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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룻> 자전거팀을 다시 만나다

넴룻은 터키의 소왕국이었던 콤마게네 왕국의 안티오코스왕의 무덤과 그 무덤의 주변에 있는 거석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산꼭대기에 신들과 그 수호신무사들의 형상을 본뜬 거대한 돌들이 흩어져 있는 이곳은 론리 플래닛이 터키 개정판을 내면서 표지 사진으로 채택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넴룻은 산 아래의 여러 도시에서 올라갈 수 있는데 묵쪽에 위치한 말라타에서 가면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저녁 무렵에 정상 아래에 있는 산장에 도착해 일몰을 본 후 내려 와 저녁을 먹고 아침 일찍 다시 올라가 일몰을 보는 코스로 투어가 진행된다. 반면 남쪽에 있는 카흐타에서 올라갈 경우 새벽 일찍 올라가 일출을 보고 내려오게 되는데 이 경우 추운 산장에서 하루를 자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일단 괴뢰메에서는 말라타로 가는 길이 더 쉬우니 말라타로 향한다.

 

말라타에 도착하자마자 투어를 신청하러 간다. 어차피 이곳은 넴룻으로 떠나기 위한 곳일뿐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될 이유는 없다. 배낭을 맨 채로 말라타 시내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로 찾아간다. 다행히 투어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내 경우 투어가 끝난 뒤 굳이 말라타로 내려올 필요는 없어 카흐타로 내려갈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아침에 일출을 보러 몰라갈 때 배낭을 지고 올라갔다가 반대편으로 내려가서 카흐타로 가는 차를 수소문해 보란다.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라니.. .. 이건 쉬운 일이 아닌데.. 일단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날 떠나는 투어를 신청해 둔다. 숙소를 정하러 가는 길에 뿌옇게 흐려 있던 하늘에서 결국 비가 쏟아진다. 일몰이고 일출이고 하나도 못 보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그렇지만 내일 산에서 무지 춥겠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다가 자전거팀을 만난다. 한국에서 포루트칼까지 자전거로 이동한다던 대륙 횡단팀이다. 훈자에서 헤어지고 거의 석달만의 해후다. 가끔 그 친구들의 홈페이지를 들러 본 적이 있어 터키에 들어온 건 알고 있었지만 카파도키아에서 만나지지 않으면 거의 볼 수 없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우연히 만나 버린 것이다. 몇 달만에 본 그들은 더 마르고 검어 지긴 했지만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여름내내 그 무더운 파키스탄과 이란을 거쳐 온 그들은 이제 추위와 싸우며 유럽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참 대단한 친구들이다 싶다가도 이게 뭔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일정이 늦어져서 고민이라면서도 이 친구들 넴룻행에 흔쾌히 동행해준다. 결국 우리 네 명과 독일 아줌마 세 명 그리고 국적이 생각나지 않는 남자 한 명 이렇게 여덟 명이 넴룻으로 떠난다. 혼자가면 투어가 없을까 고민했던 일이 우스워진다.


왕의 무덤 앞에 세워진 테라스


무덤 뒤편에 흩어져 있는 거석들

 

산장은 소문만큼 춥지는 않다. 짐을 풀어 놓고 일몰을 보러 산 위로 올라간다. 상상했던 것 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넴룻의 조각들은 인상적이다. 특히 저녁 햇살에 붉게 물들어 갈 무렵의 조상들은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는 것 같다. 한때 사진 기자였다는 자전거팀의 영호씨와 여행 중에 사진전문가가 다된 다운씨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다음날 카흐타로 내려가는 차를 알아본다. 다행히 차가 있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올라오면 기사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반대로 내려가면 된단다. 올라 온 길과 내려 갈 길을 가늠해 보니 이 정도면 배낭 메고 걸을 만 하다 싶다. 게다가 카파도키아에서 같이 온 일행이 동부로 가려던 일정을 바꿔 시리아로 내려가기로 했다니 당분간은 같이 움직일 수 잇을 것 같다. 내려 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일출을 보려면 거의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매일 뜨는 해 한번 보겠다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다음날 배낭을 메고 다시 산을 오른다. 어제 저녁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미 산 가득히 모여 있다. 반대편에서 새벽에 올라온 사람들이다. 침낭까지 둘러쓰고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잔뜩 흐린 탓인지 일출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해가 뜨고 다시 이별이다. 이 친구들은 다시 산장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고 말라타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아쉽지만 가는 길이 다르니 어쩌랴.. 건강하게 여정을 마치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해뜨기 전의 넴룻산


자전거팀이 찍어 준 사진,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카흐타로 내려가는 차에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분명히 카흐타까지 가는 걸로 이야기를 하고 파를 탔건만 기사는 카흐타까지 갈 수 없다고 고집이다. 산아래 마을까지 밖에 데려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카흐타까지 가는 차비를 지불했으니 거기까지 가야겠다는 것이고 기사는 그렇게는 안된다는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진다. 결국 기사가 묘안을 생각해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카파도키아에서 투어로 넴룻을 다녀가는데 이 경우 넴룻뿐 아니라 산리우르파외 하란을 묶어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기사가 이런 투어버스를 하나 섭외해오더니 카흐타에서 산리우르파가는 차비만 내고 이 차로 바꿔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단 이 차는 그냥 산리우르파까지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댐 하나를 들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별로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다. 어차피 카흐타까지 이 차를 타고 간다 치더라도 버스가 바로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댐하나 더 들른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축날 일도 없거니와 애초에 시간은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결국 산 아래 마을에서 버스를 바꿔 탄다. 카파도키아에서 온 투어버스엔 한국인 여자 둘과 외국인 커플, 그리고 기사 겸 가이드 모두 다섯 명이 타고 있다. 아마 우리가 내는 차비는 이 기사 겸 가이드 아저씨의 부수입이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이 아침 먹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아 있던 빵으로 요기를 하고 함께 산리우르파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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