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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1
    <바하리아> 영선을 만나다(5)
    제이리
  2. 2007/01/31
    <아스완> 펠루카를 타다(2)
    제이리
  3. 2007/01/31
    <룩소르> 왕가의 계곡을 가다(2)
    제이리
  4. 2007/01/31
    <시와> 드디어 사막이다. 그런데...(4)
    제이리
  5. 2007/01/31
    <카이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4)
    제이리
  6. 2007/01/31
    <다합2> 다이빙을 하다(7)
    제이리
  7. 2007/01/31
    <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5)
    제이리

<바하리아> 영선을 만나다

 

이 놈의 기차는 또 연착이다. 아침 9시에 도착한다던 기차가 12시가 가까워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아무래도 바하리아로 바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이집트는 카이로를 거치지 않으면 딴 도시로의 이동이 힘드니 벌써 카이로만 세 번째 들어온다. 바하리아에서 돌아오면 다시 카이로를 거쳐 다합으로 가야 하고 이집트를 떠나자면 또다시 카이로로 와야 하니 이래저래 카이로만 다섯 번을 들러야 하는 셈이다. 익숙한 숙소에 다시 짐을 풀고 바하리아로 가는 다음날 버스표를 예매해 둔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나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무작정 오라고는 하는데 이 친구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정보가 없다. 결혼식은 올렸는지, 짓는다던 호텔은 다 지었는지, 투어는 하는 건지 도통 아는 게 없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가보면 알겠지 그 마을에 호텔이 없을 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한다 싶기도 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바하리아행 버스를 탄다. 버스에 타보니 한국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그중 자매라는 두 친구와 인사를 하고 보니 이 친구들도 영선에게 가는 길이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하는 바하리아 투어가 있다는 글을 보고 미리 전화를 하고 가는 길이라고 한다. 음.. 투어를 하긴 하는구나.. 어차피 투어는 차당으로 비용을 계산하니 일행이 있는 편이 좋긴 하다. 그리고 혼자 바하리아로 가는 또다른 남자 친구와도 인사를 나눈다. 이 친구는 별다른 예약 없이 그냥 가는 길이라고 하니 같이 투어를 하기로 한다. 차는 터미널을 벗어나자마자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더니 한 시간이나 수리를 하고서야 다시 바하리아를 향한다. 다시 황량한 사막을 거쳐 바하리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터미널에는 영선의 남편인 모하메드가 나와 있다. 그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니라 그의 집이다. 그것도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말이다.


차에서 내리니 영선이 반갑게 맞아준다.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있기는 해도 태국에서 봤던 그 얼굴이다. 그저 여행지에서 며칠을 같이 보낸 것뿐인데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영선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짓고 있는 호텔이 완성이 되지 않아 잠시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서 알고 지내던 카이로의 민박집에서 보내주는 손님 이외에 인터넷으로 연락을 받은 손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원래 바하리아 투어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막으로 떠나 1박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떠나는 일정이 일반적인 모양인데 오늘은 버스가 연착을 했으니 투어를 가기는 늦은 시간이라며 따로 호텔을 잡느니 그냥 여기서 하루밤 자고 내일 투어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온다, 나야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어른들 다 계신데 묵어도 되나 잠시 망설여진다.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근처에 소금호수와 샌듄에 다녀오는 걸로 저녁 시간을 보낸다.

 

소금호수

 

 

영선과 그 남편 모하메드


다음날 일행들과 함께 사막투어를 다녀온다. 영선은 이 친구들만 투어를 보내고 다음에 신랑이랑 셋이서 따로 사막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온다. 마음이야 고맙지만 그렇게 하면 이 친구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건 그렇다 쳐도 영선과 모하메드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일이 된다. 내가 무슨 친정 언니도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하기는 부담스러우니 투어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녀오겠다고 한다. 모하메드와 그의 조수인 청년 그리고 우리 넷, 이렇게 여섯이서 투어를 떠난다. 영선의 남편인 모하메드는 어렸을 때부터 삼촌 밑에서 가이드를 했다니 영선과 결혼을 하면서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한 셈인데 그래서인지 그의 운전이나 가이드는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차는 바하리아에서 한참을 달려 흑사막에 도착한다. 흑사막은 주변 화산에서 분출돤 화산재가 오랜 바람에 침식돠면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온통 그을린 듯한 감은 돌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검은 사막을 거친 차는 다시 크리스탈마운틴에 잠시 멈췄다가 어느새 백사막으로 들어선다. 모래 사막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의 어디쯤인 같다는 느낌을 준다.  

 

흑사막

 

 크리스탈 마운틴


백사막 사이를 한참이나 달리던 차는 일몰 무렵 백사막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바람막이로 차를 한켠에 세워두고 그 앞으로 시트가 깔리더니 하루밤 잠자리가 완성된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즉석에서 저녁이 준비된다. 이런 곳에선 보통 닭고기를 숯불에 굽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닭을 야채와 함께 자작하게 조려준다. 추운 날씨 탓인지 이렇게 하는 게 먹기가 훨씬 편한데 아무래도 영선의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니 조그마한 동물이 주변을 얼씬거린다. 사막 여우란다. 여우치고는 크기가 크지는 않은데 먹을 걸 보더니 사람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닭뼈를 건네주면 한참을 망설이다가 잽싸게 뺏어들고 돌아서는 폼이 여우라기 보단 그저 애완 동물같다. 이번엔 날을 잘 잡는 듯 하늘엔 달 대신 별이 총총한데 침낭에서 맞는 밤은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백사막1

 

 

백사막2


투어에서 돌아와 카이로로 일행들을 보내고 하루를 더 묵기로 한다. 호텔이 완성되었다면 며칠 묵어갈 생각이었는데 신혼 부부 갈라놓고 자는 일은 하루면 족할 것 같다. 영선은 정 불편하면 근처 호텔에서라도 며칠 묵어가라고 권하지만 어차피 집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낮에 이곳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은 매일반인 것 같다. 짓고 있다는 호텔에 같이 다녀온다. 이제 한달반만 있으면 완공이 된다는데 제법 근사한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호텔이 완공되면 부모님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다는데-현재는 법적 절차만 밟고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완공이 조금만 빠르면 결혼식을 보고 가고 싶지만 이집트의 검뭉 올라가느느 속도를 감안해보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결혼이란 걸해서 산다는 일이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영선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런 결정을 할 때야 본인이 가장 고민이 컸을 텐데 걱정한답시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 친구는 충분히 좋아보인다. 이상하다. 태국에서 처음 여행자로 그를 만났을 땐 전혀 깨닫지 못했는데 혹 전생에  이집션이 아니었을까 쉽게 그는 그 동네와 그 집에 어울린다. 하긴 본인도 처음 이집트에 왔을 때 찬구들이 바가지며 거짓말에 치를 떠는데도 그냥 이집트가 좋기만 했다니 글쎄 인연이란 게 정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막의 숙소

 

사막 여우


카이로를 거쳐 다시 다합으로 다시 돌아온다. 어디를 가든 조금 쉬었다 움직일 예정이다. 1월이 지나면 유럽 쪽의 날씨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알팍한 계산도 함께다. 지금 여전히 다합이고 생각보다 길게 있었다. 그 덕분에 밀리고 밀린 여행기 정리는 끝냈지만 어디를 갈 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도 유럽 쪽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춥고 배고프면 유럽 어디에선가 한국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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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펠루카를 타다

 

아스완은 이집트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관광도시이다. 하지만 관광도시라고 해서 아스완시내에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고 인근의 필레 신전이나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펠루카를 타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펠루카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돛단배로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하는 배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일강가에 나가본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중동 국가같은 느낌이 더 많았는데 이곳에 오니 흑인들이 제법 눈에 뛴다. 한때 이곳은 고대 누비아의 땅이었다는 데 그래서인지 수단 민족인 누비안들도 많고 곳곳에 누비안 마을도 눈에 뛴다. 엘레판틴섬에는 누비안 마을이 있다니 해지기 전에 마을이나 둘러 볼 샐각에 로컬 페리를 타고 섬으로 건너간다. 조용한 마을일거라는 기대는 강을 넘어서자마자 무너진다. 마을 입구부터 낙타 몰이꾼이 줄을 서 있고 마을에도 온통 박시시를 외치며 따라다니는 아이들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부심벨 롱투어와 펠루카 1박 2일 투어를 신청한다. 아부심벨 투어는 말 그대로 버스로 아부심벨을 다녀오는 투어이고 펠루카 투어는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항해하는 투어이다. 그런데 신청을 하다보니 일정이 살짝 꼬인다. 아부심벨 투어는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는 숏투어와 아부심벨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아스완하이댐, 필레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까지 들르는 롱투어로 나뉘는데 롱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세 시인데 비해 펠루카가 떠나는 오후 한 시이다. 그저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던지 아님 아스완에서 하루를 더 자고 담날 펠루카를 타든지 해야 할 판이다. 숏투어를 하자니 딴 건 몰라도 필레 신전은 봐야 할 것 같고 담날 펠루카를 타자니 숙소 상태가 하루 더 묵고 싶은 맘을 가시게 한다. 어찌할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숙소 주인이 대안을 제시한다. 롱투어 마치고 돌아와서 미리 떠난 펠루카를 따라잡으면  된다며 세 시에 숙소로 픽업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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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

 

 페리에서 만난 누비안 소녀들


아부심벨 투어는 롱투어, 숏투어를 가리지 않고 픽업 시간이 새벽 3시란다. 안자면 모를까 자다 일어나기 가장 황당한 시간이지만 별달리 방법이 없다. 숙소 주인이 깨워준다고는 했으나 알람까지 맞춰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잠이 올 리가 만무하다.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잠들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나 정확히 세시다. 버스는 삼십분 가까이 사람들을 픽업하러 다니더니 일곱 시가 가까워서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한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그의 즉위 30주년을 맞아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신전인데 이 신전은 인류가 구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별칭도 함께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중반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의 상류에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자 수몰위기에 처한 이 유적을 조각조각 내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 50개국의 지원을 받아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이전 작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바다를 방불케 히는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댐건설과 함께 생긴 인공호수인 낫세르 호수다. 낫세르 호수를 끼고 오른쪽 모래 언덕을 돌아서면 아부심벨 대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암굴 신전인 대신전은 신전 정면에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신전의 내부에도 람세스왕의 다양한 업적을 기린 부조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대신전 옆에는 역시 암굴 신전인 소신전이 있는데 이는 왕비 네파르타리를 위한 신전이라고 한다. 신전을 돌아보고 신전 앞 공터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람들이 투어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도시락을 차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아침에 숙소 주인이 건네주는 걸로 봐서는 호텔의 서비스 같기도 하다. 도시락이라야 빵이랑 과자 몇 개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먹고 나니 제법 속이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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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소신전


다시 차에 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아스완 근교에서 다시 롱투어팀과 숏투어팀으로 나누더니 이내 아스완하이댐에 도착한다. 어차피 댐까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밖에서 그냥 밖에서 기다리다 필레 신전으로 향한다. 원래 나일강의 필레섬에 있던 필레 신전 역시 수몰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을 지금의 섬으로 옮겼다고 한다. 필레 신전은 섬에 위치해 있으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투어에 배타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재주껏 흥정해서 들어가야 한다, 어차피 배는 한대당 가격이니 일행은 많을수록 유리하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투어를 함께한 한국인이 4명이니 한팀만 더 잡으면 된다. 마침 중국 관광객 6명이 눈에 뛴다. 이들과 같이 배를 타고 필레 신전으로 들어간다. 이제 신전은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기 시작하지만 필레 신전은 섬이라 그런지 신전에 앉아 강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분위기가 그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스완 시내로 들어선다, 마지막 행선지는 미완성오벨리스크다. 오벨리스크란 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비석을 말하는데 결함이 발견되어 버려진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를 보러가는 것이다, 이걸 보면 고대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매끄럽게 잘라냈는지 알 수 있다지만-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쐐기를 박아 넣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단다- 이것 역시 입장료씩이나 내고 보고싶은 맘은 들지 않는다. 이런 맘은 모두다 마찬가지였는지 막상 입구에서 아무도 차에서 내리지 않자 그곳을 그대로 지나간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펠루카를 타러 간다. 두 시간이나 먼저 간 배를 따라 잡으려면 차를 타고도 한참이나 가야겠구나 생각했더니 이게 웬일.. 픽업이라며 나온 아저씨는 두발로 뚜벅뚜벅 앞장 서 걷더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착장에서 펠루카를 태워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펠루카는 이동이 목적인 배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동 시간에 비해 이동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페리에서 본 필레신전

 

필레 신전 입구


덴데라 신전을 같이 다녀 온 영국 유학생 친구와 펠루카에 오르니 먼저 탄 일행들이 인사를 건네 온다. 세 명의 벨기에 처자들과 한 명의 영국 총각이다. 비록 어학연수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유학생이 있으니 영어 고문은 안 당해도 되겠다 싶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박이 길었던지 배는 우리가 타자마자 나일강을 미끄러지듯이 흘러간다. 배 위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어 제각기 앉거나 눕거나 제 편한대로 자세를 잡고 있다. 펠루카는 일몰 무렵에 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과연 강 건너편으로 노을이 붉어지면서 물빛은 온통 황금빟으로 보인다. 강 위로 떠다니는 페리들이 불빛을 밝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진다.

 

펠루카 위

 

나일강에 해가 진다


배는 강변에 정박하더니 하루밤을 보낼 준비를 한다. 배 주변으로 천이 둘러쳐지고 촛불이 켜진다. 배에서 만든 요리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아침 일찍 이곳으로 픽업 오는 차를 타고 룩소르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펠루카를 탄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남짓인데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영국 유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2박 3일 일정이라니 하루를 더 타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성 싶다. 다음날 아침 영국 유학생은 룩소르로 돌아가고 나는 펠루카를 하루 더 타기로 한다. 잠자리는 불편해도 배 위에서 하루쯤 더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펠루카에 누워 주는 밥이나 먹으며 그저 자다 깨다 하루를 보낸다. 책이라도 한 권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섬에 잠시 정박 중인 펠루카

 

누워서 본 펠루카의 돛


펠루카에서 이틀을 자고 다시 룩소르로 향한다. 아스완에서 콤옴보까지 왔으니 이틀 동안 이동한 거리는 고작 40킬로 남짓이다. 어쩐지 펠루카가 똑바로 안가고 강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더라니.. 돌아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 속사정이야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콤옴보에서 룩소르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콤옴보와 에드푸의 신전을 한 곳씩 들러 간다. 이미 필레 신전부터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한 신전들은 이제 정말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똑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신전을 봤을 뿐인데 벌써 이 지경이니 몰아서 본 게 죈지 무식이 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튼 어찌어찌 다시 룩소르로 돌아온다.


다시 룩소르로 돌아와 며칠을 더 보낸다. 이제 바하리아 사막에 들렀다가 다합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하리아를 마지막으로 여행지로 남겨둔 건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이다. 언잰가 태국 여행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여행 중에 이집트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지금 바하리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또다른 친구에게서 메일로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한국말이다. 전화로 긴 얘기는 할 수 없으니 바하리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룩소르에서 바하리아는 지도상으로 보면 바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도로가 좋지 않아 카이로를 거쳐서 가는 편이 더 빠르다고 한다. 별 수 없이 다시 카이로로 가는 밤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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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왕가의 계곡을 가다

카이로에서 저녁을 먹고 밤기차를 탄다. 이집트의 침대 기차는 무지 비싸지만-가격이 60불이다- 굳이 침대 기차가 아니라도 기차는 충분히 쾌적하다. 특히 일등석은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처럼 한 줄에 좌석이 3개 밖에 없으니 좌석도 그만큼 넓은데다 뉴질랜드 총각들 덕분에 두 좌석을 모두 차지하고 가니 간만에 편하게 밤차를 탄다. 룩소르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문 연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 게스트하우스 쥔장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섯 살인데 그래서인지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도 그저 친구집에 놀러 온 것 같이 편안하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한잠자고 일어나보니 숙소에는 아무도 없다. 짧게 여행하는 친구들은 밤차를 타고와도 절대로 쉬는 법 없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데 나야 이제 밤차라도 한번 타고나면 담날은 하루 종일 쉬어줘야 한다^^.


나일강의 중류에 자리잡은 룩소르는 고대에는 테베라고 불리던 곳으로 고대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집트의 보물로도 불리는 이곳은 국립박물관의 유적 대부분이 여기서 발굴되었을 만큼 파라오의 신전들과 유적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곳은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눠지는데 이 두 곳을 하루에 다 돌아보는 열혈 여행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까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있는 동안과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을 하루씩 나누어 돌아본다. 동안이 천천히 걸어서 다녀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데 반해 서안의 경우는 택시를 대절해 왕가의 계곡, 하셉수트 신전, 람세스3세 장제전 그리고 아가멤논의 거상만 보고 돌아와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물론 룩소르의 외곽에도 유적지들이 있어 신전에 관심이 지대하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여행자들은 인근 도시에 있는 덴데라 신전과 아비도스 신전을 묶어서 투어를 다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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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본 풍경, 차가 룩소르에 가까워질수록 들판은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다

 나일강, 강 건너 보이는 것이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이다

 

하루를 쉬고 나일강을 따라 까르낙 신전으로 향한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라는 까르낙신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입구부터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상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는 134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신전의 대열주홀인데 ‘그 중 큰 것은 작경이 2미터, 높이가 20미터를 넘는다고 한다. 이 기둥들마다 각종 부조와 상형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그 의미야 알 수 없지만 그 조각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런 부조들은 이 기둥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전의 벽면 하나하나마다 빠지지 않고 새겨져 있는데 이집트의 신화와 역사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까르낙 신전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룩소르 박물관은 그리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전시가 되어있어 카이로의 국립박물관보다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신전으로 향한다. 나일강변에 세워진 이 신전은 그냥 길거리에서 봐도 내부기 훤히 들여다보이니 굳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신전은 앞으로도 지겨울 만큼 보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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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낙 신전 입구,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20개씩 놓여있다

열주들, 규모가 너무 커서 카메라에 잘 담기질 않는다 핫셉수트 신전


다음날은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왔다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서안을 돌아본다. 서안 최대의 볼거리는 역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이다. 보통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라면 피라미드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사실 피라미드는 고왕국 초기에 잠시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무덤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 역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60여개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는 이곳 왕가의 계곡이야말로 파라오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왕가의 계곡 앞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이들 무덤 중 세 곳을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을 준다. 어차피 무덤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화려한 부조가 있는 방들이 나오고 그 방들이 지나치면 더 깊숙한 방이 나오는데 이곳이 파라오의 안치실이다. 물론 현재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도굴되었고 그 나머지도 박물관으로 옮겨진 지 오래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황량한 돌산의 계곡마다 깊숙이 묘를 파기는 했으니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무덤은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무덤 정도였다니 결국 도굴꾼의 손길을 벗어나지는 못한 셈이다.

 

왕가의 계곡, 중앙에 보이는 입구가 왕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핫셉수트 왕의 신전 


이곳 서안에는 왕가의 계곡 말고도 왕비의 묘들이 모여 있는 왕비의 계곡이니 귀족이나 장인들의 묘가 있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퍼져 있지만 그걸 다 둘러보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입장료도 엄청 들여야 할 판이다. 내가 뭐 고고학자도 아닌 방에야 굳이 그걸 다 둘러볼 이유도 없다.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서 둘러본 파라오의 무덤 세 곳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과 람세스 3세의 신전을 돌아본다. 이집트의 신전들은 그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나다. 지금이 겨울이긴 하지만 나무하나 없는 황무지에 세워진 신전들을 둘러보자면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으니 신전들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게다가 신전 곳곳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칭 가이드들이 한마디라도 들어주면 박시시를 달라고 손을 내미니 이들을 뿌리치는 일도 보통 피곤한 일은 아니다. 신전들을 둘러보고 멤논의 거상에 잠시 들렀다 다시 보트를 타고 동안으로 돌아온다.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멤논의 거상, 동행자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전형적인 관광지 포즈가 나온다.


하루는 덴데라 신전을 다녀온다. 투어로 가고 싶지는 않으니 쥔장에게 개인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기차를 타고 어디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어떻게 하면서 한참 설명에 열을 올리던 쥔장은 덴데라 안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면서 아예 자기랑 같이 가잔다. 영국 유학생 한 명과 계란까지 삶아 들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덴데라 신전은 룩소르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예니라는 도시에 있다. 이집트의 기차는 이상하게도 외국인이 탈 수 있는 기차가 따로 있다는데 마침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하니 그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다. 쥔장 왈 다음 기차는 외국인에게는 표를 팔지 않는다며 그냥 올라타자고 한다. 차안에서 벌금을 포함한 기차요금을 물고 다시 예니역에서 내려 덴데라 가는 택시를 대절한다. 이곳에서 언젠가 외국인 여행자가 살해된 적이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데도 검문을 서너 번이나 당한다.


덴데라 신전은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대 그래서인지 신전의 기둥마다 여인의 두상이 조각되어 있다-아쉽게도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다^^- 이집트 고대왕조 최후의 건축물이라는 이곳은 그래서인지 보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지붕이 남아 있어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고 지하실의 납골당까지 내려가 볼 수도 있다. 옥상을 둘러보고 지하계단이 있다는 문 앞에 도착하니 내려가지 말라는 푯말이 서 있다. 이전에 내려가 본 작이 있다는 쥔장이 지하로 향하는 슬쩍 당겨 보니 스르르 열린다. 관리인의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 본다. 후레쉬를 들고 있기는 사방은 깜깜하기만 하다. 후레쉬에 비친 부조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서둘러 다시 올라온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을 불러보고 다시 기차를 단다. 이번에는 완행열차를 탄다. 창밖으로는 온통 푸른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기차는 느릿느릿 풍경 속을 달린다. 이곳에서는 푸른빛이라곤 좀처럼 볼 수 없으니 한국에서 늘 보던 모습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냥 봄날 오후같이 나른하다. 하루 동안 봄나들이라도 나온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의 기둥


이제 아스완으로 갈 시간이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는 세 시간 거리이다. 아침 일찍 기차역에 나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쥔장 말에 따르면 아스완 가는 아홉시 기차는 거의 변함없이 열한시가 넘어야 온다지만 그렇다고 아홉시 기차를 타러 열한시에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시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간 맞춰 기차역에 나가 꼬박 두 시간을 기다리다 기차를 탄다. 햇살에 따뜻하다, 창밖을 보다 어느새 졸았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차는 어느새 아스완역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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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드디어 사막이다. 그런데...

 시와 가는 길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게다가 한 번에 가는 차도 없다. 중간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나 마르사마투르에서 차를 갈아타야 타고도 거의 열두시간이 꼬박 걸린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마르사마투르행 버스를 탄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는 길에 들릴 예정이니 오는 길과 가는 길을 다르게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그 도시에 묵는 게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버스는 알렉산드리아를 지나 마르사마투르를 거쳐 시와로 간다^^. 버스는 카이로를 벗어나 한동안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가 싶더니 곧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사막으로 접어들어 여덟 시간 만에 마르사마투르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다시 시와행 버스를 갈아타고 네 시간여를 달려 시와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밤 9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꼬박 하루를 버스에서 보낸 셈이다. 시와에서 며칠 머물 생각이라면 모를까 사막 하루 보자고 오기에는 좀 멀다 싶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돌아갈 길도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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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집트에서 갈 수 있는 사막은 꽤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흔히 가는 곳은 시와 사막과 바하리아 사막인데 이 두 곳은 같은 사막이라도 차이가 있다. 시와 사막이 모래로 이루어진 비해 바하리아 사막은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검은 돌산이 있는 흑사막과 바람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백색의 석회석 바위가 있는 백사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야 순전히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막하면 떠올리는 곳은 이곳 시와가 좀더 가까울 것 같다. 일반적으로 투어는 지프를 타고 사막을 돌아본 뒤 사막에서 하루밤을 자고 나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차피 밤늦게 도착했으니 숙소에서 투어를 신청해 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투어의 출발 시간이 두시다. 하긴 하루 종일 사막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다섯 시면 해가 지는 이곳에서 두시 출발이라면 왠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른 투어도 별 차이는 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자전거를 빌려 시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사람들은 이곳을 흔히 시와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아시스는 사막 가운데 야자수가 몇 그루 있고 가운데에서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지극히 동화적인 곳이긴 하지만 주변이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이 마을을 오아시스라 부르는 게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시와 오어사스는 자전거로 돌아보기 적당한 크기다. 야자수가 늘어져 있는 흙길을 달리다 보면 언젠가 만들어졌다가 이제는 무너진 흙으로 만든 성도 나오고 제법 고대의 유적들도 눈에 뛴다. 또 어디쯤엔가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했다는 온천이 불쑥 나오기 하고 마을 근처엔 한때 이곳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제법 큰 소금 호수가 보이기도 한다. 호수 근처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갈대들이 늘어서 있다. 굳이 사막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며칠 묵어가기에 좋은 마을인 듯싶은데 이미 룩소르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해 둔 터라 그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와 오아시스

 

 

클레오파트라 온천(이라기보단 거의 수영장이다)


오후에 지프를 타고 사막으로 향한다. 어차피 시와 오아시스는 큰 마을이 아니니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황량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몇 군데 구경거리를 거쳐 차는 모래사막으로 들어선다. 사막에서 한 일이라곤 사륜구동지프로 보여주는 각종 묘기-사구를 빠른 속도로 올랐다 급경사를 내려오는 등의-를 보는 일과 미리 차 지붕에 매달고 갔던 샌드보드를 탄 게 전부다. 그나마 샌드보드를 타고 모래 언덕을 한번 내려갔다 온 사람들은 다시 올라오는 일이 장난이 아니라며 아무도 두 번은 타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시간은 빠듯하기 그지없어 어디서든 내려준 지 십 분이 채 못 지나 다시 차에 타라고 성화다. 투어라는 게 다 그렇지 싶다가도 괜히 엄한데 끌고 다니지 말고 그냥 사막에서 조금 더 있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국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조금 지나 일몰 포인트에 도착한 차는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숙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시와 사막, 멀리 소금 호수인 시와호수가 보인다

 

시와 사막, 접니다요.


그래도 사막에서의 하루밤이 남아 있으니 하고 위안을 삼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차는 다시 모래사막을 빠져 나오더니 마을 근처로 돌아온다. 마을 근처엔 제법 큰 캠프장이 보이고 텐트가 이미 설치되어 있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다. 대충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말로는 사막 보호를 위해 더 이상은 사막에서 야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막 투어의 묘미는 사막에서 별을 보며 하루밤을 보내는 데 있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멀쩡한 호텔을 두고 춥고 더러운 텐트에서 고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투어를 하는 쪽에서야 이렇게 하는 편이 여러모로 간편하고 일손도 더는 일이겠지만 이럴 거면 굳이 1박 2일 투어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미리 준비해준 저녁을 주더니 가이드는 혼자서 마을로 내려가 버린다. 그래도 마을보다는 별이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보름이라 별은커녕 사방이 온통 대낮같이 환하다. 그저 캠프 마당에 이게 뭐냐며 불평이나 늘어놓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만다.

 

시와 사막의 사구

 

시와 사막의 일몰, 지평선으로 해가 진다


차가 아침 일찍 우리를 다시 마을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사막투어는 끝이 난다. 뉴질랜드 총각 중 하나가 물갈이성 설사를 하느라 간밤에 열 번도 넘게 화장실-은 없었지만서두-을 들락거렸다는데 아침에 보니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다. 저녁까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려면 아침 열시 차를 타고 이곳을 나가야 하는데 이 친구들의 상태를 보니 떠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숙소에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뉴질랜드 총각 둘을 남겨두고 세 명만 먼저 알렉산드리아로 떠난다. 이 친구들은 쉬었다 밤차로 오기로 한다. 다시 여덟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에는 카이로로 이동해 룩소르로 가는 밤차를 타야 한다. 뉴질랜드 총각들과 같이 내려가기로 하고 시와로 떠나기 전에 이미 기차표까지 예약을 해 둔 상태다. 알렉산드리아는 카이로와는 달리 도시가 번화하면서도 제법 한가롭다. 저녁 늦게까지 바닷가도 걷다가 찻집도 들렀다가 하면서 도시 분위기를 만끽한다. 고작 삼일 만에 돌아왔는데도 도시가 새삼 신기하다.


다음날 아침 밤차를 타고 온 뉴질랜드 총각들과 합류를 한다. 그런데 이 친구들 여전히 상태가 말이 아니다. 이래 갖고 밤차를 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아닌게 아니라 더는 이집트 여행이 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에 전화해서 비행기 날짜를 빠른 걸로 변경했다고 한다. 또다른 뉴질랜드 총각은 여행 경비로 뉴질랜드 달러를 들고 와서 뒤늦게 집에서 송금을 받는다 어쩐다 법석을 떨더니 결국 여행 온지 일주일을 조금 넘기고 다시 한국으로 간단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다. 결국 이 친구들 예매해 둔 룩소르 가는 일등석표-나야 이등석표를 샀다-를 내게 건네준다. 여튼 나만 팔자에 없는 기차표가 두 장 아니 내 표까지 세 장이 생겼으니 누워가도 될 판이다. 룩소르 가는 기차는 밤 열시에 떠나니 알렉산드리아에서 어슬렁거리다 오후 늦게 카이로행 기차를 탄다. 저녁이나 먹고 다시 밤기차로 갈아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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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일행들이 죄다 카이로로 떠나고 나 역시 이삼일 뒤에 카이로 가는 밤차를 탄다. 원래는 다합에서 네 시간 가량 걸린다는 도시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한동안 더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다합을 뜰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겨울방학 기간에 여행을 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겨울방학 기간이 다가오면 몰려드는 한국 관광객들 때문에 숙소며 교통편도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 어차피 1월 중순에 이집트를 빠져 나갈 계획이라면 다합에서 계속 지내기보다는 비자 연장을 카이로에서 한 뒤 이집트를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다합으로 되돌아 와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현명할 것 같아 맘을 바꾼 것이다. 다합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서너 번의 검문으로 끊임없이 밤잠을 깨우더니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같이 타고 온 한국인 커플과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흔히 카이로를 무질서와 혼돈의 도시라고들 하는데 새벽이라서 그런지 카이로는 매연이 조금 심할 뿐 그다지 무질서하지도 혼돈스럽지도 않다.


도착한 날 바로 비자를 연장하러 간다. 이집트 비자는 국경에서 한달짜리를 받았는데 어느새 비자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다행히 비자 연장하는 곳은 숙소에서 빤히 보이는 건물이다. 비자 연장 창구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연장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여권의 사진면과 비자면을 복사해서 작성한 서류와 함께 내니 두 시간 만에 연장 비자를 내 준다. 서류를 작성할 때 원하는 비자연장 기간을 체크하는 난이 있어 3개월을 신청했는데 막상 여권을 받아드니 연장된 기간은 6개월이다. 뭐 일은 못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일해 봐야 한달에 5만원 받으면 잘 받는 거라니 앓느니 죽는 게 낫다^^. 어쨌든 비자를 연장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아무래도 이집트는 좀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매번 비자 연장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인데 이제 비자 문제는 잊어버려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연장해 줄 거면 처음부터 한 삼개월 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담날은 천천히 카이로 시내를 둘러본다. 카이로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게 신호를 전혀 지키지 않는 차들인데 처음엔 잠시 멍하다 이내 적응이 된다, 내가 다닌 나라들 치고 사람이건 차건 신호 지키는 나라는 한군데도 없었다. 아마 한국에 가면 나도 모르게 무단 횡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딴소리긴 하지만 무단 황단과 더불어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아무 말이나 해대는 버릇이다. 대략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생긴 습관인데 눈앞에 대놓고 별말을 다하는 거다. 쟤 머리 좀 봐라.. 되게 시끄럽네.. 등등 물론 표정은 웃고 있어야 한다. 이런 증상은 한국인 일행이라도 생기면 좀더 심해지는데 쟤가 쟤 여자친구냐 여자가 아깝다.. 쟤는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등등 무궁무진해진다. 가끔 한국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이 증상이 한번씩 나오는 걸 보면 한국 가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그러면 맞아 죽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자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시타델 내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모스크 첨탑에서 본 카이로


카이로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국립박물관이다. 언제부턴가 박물관 가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지만 이집트 박물관이라니 구미가 당긴다. 이집트 유적은 대영박물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유물을 비롯해 다양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아니 쌓여 있다. 이집트 국립 박물관은 유물의 양에 비해 박물관의 크기가 작은 듯 유물들은 전시되어 있다기보다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집트만의 독특한 유물들은 아직 이집트의 다른 유적들을 보지 않아서인지 하나하나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그게 그것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합에서 그래도 이집트 관련 역사책을 두어 권을 읽었음에도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역대 이집트왕들은 그렇다 치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주시는 이집트의 신들은 정말 대책이 없다. 여전히 무식은 건전한 여행의 장애물이다,


박물관을 보고 나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어디를 갈 것인가.. 가이드북에는 카이로를 올드 카이로와 이슬라믹 카이로 그리고 모던 카이로의 세부분으로 나눠 한곳씩 다녀 올 것을 추천하고 있다. 모던 카이로야 어차피 숙소 근처의 광장과 나일강변의 신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니 됐다 치고 초기 콥트 기독교 교회들이 모여 있다는 올드 카이로와 성채와 모스크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이슬라믹 카이로 지구를 하루씩 돌아본다. 이제 교회도, 모스크도, 시장도 다 고만고만하다. 바가지가 심하다고 해서 걱정을 꽤 하긴 했지만 현지인 가격으로 사겠다는 터무니없는 꿈만 꾸지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바가지를 쓴다 해도 물가는 싼 편이라 택시는 카이로 시내에서는 대략 천원 안쪽으로 해결이 되는데다 몇 가지 생필품은 가격만 알고 있으면 그 가격대로 주고 나오면 그만이다. 음식점도 흥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알아서 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무리한 박시시 요구는 대충 무시하면 된다. 그저 필요한 건 잔돈이다. 도무지 이놈의 나라는 잔돈을 제대로 거슬러 주는 법이 없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날은 피라미드를 다녀온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한두 개는 아니겠지만 피라미드하면 카이로 근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를 보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에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비롯해 카프레왕과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등 세 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피라미드가 서 있는 곳은 사막이니 아침 일찍 다녀오라는 조언이 일반적이지만 요즈음은 날씨가 그리 덥지 않으니 일몰이나 보고 오자는 맘으로 오후가 되어서 출발한다. 아침에는 그곳으로 가는 미니버스도 많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미니버스라는 게 출발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하는 버스이니 손님이 없을 땐 다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일반 버스를 타란다. 30분이나 기다려 탄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더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피라미드 앞에 도착한다. 버스 내린 곳에서 빤히 보이는 피라미드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부터 낙타 호객꾼들이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어차피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넓지도 않은데다 낙타는 이미 시나이산에서도 타 봤으니 굳이 타야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피라미드 안에 낙타 몰이꾼들은 바가지와 거짓말로 이집트에서도 그 악명이 높으니 괜히 잘못 탔다가 기분만 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슬슬 걸어 다니면서 피라미드 주변을 돌아본다. 오후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피라미드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작아요, 볼 거 없어요 하는 통에 기대를 낮춘 탓인지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볼 만하다. 피라미드마다 한바퀴씩 돌고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꺼번에 보인다는 뷰포인트까지 갔다 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버스 내린 곳에서 꼬박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다시 버스를 탄다.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져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달랑 1파운드로 피라미드를 다녀온 셈이다.

 

피라미드와 낙타몰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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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것이 카프레왕, 뒤에 것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까지 둘러 봤으니 이제 사막으로 떠날 시간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모래사막인 시와를 돌아보기 위해서 숙소에서 미리 일행을 모은다. 어차피 사막 투어는 차로 떠나기 때문에 일행이 없으면 비싸거나 기다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다행히 이곳 숙소 역시 한국인 여행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어렵지 않게 일행이 모인다. 카이로에서 다시 만난 반장과 유럽 거쳐 남미로 갈 예정이라는 처자 그리고 뉴질랜드 유학생 총각 둘 모두 다섯 명이 함께 시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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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2> 다이빙을 하다

시나이산 투어를 다녀 온 후 일행들이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 강사에게 다이빙을 신청한다. 초보자들이 신청하는 다이빙 코스는 일반적으로 4일짜리 오픈워터 코스와 2일짜리 어드밴스 코스 두 가지이다. 오픈워터 코스만 수료할 경우는 18m까지 잠수가 가능하고 어드밴스 코스까지 수료하면 30m까지 잠수가 가능한데 오픈워터 코스만 신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 코스를 한꺼번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일행들은 이미 다합에 오기 전부터 다이빙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빨리 다이빙 코스를 마치고 이집트를 돌아본 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원래 이 친구들과 다이빙을 같이 하려고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나야 어차피 있는 건 시간밖에 없다. 이 친구들의 코스가 끝나기까지 일주일간을 기다렸다 다이빙을 시작한다. 다행히 남자 친구 두 명이 새로 신청을 해 강사, 조교, 수강생 셋, 모두 다섯 명이 다이빙을 시작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나 겁 무지 많다. 게다가 수영이라곤 여행 오기 전에 두 달 동안 실내수영장 다닌 게 전부다. 그럼에도 내가 다이빙을 배우기로 한 건 뭐 주요 다이빙 포인트마다 뛰어 들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한 짓은 결코 아니다. 그저 앞으로 살면서 해변 갈 일은 많을 텐데 물에서도 겁 좀 안내고 재미있게 놀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꿈도 이 코스를 마쳐야 이루어질 터 어찌어찌 한다고는 해놓고 시작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첫날은 이론 교육과 필기시험이니 물에 안 들어가도 되는 상황이라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간다. 둘째 날부터는 장비를 착용하고 물에 들어가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니라 물 속에서 각종 스킬을 배우는 게 하루 일과다. 일단 물밑으로 내려가 바닥에 앉아서 호흡기 뺐다 다시 끼기, 마스크 물빼기, BCD-부력조절기구인데 구명조끼처럼 생겼다- 입었다 벗기 뭐 이런 걸 돌아가면서 해보는 건데 스킬은 둘째 치고 바닥에 앉아 있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놈의 짠물은 호흡기 뺐다 끼면 입속으로 들어오지, 마스크 물빼기 하면 눈으로 들어오지 아주 죽을 맛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다. BCD 벗었다 입기에서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된다. BCD벗었다 입기는 물속에서 한 번, 수면에서 한 번, 모두 두 번을 하는데 물속에서 어찌어찌 하고 나서 이제 오늘 수업은 다 끝났겠거니 하고 올라와 보니 마지막으로 수면에서 다시 한 번 한단다. 어째 수면이 물속보다 더 무섭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발이 안 닿는 곳에서 구명조끼 벗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그런 생각이 안 들겠냐 말이다.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벗는 것까진 했는데 다시 입기는커녕 강사를 붙잡고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댔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런 망신이 없다^^. 결국 발 닿는 곳까지 끌려 나와서야 정신이 살짝 되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내가 어쩌자고 다이빙 수업은 신청을 했더란 말이냐.., 후회가 몰려온다. 사실 맘 같아선 코스비고 뭐고 다 물어주고서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만두면 내 평생 다시는 물에는 안 들어갈 것 같으니 그만두기도 쉽지 않고 내일이 오는 게 두렵기만 하다.

 

물속에서 후프 통과하는 것도 수업 과정의 하나다

 

다이빙 끝나고 나올 때가 제일 좋다, 왼쪽이 조교 안드리아스.


그래 일단 오픈워터만 하자. 그만두고 싶은 맘을 간신히 달래며 사흘째 다이빙을 시작한다. 이런 상황은 셋째날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 죽지 못해 간신히 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이번엔 장비 다 벗어놓고 스노클과 오리발만 끼고 바다 수영을 해야 한단다. 바다에 떠 있는 두 부표 사이-한 오십 미터쯤 된다-를 두 번 왕복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지긴 하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하고 뛰어들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것도 죽을 맛이다, 둥둥 떠서 가는 것까지는 하겠는데 스노클에 물이 들어 올까봐 고개를 들지를 못하니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방향을 잡아줘서 간신히 끝까지 간다. 또 다른 문제는 도무지 쉴 수가 없다는 건데 바닥에 발이 닿질 않으니 그냥 서 있기는 그냥 무섭고 부표를 잡고 버둥거려도 힘만 드니 그냥 쉬지 않고 왔다 갔다는 게 더 낫지 싶다. 결국 어찌어찌 목표량을 채우고 나와선 완전히 뻗어버린다. 


넷째날엔 본격적인 다이빙이 시작되는데 스킬 배울 때보다 조금씩 재미있어지긴 하지만 이것 역시 만만치 않다. 일단 다이빙을 하려면 물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예전엔 물에 빠지기만 다 가라앉을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니다. 막상 가라앉으려니 별 짓을 다해야 한다. 그럼 가라앉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냐 그도 당연 아니다. 막상 다이빙을 시작하면 적당한 부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면 바닥을 박박 기거나 갑자기 물 위로 떠오르는 수가 생긴다. 한번은 공기를 빼야 하는 시점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 공기를 넣어버렸더니 느닷없이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느낌이 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 해변까지 가자니 너무 멀고 혼자 내려가자니 밑에 아무도 없을 것 같고 아,, 어찌하나 하고 있는데 저쪽에 사람 하나가 보인다. 스노클링하는 사람인가 싶은데 그 와중에도 다이빙복 입고 물위에 떠 있는 게 쪽팔린 생각이 들어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이하고 인사를 건네 본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헉 자세히 보니 우리 조교다. 결국 조교에게 끌려 다시 물밑으로 내려간다.

지금 다이빙 중

다이빙 동기들, 나(지진아), 체육부장, 반장


결국 안한다, 안한다 하면서도 어드밴스 코스까지 마치고 그도 모자라 먼저 다이빙을 한 친구들과 펀 다이빙까지 다녀오고서야 다이빙은 끝이 난다. 죽을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고 나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물에서 첨벙거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다이빙을 또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이빙을 끝내고 바로 떠난다던 일행들은 결국 이집트 여행은 포기하고 다합에서 세월을 보내다 아웃하는 날을 이삼일 남겨두고 카이로로 떠난다. 그 친구들과 같이 체육 부장과 반장도 함께 떠난다. 같이 갈까 하다가 그냥 다합에 눌러 앉는다. 이집트 다음에는 어디를 가든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연말 연초에는 항공권 가격도 오른다니 지금 카이로로 가는 건 아무래도 좀 이른 것 같다. 그냥 다합에서 한동안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움직일 생각이다. 일행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나니 다합이 텅 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찍은 건 아니지만) 홍해 바다 속1

 

(내가 찍은 건 아니지만) 홍해 바다 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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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

 

다합에서는 거의 빈둥거리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원래 다합이라는 곳이 딱히 볼 게 있거나 갈 데가 있는 곳도 아닌데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다합에 가면 좀 길게 쉬어야지 -사실 뭐 한 게 있다고 쉬어야 하는지 좀 민망스럽지만서두^^- 하고 맘먹고 온 터라 숙소를 정하고 나서 한 일이라곤 그저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레스토랑에 진을 치고 앉아 수다를 떨거나 숙소에서 이북이나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가 된다. 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는 명성답게-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태국의 카오산, 파키스탄의 훈자, 이곳 다합을 흔히 꼽는다- 아직 여행 성수기는 아닌데도 숙소에는 서너 명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보이고 이삼일에 한번씩은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아닌게 아니라 다합은 장기 체류하기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단 물가가 싸다. 숙박비의 경우 도미토리에 묵으면 천원 정도, 싱글룸도 좀 저렴한 곳에 묵으면 이천원 정도면 되고 식비도 제법 잘 나오는 아침식사가 천오백원 정도, 점심이나 저녁도 이천원 정도면 충분하니 하루에 만원 정도면 넉넉하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날씨도 따뜻해서 한낮엔 별다른 장비 없이도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고 굳이 스노클링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여행자가 많으니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는 편이고 이집트의 여느 곳에 비해 호객 행위나 바가지도 비교적 적은 편이니 그야말로 쉬었다 가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숙소에 한국 사람들이 제법 있으니 저녁엔 주로 밥을 해 먹는다. 수제비나 라면 같은 간단한 음식에서 시작한 저녁밥이 점점 발전해 백숙은 기본에다 근처 베드윈 마을까지 가서 쇠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 것도 모자라 새우나 게를 사다가 해물탕까지 끓여 먹는다. 숙소 마당 가운데 천막으로 둘러싼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저녁을 먹고 나면 모닥불 가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거나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는다. 이럴 때 맥주 한잔이 빠질 수 없다.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여행이야기나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누군가의 배낭에서 화투가 나오고 결국 점당 0.5파운드짜리 내기 고스톱판이 벌어진다. 고스톱판이 으레 그렇듯 왁자한 분위기는 새벽까지 계속되고 결국 오전이 다 지나서야 다음날이 시작된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

 

 

사실 이곳 해변은 모래사장이 따로 없어 바다를 보려면 레스토랑마다 마련해 두고 있는 썬베드를 이용해야 한다

 

다합에 온지 이틀 만에 시나이산을 다녀온다. 시나이산은 모세가 십계를 받았다는 산으로 다합에서 두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라 투어로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서너 명이 시나이산을 가는데 우리 일행까지 같이 가면 투어 가격이 더 싸진다며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 온다. 좀 빠르다 싶긴 하지만 언제가도 갈 예정이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맘으로 어영부영 따라 나선다. 아직까지도 산에 가는 일정은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맘이다. 게다가 시나이산 투어는 보통 밤늦게 출발해 한밤중에 산에 올라 일출을 본 뒤 돌아오는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산에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한다. 결국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그도 모자라 장갑에 목도리까지 완전 무장하고 침낭이며 랜턴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밤 열한시가 넘어서 버스를 탄다. 버스는 두어 시간을 달려 매표소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낙타를 타기로 한다. 달이 휘영하니 밝은 게 산길을 오르는 것도 운치는 있어 보이지만 어차피 낙타에서 내려도 한 시간 가량은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니 미리 힘을 뺄 필요는 없지 싶다. 걸어 올라간다는 친구 둘을 제외한 여섯 명이 낙타를 타고 산길을 간다. 여행 다니면서 낙타는 처음 타보는데 조금 높기는 해도 보기보다 무섭지는 않다. 낙타에서 내려 한시간 가량 계단을 오르니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 오르고 난 시간은  네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해가 언제 뜰지 모르니 그저 침낭을 둘러쓰고 기다리는 거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은 계속해서 불고 더 이상 추위를 참을 수 없을 무렵이 되어서야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날이 좋지 않다. 해는 먹구름 속에서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그나마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내려갈 채비를 한다. 가파른 돌계단을 두시간 가량 내려가니 다시 매표소가 나온다. 돌아가는 차는 9시에 문을 연다는 성까뜨리나 수도원까지 보고 오라는 뜻으로 열시나 되어서야 온다는데 우리는 수도원이고 뭐고 그냥 싸가지고 온 빵이나 먹으며 근처 카페에서 노닥이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시나이산의 일출

 

정상에서 바라 본 시나이산

시나이산을 다녀와도 시간은 여전히 지천으로 남아 있다.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집트 이후에 어디를 가야할 것인가. 남미를 가자니 돈이 없고 아프리카를 가자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고 유럽을 가자니 날씨가 너무 춥고.. 이전부터 했던 고민인데도 더 이상 진전이 되질 않는다. 카이로에 가면 이집트를 돌아보기 전에 비행기표라도 끊어놔야 할 텐데 대략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조금 천천히 돌아서 이집트에서 겨울을 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는 하지만 그랬다면 터키나 시리아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을테니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다, 카이로에서 인도 가는 비행기표가 싸다니 인도나 들러서 두어 달 있다 한국으로 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게 아무래도 내키질 않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안 풀리는 문제는 시험 끝나는 종 쳐도 안 풀리는 거다. 이럴 땐 찍는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 순간에 몇 번답을 찍을 지는 지금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어째 떠나는 것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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