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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31
    <아스완> 펠루카를 타다(2)
    제이리
  2. 2007/01/31
    <룩소르> 왕가의 계곡을 가다(2)
    제이리
  3. 2007/01/31
    <시와> 드디어 사막이다. 그런데...(4)
    제이리
  4. 2007/01/31
    <카이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4)
    제이리
  5. 2007/01/31
    <다합2> 다이빙을 하다(7)
    제이리
  6. 2007/01/31
    <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5)
    제이리
  7. 2007/01/14
    <와디럼> 베두윈 텐트에서의 하루밤(10)
    제이리
  8. 2007/01/14
    <페트라> 페트라에서 길을 잃다(6)
    제이리
  9. 2007/01/14
    <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지구를 가다(7)
    제이리
  10. 2007/01/14
    <예루살렘>갈수록 태산이다(7)
    제이리

<아스완> 펠루카를 타다

 

아스완은 이집트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관광도시이다. 하지만 관광도시라고 해서 아스완시내에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고 인근의 필레 신전이나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펠루카를 타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펠루카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돛단배로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하는 배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일강가에 나가본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중동 국가같은 느낌이 더 많았는데 이곳에 오니 흑인들이 제법 눈에 뛴다. 한때 이곳은 고대 누비아의 땅이었다는 데 그래서인지 수단 민족인 누비안들도 많고 곳곳에 누비안 마을도 눈에 뛴다. 엘레판틴섬에는 누비안 마을이 있다니 해지기 전에 마을이나 둘러 볼 샐각에 로컬 페리를 타고 섬으로 건너간다. 조용한 마을일거라는 기대는 강을 넘어서자마자 무너진다. 마을 입구부터 낙타 몰이꾼이 줄을 서 있고 마을에도 온통 박시시를 외치며 따라다니는 아이들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부심벨 롱투어와 펠루카 1박 2일 투어를 신청한다. 아부심벨 투어는 말 그대로 버스로 아부심벨을 다녀오는 투어이고 펠루카 투어는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항해하는 투어이다. 그런데 신청을 하다보니 일정이 살짝 꼬인다. 아부심벨 투어는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는 숏투어와 아부심벨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아스완하이댐, 필레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까지 들르는 롱투어로 나뉘는데 롱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세 시인데 비해 펠루카가 떠나는 오후 한 시이다. 그저 아부심벨만 보고 돌아오던지 아님 아스완에서 하루를 더 자고 담날 펠루카를 타든지 해야 할 판이다. 숏투어를 하자니 딴 건 몰라도 필레 신전은 봐야 할 것 같고 담날 펠루카를 타자니 숙소 상태가 하루 더 묵고 싶은 맘을 가시게 한다. 어찌할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숙소 주인이 대안을 제시한다. 롱투어 마치고 돌아와서 미리 떠난 펠루카를 따라잡으면  된다며 세 시에 숙소로 픽업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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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

 

 페리에서 만난 누비안 소녀들


아부심벨 투어는 롱투어, 숏투어를 가리지 않고 픽업 시간이 새벽 3시란다. 안자면 모를까 자다 일어나기 가장 황당한 시간이지만 별달리 방법이 없다. 숙소 주인이 깨워준다고는 했으나 알람까지 맞춰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잠이 올 리가 만무하다.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잠들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나 정확히 세시다. 버스는 삼십분 가까이 사람들을 픽업하러 다니더니 일곱 시가 가까워서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한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그의 즉위 30주년을 맞아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신전인데 이 신전은 인류가 구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별칭도 함께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중반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강의 상류에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자 수몰위기에 처한 이 유적을 조각조각 내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세계 50개국의 지원을 받아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재 이전 작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바다를 방불케 히는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댐건설과 함께 생긴 인공호수인 낫세르 호수다. 낫세르 호수를 끼고 오른쪽 모래 언덕을 돌아서면 아부심벨 대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암굴 신전인 대신전은 신전 정면에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신전의 내부에도 람세스왕의 다양한 업적을 기린 부조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대신전 옆에는 역시 암굴 신전인 소신전이 있는데 이는 왕비 네파르타리를 위한 신전이라고 한다. 신전을 돌아보고 신전 앞 공터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람들이 투어에 아침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도시락을 차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아침에 숙소 주인이 건네주는 걸로 봐서는 호텔의 서비스 같기도 하다. 도시락이라야 빵이랑 과자 몇 개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먹고 나니 제법 속이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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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소신전


다시 차에 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아스완 근교에서 다시 롱투어팀과 숏투어팀으로 나누더니 이내 아스완하이댐에 도착한다. 어차피 댐까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밖에서 그냥 밖에서 기다리다 필레 신전으로 향한다. 원래 나일강의 필레섬에 있던 필레 신전 역시 수몰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을 지금의 섬으로 옮겼다고 한다. 필레 신전은 섬에 위치해 있으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투어에 배타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재주껏 흥정해서 들어가야 한다, 어차피 배는 한대당 가격이니 일행은 많을수록 유리하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투어를 함께한 한국인이 4명이니 한팀만 더 잡으면 된다. 마침 중국 관광객 6명이 눈에 뛴다. 이들과 같이 배를 타고 필레 신전으로 들어간다. 이제 신전은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기 시작하지만 필레 신전은 섬이라 그런지 신전에 앉아 강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분위기가 그만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아스완 시내로 들어선다, 마지막 행선지는 미완성오벨리스크다. 오벨리스크란 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비석을 말하는데 결함이 발견되어 버려진 미완성의 오벨리스크를 보러가는 것이다, 이걸 보면 고대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매끄럽게 잘라냈는지 알 수 있다지만-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쐐기를 박아 넣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단다- 이것 역시 입장료씩이나 내고 보고싶은 맘은 들지 않는다. 이런 맘은 모두다 마찬가지였는지 막상 입구에서 아무도 차에서 내리지 않자 그곳을 그대로 지나간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펠루카를 타러 간다. 두 시간이나 먼저 간 배를 따라 잡으려면 차를 타고도 한참이나 가야겠구나 생각했더니 이게 웬일.. 픽업이라며 나온 아저씨는 두발로 뚜벅뚜벅 앞장 서 걷더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착장에서 펠루카를 태워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펠루카는 이동이 목적인 배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동 시간에 비해 이동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페리에서 본 필레신전

 

필레 신전 입구


덴데라 신전을 같이 다녀 온 영국 유학생 친구와 펠루카에 오르니 먼저 탄 일행들이 인사를 건네 온다. 세 명의 벨기에 처자들과 한 명의 영국 총각이다. 비록 어학연수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유학생이 있으니 영어 고문은 안 당해도 되겠다 싶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정박이 길었던지 배는 우리가 타자마자 나일강을 미끄러지듯이 흘러간다. 배 위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어 제각기 앉거나 눕거나 제 편한대로 자세를 잡고 있다. 펠루카는 일몰 무렵에 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과연 강 건너편으로 노을이 붉어지면서 물빛은 온통 황금빟으로 보인다. 강 위로 떠다니는 페리들이 불빛을 밝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진다.

 

펠루카 위

 

나일강에 해가 진다


배는 강변에 정박하더니 하루밤을 보낼 준비를 한다. 배 주변으로 천이 둘러쳐지고 촛불이 켜진다. 배에서 만든 요리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아침 일찍 이곳으로 픽업 오는 차를 타고 룩소르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펠루카를 탄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남짓인데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영국 유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2박 3일 일정이라니 하루를 더 타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성 싶다. 다음날 아침 영국 유학생은 룩소르로 돌아가고 나는 펠루카를 하루 더 타기로 한다. 잠자리는 불편해도 배 위에서 하루쯤 더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펠루카에 누워 주는 밥이나 먹으며 그저 자다 깨다 하루를 보낸다. 책이라도 한 권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섬에 잠시 정박 중인 펠루카

 

누워서 본 펠루카의 돛


펠루카에서 이틀을 자고 다시 룩소르로 향한다. 아스완에서 콤옴보까지 왔으니 이틀 동안 이동한 거리는 고작 40킬로 남짓이다. 어쩐지 펠루카가 똑바로 안가고 강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더라니.. 돌아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속셈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 속사정이야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콤옴보에서 룩소르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콤옴보와 에드푸의 신전을 한 곳씩 들러 간다. 이미 필레 신전부터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한 신전들은 이제 정말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똑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신전을 봤을 뿐인데 벌써 이 지경이니 몰아서 본 게 죈지 무식이 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튼 어찌어찌 다시 룩소르로 돌아온다.


다시 룩소르로 돌아와 며칠을 더 보낸다. 이제 바하리아 사막에 들렀다가 다합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하리아를 마지막으로 여행지로 남겨둔 건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이다. 언잰가 태국 여행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여행 중에 이집트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지금 바하리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또다른 친구에게서 메일로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한국말이다. 전화로 긴 얘기는 할 수 없으니 바하리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룩소르에서 바하리아는 지도상으로 보면 바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지만 도로가 좋지 않아 카이로를 거쳐서 가는 편이 더 빠르다고 한다. 별 수 없이 다시 카이로로 가는 밤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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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왕가의 계곡을 가다

카이로에서 저녁을 먹고 밤기차를 탄다. 이집트의 침대 기차는 무지 비싸지만-가격이 60불이다- 굳이 침대 기차가 아니라도 기차는 충분히 쾌적하다. 특히 일등석은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처럼 한 줄에 좌석이 3개 밖에 없으니 좌석도 그만큼 넓은데다 뉴질랜드 총각들 덕분에 두 좌석을 모두 차지하고 가니 간만에 편하게 밤차를 탄다. 룩소르에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문 연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 게스트하우스 쥔장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섯 살인데 그래서인지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도 그저 친구집에 놀러 온 것 같이 편안하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한잠자고 일어나보니 숙소에는 아무도 없다. 짧게 여행하는 친구들은 밤차를 타고와도 절대로 쉬는 법 없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데 나야 이제 밤차라도 한번 타고나면 담날은 하루 종일 쉬어줘야 한다^^.


나일강의 중류에 자리잡은 룩소르는 고대에는 테베라고 불리던 곳으로 고대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집트의 보물로도 불리는 이곳은 국립박물관의 유적 대부분이 여기서 발굴되었을 만큼 파라오의 신전들과 유적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곳은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눠지는데 이 두 곳을 하루에 다 돌아보는 열혈 여행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까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있는 동안과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을 하루씩 나누어 돌아본다. 동안이 천천히 걸어서 다녀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데 반해 서안의 경우는 택시를 대절해 왕가의 계곡, 하셉수트 신전, 람세스3세 장제전 그리고 아가멤논의 거상만 보고 돌아와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물론 룩소르의 외곽에도 유적지들이 있어 신전에 관심이 지대하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여행자들은 인근 도시에 있는 덴데라 신전과 아비도스 신전을 묶어서 투어를 다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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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본 풍경, 차가 룩소르에 가까워질수록 들판은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다

 나일강, 강 건너 보이는 것이 왕가의 계곡이 있는 서안이다

 

하루를 쉬고 나일강을 따라 까르낙 신전으로 향한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라는 까르낙신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입구부터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상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는 134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신전의 대열주홀인데 ‘그 중 큰 것은 작경이 2미터, 높이가 20미터를 넘는다고 한다. 이 기둥들마다 각종 부조와 상형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그 의미야 알 수 없지만 그 조각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런 부조들은 이 기둥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전의 벽면 하나하나마다 빠지지 않고 새겨져 있는데 이집트의 신화와 역사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까르낙 신전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룩소르 박물관은 그리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전시가 되어있어 카이로의 국립박물관보다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룩소르 신전으로 향한다. 나일강변에 세워진 이 신전은 그냥 길거리에서 봐도 내부기 훤히 들여다보이니 굳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신전은 앞으로도 지겨울 만큼 보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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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낙 신전 입구,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20개씩 놓여있다

열주들, 규모가 너무 커서 카메라에 잘 담기질 않는다 핫셉수트 신전


다음날은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왔다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서안을 돌아본다. 서안 최대의 볼거리는 역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이다. 보통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라면 피라미드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사실 피라미드는 고왕국 초기에 잠시 조성되었을 뿐 아니라 무덤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 역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60여개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다는 이곳 왕가의 계곡이야말로 파라오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왕가의 계곡 앞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이들 무덤 중 세 곳을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을 준다. 어차피 무덤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화려한 부조가 있는 방들이 나오고 그 방들이 지나치면 더 깊숙한 방이 나오는데 이곳이 파라오의 안치실이다. 물론 현재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도굴되었고 그 나머지도 박물관으로 옮겨진 지 오래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황량한 돌산의 계곡마다 깊숙이 묘를 파기는 했으니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무덤은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무덤 정도였다니 결국 도굴꾼의 손길을 벗어나지는 못한 셈이다.

 

왕가의 계곡, 중앙에 보이는 입구가 왕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핫셉수트 왕의 신전 


이곳 서안에는 왕가의 계곡 말고도 왕비의 묘들이 모여 있는 왕비의 계곡이니 귀족이나 장인들의 묘가 있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퍼져 있지만 그걸 다 둘러보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입장료도 엄청 들여야 할 판이다. 내가 뭐 고고학자도 아닌 방에야 굳이 그걸 다 둘러볼 이유도 없다.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서 둘러본 파라오의 무덤 세 곳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과 람세스 3세의 신전을 돌아본다. 이집트의 신전들은 그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나다. 지금이 겨울이긴 하지만 나무하나 없는 황무지에 세워진 신전들을 둘러보자면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으니 신전들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힘에 부친다. 게다가 신전 곳곳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칭 가이드들이 한마디라도 들어주면 박시시를 달라고 손을 내미니 이들을 뿌리치는 일도 보통 피곤한 일은 아니다. 신전들을 둘러보고 멤논의 거상에 잠시 들렀다 다시 보트를 타고 동안으로 돌아온다.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람세스 3세전의 부조

 

 

멤논의 거상, 동행자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전형적인 관광지 포즈가 나온다.


하루는 덴데라 신전을 다녀온다. 투어로 가고 싶지는 않으니 쥔장에게 개인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본다. 기차를 타고 어디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어떻게 하면서 한참 설명에 열을 올리던 쥔장은 덴데라 안 가본지도 오래 되었다면서 아예 자기랑 같이 가잔다. 영국 유학생 한 명과 계란까지 삶아 들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덴데라 신전은 룩소르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예니라는 도시에 있다. 이집트의 기차는 이상하게도 외국인이 탈 수 있는 기차가 따로 있다는데 마침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하니 그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다. 쥔장 왈 다음 기차는 외국인에게는 표를 팔지 않는다며 그냥 올라타자고 한다. 차안에서 벌금을 포함한 기차요금을 물고 다시 예니역에서 내려 덴데라 가는 택시를 대절한다. 이곳에서 언젠가 외국인 여행자가 살해된 적이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데도 검문을 서너 번이나 당한다.


덴데라 신전은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대 그래서인지 신전의 기둥마다 여인의 두상이 조각되어 있다-아쉽게도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다^^- 이집트 고대왕조 최후의 건축물이라는 이곳은 그래서인지 보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지붕이 남아 있어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고 지하실의 납골당까지 내려가 볼 수도 있다. 옥상을 둘러보고 지하계단이 있다는 문 앞에 도착하니 내려가지 말라는 푯말이 서 있다. 이전에 내려가 본 작이 있다는 쥔장이 지하로 향하는 슬쩍 당겨 보니 스르르 열린다. 관리인의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 본다. 후레쉬를 들고 있기는 사방은 깜깜하기만 하다. 후레쉬에 비친 부조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서둘러 다시 올라온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을 불러보고 다시 기차를 단다. 이번에는 완행열차를 탄다. 창밖으로는 온통 푸른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기차는 느릿느릿 풍경 속을 달린다. 이곳에서는 푸른빛이라곤 좀처럼 볼 수 없으니 한국에서 늘 보던 모습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냥 봄날 오후같이 나른하다. 하루 동안 봄나들이라도 나온 것 같다.

 

 덴데라 신전의 기둥


이제 아스완으로 갈 시간이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는 세 시간 거리이다. 아침 일찍 기차역에 나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쥔장 말에 따르면 아스완 가는 아홉시 기차는 거의 변함없이 열한시가 넘어야 온다지만 그렇다고 아홉시 기차를 타러 열한시에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시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간 맞춰 기차역에 나가 꼬박 두 시간을 기다리다 기차를 탄다. 햇살에 따뜻하다, 창밖을 보다 어느새 졸았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차는 어느새 아스완역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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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드디어 사막이다. 그런데...

 시와 가는 길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게다가 한 번에 가는 차도 없다. 중간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나 마르사마투르에서 차를 갈아타야 타고도 거의 열두시간이 꼬박 걸린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마르사마투르행 버스를 탄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는 길에 들릴 예정이니 오는 길과 가는 길을 다르게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그 도시에 묵는 게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버스는 알렉산드리아를 지나 마르사마투르를 거쳐 시와로 간다^^. 버스는 카이로를 벗어나 한동안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가 싶더니 곧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사막으로 접어들어 여덟 시간 만에 마르사마투르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다시 시와행 버스를 갈아타고 네 시간여를 달려 시와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밤 9시가 가까운 시간이다. 꼬박 하루를 버스에서 보낸 셈이다. 시와에서 며칠 머물 생각이라면 모를까 사막 하루 보자고 오기에는 좀 멀다 싶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돌아갈 길도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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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집트에서 갈 수 있는 사막은 꽤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흔히 가는 곳은 시와 사막과 바하리아 사막인데 이 두 곳은 같은 사막이라도 차이가 있다. 시와 사막이 모래로 이루어진 비해 바하리아 사막은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검은 돌산이 있는 흑사막과 바람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백색의 석회석 바위가 있는 백사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야 순전히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막하면 떠올리는 곳은 이곳 시와가 좀더 가까울 것 같다. 일반적으로 투어는 지프를 타고 사막을 돌아본 뒤 사막에서 하루밤을 자고 나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차피 밤늦게 도착했으니 숙소에서 투어를 신청해 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투어의 출발 시간이 두시다. 하긴 하루 종일 사막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다섯 시면 해가 지는 이곳에서 두시 출발이라면 왠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른 투어도 별 차이는 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자전거를 빌려 시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사람들은 이곳을 흔히 시와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아시스는 사막 가운데 야자수가 몇 그루 있고 가운데에서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지극히 동화적인 곳이긴 하지만 주변이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이 마을을 오아시스라 부르는 게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시와 오어사스는 자전거로 돌아보기 적당한 크기다. 야자수가 늘어져 있는 흙길을 달리다 보면 언젠가 만들어졌다가 이제는 무너진 흙으로 만든 성도 나오고 제법 고대의 유적들도 눈에 뛴다. 또 어디쯤엔가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했다는 온천이 불쑥 나오기 하고 마을 근처엔 한때 이곳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제법 큰 소금 호수가 보이기도 한다. 호수 근처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갈대들이 늘어서 있다. 굳이 사막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며칠 묵어가기에 좋은 마을인 듯싶은데 이미 룩소르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해 둔 터라 그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와 오아시스

 

 

클레오파트라 온천(이라기보단 거의 수영장이다)


오후에 지프를 타고 사막으로 향한다. 어차피 시와 오아시스는 큰 마을이 아니니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황량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몇 군데 구경거리를 거쳐 차는 모래사막으로 들어선다. 사막에서 한 일이라곤 사륜구동지프로 보여주는 각종 묘기-사구를 빠른 속도로 올랐다 급경사를 내려오는 등의-를 보는 일과 미리 차 지붕에 매달고 갔던 샌드보드를 탄 게 전부다. 그나마 샌드보드를 타고 모래 언덕을 한번 내려갔다 온 사람들은 다시 올라오는 일이 장난이 아니라며 아무도 두 번은 타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도 시간은 빠듯하기 그지없어 어디서든 내려준 지 십 분이 채 못 지나 다시 차에 타라고 성화다. 투어라는 게 다 그렇지 싶다가도 괜히 엄한데 끌고 다니지 말고 그냥 사막에서 조금 더 있게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국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조금 지나 일몰 포인트에 도착한 차는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숙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시와 사막, 멀리 소금 호수인 시와호수가 보인다

 

시와 사막, 접니다요.


그래도 사막에서의 하루밤이 남아 있으니 하고 위안을 삼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차는 다시 모래사막을 빠져 나오더니 마을 근처로 돌아온다. 마을 근처엔 제법 큰 캠프장이 보이고 텐트가 이미 설치되어 있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다. 대충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말로는 사막 보호를 위해 더 이상은 사막에서 야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막 투어의 묘미는 사막에서 별을 보며 하루밤을 보내는 데 있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멀쩡한 호텔을 두고 춥고 더러운 텐트에서 고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투어를 하는 쪽에서야 이렇게 하는 편이 여러모로 간편하고 일손도 더는 일이겠지만 이럴 거면 굳이 1박 2일 투어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미리 준비해준 저녁을 주더니 가이드는 혼자서 마을로 내려가 버린다. 그래도 마을보다는 별이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보름이라 별은커녕 사방이 온통 대낮같이 환하다. 그저 캠프 마당에 이게 뭐냐며 불평이나 늘어놓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만다.

 

시와 사막의 사구

 

시와 사막의 일몰, 지평선으로 해가 진다


차가 아침 일찍 우리를 다시 마을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사막투어는 끝이 난다. 뉴질랜드 총각 중 하나가 물갈이성 설사를 하느라 간밤에 열 번도 넘게 화장실-은 없었지만서두-을 들락거렸다는데 아침에 보니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다. 저녁까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려면 아침 열시 차를 타고 이곳을 나가야 하는데 이 친구들의 상태를 보니 떠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숙소에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뉴질랜드 총각 둘을 남겨두고 세 명만 먼저 알렉산드리아로 떠난다. 이 친구들은 쉬었다 밤차로 오기로 한다. 다시 여덟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에는 카이로로 이동해 룩소르로 가는 밤차를 타야 한다. 뉴질랜드 총각들과 같이 내려가기로 하고 시와로 떠나기 전에 이미 기차표까지 예약을 해 둔 상태다. 알렉산드리아는 카이로와는 달리 도시가 번화하면서도 제법 한가롭다. 저녁 늦게까지 바닷가도 걷다가 찻집도 들렀다가 하면서 도시 분위기를 만끽한다. 고작 삼일 만에 돌아왔는데도 도시가 새삼 신기하다.


다음날 아침 밤차를 타고 온 뉴질랜드 총각들과 합류를 한다. 그런데 이 친구들 여전히 상태가 말이 아니다. 이래 갖고 밤차를 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아닌게 아니라 더는 이집트 여행이 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에 전화해서 비행기 날짜를 빠른 걸로 변경했다고 한다. 또다른 뉴질랜드 총각은 여행 경비로 뉴질랜드 달러를 들고 와서 뒤늦게 집에서 송금을 받는다 어쩐다 법석을 떨더니 결국 여행 온지 일주일을 조금 넘기고 다시 한국으로 간단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다. 결국 이 친구들 예매해 둔 룩소르 가는 일등석표-나야 이등석표를 샀다-를 내게 건네준다. 여튼 나만 팔자에 없는 기차표가 두 장 아니 내 표까지 세 장이 생겼으니 누워가도 될 판이다. 룩소르 가는 기차는 밤 열시에 떠나니 알렉산드리아에서 어슬렁거리다 오후 늦게 카이로행 기차를 탄다. 저녁이나 먹고 다시 밤기차로 갈아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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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일행들이 죄다 카이로로 떠나고 나 역시 이삼일 뒤에 카이로 가는 밤차를 탄다. 원래는 다합에서 네 시간 가량 걸린다는 도시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한동안 더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다합을 뜰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겨울방학 기간에 여행을 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겨울방학 기간이 다가오면 몰려드는 한국 관광객들 때문에 숙소며 교통편도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 어차피 1월 중순에 이집트를 빠져 나갈 계획이라면 다합에서 계속 지내기보다는 비자 연장을 카이로에서 한 뒤 이집트를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다합으로 되돌아 와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현명할 것 같아 맘을 바꾼 것이다. 다합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서너 번의 검문으로 끊임없이 밤잠을 깨우더니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카이로에 도착한다. 같이 타고 온 한국인 커플과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한다. 흔히 카이로를 무질서와 혼돈의 도시라고들 하는데 새벽이라서 그런지 카이로는 매연이 조금 심할 뿐 그다지 무질서하지도 혼돈스럽지도 않다.


도착한 날 바로 비자를 연장하러 간다. 이집트 비자는 국경에서 한달짜리를 받았는데 어느새 비자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다행히 비자 연장하는 곳은 숙소에서 빤히 보이는 건물이다. 비자 연장 창구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연장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다, 여권의 사진면과 비자면을 복사해서 작성한 서류와 함께 내니 두 시간 만에 연장 비자를 내 준다. 서류를 작성할 때 원하는 비자연장 기간을 체크하는 난이 있어 3개월을 신청했는데 막상 여권을 받아드니 연장된 기간은 6개월이다. 뭐 일은 못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일해 봐야 한달에 5만원 받으면 잘 받는 거라니 앓느니 죽는 게 낫다^^. 어쨌든 비자를 연장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아무래도 이집트는 좀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매번 비자 연장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인데 이제 비자 문제는 잊어버려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연장해 줄 거면 처음부터 한 삼개월 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담날은 천천히 카이로 시내를 둘러본다. 카이로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게 신호를 전혀 지키지 않는 차들인데 처음엔 잠시 멍하다 이내 적응이 된다, 내가 다닌 나라들 치고 사람이건 차건 신호 지키는 나라는 한군데도 없었다. 아마 한국에 가면 나도 모르게 무단 횡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딴소리긴 하지만 무단 황단과 더불어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아무 말이나 해대는 버릇이다. 대략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생긴 습관인데 눈앞에 대놓고 별말을 다하는 거다. 쟤 머리 좀 봐라.. 되게 시끄럽네.. 등등 물론 표정은 웃고 있어야 한다. 이런 증상은 한국인 일행이라도 생기면 좀더 심해지는데 쟤가 쟤 여자친구냐 여자가 아깝다.. 쟤는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등등 무궁무진해진다. 가끔 한국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이 증상이 한번씩 나오는 걸 보면 한국 가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도 그러면 맞아 죽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자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시타델 내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모스크 첨탑에서 본 카이로


카이로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국립박물관이다. 언제부턴가 박물관 가는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지만 이집트 박물관이라니 구미가 당긴다. 이집트 유적은 대영박물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지만 그래도 이곳에는 그 유명한 투탄카문의 유물을 비롯해 다양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아니 쌓여 있다. 이집트 국립 박물관은 유물의 양에 비해 박물관의 크기가 작은 듯 유물들은 전시되어 있다기보다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집트만의 독특한 유물들은 아직 이집트의 다른 유적들을 보지 않아서인지 하나하나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그게 그것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다합에서 그래도 이집트 관련 역사책을 두어 권을 읽었음에도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역대 이집트왕들은 그렇다 치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주시는 이집트의 신들은 정말 대책이 없다. 여전히 무식은 건전한 여행의 장애물이다,


박물관을 보고 나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어디를 갈 것인가.. 가이드북에는 카이로를 올드 카이로와 이슬라믹 카이로 그리고 모던 카이로의 세부분으로 나눠 한곳씩 다녀 올 것을 추천하고 있다. 모던 카이로야 어차피 숙소 근처의 광장과 나일강변의 신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니 됐다 치고 초기 콥트 기독교 교회들이 모여 있다는 올드 카이로와 성채와 모스크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이슬라믹 카이로 지구를 하루씩 돌아본다. 이제 교회도, 모스크도, 시장도 다 고만고만하다. 바가지가 심하다고 해서 걱정을 꽤 하긴 했지만 현지인 가격으로 사겠다는 터무니없는 꿈만 꾸지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바가지를 쓴다 해도 물가는 싼 편이라 택시는 카이로 시내에서는 대략 천원 안쪽으로 해결이 되는데다 몇 가지 생필품은 가격만 알고 있으면 그 가격대로 주고 나오면 그만이다. 음식점도 흥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알아서 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무리한 박시시 요구는 대충 무시하면 된다. 그저 필요한 건 잔돈이다. 도무지 이놈의 나라는 잔돈을 제대로 거슬러 주는 법이 없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날은 피라미드를 다녀온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한두 개는 아니겠지만 피라미드하면 카이로 근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를 보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에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비롯해 카프레왕과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 등 세 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 있다. 이 피라미드가 서 있는 곳은 사막이니 아침 일찍 다녀오라는 조언이 일반적이지만 요즈음은 날씨가 그리 덥지 않으니 일몰이나 보고 오자는 맘으로 오후가 되어서 출발한다. 아침에는 그곳으로 가는 미니버스도 많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미니버스라는 게 출발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하는 버스이니 손님이 없을 땐 다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일반 버스를 타란다. 30분이나 기다려 탄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더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피라미드 앞에 도착한다. 버스 내린 곳에서 빤히 보이는 피라미드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부터 낙타 호객꾼들이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어차피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넓지도 않은데다 낙타는 이미 시나이산에서도 타 봤으니 굳이 타야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피라미드 안에 낙타 몰이꾼들은 바가지와 거짓말로 이집트에서도 그 악명이 높으니 괜히 잘못 탔다가 기분만 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슬슬 걸어 다니면서 피라미드 주변을 돌아본다. 오후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피라미드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작아요, 볼 거 없어요 하는 통에 기대를 낮춘 탓인지 피라미드는 생각보다 볼 만하다. 피라미드마다 한바퀴씩 돌고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꺼번에 보인다는 뷰포인트까지 갔다 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버스 내린 곳에서 꼬박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다시 버스를 탄다. 다시 카이로로 돌아오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져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달랑 1파운드로 피라미드를 다녀온 셈이다.

 

피라미드와 낙타몰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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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것이 카프레왕, 뒤에 것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까지 둘러 봤으니 이제 사막으로 떠날 시간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모래사막인 시와를 돌아보기 위해서 숙소에서 미리 일행을 모은다. 어차피 사막 투어는 차로 떠나기 때문에 일행이 없으면 비싸거나 기다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다행히 이곳 숙소 역시 한국인 여행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어렵지 않게 일행이 모인다. 카이로에서 다시 만난 반장과 유럽 거쳐 남미로 갈 예정이라는 처자 그리고 뉴질랜드 유학생 총각 둘 모두 다섯 명이 함께 시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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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2> 다이빙을 하다

시나이산 투어를 다녀 온 후 일행들이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 강사에게 다이빙을 신청한다. 초보자들이 신청하는 다이빙 코스는 일반적으로 4일짜리 오픈워터 코스와 2일짜리 어드밴스 코스 두 가지이다. 오픈워터 코스만 수료할 경우는 18m까지 잠수가 가능하고 어드밴스 코스까지 수료하면 30m까지 잠수가 가능한데 오픈워터 코스만 신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 코스를 한꺼번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일행들은 이미 다합에 오기 전부터 다이빙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빨리 다이빙 코스를 마치고 이집트를 돌아본 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원래 이 친구들과 다이빙을 같이 하려고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나야 어차피 있는 건 시간밖에 없다. 이 친구들의 코스가 끝나기까지 일주일간을 기다렸다 다이빙을 시작한다. 다행히 남자 친구 두 명이 새로 신청을 해 강사, 조교, 수강생 셋, 모두 다섯 명이 다이빙을 시작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나 겁 무지 많다. 게다가 수영이라곤 여행 오기 전에 두 달 동안 실내수영장 다닌 게 전부다. 그럼에도 내가 다이빙을 배우기로 한 건 뭐 주요 다이빙 포인트마다 뛰어 들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한 짓은 결코 아니다. 그저 앞으로 살면서 해변 갈 일은 많을 텐데 물에서도 겁 좀 안내고 재미있게 놀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꿈도 이 코스를 마쳐야 이루어질 터 어찌어찌 한다고는 해놓고 시작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첫날은 이론 교육과 필기시험이니 물에 안 들어가도 되는 상황이라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간다. 둘째 날부터는 장비를 착용하고 물에 들어가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니라 물 속에서 각종 스킬을 배우는 게 하루 일과다. 일단 물밑으로 내려가 바닥에 앉아서 호흡기 뺐다 다시 끼기, 마스크 물빼기, BCD-부력조절기구인데 구명조끼처럼 생겼다- 입었다 벗기 뭐 이런 걸 돌아가면서 해보는 건데 스킬은 둘째 치고 바닥에 앉아 있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놈의 짠물은 호흡기 뺐다 끼면 입속으로 들어오지, 마스크 물빼기 하면 눈으로 들어오지 아주 죽을 맛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다. BCD 벗었다 입기에서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된다. BCD벗었다 입기는 물속에서 한 번, 수면에서 한 번, 모두 두 번을 하는데 물속에서 어찌어찌 하고 나서 이제 오늘 수업은 다 끝났겠거니 하고 올라와 보니 마지막으로 수면에서 다시 한 번 한단다. 어째 수면이 물속보다 더 무섭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발이 안 닿는 곳에서 구명조끼 벗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그런 생각이 안 들겠냐 말이다.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벗는 것까진 했는데 다시 입기는커녕 강사를 붙잡고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댔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런 망신이 없다^^. 결국 발 닿는 곳까지 끌려 나와서야 정신이 살짝 되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내가 어쩌자고 다이빙 수업은 신청을 했더란 말이냐.., 후회가 몰려온다. 사실 맘 같아선 코스비고 뭐고 다 물어주고서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만두면 내 평생 다시는 물에는 안 들어갈 것 같으니 그만두기도 쉽지 않고 내일이 오는 게 두렵기만 하다.

 

물속에서 후프 통과하는 것도 수업 과정의 하나다

 

다이빙 끝나고 나올 때가 제일 좋다, 왼쪽이 조교 안드리아스.


그래 일단 오픈워터만 하자. 그만두고 싶은 맘을 간신히 달래며 사흘째 다이빙을 시작한다. 이런 상황은 셋째날도 별로 달라지지 않아 죽지 못해 간신히 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이번엔 장비 다 벗어놓고 스노클과 오리발만 끼고 바다 수영을 해야 한단다. 바다에 떠 있는 두 부표 사이-한 오십 미터쯤 된다-를 두 번 왕복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지긴 하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하고 뛰어들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것도 죽을 맛이다, 둥둥 떠서 가는 것까지는 하겠는데 스노클에 물이 들어 올까봐 고개를 들지를 못하니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방향을 잡아줘서 간신히 끝까지 간다. 또 다른 문제는 도무지 쉴 수가 없다는 건데 바닥에 발이 닿질 않으니 그냥 서 있기는 그냥 무섭고 부표를 잡고 버둥거려도 힘만 드니 그냥 쉬지 않고 왔다 갔다는 게 더 낫지 싶다. 결국 어찌어찌 목표량을 채우고 나와선 완전히 뻗어버린다. 


넷째날엔 본격적인 다이빙이 시작되는데 스킬 배울 때보다 조금씩 재미있어지긴 하지만 이것 역시 만만치 않다. 일단 다이빙을 하려면 물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예전엔 물에 빠지기만 다 가라앉을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니다. 막상 가라앉으려니 별 짓을 다해야 한다. 그럼 가라앉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냐 그도 당연 아니다. 막상 다이빙을 시작하면 적당한 부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면 바닥을 박박 기거나 갑자기 물 위로 떠오르는 수가 생긴다. 한번은 공기를 빼야 하는 시점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 공기를 넣어버렸더니 느닷없이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느낌이 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 해변까지 가자니 너무 멀고 혼자 내려가자니 밑에 아무도 없을 것 같고 아,, 어찌하나 하고 있는데 저쪽에 사람 하나가 보인다. 스노클링하는 사람인가 싶은데 그 와중에도 다이빙복 입고 물위에 떠 있는 게 쪽팔린 생각이 들어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이하고 인사를 건네 본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헉 자세히 보니 우리 조교다. 결국 조교에게 끌려 다시 물밑으로 내려간다.

지금 다이빙 중

다이빙 동기들, 나(지진아), 체육부장, 반장


결국 안한다, 안한다 하면서도 어드밴스 코스까지 마치고 그도 모자라 먼저 다이빙을 한 친구들과 펀 다이빙까지 다녀오고서야 다이빙은 끝이 난다. 죽을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고 나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물에서 첨벙거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다이빙을 또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이빙을 끝내고 바로 떠난다던 일행들은 결국 이집트 여행은 포기하고 다합에서 세월을 보내다 아웃하는 날을 이삼일 남겨두고 카이로로 떠난다. 그 친구들과 같이 체육 부장과 반장도 함께 떠난다. 같이 갈까 하다가 그냥 다합에 눌러 앉는다. 이집트 다음에는 어디를 가든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연말 연초에는 항공권 가격도 오른다니 지금 카이로로 가는 건 아무래도 좀 이른 것 같다. 그냥 다합에서 한동안 머물다 12월 중순 경에나 움직일 생각이다. 일행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나니 다합이 텅 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찍은 건 아니지만) 홍해 바다 속1

 

(내가 찍은 건 아니지만) 홍해 바다 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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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합1> 시나이산을 가다

 

다합에서는 거의 빈둥거리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원래 다합이라는 곳이 딱히 볼 게 있거나 갈 데가 있는 곳도 아닌데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다합에 가면 좀 길게 쉬어야지 -사실 뭐 한 게 있다고 쉬어야 하는지 좀 민망스럽지만서두^^- 하고 맘먹고 온 터라 숙소를 정하고 나서 한 일이라곤 그저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레스토랑에 진을 치고 앉아 수다를 떨거나 숙소에서 이북이나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가 된다. 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는 명성답게-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태국의 카오산, 파키스탄의 훈자, 이곳 다합을 흔히 꼽는다- 아직 여행 성수기는 아닌데도 숙소에는 서너 명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보이고 이삼일에 한번씩은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아닌게 아니라 다합은 장기 체류하기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단 물가가 싸다. 숙박비의 경우 도미토리에 묵으면 천원 정도, 싱글룸도 좀 저렴한 곳에 묵으면 이천원 정도면 되고 식비도 제법 잘 나오는 아침식사가 천오백원 정도, 점심이나 저녁도 이천원 정도면 충분하니 하루에 만원 정도면 넉넉하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날씨도 따뜻해서 한낮엔 별다른 장비 없이도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고 굳이 스노클링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여행자가 많으니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는 편이고 이집트의 여느 곳에 비해 호객 행위나 바가지도 비교적 적은 편이니 그야말로 쉬었다 가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숙소에 한국 사람들이 제법 있으니 저녁엔 주로 밥을 해 먹는다. 수제비나 라면 같은 간단한 음식에서 시작한 저녁밥이 점점 발전해 백숙은 기본에다 근처 베드윈 마을까지 가서 쇠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 것도 모자라 새우나 게를 사다가 해물탕까지 끓여 먹는다. 숙소 마당 가운데 천막으로 둘러싼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저녁을 먹고 나면 모닥불 가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거나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는다. 이럴 때 맥주 한잔이 빠질 수 없다.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여행이야기나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누군가의 배낭에서 화투가 나오고 결국 점당 0.5파운드짜리 내기 고스톱판이 벌어진다. 고스톱판이 으레 그렇듯 왁자한 분위기는 새벽까지 계속되고 결국 오전이 다 지나서야 다음날이 시작된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

 

 

사실 이곳 해변은 모래사장이 따로 없어 바다를 보려면 레스토랑마다 마련해 두고 있는 썬베드를 이용해야 한다

 

다합에 온지 이틀 만에 시나이산을 다녀온다. 시나이산은 모세가 십계를 받았다는 산으로 다합에서 두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라 투어로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서너 명이 시나이산을 가는데 우리 일행까지 같이 가면 투어 가격이 더 싸진다며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 온다. 좀 빠르다 싶긴 하지만 언제가도 갈 예정이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맘으로 어영부영 따라 나선다. 아직까지도 산에 가는 일정은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맘이다. 게다가 시나이산 투어는 보통 밤늦게 출발해 한밤중에 산에 올라 일출을 본 뒤 돌아오는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산에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한다. 결국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그도 모자라 장갑에 목도리까지 완전 무장하고 침낭이며 랜턴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밤 열한시가 넘어서 버스를 탄다. 버스는 두어 시간을 달려 매표소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낙타를 타기로 한다. 달이 휘영하니 밝은 게 산길을 오르는 것도 운치는 있어 보이지만 어차피 낙타에서 내려도 한 시간 가량은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니 미리 힘을 뺄 필요는 없지 싶다. 걸어 올라간다는 친구 둘을 제외한 여섯 명이 낙타를 타고 산길을 간다. 여행 다니면서 낙타는 처음 타보는데 조금 높기는 해도 보기보다 무섭지는 않다. 낙타에서 내려 한시간 가량 계단을 오르니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 오르고 난 시간은  네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해가 언제 뜰지 모르니 그저 침낭을 둘러쓰고 기다리는 거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은 계속해서 불고 더 이상 추위를 참을 수 없을 무렵이 되어서야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날이 좋지 않다. 해는 먹구름 속에서 고개를 비죽이 내밀고 그나마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내려갈 채비를 한다. 가파른 돌계단을 두시간 가량 내려가니 다시 매표소가 나온다. 돌아가는 차는 9시에 문을 연다는 성까뜨리나 수도원까지 보고 오라는 뜻으로 열시나 되어서야 온다는데 우리는 수도원이고 뭐고 그냥 싸가지고 온 빵이나 먹으며 근처 카페에서 노닥이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시나이산의 일출

 

정상에서 바라 본 시나이산

시나이산을 다녀와도 시간은 여전히 지천으로 남아 있다.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집트 이후에 어디를 가야할 것인가. 남미를 가자니 돈이 없고 아프리카를 가자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고 유럽을 가자니 날씨가 너무 춥고.. 이전부터 했던 고민인데도 더 이상 진전이 되질 않는다. 카이로에 가면 이집트를 돌아보기 전에 비행기표라도 끊어놔야 할 텐데 대략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조금 천천히 돌아서 이집트에서 겨울을 났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는 하지만 그랬다면 터키나 시리아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을테니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다, 카이로에서 인도 가는 비행기표가 싸다니 인도나 들러서 두어 달 있다 한국으로 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인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게 아무래도 내키질 않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안 풀리는 문제는 시험 끝나는 종 쳐도 안 풀리는 거다. 이럴 땐 찍는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 순간에 몇 번답을 찍을 지는 지금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어째 떠나는 것보다 돌아가는 길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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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 베두윈 텐트에서의 하루밤

다음날 와디럼으로 향한다. 전날 본의 아니게 걸어다닌 후유증으로 삭신이 쑤시긴 하지만 이미 숙소에서 와디럼 투어를 예약해두었으니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라 새벽부터 죽을 맛이다. 투어를 신청하긴 했지만 투어 지프는 와디럼에서 출발한다니 새벽 버스를 타고 와디럼으로 가야 한다. 페트라에서 와디럼까지는 두시간 남짓 걸린다고는 하지만 이 놈의 버스는 이 호텔, 저 호텔로 사람들을 픽업하러 다니더니 예정 시간을 한시간이나 훌쩍 넘기고서야 와디럼으로 출발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꼭두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건데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 생각해도 약이 오른다.

 

게다가 이 놈의 버스 차장은 차비 이외에 1디나르의 짐값까지 별도로 요구한다. 우리가 무슨 이삿짐을 실은 것도 아니고 짐 값을 따로 받겠다니 그것도 1디나르씩이나 -말이 1디나르지 1,500원쯤 되는 돈이다- 무슨 소리냐며 따졌더니 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자리값을 내야 한단다. 어쩐지 첨부터 짐칸에 짐을 못 넣게 하고 뒷자리에 싣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라 못낸다 실갱이가 오가고 약이 오른 일행들이 자기 배낭을 무릎 위에 얹는다. 아제 됐냐고 물어보니 아무 말이 없다. 뭐 나야 도저히 배낭을 무릎에 올려놓을 처지니 아니니-무릎 나간다^^-그냥 뒷자리에 실어두었으나 일행들의 재치로 그냥 묻어간다.

 

우리가 투어지프를 탄 것은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우리 일행 넷과 미국애 하나, 그리고 가이드 겸 기사가 일행의 전부다. 와디럼은 사막은 사막인데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라는데 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이때까지 아라비아의 로맨스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뭐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다. 지프는 사막 아닌 사막을 달려 조그만 모래 언덕에 우리를 내려 준다. 아무리 모래사막은 아니어도 조그만 사구가 있다. 모래가 발목까지 빠지는 사구에서 미끄럼을 타고 논다. 이럴 땐 비료 푸대가 제격인데.. 아쉽긴 하지만 가이드가 끌어주는 미끄럼도 제법 속도가 난다. 내려올 땐 신나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다시 올라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대체 내가 몇 살이란 말이더냐... 간만에 애들처럼 놀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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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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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에서 일행들과

 

사구를 내려와 다시 지프를 타고 몇 군데를 더 들른다. 차를 타고 다니긴 하지만 동선은 그리 크지 않은 듯 하다. 사막에서 점심을 먹고 베드윈 텐트에서 차도 마시고 세시가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한다. 커다란 바위 옆에 천 한자락 둘러놓은 것이 오늘 밤 우리의 숙소란다, 뭐 당근 지붕은 없다. 아직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밤은 좀 다를텐데.. 걱정은 되지만 설마 얼어 죽으랴 싶다. 숙소 근처를 쏘다니다 해질 무렵 돌아오니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또 닭이다. 대략 파키스탄부터 아니 인도부터 고기라곤 거의 닭만 먹었으니 내 평생 먹은 닭보다 이 기간에 먹은 닭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감자랑 토마토를 함께 넣어 항아리에 넣고 찐 닭은 그간 먹었던 것보다는 맛이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닥불 옆에서 수다를 떨다가 긴 밤을 맞는다. 불을 피우고 잘 수는 없으니 침낭에다 담요까지 꽁꽁 덮어쓰고 눕는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다, 멀리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보이고.. 그저 아침까지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만 안들었음 좋겠다는 게 유일한 바램이다.

 

바깥에서 본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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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내부

 

아침 일찍 차가 버스 정류장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는 것으로 와디럼 1 2일 투어는 끝이 난다. 이제 아카바로 가서 이집트로 가는 배를 타면 요르단 여정도 끝이 난다. 12시에 떠나는 배니 시간은 충분하다. 결국 버스를 타고 아카바에 내려 항구까지 다시 택시를 탄다. 배표를 끊고, 얼마 안되는 요르단 돈을 이집트 파운드로 바꾸고, 출국 신고를 하고 배를 탄다. 열두시에 떠난다는 배는 두시가 넘어 출항하더니 여섯시쯤 이집트 누웨이바 항구에 도착한다. 다시 배를 내리는데 걸리는 한시간, 입국 신고하는데 삽십분 가량을 소비하고 여덟시가 넘어서야 항구를 나선다. 다시 택시를 타고 밤 열시가 넘어서야 다합에 도착한다. 집 떠난지 1 2개월 만에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이집트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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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페트라에서 길을 잃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우리는 암만을 그냥 지나쳐 바로 페트라로 향한다. 이제 바이람도 끝났으련만 암만에서 하루를 더 묵고 싶은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요르단은 그리 크지 않은 나라라 어두워질 무렵 페트라가 있는 마을, 와디무사에 도착한다. 와디무사 역시 페트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보고 사는 마을일 뿐 마을은 별로 볼 것도 없고 인심이 좋지도 않는 소문인데 그나마 게스트북을 읽고 나니 더욱 정이 가길 않는다, 게스트북의 내용이라야 온통 어느 가게는 바가지고 어느 호텔은 어떻게 사기를 치고 하는 내용뿐이다. 어차피 페트라를 보려고 온 마을이니 페트라만 보고 떠나면 그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래 계획은 그랬다. 페트라의 입장료가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할인 된다니 이일권을 끊자. 그리고 나서 오늘은 저녁 늦게 도착했으니 다음날은 마을이나 어슬렁거리다 오후쯤 표를 끊어 페트라에 들어가자. 첫날은 분위기나 살펴보고 어디 한갓진 데 앉아서 일몰이나 보고 나와 그 다음날 나머지 부분을 천천히 둘러보자 뭐 이랬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오후가 되어서 매표소에 도착하니 학생할인제도는 한시적인 거라 지금은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일권의 가격도 21디나르 거의 3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바로 계획이 수정된다. 일몰 보자고 만오천원이나 되는 돈을 더 낼 수는 없다. 결국 다음날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는 페트라의 배경이 되었다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틀어준다. 언젠가 TV에서 본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다시 보니 이 영화, 배우고 특수효과고 할 것없이 촌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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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무사의 야경

 

다음날 비록 빵나부랭이이긴 하나 점심까지 싸들고 일찌감치 페트라로 향한다. 간만에 맘을 단단히 먹고 나선 길이다. 비록 하루지만 구석구석까지 살펴보리라 맘먹고 매표소에서 나눠준 지도룰 살펴보며 동선까지 짜본다. 음 이렇게 저렇게 다니면 되겠군.. 입구에 들어서 바위로 둘러싸인 좁은 협곡을 지나 그 유명한 신전이 협곡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뭐 굉장한 장면이라도 숨겨져 있을 것 같았으나 보이는 모습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사진에서 본 그대로다. 그럼그렇지 하면서도 드디어 패트라에 오긴 온 모양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협곡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검붉은 바위산들로 둘러싸인 페트라는 상상했던 것만큼 넓어보이진 않는다. 첫 번째 포인트인 왕들의 암굴 무덤을 둘러보고 두 번째 포인트인 수도원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뒤로 보이는 것이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그 신전이다

 

그저 수도원까지 가는 길이 좀 가파르다는 거 정도였을까.. 하지만 한시간 가량 올라가는 정도니 그리 힘들 것도 없다. 수도원을 돌아보고 다시 되짚어 내려오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다. 싸가지고 온 빵을 나눠 먹고 나도 아직 두시가 채 안된 시간이다. 세 번째 포인트는 일몰 지점이라는 데 너무 빨리 가도 기다려야 하니 뒤쪽 길로 슬슬 돌아기보자고 제안한 건 나다. 일행들도 페트라가 생각보다 작다고 느꼈는지 순순히 동의를 해 준다. 일단 돌아가는 길이라고 짐작되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길은 이어져 있으니 어디로든 닿겠지... 세 번째 포인트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슬슬 걸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산책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여기는 입장료 내고 들어온 울타리 있는 관광지니 길은 어디로든 통할 거리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시간쯤 시간이 흐르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페트라, 붉은 바위산 곳곳에 왕의 무덤과 신전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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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한시간쯤 걸으면 수도원이 나타난다

 

아무리 가도 세 번째 포인트로 짐작되는 곳은 나오지 않고 사방은 온통 바위산이다. 시간은 막 네시를 지나고 있으니 한시간 반쯤 지나면 해가 질 시간이다. 가장 현명한 벙법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것이지만 이미 두시간이나 걸어온 우리는 나가는 시간이 엇비슷하게 걸리는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길을 물어볼 만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우리 일행은 다시 아마 이쪽일거라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방향을 잡아 협곡 사이를 계속해서 걸어간다. 협곡의 끝에는 뭐라도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되돌리는 발길을 잡은 셈이다. 협곡은 계속 깊어지더니 마침내 몇 개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바위를 넘는다. 저기 보이는 끝지점까지 가면 큰 길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하지만 우리가 끝지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커다란 바위로 가로막혀 있다. 도저히 넘어갈 수도 없지만 넘어본들 그곳에 길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시각이다. 벌써 해는 저녁 특유의 황금빛을 뿌리고 있다. 다들 말을 안 하지만 긴장된 표정이다. 결국 어두워지더라도 아는 길로 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은 다섯 시가 넘었으니 돌아간다면 세 시간 남짓, 어두워지더라도 아는 길이니 헤맬 염려는 없고 여덟시까지 처음 지점으로 돌아가면 아홉시까지는 매표소를 나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온 길을 되짚어 나간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느새 주위는 캄캄해지고 되짚어 가는 길이라도 이곳인지 저곳인지 길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라면 그마나 달빛이 좀 있다는 정도일까.. 모두들 말없이 걷기만 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걸어나오다 보니 멀리 큰길이 보인다. 차가 다니는 길이니 아마 매표소로 연결된 길일 것이다.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시계를 보니 7시다., 세 시간에 들어간 길을 두 시간만에 되짚어 나온 셈이다.

 

큰길을 따라 걸으니 익숙한 길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매표소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결국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나 오전에 패트라를 돌아본 시간을 제외하고도 거의 6시간을 쉬지 않고 걸은 셈이다. 이렇게 매표소까지 버젓이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라다니.. 그것도 일헹이 넷이나 되면서.. 좀 황당한 생각은 들었지만 그나마 노숙 신세를 면한 개 어디냐 싶다, 다들 매표소를 나오고서야 한마디씩 한다. 입 밖에는 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최악의 경우 하루밤 잘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이런 날씨라면 춥긴 하겠지만 얼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부터, 물은 얼마나 남았나 그래도 라이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지나갔으니 말이다. 그때는 노숙 안하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페트라에게 길 잃어버린 띨띨한 인간들이 우리 말고 또 있었을까.. 아무래도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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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지구를 가다

세 번의 삽질 끝에 숙소를 옮긴 뒤 침낭까지 빨고 나니 긴장이 쫙 풀리는 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예루살렘성 주변의 교회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나니 딱히 더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일행들을 슬쩍 떠 본다. 이스라엘에서 사해간다며... 차비가 너무 비싸요, 마사다성은 안 갈래? 관심 없어요, 내 일행들도 그저 지치는 모양이다. 더구나 부엌 있는 숙소로 옮긴 뒤부터는 밥만 해 먹어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냥 예루살렘 주변만 보고 떠나지 뭐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른 생각 하나가 뒤꼭지를 잡는다. 팔레스타인 지구에 가봐야 하는데.. 사실 예루살렘성이야 아랍지구, 유대지구, 기독교지구 등으로 나뉘어 있고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숙소도 아랍 지구에 있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야 지겹도록 보는 셈이지만 왠지 그 곳에 한번은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차피 가자 지구는 현재 외국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니 들어갈 수 없고 그나마 서안 지구 중에서는 베들레헴이 가장 들어가기가 그나마 쉽다고 하니 그곳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들레헴이 워낙 유명한 성지이다 보니 팔레스타인 지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출입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또 뭐가 보고 싶은 거냐고,. 결국 팔레스타인 지구라는 곳을 관광하고 싶은 게 아니냐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눈으로 한번 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애써 위안을 한다. 일행들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니 세 명의 기독교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귀찮아요... 뭐 그 기분도 이해가 된다. 간만에 혼자 설렁설렁 걸어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버스를 타고 팔레스타인 지구 앞에 내린다. 눈앞에 긴 담장이 쳐 있고 담장 위로는 군데군데 감시초소까지 설치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전 지역을 저런 담장으로 둘러칠 예정이라더니 얼핏 봐도 수용소가 따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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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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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있는 포스터들, 이스라엘과의 싸음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포스터라고 한다.

 

국경도 아닌 곳에서 다시 여권 검사를 받고 팔레스타인 지구 안으로 들어선다. 다행히 별다른 제지는 없다. 이곳부터 예수가 탄생했다는 교회까지는 택시를 타야 한다. 입구부터 늘어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긴 한데 부르는 택시비는 만만치 않다. 어차피 교회가 목적은 아니니 슬슬 걸어가 보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현지인 아저씨에게 예수탄생교회 가는 길을 물으니 자기 차에 태워준단다. 탈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니 공짜라며 다시 타라고 재촉이다. 에라 모르겠다, 길도 모르는데 지금은 그냥 타고 올 때 걸어오면 되지 싶다. 예루살렘에서 교사 생활을 한다는 이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예수탄생교회까지 간다. 체크포인트에서 교회까지는 그리 먼거리가 아닌 듯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차를 타고 올 때는 한산하기만 하던 거리가 어느새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다. 대부분 관광버스를 타고 와 교회만 들러보고 떠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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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교회

 

예수가 탄생한 자리란다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 위에 세웠다는 교회에 들렀다 교회 주변을 걸어 다녀본다. 시장도 집들도 아랍 국가들에서 본 여느 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듯한 젊은이들의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동네를 둘아 보고 오던 길을 되짚어 걸어온다. 교회 부근은 벗어나자 시내는 다시 사람의 흔적도 없이 조용해진다. 그러다 어디쯤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 먼 곳도 아니었으니 걸어가다 보면 어딘가 나오겠지 하고 그냥 아무데로나 걸어가 본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아까 내린 곳은 아니지만 예루살렘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나온다. 하긴 저 장벽을 통해서 다녀야 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차를 몰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을테니 어딘가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차를 타고 나가는 길 역시 결국 검문을 피할 수는 없다. 도로에 있는 검문소에서는 차에서 사람을 죄다 내리게 한 뒤 사람 따로 차 따로 다시 검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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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시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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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시장2

 

결국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팔레스타인 지구를 눈으로 한번 스쳐 지나왔을 뿐인데 무슨 숙제라도 한 것처럼 이제 떠나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뭔지.. 대체 내가 뭘 보러 다니는 거지.. 답도 없는 물음에 며칠을 씁쓸한 맘으로 보내다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온다. 6시간 만에 들어온 예루살렘을 나가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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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갈수록 태산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스라엘 국경으로 가는 택시를 탄다. 택시는 암만에서 두시간 가량을 달려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이 있는 킹후세인 다리에 도착한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스라엘과 여타의 중동 국가들은 사이가 엄청 좋지 않다. 고로 여권에 이스라엘 출입국스템프가 있는 경우 입국이 불가능한 중동 국가들이 꽤 된다. 나야 입국이 불가능한 나라들인 파키스탄이나 이란, 시리아 등은 이미 거쳐 왔고 앞으로 가게 될 이집트나 갈지도 모르는 모로코 등은 비록 중동 국가라도 입국이 가능하니 스템프를 받아도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만에 하나 가게 될지도 모르는 수단을 대비해 별지에 스템프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경우 단지 이스라엘의 출입국 스템프만 별지에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요르단의 출입국까지 별지에 받아야 흔적이 남지 않는다. 다행히 요르단 출국 스템프는 별말없이 별지에 찍어준다. 삼엄하기 이를데없는 국경을 넘어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이스라엘 출입국 업무는 거의 여군들이 처리한다. 비록 군복은 입었지만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듯한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은 일하는 여자들을 거의 볼 수 없는 중동 국가를 다닌 뒤라 그런지 꽤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여권을 출입국 심사대에 밀어 넣고 심호흡을 해본다. 다른 중동국가를 다녀 온 흔적이 있으면 꽤 까다롭게 군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온 터다. 아닌게 아니라 계속 질문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름이 뭐냐, 여행 목적이 뭐냐는 그저 그런 질문이 점차 파키스탄은 언제 갔냐, 이란은 왜 갔냐 하는 쪽으로 바뀐다. 남이야 가든 말든 웬 참견이냐고 되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분고분 대답을 한다. 한참 질문 공세가 계속되더니 대기 장소에서 기다리란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스템프를 별지에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한마디로 거절이다. 여권에 스템프를 받던지 아님 그냥 이 자리에서 그냥 돌아가라며 여권까지 다시 내민다. 태도가 사뭇 고압적이다, 잠시 갈등이 생긴다. 그냥 확 돌아가 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행도 있는데다 아무래도 수단까지는 갈 것 같지도 않으니 그냥 스템프를 받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냥 스템프를 받기로 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뭣해 그냥 스템프를 받기로 한 것도 약이 오르는데 사무실로 들어간 여권은 나올 줄을 모른다. 두시간이 넘게 흐르는데도 그저 기다리라는 소리뿐이다. 나보다 훨씬 늦게 와서도 먼저 여권을 받아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불러다 뭘 물어보는 것도 아니니 뭔가 조사할 일이 있어서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엿먹어라 이외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세 시간쯤 지나자 일행들의 여권이 나오는데 여전히 내 것만 나오질 않는다. 일행들은 시리아가 다녀온 중동 국가의 전부지만 나야 이란에다 파키스탄까지 다녀 와 괘씸죄가 더 적용되는 모양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창구가 하나둘 닫히더니 대기실에 우리 일행 밖에 남지 않았을 때야 내 이름이 불리고 여권에 스템프가 찍힌다. 결국 국경에 도착한지 6시간 만에 제일 마지막으로 여권을 받아 쥔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지만 어쩌랴.. 어차피 아쉬운 쪽은 나다.

 

출입국 사무소를 빠져나가니 이번엔 예루살렘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 지들 말로는 원래 없다는데 그런 건지 아님 끊긴 건지 어쨌든 국경엔 우리 일행뿐이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오고 결국 엄청나게 부르는 택시 요금을 깍고 깍아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예루살렘 성앞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가 묵고 있다는 허름한 호텔에 짐을 푼다. 굳이 선교사가 있는 곳을 찾아간 이유는 뭐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워서는 아니고  그 선교사가 호텔에서 제공하신다는 공짜밥에 대한 소문 때문이다. 소문인즉 한국인 선교사 한분이 그 호텔에 묵으면서 호텔에 온 배낭여행객에게 공짜로 밥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단 얼마 뒤에는 한국에 가실 예정이니 지금은 계실지 안 계실지 확률은 반반이라는 거다. 공짜밥도 그렇지만 그게 한국 음식이라면 50%의 확률도 그리 쉽게 무시할 소문은 아니니 계시면 좋고 안계셔도 그만이다 하는 맘으로 호텔을 찾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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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성에 있는 여러 개의 성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마스커스 게이트, 처음 숙소는 이 성문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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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밖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 멀리 보이는 것이 황금색 지붕이 바위돔이다

 

호텔에 선교사님이 계시긴 했다. 하지만 며칠 뒤에 한국에 갈 예정이라 오늘 저녁부터 밥하는 걸 그만두셨다고 한다. 우리 팔자가 그렇지 뭐 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시던 선교사님.. 그래도 한국 친구들이 왔는데 하시며 우리의 말리는 제스쳐도 뿌리치고 기어이 밥을 하신다. 결국 저녁으로 된장국에 고추장까지 비벼먹은 우리들을 앞에 두고 선교사님의 기나긴 인생 역정이 이어진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교인이 아니던가.. 길 잃은 어린 양을 향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질 무렵에야 선교사님에게서 놓여난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담날은 선교사님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다는 비아 돌로로사, 일명 탄식의 길을 안내해 주신다. 선교사님과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둘러본 뒤 선교사님은 호텔로 돌아가시고 우리는 이어서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과 이슬람의 성지인 일명 황금돔이라는 불리는 바위돔까지 내처 둘러본다. 모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제각기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성지들이다. 에구.. 땅도 넓은데 어쩌자구 이놈의 성지들은 이리도 다닥다닥 붙어있는지 아무리 봐도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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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 못 박혀 죽었다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성묘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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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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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4대 사원 중의 하나인 바위돔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가족, 바위돔 내부는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저녁에 다시 선교님의 설교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있는데 팔 부근에 온통 붉은 반점이 보인다. 어쩐지 가렵더라니 싶어 다른 곳도 살펴보니 다리와 목 부분도 여기저기 물린 자국이 보인다. 아무래도 모기는 아닌 것 같은데 얼핏 머리 속으로 빈대다 싶은 생각과 함께 이제 죽었다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든다. 사실 이 글에서 쓰지는 않았지만 파키스탄에서 거의 오백방 가량 물려서 거의 한달을 죽을 고생을 터라 반대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짜증부터 확 밀려온다. 빈대라는 게 모기와 달라서 제대로 박멸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에 물린 흔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다 그 가려움증이며 남는 흉터 등은 차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방에서 잔 일행들은 별 증세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방으로 가본다. 사실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아침에 숙소에 굴러다니는 빈대약을 슬쩍 뿌리고 나간 게 생각이 나서다. 설마하고 침대를 들춰보니 빈대 열댓 마리가 까맣게 죽어 있다.

 

매니저를 불러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더니 새 시트를 하나 가져다준다. 황당하다. 그러면서 니들이 방문을 잠그고 가서 청소를 못해서 그렇다는 둥 딴소리다. 아니 빈대가 청소 하루   안한다고 생긴단 말인가. 게다가 언제부터 지들이 매일 청소를 했다고 그 따위 소리를 하는 지 열이 뻗친다.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방이나 바꿔주면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하는 짓이 가관이다. 그나마 화나는 걸 가라앉히고 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딴방을 보여주긴 하는데 이번엔 침대가 두 개뿐이다. 일행이 넷인데 침대가 두개뿐이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느물느물 웃으며 물린 건 너 하나 아니냐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짐을 싸서 나온다. 나가면서 방값을 못주겠다고 했더니 느물느물하던 태도는 오간데 없고 방값을 안내면 절대 못나간단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싸움이 된다. 방값 받으려면 병원비부터 달라, 당장 병원 가자.. 고성이 오가고 나서야 결국 주인이 두 손을 든다.

 

결국 조금 더 비싼 호텔로 옮겨 빈대 후속 조치에 들어간다. 사실 빈대는 물린 데가 심하게 가렵고 흉터도 오래 가서 물린 것만으로도 상당히 괴롭지만 후속 조치도 만만치 않다. 어디에 옮겼는지 모르니 옷이란 옷은 죄다 삶아야 하고-그게 힘들면 햇볕에 살균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고도 한동안 추이를 살펴야 한다. 넷이서 옷이란 옷을 죄다 빨고 그도 모자라 살균제까지 사서 가방이랑 신발에 뿌리고 시트까지 소독을 하고 나서야 빈대 소동은 끝이 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숙소를 한 번 더 옯기고 만다. 두번째 숙소는 깔끔하긴 한데 부엌이 없어 밥값 비싼 이스라엘에서는 오래 묵기가 상당히 곤란하다. 결국 사흘 만에 숙소를 세 번이나 옮기는 삽질을 한다. 예루살렘에서의 첫 사흘은 그렇게 삽질과 함께 지나간다. 삽질 끝에 남은 거라곤 피로와 가려움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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