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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9
    <마슐레> 친절이 부담스럽다(15)
    제이리
  2. 2006/09/09
    <테헤란> 패는 게 일이다^^(3)
    제이리
  3. 2006/09/09
    <에스파한> 사막의 오아시스(3)
    제이리
  4. 2006/08/25
    <야즈드> 흙집이 예쁜 마을(8)
    제이리
  5. 2006/08/25
    <쉬라즈> 뭐가 뭔지 모르겠다(6)
    제이리
  6. 2006/08/25
    <자헤단> 또 삽질이다(4)
    제이리

<마슐레> 친절이 부담스럽다

 

여행 떠나기 전 남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지명 때문에 그 곳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다음에 떠나면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 바로 마슐레다. 아니 꼭 지명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과 함께 있던 몇 장의 사진-흙으로 만들어진 집과 그 집 창문 앞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꽃화분들이 자못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보니 이제 사진의 이면이 조금씩 보이니 그곳도 역시 내가 상상하는 곳만은 아닐 거란 생각은 든다. 게다가 무지하게 심심한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 뭐 터키는 물가가 비싸다니 조용한 마을에서 이삼일 쉬었다가지 하는 맘으로 길을 나선다. 마슐레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테헤란에서 바로 떠나는 차는 없고 근처의 도시인 라시트까지 이동해 미니버스나 합승 택시를 타야 한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터미널 비슷한 것도 나오질 않는다. 대충 창밖을 보고 있으면 터미널 정도야 알아보겠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시 당황해 앞에 있는 남학생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직 조금 더 가야한단다. 결국 도착하고 보니 버스 종점이 터미널이 다.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내리니 길을 물어보았던 그 남학생이 버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라시트에 간다는 대답을 들은 그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성큼성큼 매표소 쪽으로 걸어간다. 아.. 또 시작인 것이다. 괜찮다는 내말은 들은 체도 않고 그는 자기가 알아서 표도 끊고-뭐.. 돈은 내가 냈다^^- 꽤 남은 차 시간까지 가지 않고 같이 기다려준다. 고맙긴 하지만 이런 식의 호의는 사실 반갑지는 않다. 사실 별 할 말도 없는데다 별로 궁금한 것도 없고 무엇보다 내 의사에 반하는 이런 일을 호의라고 참아주자니 짜증이 난다. 이 사람들은 이걸 친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라시트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버스 옆좌석에 앉은 이란 아줌마가 먹을 것도 나눠주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네 와 말은 안 통해도 -거의 영어가 안 된다- 편안하게 온 것 까진 좋았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란다. 물론 이란 가정에 초대받아 며칠간 즐겁게 보내다 온 여행자의 얘기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혼자서 생면부지의 아줌마의 집을 따라 가기란 선뜻 내키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오늘 마슐레에 가야 하니 버스타는 곳이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자기랑 같이 택시 타고 가자고 한다. 버스정류장이 가는 길인가 싶어 같이 탔더니 웬걸 택시는 아줌마의 집 같은 곳에 선다. 다시 짜증이 확 밀려온다. 가지 않겠다는 나의 의사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결국 정색을 하고 나서야 다시 그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온다. 오다보니 그 아줌마로서는 호의였을 그 맘에 대해 짜증을 부린 내가 또 미안해진다. 결국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


마슐레 전경


내가 묵었던 숙소


마슐레로 가는 길의 풍경은 이때까지 보단 이란의 다른 곳들과는 많이 다르다. 산에는 제법 나무들도 보이고 좌우의 들판에는 푸른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시골 풍경이다. 이곳이 이란 사람들의 휴양지라더니 이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마슐레의 숙소는 이란의 다른 곳들과는 달리 하우스를 렌트하는 방식이라는데-아예 부엌이 달린 원룸 같은 방을 빌릴 수 있단다- 막상 도착해보니 어느 집이 렌트를 하는 집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따라 배낭을 메고 올라가 본다. 이쯤에서 누군가 하우스를 외쳐 줘야 하는데 이란 관광객들만 가득할 뿐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뭐 별 수 없이 이번에는 가게에 들어가 방 빌려주는 곳을 물어본다. 몇 곳이 있기는 한데 집을 통째로 빌리는 형태라 그런지 혼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어차피 혼자이니 밥해먹기도 번거로울 것 같아 다시 호텔을 찾아본다. 이곳 특성이 그런지 호텔에도 부엌이 붙어 있다. 그래도 집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것보다는 조금 싸다. 결국 침실보다 부엌이 더 큰 방 하나를 얻어 짐을 푼다.


마슐레의 집들1


마슐레의 집들2


이곳은 예상대로 매우 심심하다. 마을이라야 한두 시간 돌아보면 그만이고 따로 가볼만한 곳은 없다. 길을 지나가면 몇몇 여행사 삐끼들이 트레킹 운운 하지만 이란 사람들이야 신기할지 모르지만 저 정도 산에 트레킹이 왠말이냐 싶다^^. 밥이나 해 먹으며 빈둥빈둥 보내려 해도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혼자서는 별 흥이 나질 않는다. 재료를 구한다 해도  한국에서 쓰임새가 있을까 싶어 가져 왔던 라면 스프니 하는 것들은 언젠가 짐 정리 도중에 별 필요도 없군 하면서 버렸으니 마땅히 간을 할 재료도 없다. 아.. 후회막심이다^^. 그저 방안에서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관광객들 구경이나 하다 그도 심심하면 이북으로 추리 소설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떠난 동행이 주고 간 거의 1기가에 가까운 이북이 유일한 낙이 된다.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에서 김성종, 이상우까지 거의 이틀간 한 오십 여명은 죽어 나간 것 같다.


인형 파는 아주머니


마슐레 야경


하루는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그것도 한국말이다. 반가운 맘에 쳐다보니 이란 아저씨다. 사업차 여러 곳을 다녔다는데 한국에서도 꽤 오래 있었던 모양인지 한국말을 제법 한다. 정작 본인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간 것이 10년이 넘어 한국말은 거의 잊어버렸다는데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된다. 같이 차이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뭐 처음엔 한국이 어떻고 이란이 어떻고로 시작했으나 결국 혼자 다니냐.. 남편은 없냐로 이어지더니 제법 느끼한 눈빛을 날려 주신다. 말이 아저씨지 할아버지라 해도 큰 실례는 아닐 나이인 듯한데 참 이란 남자들, 노소불문이다. 결국 자기가 술을 가지고 있으니-이란에서 술 마시는 건 불법이다- 니 방에서 한잔 하자는 대목에서 가볍게 일어나 주신다. 피곤해서 자야겠다는 핑계를 대지만 일어나면서 한마디 한다. 노인네, 주책이네.. 글쎄 그 아저씨. 얼핏 못 알아들었다는 듯 무슨 말이냐고 묻는데 표정이 살짝 굳는다. 아.. 이제 진짜로 이란이 지겨워진다.


다음날 짐을 싼다. 이제 터키로 가는 길이다. 밤차로 타브리즈로 넘어가 하루밤을 자고 다시 국경도시인 마쿠를 거쳐 바자르간까지 가는 먼 길이다. 이란은 생각보다 빨리 나가게 되었다. 들어올때는 비자 기간인 한달을 꽉 채우거나 어쩌면 비자를 연장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럭저럭 삼주 만에 나가게 된 셈이다. 그래도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대부분의 친절했던 이란사람들의 호의만 가지고 가고 싶은데 그도 쉽지만은 않다. 국경 가는 이틀 사이에 두 놈을 더 패주고서야 이란 여행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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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패는 게 일이다^^

 

흔히 테헤란에 대해서는 여행자들이 하는 말은 별 다른 볼거리가 없으니 그저 하루 이틀만 머물고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다고들 한다. 특히 교통이 혼잡하고 매연이 심해서 그 하루 이틀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과연 여행자 숙소가 있는 거리도 우리나라 옛날 청계천을 보는 듯 공구 상가만 즐비한데다 차들이며 오토바이가 한데 뒤엉켜 길을 다니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가이드북을 뒤져봐도 박물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딱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다시 일정 짜서 다니는 게 탄력이 붙었는지 또 습관적으로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갈 곳을 대충 만들어 둔다. 박물관 몇 곳과 바자르 그리고 하루는 숙소에서는 조금 떨어져 테헤란 북부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먼저 찾아간 바자르는 이제 더 이상 재미가 없다. 넓기는 오지게 넓은데 옷이며 물건들이 매번 보던 것과 다를 게 없다. 길가 쪽만 한 바퀴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다. 그 다음에 국립 박물관이다. 어쨌든 한 나라의 수도에 가면 그래도 국립 박물관 하나쯤 보아주는 건 여행자의 예의에 속하는 일인 것 같은데 이 나라 국립박물관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그리 크지 않은 전시실이 일층에 있는데 그게 전부다. 나라도 무지 크구만 이 땅에서 나온 그 많은 유물들은 죄다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국립박물관 꼴하고는... 그나마 이슬람이 들어온 이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이슬람 박물관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은 상태다. 국립박물관에 실망하여 박물관 순례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알아.. 저기 없는 게 죄다 다른 곳에 있을지 싶어 이번엔 유리와 도자기 박물관에 가본다. 조그만 주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의 전시물은 개인 소장품 수준이다. 에이 박물관 순례 중단이다!!라고 맘먹었다가 그래도 뭔가 아쉬워 보석박물관 하나만 더 가보기로 한다.


테헤란의 공원,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다


거리에서 낮잠 자는 아저씨들


보석박물관은 이란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있다. 즉 전시실 안에 들어가는 게 결국 거대한 금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입장부터 보안이 삼엄하다. 게다가 이란의 입장료는 2004년부턴가 내외국인을 동일하게 적용하기 시작해 큰 부담이 없어졌는데 개인주택들이나 몇몇 교회 그리고 이 보석박물관 등은 개인이나 사기업이 운영해 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전시물은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지며 목걸이 같은 악세서리에서 그릇이며 옷, 검, 왕관과 의자, 침상에 이르기까지 한때는 권력자들의 것이었을 물건들이 이 지하에 총망라 되어 있다. 그중에는 제법 아이 주먹만한 다이아도 있는데 빛의 바다라나 뭐라나 하는 물건이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진짜 보석들을 볼 수 있겠어.. 그저 눈이라도 호사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보석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어서인지 아님 보는 눈이 그것뿐이어서 그런지 보석박물관도 그만그만하다.


국립박물관, 썰렁한 와중에 소금인간이라 불리는 미이라 한 구


그리고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던 거 하나는 건졌다. 이름하여 함무라비 법전!!

 

하루는 북부 쪽으로 올라가 본다. 테헤란은 서울과는 반대로 숙소가 있는 남쪽이 상대적으로 못 사는 동네란다. 그래서 북쪽은 남쪽보다는 공원도 많고 좀 한산한 느낌이 든다니 이 혼잡한 동네를 좀 벗어나 보기로 한다. 먼저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이란의 왕이었던 팔레비 국왕이 살던 궁전을 찾아가본다. 북부 지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궁전까지는 합승택시를 타야 한다. 이란의 택시는 대부분 합승택시로 구간구간 이동하며 갈아타게 되어 있어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만 외국인이 타는 순간 개인택시로 바뀌는데다 가격도 열배이상 뛴다. 현지인이 타고 있는 택시를 타는 게 좋은데 방향을 잘 모르니 그것도 쉽지 않다. 대략 궁정으로 가는 비용을 물으니 보통 가격에 20배쯤 되는 가격을 부른다. 하긴 4명을 태울 택시에 나 혼자 타고 가니 20배는 아니고 5배쯤 되는 모양이다. 원래 테헤란 택시들 악명이 높다더니 과연 그런 거 같다. 슬슬 궁전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합승택시가 있겠지 싶어 걸어가니 빈택시가 와서 선다. 가격을 물어보니 웬일인지 현지인 가격을 부른다. 초보인가 싶어 탔더니 내릴 때 딴소리다. 이 아저씨 영어가 짧아 2000토만 부를 거 200토만 불렀다는 거 아닌가^^. 당근 200만 주고 내렸다.


팔레비 왕의 궁전터는 원래 커다란 공간에 궁전이 열개 가까이 있었던 모양인데 현재 대부분 박물관으로 개조된 상태이다. 모든 궁전마다 모두 개별적으로 표를 끊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 두 곳만 표를 끊는다. 그 중 가장 유명하다는 화이트 팔레스와 블루 팔레스다. 즉 하얀 궁전과 파란 궁전 두개만 본 셈인데 이 두 곳은 팔레비 왕이 이슬람 혁명정권에 쫓겨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가구며 집기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방마다 가구는 프랑스에서 만들었고, 카페트는 이란 어느 지방에서 만들었고 등등이 쓰여 있어 박물관에도 잘 안 해주는 안내가 왜 이리 잘 되어 있나 했더니 이 시절 왕의 사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왕이 쫓겨난 뒤에 전시되어 있는 궁전이야 어디나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니 그저 궁전 주변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니 마음이 상쾌해진다.


파란 궁전의 거실, 벽이 온통 크리스탈로 되어 있다.


팔레비 왕의 동상, 이슬람 혁명 당시 성난 군중에 의해 부서지고 지금은 다리부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친 김에 산이 있다는 다르반드까지 가 보기로 한다. 이란의 산이야 나무하나 없이 멋대가리 없긴 하지만 이곳에는 등산로도 있고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다니 그저 리프트나 타고 올라갔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그 곳에 도착해보니 완전히 우이동 골짜기다.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으로는 온톤 식당이며 찻집이 들어서 있어 밥이라도 먹지 않으면 어디 앉아서 쉴만한 공간도 없다. 그나마 리프트는 특정한 시간에만 운영하는 지 꼼짝도 않고 서 있다. 그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중턱 가게가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갔다 그냥 내려온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은 진짜 올라가고 싶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계곡 옆에 깔아놓은 평상 위에서 물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고 싶은데 혼자서는 그도 처량할 거 같아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온다.


다르반드, 산에 나무 한그루가 없다


계곡마다 카페트가 깔려 있다.


테헤란에서는 말로만 듣던 성추행을 두어 번 당한다. 일단 범인을 확인하면 냅다 패주고 보는데 그럼 대부분 슬금슬금 인파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경찰을 부르라는 말도 있지만 엉덩이 슬쩍 만지고 가는 놈을 경찰에 까지 넘기기는 좀 뭣해 일단 폴리스에 가자고 큰 소리는 쳐도 나 역시 그럴 생각이 꼭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테헤란 북부에서 만난 놈은 경찰에 확 넘겨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르반드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길가 부스에서 꽃을 파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오란다. 마침 꽃들도 볼 겸 안으로 들어갔더니 어디어디 방향이라며 가르쳐주는 척 하더니 가슴을 슬쩍 건드린다. 일단 손에 들고 있던 물병으로 냅다 패기 시작한다. 하지만 페트병이란 게 퍽퍽 소리만 요란하지 상대에겐 별 타격이 없는 듯 이 자식 이리저리 피하며 자기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 제스쳐를 한다. 갑자기 성질이 확 난다. 이번에 멱살을 잡고 부스 밖으로 끌어내며 폴리스 가자고 큰 소리를 친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이 녀석 좀 쪼는 게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들고 얘가 내 몸을 만졌다고 영어로 떠들어봐야 알아듣는 사람도 없다. 이제 영어도 안 나온다. 내 분에 겨워 *새끼, *새끼-나도 내가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몰랐다^^- 해 가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걷어차고 난리를 치니 완전히 구경거리가 난 셈이다. 이 자식 가게가 여기니 도망도 못 가고 그저 자기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데 결국 사람들이 말려 그쯤에서 끝을 낸다. 여튼 인간들 혼자 다니는 여자는 더 지들 좋으라고 다니는 줄 안다. 미친 새끼들.. 


이제 이란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딱히 불편한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조금 갑갑한 느낌에다 고만고만한 유적들 그리고 사람들의 친절을 넘어선 관심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게다가 한동안 한국 사람들 구경을 못해서인지 조금 심심하기도 하다. 여기서 바로 터키로 넘어갈까.. 원래 생각했던 곳 하나를 더 들렀다 갈까.. 잠시 고민이 된다. 그래도 가서 후회하는 것이 안가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일단 한곳만 더 거쳐 터키로 넘어가기로 한다. 가보고 맘에 안 들면 다시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늘 그렇듯이 처음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은 결국 가게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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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한> 사막의 오아시스

 

에스파한은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들 한다. 모스크나 바자르 등의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이 사막의 나라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긴 강이 흐르고 그 덕분에 푸른 녹지가 시내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 도시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탄다. 이란 버스는 충분히 싸지만-우리 돈으로 25원 정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무척 많다. 다행히 남자와 여자 칸이 분리되어 있어 만원버스에서의 성추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란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길을 물어보면 거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분위기라-누구 말에 따르면 여자만 그렇다고도 한다^^- 어렵지 않게 숙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숙소는 도미토리도 싱글룸도 모두 풀이다. 쉬라즈에서도, 에스파한에서도 외국인 여행자는 거의 못 봤는데 뭔 숙소가 매번 풀인가 싶은데 아마 이란은 여행자 숙소라도 내국인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에스파한의 숙소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 특히 교통비가 상식을 초월하게 싸다 보니-최고급 볼보 에어컨 버스를 타고 대여섯 시간씩 도시를 이동해도 대략 5,000원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숙소값이 더 비싸 보인다. 숙소주인이 더블룸은 10불에, 트리풀룸은 12불에 하루만 묵으면 다음날은 싱글룸으로 바꿔주겠다고 해 방을 봤지만 방이 영 신통치가 않다. 설마 이 관광지인 에스파한에 방이 없으랴 싶어 뿌리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아보니 허걱.. 다른 숙소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그 숙소가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 번 나온 숙소를 다시 들어가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으니 길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본다. 다행히 깨끗한 현지인 숙소가 나온다. 이란의 여행자 숙소는 그리 많지도 않거니와 어차피 내외국인 겸용이니 비싼 여행자 숙소에 묵느니 발품을 조금 팔더라도 저렴하고 깨끗한 현지인 숙소를 구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단 한국인은커녕 외국인 여행자도 만날 생각은 말아야 한다^^


혼자가 되니 뒹굴거리는 시간보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시간이 많아진다. 말상대도 없는데 숙소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싸돌아다닐 수도 없는 일이니 도시에 도착하면 대략 봐야 할 곳의 동선을 미리 정해두고 움직인다. 다행히 론리에는 4일짜리 에스파한 돌아보기 코스가 나와 있다. 방향과 동선을 고려하여 짜여진 것일 테니 이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그 루트를 따라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막상 하루를 따라해 보니 그 동선의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란의 관광지는 대부분 낮 시간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데 정작 론리에서는 그 시간을 근처에 있는 비싸고 우아한 전통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로 해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혼자서 어떻게 서너 시간씩 밥을 먹는단 말이냐.. 결국 루트를 다시 짠다.


이맘호메이니 광장-이맘호메이니 모스크


이맘호메이니 광장-세익로트폴라 모스크


에스파한에서 가장 먼저 둘러보게 되는 곳은 아무래도 이맘호메이니 광장이 아닐까 싶다. 이란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맘 모스크를 비롯해 세익로트폴라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이 각 한쪽 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바자르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바자르는 또한 시가지 서쪽에 있는 메인 바자르와 연결되어 있다. 돔만 화려한 여느 곳의 모스크들과는 달리 이곳 모스크 내부는 타일을 일일이 잘라 붙인 내부 장식이 눈길을 끈다. 둥근 천정까지 빠짐없이 장식된 이 타일 장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이 느껴진다. 또한 이맘 호메이니 광장 주변 뿐 아니라 에스파한 시내 곳곳에는 오래된 궁전이나 모스크들이 산재해 있고 그 주변은 거의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오렌지 쥬스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공원에 앉아 있으면 어디서나 산책 나온 시민들과 마주치게 된다.


모스크 내부1


모스크 내부2


그렇기는 해도 에스파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아무래도 강변이 아닐까 싶다. 시내를 관통하는 자옌데강은 주변이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어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특히 시오세 다리나 카쥬 다리 근처에는 거의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린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은 잔디밭에 카페트를 깔고 앉아 차이-맑은 홍차-를 마시거나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젊은 연인들은 손을 잡고 강가를 거닌다. 이곳에도 예외 없이 서너 명씩 껄렁껄렁 몰려다니는 한량들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으니 그저 핼로우를 날리는 것 외에 별다른 짓을 하지는 못한다. 그저 강가에 앉아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까이 가보면 차이나 과자를 건네준다. 영어는 한마디도 안 통하지만 눈치껏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진심인지 아닌지 또 엄지손가락을 올려 세운다. 그저 하는 일 없이 저녁마다 강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자옌데 강변


시오세 폴 야경


하루는 버스를 타고 조금 외곽으로 나가본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테스카데라는 성터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에스파한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고 해 버스를 타고 다녀온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나르 좀반이라는 모스크가 있어 가는 길에 들러 본다. 일명 흔들리는 모스크인데 가이드북을 아무리 봐도 왜 흔들리는 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특정 시간만 되면 저절로 흔들리는 신기한 모스크인가 싶어 시간에 맞춰 찾아가 보니 모스크 첨탑에 올라가 사람이 흔드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면 반대편 첨탑에 달린 종이 울리는 건데 글쎄.. 뭐가 신기하다는 건지 그래도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현지인들을 보니 그게 더 신기하다. 뒤이어 찾아간 아테스카데는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없는 돌 언덕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저길 올라가 말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올라간다. 생각보다 힘들진 않은데 올라가 봐도 풍경은 고만고만하다. 이제 이 황량한 풍경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마나르좀반, 오른쪽 탑에 사람이 올라가 흔들면 왼쪽 탑의 종이 울린다


아테스카데, 아래에 에스파한 시내가 보인다.


다음 도시인 테헤란까지는 기차를 타기로 한다. 버스도 충분히 편하지만 이란에서 기차를 한 번 타보고 싶기도 하고 밤기차니 숙박비도 하루 절약할 수 있어 조금 늦은 출발 시간이지만 기차표를 미리 예약해 둔다. 에스파한의 기차역은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택시비도 워낙 싼 편이라 택시를 타고 가도 우리 돈으로는 2,500원이면 갈 수 있지만 시간도 많으니 그냥 버스를 타기로 한다. 미리 알아봐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기차역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없다는 건지 끊겼다는 건지 이구동성 택시를 타란다. 이란 사람들 무척 친절하긴 한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가 모르는 건 모르는 게 아니라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기차역 가는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될 일을 기차역 가는 버스는 없다고 말한 뒤 아주 친절하게(?) 택시까지 잡아 주는 것이다. 버스를 타겠다고 박박 우겨도 어찌나 택시들을 세우시는지 결국 성질을 확 부리고 나서야 주변이 조용해진다. 조금 민망하다^^.


조금 더 기다리니 기차역 가는 버스가 온다. 이번에는 이구동성 이 버스를 타라고 성화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버스를 타니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주변을 둘러싼다. 그중 하나가 느닷없이 비디오카메라를 꺼내들더니-이란의 관광지에는 디카보다 비디오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더 많다-취재 혹은 취조가 시작된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은 뭐냐, 결혼을 했냐로 시작한 취조는 결국 형제는 몇이냐, 니네 아버지 이름은 뭐냐에서 막혀 버린다. 아는 영어 밑천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지들끼리 이 말은 영어로 뭐냐를 한참이나 의논하더니 결국 웃어 버리고 만다. 그냥 나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비디오카메라를 향해서 웃어 준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기차역이라며 내리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버스는 기차역에서 2km 남짓 떨어진 캄캄한 벌판을 기차역이라고 떨궈 주고 가버렸으니 결국은 택시 타라는 사람들의 권유가 옳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기차역까지 태워주겠다는 차가 있어 올라탄다. 히치는 위험하다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다. 다행히 어리버리 떨궈진 인간 중에 일본 남자애들 둘이 같이 타게 되어 그나마 좀 안심이 된다. 결국 아슬아슬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탄다. 아마 그 차가 태워주지 않았다면 기차역까지 걸어가다가 가치사간을 놓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투덜거려도 결국은 현지인들의 친절과 도움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란의 기차는 침대시트를 별도로 챙겨 줄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기차칸도 남여가 구분되어 있어 우리 칸은 모두 여자들이다. 잠시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든다. 뭐 당연하지만 잘 때는 여자들도 스카프를 모두 벗더라는^^ 그래도 조금은 신기했다.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1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2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3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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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즈드> 흙집이 예쁜 마을

 

버스가 야즈드로 들어서자 마자 아.. 하는 감탄사가 입 밖으로 나온다. 쉬라즈에서 야즈드로 향하는 길 내내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이 끝나는가 싶더니 눈앞에 보이는 도시는 온통 황토빛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는지 흙벽돌로 담을 세우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만든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 어디 동화의 나라에라도 온 것 같다. 뭐 동화치고는 톤이 좀 어둡긴 하지만 말이다^^택시를 타고 도착한 호텔역시 이 도시의 오래된 집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바깥은 높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얼핏보면 호텔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호텔은 그리 가격이 싼 곳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당 한켠 지하에 도미토리가 있어 도미토리에 묵으면서도 호텔의 정취는 정취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첫날 침대가 여섯개인 도미토리의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한국 사람은 기대도 안 했지만 다른 여행자도 없다니 조금 실망이긴 하지만 혼자 쓰는 도미토리는 그만큼 편한 것도 사실이다. 호텔 마당에는 자그마한 분수가 있고 그 주변으로는 탁자며 평상이 놓여 있어 음식을 먹거나 차이를 마시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그도 지겨우면 아예 옥상으로 올라가 별구경이나 하면서 뒹굴 거릴 수도 있다. 다행히 이곳 레스토랑에는 그나마 몇 가지 메뉴가 있어 샌드위치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이란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먹을 게 샌드위치 밖에 없다는 말이었는데-뭐 샌드위치, 햄버거, 케밥 등이 있지만 죄다 빵에다 고기 싸 먹는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이삼일 샌드위치만 먹다보니 이걸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내심 막막했던 것이다. 간만에 밥까지 먹고 평상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김치찌개고 뭐고 밥만 먹어도 이리 행복할 수 있다니.. 역시 행복은 먼데 있는 건 아닌가 보다^^


후세이니에서 바라 본 야즈드 전경


내가 묵었던 실크로드 호텔 앞마당

 

다음날 아침 일찍 한국 여행자 하나가 토미토리로 들어온다. 배낭여행 온 남학생인데 터키, 이란을 거쳐 파키스탄, 중국으로 넘어가는 길이란다. 이란에선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이다. 야즈드는 이 친구와 같이 돌아다닌다. 사실 야즈드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라기보다는 그저 미로 같은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 묘미인데 마침 일행이 생겨 심심치 않게 하루를 보낸다. 대략 론리 플래닛에 길잃어버리기 투어라고 소개되어 있는 길을 따라간다. 투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볼거리가 나오면 잠시 들어갔다 다시 골목길을 걷는 것이 투어의 전부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골목이 이어져 길 찾기는 쉽지 않지만 또 그 골목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니 딱히 그 길이 아니어도 목적지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를 가나 진흙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골목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구시가지 골목길


아직도 벽돌을 직접 굽는다


알렉산더 프리즌이라는 데 한때는 감옥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골목길을 돌아다니기 전에 숙소 앞에 있는 모스크에 들렀다가 첨탑이 보이길래 저기 올라갈 수 없냐고 물으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무실에 가서 허가증을 받아 오면 된다고 한다. 골목길을 다니다가 마침 사무소가 눈에 띄길래 허가증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여권만 확인하곤 금세 만들어 준다. 저녁 무렵에 모스크로 가서 허가증을 보여주니 첨탑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아저씨 한 분이 앞장을 서더니 불도 없는 좁은 계단을 끝도 없이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 나가는 문이 보이길래 다 왔나 했더니 웬걸 첨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다른 문을 열고 첨탑으로 올라가야 한다. 위를 보니 까마득하다. 에구 나는 포기다. 도무지 다리가 후들거려 올라갈 수가 없다. 나는 첨탑 아래 남고 대학생 친구는 아저씨를 따라 계속 올라간다, 첨탑 아래도 제법 높아 마가 해가 진 야즈드 구시가지는 제법 불빛을 밝히고 있는데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시가지 바깥까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잠시 후 대학생 친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려온다. 저 위는 진짜 무서워요 하는데 역시 안 올라가기를 잘 했다 싶다^^


자메 모스크, 저 첨탑 중간에 있는 난간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모스크에서 내려다 본 야경


다음날은 버스를 타고 시가지 외곽까지 나가본다. 이곳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교의 발생지라는데 이.. 또 조로아스터교는 또 뭐하는 종교란 말인가.. 옛날 세계사 시간에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름 이외엔 기억나는 게 없다. 대학생 친구에게 물어봐도 조로아스터교가 한국말로 배화교라는 거, 불을 숭상한다는 거 외에는 아는 게 없다며 이 더운 나라에서 불은 왜 숭상했을까요? 하고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인 파이어 템플에 잠깐 들러본다. 정말 불을 숭상하는 종교인지 사원 한가운데는 몇 백년간 꺼뜨리지 않고 이어 왔다는 숯불이 발갛게 타고 있다. 남의 종교를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면 한 되지만 갑자기 불씨 꺼뜨리면 쫓겨나는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버스를 나고 간 곳은 조로아스터교의 풍장터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인위적인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시신을 산 위에 던져두었다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고 그 터 아래로 마을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옆에는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1960년대 이후로 풍장을 그만 둔 조로아스터 교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한다. 대학생 친구와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땐 이 곳에는 아무도 없고 팔월의 햇살만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땀을 흘리며 풍장터까지 올라가 봐도 그저 한때는 시신을 던져두었을 구덩이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저 아무런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오던 길을 되짚어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가용 한대가 태워준다고 한다. 혼자라면 타지 않았을 텐데 일행 덕을 본다. 대학생 친구는 친구대로 자기 혼자 있을 땐 차가 절대로 안 선다며 내 덕분이란다. 여튼 한참을 걸어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온 길을 한 번에 편하게 돌아온다.


풍장터앞 마을에 서 있는 침묵의 탑


풍장터, 자금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날 오후에 대학생 친구는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테헤란에서 보조 가방을 도둑맞아 거의 백만원 가까운 돈과 물품을 잃어 버렸다 면서도 씩씩하게 다니던 친구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려면 나머지 날들은 거의 이동만 해야 한다며 날짜 계산을 한참이나 하더니 그래도 훈자에서 이삼일은 보낼 수 있겠는데요 하며 좋아한다. 시간만 많은 내 여행이 갑자기 사치스러워 보이는 게 괜시리 민망해진다. 나도 내일이면 에스파한으로 떠난다. 에스파한은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데 글쎄 그곳에서 다시 한국인 여행자를 볼 수 있을지.. 저녁은 어차피 굶게 될 테니.. 하며 샌드위치를 두 개나 먹은 대학생 친구는 밤차를 타러 떠나고 나는 다시 시간의 사치를 누리며 호텔 평상에서 뒹굴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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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행히 쉬라즈의 숙소는 마음에 든다. 인터넷으로 보기에는 이란의 숙소 상태가 별로라고 되어 있는데 그간 개선을 한건지 아님 그 글을 쓰신 분의 안목이 높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파키스탄에 비하면 거의 호텔 수준이다. 게다가 이란은 석유가 나는 나라여서 그런지 에어컨이 방마다 붙어있는 게 아니라 아예 중앙 냉방이다. 즉 내가 방에 없어도 에어컨이 하루 종일 나온다는 건데-근데 이게 석유랑 상관이 있나?- 선풍기는커녕 하루에도 몇 번씩 전기가 나가는 동네에 있다 와서 그런지 오히려 빈방에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아까운 심정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욕실이랑 화장실이 공용이라는 건데 다른 나라라면 크게 불편한 건 아닌데 여기는 호텔 복도만 나가도 스카프를 써야 하니-옷도 당근 갈아입어야 한다- 그게 조금 불편하기는 하다.

 

길거리에 나가본다. 일단 남자들의 옷차림은 파키스탄과 확연히 달라지는 데 일단 생긴 걸 제외하고는 옷차림이 우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여자들의 경우도 스카프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화장도 제법 진하고 긴 옷 아래에는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대놓고 핼로우를 날리는 파키스타니들에 비해 흘낏흘낏 쳐다보거나 뒤에서 치나치나-중국 사람이라는 뜻이다-하며 지들끼리 낄낄대는 한량들이 많다는 점인데 이게 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이란의 성희롱에 대해서는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 익히 들어온 터라 여행자 지침대로 가벼운 터치에 대해서는 죽지 않을 만큼 패놔야지 하는 대처 방법을 세워 놓았던 바 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성적 농담이 분명하다고 느껴지는 말이나 슬쩍 스쳐가면서 보이는 음란한 손짓의 경우는 기분은 나쁘지만 별다른 대처 방법이 없다. 그저 이 인간들, 어지간히 궁한가보다 생각하려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인간들을 만나다보면 길거리에 나서는 게 짜증스러워진다.

쉬라즈 시내, 가운데 있는 것이 카림 한 궁전이다


바자르, 건물은 몇백년이 되었다는 데 그냥 시장이다. 여기서 스카프랑 이란옷을 사서 입었다.

 

그래도 길거리에 안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언젠가 이란에서 넘어 온 여행자에게 얻어 둔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본다. 파키스탄부터는 미리 준비해 둔 정보도 없는데다 중동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도 거의 없는 상태이니 그저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는 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하지만 알다시피 가이드북은 또 영어판이라 숙소나 레스토랑 혹은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어찌어찌 읽는다 해도 그 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만 믿고 그저 길거리로 나서보는 수밖에 없다. 가이드북에 다르면 쉬라즈는 장미와 와인의 도시라는데 계절상 장미는 물 건너갔고 알코올 들어간 음료라곤 눈씻고 봐도 없는 이란에 와인이 있을 리 만무하니 그저 예전에는 그랬으려니 생각하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이란의 관광지들은 대부분은 점심시간-말이 점심시간이지 거의 4시나 되어야 끝난다-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오전에 잠깐 둘러보고 숙소에서 쉬다가 다시 저녁 무렵에야 움직여야 하는 관계로 동선과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관광지는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래되었다는 바자르도,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모스크도, 한때는 귀족이었거나 상인의 집이었을 잘 치장된 저택들도 그저 그만그만하다.


레젠드 모스크, 스카프도 모자라 차도르를 꼭 입어야 하는 곳이다. 다행히 매표소에서 빌려준다.


 

개인 저택의 내부, 사유 재산이라 입장료 무지 비싸다. 온갖 애교를 다떨어 학생 할인 받았다고 흐믓해 했는데 그래도 엄청 비싼 거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비싼 건지도^^ 

다음날은 페르세폴리스에 다녀온다. 페르세폴리스는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로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당시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아케미니드 황제가 짓기 시작해 그 후 수백 년간 증축을 거듭했다고 한다. 쉬라즈에서 두 시간쯤 떨어져 있는 이곳은 그냥 반나절 투어로 다녀오기로 한다. 어차피 혼자 버스타고 택시타고 움직여봐야 힘은 힘대로 들고 돈도 투어비나 거의 비슷하게 들지 않을까 싶다. 투어라고는 해도 자가용 한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여행자 4명에 기사 겸 가이드까지 다섯 명이 전부다. 아침 일찍 출발한 차는 페르세폴리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낙쉐 로스탐에 먼저 들른다. 낙쉐 로스탐은 페르시아의 황제였던 다리우스1세와 2세 그리고 글자 읽기도 쉽지 않은 아르타세르세스 1세와 그냥 세르세스 1세의 암굴 무덤이 있는 곳이다. 즉 4명의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이 무덤은 특이하게도 바위산을 파서 만든 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사막 한가운데서 이곳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잘 들리지도 않고 -영어로 한다니^^- 그저 주변의 부조들을 바라보며 더운데 저거 판 사람은 힘깨나 들었겠다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다.


낙쉐 로스탐, 왕의 무덤 4개가 나란히 있다.


낙쉐 로스탐, 무덤 주변의 바위에 새겨 넣은 부조


다음은 폐르세폴리스로 이동을 한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장대한 기둥들과 부조들이 한때는 이곳이 대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2,500년의 세월 탓인지 그저 흔적에 상상을 더해도 그 규모에 질릴 뿐 별다른 당시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해는 머리 꼭대기에 있는데 그늘 한 점 없는 유적지를 보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현실이 된다. 스카프를 썼으니 그 위에 모자를 쓰는 것도 어째 이상해 그냥 나섰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한 게 거의 일사병 증세가 오는 것 같다. 그저 이미 뜨거워져 버린 물병만 손에 쥐고 어디 그늘이 없나 살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하릴없이 가이드를 따라 두어 시간 남짓 유적지를 보고 나니 투어는 끝이 난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때까지 보던 유적지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모르니 그저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이해되는 것이 없다. 배경 지식 없이 보는 유적지란 그저 돌덩이에 다름 아니니 앞으로 남아있는 나머지 중동의 유적지들을 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싶은 게 새삼스레 막막한 느낌이 든다.


페르세폴리스, 입구 기둥에 세워져 있는 부조


페르세폴리스, 기둥만 남은 궁전터가 쏟아지는 햇빛 속에 서 있다.


쉬라즈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시인 하페즈의 묘소를 찾아간다. 하페즈는 이란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묘소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묘소는 그저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이란의 어디나 그렇듯이 정원의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사막의 나라 이란에서는 물이 풍요의 상징이었던 듯 하다- 정원 한가운데 하페즈의 석관이 놓여 있다. 이란 사람들은 궁금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의 시집을 들고 이 묘소를 찾는다고 하는데 그의 시집을 들춰 처음 보게 되는 글귀가 그 문제의 해답이 된다고 한다. 뭐 나도 해보고 싶긴 하지만 하페즈의 시는 전부 파르시로 되어 있을 테니 펼쳐봐야 뭔 소리인지도 모를 터 아쉽지만 그냥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하페즈의 시집이나 한권 사올 걸 그랬나 보다^^ 만약 그랬다면 난 그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쉬라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시인 하페즈의 묘, 많은 이란사람들을 석관에 손을 얹고 그를 추모한다.


하맘(목욕탕)을 개조한 찻집에서, 저러고 다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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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단> 또 삽질이다

 

이란 측 출입국사무소에 들어서니 입국도장을 찍어주는 창구는 이란에 들어가려는 파키스타니들로 거의 아수라장이다. 창구 앞에 거의 이삼십 명이 모여들어 저마다 여권을 들고 이리저리 밀리는 통에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 줄을 서 있는 것도 아니니 저기를 통과하려면 같이 몸싸움이라도 벌여야 하는 판인데  배낭은 앞뒤로 메고 게다가 스카프까지 쓰고 할 짓은 아니다 싶다. 그저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잠시 기다려본다. 30분이 지나도 창구 앞의 사람들은 줄어들 줄 모르고 이러고 있다간 도무지 언제 국경을 넘게 될지 모르겠다 싶어 슬며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보지만 창구 앞의 사람들은 거의 필사적이다. 다시 대기실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사무실로 불러 여권을 먼저 처리해준다. 아마 파키스타니가 아니라 특혜를 주는 것 같은데 고맙기는 하지만 이러느니 창구 앞에 줄서는 칸이나 만들지 싶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여권을 받아 나오니 어떤 남자가 다가와 너는 외국인이니 여기서 자헤단까지는 반드시 폴리스 보디가드와 함께 가야 한단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니 자헤단은 위험한 도시라서 그렇단다. 공짜는 당연 아닐테고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불이란다. 내가 미리 알고 있는 정보로는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합승택시를 타면 일인당 2,3불선에 갈 수 있다고 들었거니와 폴리스 보디가드 얘기는 처음이라 이거 신종 사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됐다고 난 그냥 혼자 갈 거라고 뿌리치고 나와 택시를 잡으니 웬걸 택시들마다 모두 같은 소리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 다시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가 폴리스 보디가드가 꼭 필요하냐고 물어봐도 확실한 대답은 해주지 않고 폴리스 보디가드가 필요하면 불러 줄테니 기다리라는 소리만 한다. 아무래도 꼭 필요한 건 아니고 니가 원하면 불러주겠다인 거 같은데 그냥 가려 해도 이놈의 택시들이 도무지 태워 주지를 않는 거다.


이란측 출입국 사무소. 이란 혁명지도자 호메이니와 지금의 최고통치권자 하메이니의 초상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두 양반은 이란의 다른 도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하릴없이 국경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서 택시를 타는 사람들마다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본다. 그 중 빈자리가 있어 타려고 하면 꼭 누군가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 그러다가 파키스타니 몇몇이 자헤단으로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결국 택시를 탈 때 잠깐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택시가시가 또 폴리스 어쩌구 하는 걸 파키스탄 아저씨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하네 뭐 이 정도로 무마했다는^^-  결국 그냥 택시를 타고 자헤단까지 온다. 아직도 이게 신종 사기인건지 아님 규정이 그런 건데 내가 무시를 하고 온 건지는 잘 판단이 되질 않는다.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국경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해 다음 도시로 넘어갈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잠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이란은 파키스탄보다 1시간 30분이 빨라 자헤단에 도착하니 여전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헤단 터미널에서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대략 이란의 고도인 밤이나 그 다음 도시인 케르만까지 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밤은 몇 년 전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으로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여행자 중의 하나가 밤은 지금 인심이 흉흉하니 가급적이면 하루를 묵지 말고 그냥 케르만으로 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케르만은 볼거리가 있는 도시도 아닌데 그냥 하루밤 묵어가려고 들린다는 게 별로 내키지를 않는다. 다음 대안은 야즈드라는 도시까지 가는 건데 이 도시는 오후에 차를 타더라도 새벽 한두시쯤 떨어지게 되니 대략 터미널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 이것도 대안으로는 신통치가 않다. 결국 고민 끝에 그냥 밤으로 가는 표를 끊는다. 부자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아무리 지진으로 무너졌다 해도 고도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 거고 인심이 흉흉하다고 뭐 지나가는 여행자를 납치야 하겠냐 싶은 생각이다. 


두시가 조금 넘어 버스는 자헤단을 벗어난다. 이란의 버스는 거의 볼보 버스로 에어컨은 기본에 좌석도 넓고 깨끗해 아주 쾌적하다. 그간 네팔이랑 인도, 파키스탄의 고물 버스만 타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게다가 도로는 거의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잘 닦여 있어 간만에 편안하게 이동을 한다. 에어콘을 틀어 놓은 탓인지 창문이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데 슬쩍슬쩍 들춰봐도 창밖으로는 그저 황량한 벌판만 이어진다. 가이드북에 밤까지는 다섯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으니 6시나 7시쯤에 도착하겠다 싶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깨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스카프가 벗겨졌단다. 에구.. 친절도 하셔라 뭐 깨워서까지 지적해 주실거야 있나.. 싶지만 여기는 이란인 것이다. 다시 졸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6시가 가까워 있다. 안내군에게 밤이 아직 멀었냐고 물으니-사실 이란은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나라라 손짓발짓을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다- 이게 왠일인가. 밤은 벌써 지났다는 것이다. 이 버스는 밤이 종점이 아니라 밤을 지나 어느 도시인가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보통은 미리 버스표룰 보여주기 때문에 대충 알아서 내려주는데.. 방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이란은 도시와 도시를 있는 거의 모든 길이 황량한 사막이다. 누구말대로 그렇게 본다면 이란의 모든 도시는 오아시스인 셈이다.


승객 중에 영어가 좀 되는 사람이 있어 어디까지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니 케르만을 거쳐 쉬라즈까지 가는 버스라고 한다. 쉬라즈는 야즈드 다음으로 가려고 생각했던 도시다. 가이드북을 펼쳐 대충 지도를 보니 어차피 쉬라즈를 거쳐 야즈드를 가더라도 다음 도시인 에스파한 가는 길은 큰 차이가 없다. 케르만에서 내릴까 하는 마음을 바꿔 그냥 쉬라즈까지 가기로 한다. 자헤단에서는 쉬라즈가 조금 더 머니 새벽 한 두시에 터미널에 떨어지진 않겠다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한 삽질은 여행 최대의 삽질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흘간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하루를 더 버스에서 보낸다. 버스는 새벽 3시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파키스탄에서는 매번 두세 시간씩 늦게 도착하던 버스가 여기서는 매번 한두 시간 빨리 도착한다. 우씨- 아직 채 밝지도 않았으니 숙소 문도 안 열었을 거고 어두운데 택시 타는 일도 그리 안전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터미널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다행히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많아 그리 위험해보이지는 않는다.


날이 밝자마자 택시를 타고 점찍어둔 숙소를 찾아간다. 문을 두드려서야 나온 주인은 방이 모두 찼다며 딴 데로 가보란다. 다음 숙소도 마찬가지다. 이제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를 찾아다닐 여력도 없어 그냥 현지인 숙소로 들어간다. 다행히 방이 있다. 적당히 깨끗한데다 가격도 여행자 숙소보다 저렴하다. 여행자 숙소에 방이 차면 가끔 외국인도 오는지 주인은 생존 영어 정도는 가능하다. 결국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방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눕는다. 잠은 오지 않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할 기력도 없다. 도대체 국경 넘을 때 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여튼 이란에 오기는 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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