일상이 시작된다. 슈퍼에서 닭을 사서 백숙을 해 먹기도 하고 하루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만들고 치우는 것도 분명 일인데 이곳에서는 이것마저 그저 놀이의 하나인 것 같다.

 

그러다 보트투어를 간다. 보트투어의 정식 명칭은 12섬 보트투어인데 실제로는 5개의 섬을 도는 코스다. 대략 5개의 섬을 돌면서 해변에 내리거나 아님 섬 주변에 배를 정박해 놓고 수영을 하거나 아님 알아서 놀다 떠나는 상당히 널럴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물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로선 매번 바다에 뛰어드는 것도 일이니 한두 번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내내 뱃전에 앉아 수다나 떨다 돌아오는 게 고작이다. 그래도 처음 한두 번은 물에 들어가 본다. 발이 땅에 닿질 않으니 그냥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배에서 튜브를 찾아내서 끼고 물에 들어간다. 그래도 배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이내 불안해진다. 일행들도 상태는 별로 다르지 않아 그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배위로 올라오고 만다. 그러다 그나마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그냥 배전에 앉아 수다나 떤다. 배의 2층으로 올라가면 누워서 선텐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건만 너무 태울 수도 없는 우리 같은 비태양족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결국 배에서 하루 종일 수다만 떨다 숙소로 돌아온다.


배는 섬에 정박해 사람들을 풀어 놓는다


물에 들어가는 시간보다 앉아 노는 시간이 더 길다^^

 

하루는 근처의 샤클리켄트 계곡을 다녀온다. 산이 갈라져 만들어진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른다는 이곳은 숙소에서 두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지프투어가 있긴 하지만 그냥 돌무쉬를 타고 다녀오기로 한다. 근데 막상 돌무쉬를 타보니 이건 그냥 돌무쉬가 아니다. 어찌된 일인지 차에 탄 사람은 모두 샤클리켄트 계곡으로 가는 관광객이다. 게다가 이 차, 중간에 송어양식장으로 유명한 툴루스에서 차를 한 번 세워준다. 그러더니 샤클리켄트 계곡에선 심지어 몇 시까지 돌아오라는 지침까지 내려 준다. 이건 그냥 대중교통수단을 탄 게 아니라 거의 투어 수준이다. 이건 거의 돌무쉬 투언데.. 일행들과 고개를 갸웃거려보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다^^. 샤클리켄트 계곡은 생각보다 험하다.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건너야하는 것은 물론 산이 갈라져 생긴 좁은 협곡으로 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물은 점점 깊어지는데다 바닥은 미끄럽고 꽤 자주 돌로 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내려갈 길이 더 걱정이다. 게다가 멋도 모르고 들고 온 카메라까지 물에 젖지 않게 챙겨야 하니 온 신경이 곤두선다. 결국 중간쯤 가다가 그냥 돌아선다. 이정도면 됐다 싶다.


샤클리켄트 계곡 입구


이 물을 건너면 좁고 긴 협곡이 이어진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올림푸스로 떠난다. 원래 카파도키아로 바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일행 중 하나가 올림푸스가 좋다는 소리에 귀가 팔랑거린 탓이다. 어차피 페티예냐, 올림푸스냐를 두고 잠시 고민을 했던 나로서는 올림푸스에 들렀다 가는 것도 괜찮다 싶다. 페티예에서 올림푸스 가는 길은 터키 남쪽의 지중해변을 따라 이어져 있다. 버스는 그림 같은 마을들을 지나 하염없이 달린다. 그러다 어두워질 무렵 올림포스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난다. 다시 돌무쉬를 타고 한시간 가량 들어가니 올림푸스다. 마을 분위기가 왠지 동남아 해변을 연상시킨다. 정작 올림푸스에서는 하루밤만 자고 떠난다. 일정이 빠듯한 일행들이 그저 한적하기만 한 해변 마을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낀 탓하다. 결국 찍고 가는 게 목적이었던가 싶지만 해변에 혼자 남기도 처량하다. 다음날 다시 안탈랴로 나와 카파도키아로 가는 밤차를 탄다. 밤차를 타기 전 안탈랴를 잠시 돌아봤으니 결국 페티예에서 안탈랴에 이르는 지중해변의 도시는 거의 다 돌아본 셈이 되었다. 뭐 찍은 것도 본 거에 해당한다면 말이다^^


올림푸스의 명물인 트리하우스, 실제로 여기 묵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올림푸스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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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다

파묵칼레는 터키 여행책자에 보면 빠지지 않은 그림, 하얀 석회석이 흘러 내려 계단식 연못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곳이다. 터키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다녀 온 여행자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다. 볼 건 그것밖에 없어요라든가.. 그나마 물도 없어서 사진 같지 않다거나.. 그 석회석 하나 바라보고 사는 마을에 숙소가 너무 많아서인지 이런저런 사기도 만만치 않으니 조심하라든가.. 하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뿐이다. 그냥 건너뛸까 하다가 그래도.. 가본다. 어차피 하루밤인 것이다.

 

역시 소문대로 이곳 삐끼아저씨들의 거짓말은 상당한 수준이다^^. 데니즐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마을에는 여행자를 하나라도 더 낚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미 셀축에서 먼저 떠난 친구들이 묵고 있겠다는 숙소 이름을 대니 거기 문 닫았단다. ㅋㅋㅋ 이틀 전에 누가 묵었다던데요? 하고 슬쩍 되물었더니 어제 문 닫았단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더니 이번에 니 친구들 거기 없단다. 참 아는 것도 많으시지.. 그러나 막상 숙소를 찾아가보니 문을 닫은 건 아닌데 그 친구들이 거기 없는 건 맞다. 결국 삐끼들의 등쌀에 못 이겨 딴 데로 끌려간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숙소 역시 말로 들은 것만큼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못 만날 거리면 다른 숙소를 찾아보자 싶어 발길을 돌리는데 누군가 말을 건넨다. 한국말이다

 

뭔가 사정이 있어 열흘 가까이 이곳에 묵고 있다는 그 친구를 따라 한 호텔로 들어간다. 입구에 신라면팝니다라고 한국말로 적혀 있는 곳이다. 이곳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터키 남자랑 결혼한 일본 여자가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방도 깨끗하고 비용도 적당하다. 오랜만에 신라면을 먹어 본다. 뭐 어차피 인스턴트 라면이니 맛이야 똑같지만 김치없이 먹는 신라면은 제 맛이 나질 않는다. 단무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석회석 연못이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까 그 친구에게서 일몰쯤 올라가라는 조언을 이미 들어둔 터다. 매표소를 지나 눈이 쌓인 듯한 하얀 언덕을 올라간다. 석회석 위로 따뜻한 물이 흘러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오른다. 그리 미끄럽지는 않은데 발이 조금 아프다. 적당히 따뜻한 이 물은 온천물이라는데 양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물만 보면 돌아버리는 서양애들 몇몇 외에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맨발에 물을 적시며 걷는 재미도 꽤 그럴싸하다.


마을에서 본 석회봉, 눈이라도 내린 것 같다


물은 미지근하고 그리 깊지는 않다

 

석회석 연못 뒤편 언덕에는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펼쳐져 있다. 에페스 유적도 지겨운데 또 뭔 유적이란 말이냐..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가본 그곳은 생각보다 근사하다. 한낮의 날씨는 아직도 따갑지만 이곳도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는지 이미 시들어버린 풀들과 말라버린 꽃들 사이로 군데군데 펼쳐진 유적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 듯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결국 해가 질 때까지 유적지 사이를 걸어다닌다. 다행히 이곳은 꽤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는데다 관광객도 많지 않아 산책하기엔 그만이다. 이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어느 시대 유적인지, 어느 민족이 남긴 유산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걷다보니 저만치에서 해가 지는 것이 보인다. 슬슬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히에라폴리스 유적1


히에라폴리스 유적2

 

다시 석회 연못쪽으로 걸어가니 뒤에서 언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들이다. 중간에 삐끼를 따라 들어간 숙소가 괜찮아서 그냥 거기 묵었다고 한다. 어차피 파묵칼레야 좁디좁은 곳이니 다 만나지는 모양이다. 맘 같아선 하루이틀 더 머물고 싶지만 이곳에 다시 오려면 올 때마다 다시 매표소를 거쳐야 한다니 산책하자고 매번 입장료를 낼 수도 없고 어차피 일행도 만났으니 다음날 페티예로 떠나는 버스를 예약해 둔다. 페티예는 지중해에 접해 있는 해변이다. 같은 지중해에 접해 있는 올림푸스 해변으로 갈까 어쩔까 하다가 일단 페티예로 방향을 잡는다. 일행이 있으니 이번에는 좀 덜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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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축> 에페스 유적을 가다

일행을 보내고 쿠사다시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셀축으로 향한다. 에페스 유적이 있는 곳이다. 그나마 터키는 이번이 두 번째라 그런지 왠지 맘이 편하다. 돌무쉬를 내리자마자 터키아줌마 한분이 다가온다. 세계를 간다-일명 세계를 헤맨다로 불리는 일본 가이드북 번역판이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세계를 긴다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나와 있는 숙소라며 자기 숙소에 한국사람 많단다. 중동에서 여자 삐끼 보기는 쉽지 않아 반신반의 따라가 보니 정말 한국 사람 많다. 다시 터키로 온 것이다. 방을 잡고 나서 하루를 그냥 뒹굴거린다. 그리스를 워낙 빡빡하게 다녀서인지 며칠 그냥 쉬고 싶은 맘이 드는데 이 셀축이란 도시는 그저 에페스 유적을 보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곳이라 그런지 오래 머물만한 곳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렴한 식당 찾기가 쉽지 않고 숙소 역시 도로변이라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내가 도착한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서는 날이라는데 주인아줌마 왈 내가 럭키하다지면 아.. 저 소음 이게 뭔 럭키한 거냐 말이다. 그저 저녁이 되면 저 장은 파할거야 하는 기대로 하루를 보내보지만 장이 파하자마자 이제까지 장이 섰던 그 도로 위로 정신없이 오토바이들이 달린다. 차라리 사람이 내는 소음이 더 낫지 싶다. 이튿날은 그놈의 장도 서질 않으니 아침부터 오토바이 소리가 극성이다. 제길.. 쉬긴 다 틀렸군.. 식당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곳에도 식당은 있다. 관광객을 겨낭한 레스토랑들 말이다. 근데 현지인들은 어디서 밥을 먹는지 도무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은 뵈질 않는다. 첫날은 그리스에서 남겨 온 이런저런 부재료들로 밥을 해 먹긴 했지만 주인집이랑 함께 쓰는 부엌이 영 편치 않다. 숙소를 옮겨볼까 하다가 그래도 먹는 문제는 해결이 나질 않으니 그냥 에페스 유적만 다녀 와서 이 곳을 뜨기로 맘을 바꿔먹는다. 어차피 다음 행선지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해변이니 거기서나 푹 쉬자 싶다.

 

다음날 일찌감치 에페스 유적을 다녀온다. 셀축에 있는 숙소들은 거의 대부분 에페스 유적지까지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 한국인들 서너 명과 함께 유적지에 도착한다. 이제 유적지도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에페스 유적지는 규모도 크고 보존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은 반면 그만큼 관광객의 숫자도 많다. 거의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 와중에 같이 간 일행들이 단체관광객을 인솔하는 한국가이드의 설명을 듣다 제지를 당한다. 가이드 옆에 따라다니는 인솔자가 한마디 했단다. 그러고 싶으세요? 가이드 입장에서 보면 자기도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여 얻은 지식을 댓가없이 듣는 사람들이 얄미워 보일 수는 있지 싶으면서도 어차피 말하는 거 다른 사람들이 좀 들으면 또 어떤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나야 일단 눈치보기도 싫고 단체관광객 따라 다닐만큼 바지런하지도 않으니 그런 경우를 겪지는 않았지만 글쎄, 이 경우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 있을지 잘 가늠이 서질 않는다.


에페스유적, 셀서스 도서관1


에페스유적, 샐서스 도서관2

 

날씨는 뜨겁고 사람들은 많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로 다시 돌아온다. 같이 에페스로 간 일행들은 근처에 있는 셀린제 마을-뭐 포도주로 유명하다는데 나중에 사온 걸 먹어보니 그냥 설탕 많이 친 과일주다-을 본다며 떠난 뒤다. 점점 게을러지는 게 이러다 아무데도 안 가지 싶다^^. 숙소에서 다양한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 터키는 여자들이 선호하는 국가라더니 여자여행자가 80%를 넘는다. 이직하는 사이에 혼자 여행 온 여자 친구가 하나, 직장 그만두고 여행 온 또다른 여자 하나, 터키는 가고 싶은데 혼자 오기는 그래서 인터넷에서 만나 같이 온 여자 셋, 어디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만나 동갑이라 동행이 된 여자 셋 남자 하나,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다가 휴가차 온 남자 하나가 내가 그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들이다


에페스유적, 원형극장


사람 진짜 많다

 

여행자들이 흔히 그렇듯 여행 다닌 경로와 몇 가지 정보가 오가고 여행지에서의 감상이 이어진다. 조금 지겹다. 이상하다니.. 한국 사람은 없으면 그립고 있으면 지겨워진다. 어느 숙소에서 본 정보북에 써 있는 글귀가 생각난다. 혼자 있을 땐 외롭다고 느끼고 같이 있을 땐 번거롭다고 느끼지 말고 혼자 있을 땐 자유를 느끼고 같이 있을 땐 따뜻함을 느끼라는 글이었는데.. 사실 외로움과 자유, 번거로움과 따뜻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걸 테니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아무래도 내 경우는 전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결국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 셋이 나랑 앞으로의 루트가 거의 같은 걸로 밝혀진다-하긴 터키에서는 가는 곳이 뻔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친구들 나보다 두 시간 먼저 파묵칼레로 떠나는 버스를 예약해 두었다면서 내일 그곳에서 만나자고 한다.

 

어차피 다음 일정은 페티예다. 혼자가면 무지 심심한 해변.. 파묵칼레에서 만나 페티예로 같이 떠나기로 한다. 여자 셋이라.. 이때까지 이렇게 많은 일행과 다녀 본 적이 있었던가.. 티벳에서 네팔 넘어올 때도 4명이긴 했지만 그건 차를 대절해야 한다는 서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으니 이런 대규모 동행은 처음인 셈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카파도키아까지의 동행일 뿐이다. 결국 외로움이 번거로움을 이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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