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하마> 잠시 쉬었다 가다

하마는 사실 별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볼거리라고는 시내를 관통하는 오른테스강에 돌고 있는 몇백년 된 수차가 전부다. 그렇다고 교통의 요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시간 남짓 떨어진 홈스라는 곳까지 나가야 외부로 떠나는 차를 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이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아무래도 숙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곳 하마에는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리아드호텔이 있는데 시설도 깨끗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게다가 이삼년전 시리아의 배낭여행 정보 없음을 한탄한 어떤 여행자가 한국여행자 전용 정보노트까지 만들어 두고 간 탓에 이곳저곳의 먹거리며 볼거리에 대한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많지는 않아도 여행자들이 두고 간 한국책도 서너권 눈에 뛴다. 결국 며칠 쉬었다 갈 곳을 발견한 셈이다. 이제 조금 조금 느긋해진다.

 

한글책을 뒤적이거나 이북을 보는 걸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도 심심해지면 시내를 산책한다. 시내 산책이라야 강을 끼고 수차가 보이는 곳을 따라 걷거나 한때 성채였다고는 하나 이제는 흔적만 남은 언덕을 오르거나 하는 게 전부지만 시간은 어느새 며칠이 흘러 있다. 처음 체크인할 때 매니저가 한국사람 한명이 묵고 있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다 저녁 무렵 로비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난다. 숙소 스탭들과 같이 저녁을 먹자며 어차피 라마단 기간이라 식사는 다 같이 하는 게 이쪽 관습이니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바람에 저녁 식사에 슬며시 끼어든다. 이 친구, 이곳 하마에서만 두달 넘게 머무르고 있다는데 그것도 여행 중에 멈춰선 게 아니라 아예 한국에서 시리아로 바로 날아 왔단다. 그 다음날부터 저녁은 자연스럽게 숙소 스텝들과 같이 먹게 된다. 하마가 다른 도시보다 낫긴 해도 매번 먹는 게 고민이었던 탓에 한시름 덜었다 싶다. 라마단 덕을 볼 때도 있다.


오른테스강의 수차


오른테스강변

 

이 친구를 만나자 다시 고민이 생긴다. 이 친구 레바논이 너무 좋다며 여기까지 와서 레바논을 가지 않는 건 너무 아깝다며 꼭 가보라고 한다. 사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폭격을 퍼부은 셈이긴 하지만  전쟁이 막 끝난 나라에 들어간다는 게 선뜻 내키지는 않는지만 한편으론 가볼까하는 마음이 슬며시 든다. 레바논은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상당히 서구화되어 있는데다 도시들도 모두 해안가에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상당히 독특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시리아에서 넘어가는 방법은 이곳 하마에서 가는 방법과 다마스커스에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하마 국경에서만 한달짜리 프리비자가 나오니 갈거면 꼭 하마에서 넘어가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차피 시리아비자는 2주짜리니 비자연장을 해야하는데 팔미라를 다녀와서 하마 국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들어오면 굳이 비자를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팔미라에서 이틀정도 있다가 다시 하마로 돌아와 레바논으로 넘어갈 결심을 한다.

 

그렇다면 팔미라나 빨리 다녀오자 싶은데 이곳 하마에서 일주일 넘게 뒹굴거리면서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떠오른다. 크락 데 슈발리에.. 크락 데 슈발리에는 중세십자군의 성이다. 결국 하루 시간을 내 부랴부랴 다녀온다. 하마에서 홈스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 다시 한시간쯤을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이곳은 외관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믿거나 말거나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된 성이라는 말도 있다. 이 중세 시대의 성은 거의 견고한 요새처럼 보인다. 외부에 성곽을 높이 올려 쌓고 외성과 내성 사이엔 다시 물이 흐르는 해자를 파고 적의 침입에 대비한 흔적이 보인다. 내성의 내부는 많이 손상되긴 했어도 아직 성의 망루는 무너지지 않아 올라가서 보면 멀리 마을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왔으니 시간에 여유가 있다. 마지막 버스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천천히 성을 돌아보고 나서 성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까지 먹고 오후쯤 숙소로 돌아온다.


크락 데 슈발리에


크락 데 슈발리에서 바라본 마을

 

숙소에 돌아오니 한국 여행자들 몇몇이 눈에 뛴다. 터키에서 본 적이 있는 남자친구 하나와 여자친구 넷이 함께 알레포에서 왔다고 한다. 그 중 일본인 일행이 있는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하마에서 이틀을 지낸 뒤 팔미라를 거쳐 다마스커스를 본 후 레바논을 다녀 올 예정이라고 한다. 어차피 다음날 당장 팔미라로 떠날 예정은 아니었으니 그 다음날 팔미라에 같이 가기로 한다. 이틀 뒤 네 명의 여자친구들과 함께 팔미라로 떠난다. 어차피 이틀 뒤면 돌아올 예정이니 배낭은 아예 숙소에 맡겨 둔다. 간만에 가뿐한 짐을 지고 길을 나서니 잠시 트레킹이라도 다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