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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

 

다합에서는 거의 빈둥거리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원래 다합이라는 곳이 딱히 볼 게 있거나 갈 데가 있는 곳도 아닌데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다합에 가면 좀 길게 쉬어야지 -사실 뭐 한 게 있다고 쉬어야 하는지 좀 민망스럽지만서두^^- 하고 맘먹고 온 터라 숙소를 정하고 나서 한 일이라곤 그저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레스토랑에 진을 치고 앉아 수다를 떨거나 숙소에서 이북이나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가 된다. 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는 명성답게-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태국의 카오산, 파키스탄의 훈자, 이곳 다합을 흔히 꼽는다- 아직 여행 성수기는 아닌데도 숙소에는 서너 명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보이고 이삼일에 한번씩은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아닌게 아니라 다합은 장기 체류하기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단 물가가 싸다. 숙박비의 경우 도미토리에 묵으면 천원 정도, 싱글룸도 좀 저렴한 곳에 묵으면 이천원 정도면 되고 식비도 제법 잘 나오는 아침식사가 천오백원 정도, 점심이나 저녁도 이천원 정도면 충분하니 하루에 만원 정도면 넉넉하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날씨도 따뜻해서 한낮엔 별다른 장비 없이도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고 굳이 스노클링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여행자가 많으니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는 편이고 이집트의 여느 곳에 비해 호객 행위나 바가지도 비교적 적은 편이니 그야말로 쉬었다 가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숙소에 한국 사람들이 제법 있으니 저녁엔 주로 밥을 해 먹는다. 수제비나 라면 같은 간단한 음식에서 시작한 저녁밥이 점점 발전해 백숙은 기본에다 근처 베드윈 마을까지 가서 쇠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 것도 모자라 새우나 게를 사다가 해물탕까지 끓여 먹는다. 숙소 마당 가운데 천막으로 둘러싼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저녁을 먹고 나면 모닥불 가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거나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는다. 이럴 때 맥주 한잔이 빠질 수 없다.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여행이야기나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누군가의 배낭에서 화투가 나오고 결국 점당 0.5파운드짜리 내기 고스톱판이 벌어진다. 고스톱판이 으레 그렇듯 왁자한 분위기는 새벽까지 계속되고 결국 오전이 다 지나서야 다음날이 시작된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

 

 

사실 이곳 해변은 모래사장이 따로 없어 바다를 보려면 레스토랑마다 마련해 두고 있는 썬베드를 이용해야 한다

 

다합에 온지 이틀 만에 시나이산을 다녀온다. 시나이산은 모세가 십계를 받았다는 산으로 다합에서 두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라 투어로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서너 명이 시나이산을 가는데 우리 일행까지 같이 가면 투어 가격이 더 싸진다며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 온다. 좀 빠르다 싶긴 하지만 언제가도 갈 예정이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맘으로 어영부영 따라 나선다. 아직까지도 산에 가는 일정은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맘이다. 게다가 시나이산 투어는 보통 밤늦게 출발해 한밤중에 산에 올라 일출을 본 뒤 돌아오는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산에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한다. 결국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그도 모자라 장갑에 목도리까지 완전 무장하고 침낭이며 랜턴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밤 열한시가 넘어서 버스를 탄다. 버스는 두어 시간을 달려 매표소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낙타를 타기로 한다. 달이 휘영하니 밝은 게 산길을 오르는 것도 운치는 있어 보이지만 어차피 낙타에서 내려도 한 시간 가량은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니 미리 힘을 뺄 필요는 없지 싶다. 걸어 올라간다는 친구 둘을 제외한 여섯 명이 낙타를 타고 산길을 간다. 여행 다니면서 낙타는 처음 타보는데 조금 높기는 해도 보기보다 무섭지는 않다. 낙타에서 내려 한시간 가량 계단을 오르니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 오르고 난 시간은  네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해가 언제 뜰지 모르니 그저 침낭을 둘러쓰고 기다리는 거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은 계속해서 불고 더 이상 추위를 참을 수 없을 무렵이 되어서야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날이 좋지 않다. 해는 먹구름 속에서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그나마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내려갈 채비를 한다. 가파른 돌계단을 두시간 가량 내려가니 다시 매표소가 나온다. 돌아가는 차는 9시에 문을 연다는 성까뜨리나 수도원까지 보고 오라는 뜻으로 열시나 되어서야 온다는데 우리는 수도원이고 뭐고 그냥 싸가지고 온 빵이나 먹으며 근처 카페에서 노닥이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시나이산의 일출

 

정상에서 바라 본 시나이산

시나이산을 다녀와도 시간은 여전히 지천으로 남아 있다.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집트 이후에 어디를 가야할 것인가. 남미를 가자니 돈이 없고 아프리카를 가자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고 유럽을 가자니 날씨가 너무 춥고.. 이전부터 했던 고민인데도 더 이상 진전이 되질 않는다. 카이로에 가면 이집트를 돌아보기 전에 비행기표라도 끊어놔야 할 텐데 대략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조금 천천히 돌아서 이집트에서 겨울을 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는 하지만 그랬다면 터키나 시리아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을테니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다, 카이로에서 인도 가는 비행기표가 싸다니 인도나 들러서 두어 달 있다 한국으로 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게 아무래도 내키질 않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안 풀리는 문제는 시험 끝나는 종 쳐도 안 풀리는 거다. 이럴 땐 찍는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 순간에 몇 번답을 찍을 지는 지금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어째 떠나는 것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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