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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 우울하다

알레포 시내 어디에선가 버스는 우리를 내려준다. 이곳이 종점이라는데 터미널도 아닌 것이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목적지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영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결국 지나가는 택시를 잡는다. 우리가 찾는 숙소 근처에 있는 큰 호텔의 이름을 대며 얼마냐고 물었더니 1달러란다. 택시 기사가 외국인에게 처음 부르는 가격은 거의 바가지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갑자기 낮아진 물가에 멍해진 우리는 흥정하는 것고 잊고 그냥 택시에 오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4배나 더 주고 탄 게 밝혀지긴 했지만^^- 짐작했던 대로 택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를 내려 준다. 지도를 보고 대층 방향을 잡아 숙소가 있다는 신시가지 시계탑으로 향한다. 거리는 말이 신시가지지 낡은 건물들과 사람들, 차들로 혼잡하기 그지없다.

 

숙소 찾기에서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힌다. 처음 찾아간 숙소는 시설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두 번째 찾아간 숙소는 가격은 그럭저럭인데 시설이 으악이다. 시리아는 숙소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이 두 군데로 이름을 들어 본 숙소는 동이 난다. 결국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근처 숙소를 이잡듯 뒤져 본다. 그러나 들어가 본 숙소마다 비싸거나 으악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결국 두어 시간을 헤매다가 그만그만한 숙소 하나를 찾아낸다. 방이 5층에 있다는 것만 빼면-시리아의 건물은 한층이 무지 높다- 그럭저럭 견딜만한 수준이다.

 

두 번째 난관은 먹는 문제다. 사실 시리아에서 먹을 거라고 통닭밖에 없다는 소문을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통닭밖에 먹을 게 없을 줄이야.. 더구나 라마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날라리 무슬림 국가인 터키와는 달리 이곳은 낮에 거의 식당도 열지를 않는다. 도착한 날은 저녁이라 통닭으로 저녁을 때웠지만 다음날부터는 대략 난감해진다. 전날 저녁에 빵을 좀 사두었다가 먹거나 유적지 근처에 문을 여는 몇몇 식당으로 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나마 알레포에서는 생과일 쥬스가 싸고 맛있는 걸로 유명한데 이 집조차 저녁에만 문을 연다ㅠㅠ.    

 

세 번째 난관은 입장료다. 시리아는 학생증이, 그것도 ISIC 학생증이 거의 괴력을 발휘하는데 이게 있으면 입장료가 1/15로 낮아진다. 거의 모든 유적지의 외국인 입장료가 150파운드(3천원)인 것에 비해 학생증이 있으면 시리아인들의 입장료인 10파운드(200)로 낮아진다. 아쉽게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내 가짜 학생증은 ISEC. 박물관에서 문제가 생긴다. 내 학생증을 보여주니 오로지 그린원-ISEC 학생증은 초록색이다- 만 된다며 ISIC의 복사본까지 보여준다. 벽에는 학생증의 조건이 써 있다. 인터내셔날, 프린트 그리고 30세 이하가 그 조건이다.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우겨본다. 내 학생증도 인터내셔날이고 프린트되어 있으며 나는 30세 이하라고-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 학생증의 생년월일도 가짜다^^- 결국 아저씨가 포기했는지 그냥 들어가란다. 다행히 알래포성에서는 별 문제없이 통과가 돤다. 하지만 모든 유적지가 다 알레포성 같지는 않을테니 어디가서 가짜 ISIC를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알레포성


알레포성에서 본 도시, 온통 회색빛이다

 

일행이 먼저 알레포를 떠난다. 나도 오래 있을 생각을 아니지만 그래도 도착한 다음날 짐을 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행을 보내고 결국 다음날 나도 짐을 싼다. 이 도시는 별로 정이 가질 않는다. 온통 회색빛 건물들이며 낮에는 전부 문을 닫는 가게들, 무엇보다 쉴만한 곳이 없다. 물가가 싸져서 좋기는 한데 터키에서는 잠시 잠잠했던 아랍민족 특유의 유별난 관심들이 다시 시작되니 슬쩍 피곤해지기까지 한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라타키아로 가기로 맘을 먹는다. 지중해에 면해있는 항구도시라니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고 며칠 처박히면 좋을 듯싶다. 여행자의 좋은 점은 이런 게 아닐까.. 좋으면 머무르고 아니면 떠나면 그만이다. 알레포에 온지 고작 이틀 만에 결국 알레포를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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