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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즈드> 흙집이 예쁜 마을

 

버스가 야즈드로 들어서자 마자 아.. 하는 감탄사가 입 밖으로 나온다. 쉬라즈에서 야즈드로 향하는 길 내내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이 끝나는가 싶더니 눈앞에 보이는 도시는 온통 황토빛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는지 흙벽돌로 담을 세우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만든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 어디 동화의 나라에라도 온 것 같다. 뭐 동화치고는 톤이 좀 어둡긴 하지만 말이다^^택시를 타고 도착한 호텔역시 이 도시의 오래된 집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바깥은 높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얼핏보면 호텔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호텔은 그리 가격이 싼 곳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당 한켠 지하에 도미토리가 있어 도미토리에 묵으면서도 호텔의 정취는 정취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첫날 침대가 여섯개인 도미토리의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한국 사람은 기대도 안 했지만 다른 여행자도 없다니 조금 실망이긴 하지만 혼자 쓰는 도미토리는 그만큼 편한 것도 사실이다. 호텔 마당에는 자그마한 분수가 있고 그 주변으로는 탁자며 평상이 놓여 있어 음식을 먹거나 차이를 마시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그도 지겨우면 아예 옥상으로 올라가 별구경이나 하면서 뒹굴 거릴 수도 있다. 다행히 이곳 레스토랑에는 그나마 몇 가지 메뉴가 있어 샌드위치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이란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먹을 게 샌드위치 밖에 없다는 말이었는데-뭐 샌드위치, 햄버거, 케밥 등이 있지만 죄다 빵에다 고기 싸 먹는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이삼일 샌드위치만 먹다보니 이걸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내심 막막했던 것이다. 간만에 밥까지 먹고 평상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김치찌개고 뭐고 밥만 먹어도 이리 행복할 수 있다니.. 역시 행복은 먼데 있는 건 아닌가 보다^^


후세이니에서 바라 본 야즈드 전경


내가 묵었던 실크로드 호텔 앞마당

 

다음날 아침 일찍 한국 여행자 하나가 토미토리로 들어온다. 배낭여행 온 남학생인데 터키, 이란을 거쳐 파키스탄, 중국으로 넘어가는 길이란다. 이란에선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이다. 야즈드는 이 친구와 같이 돌아다닌다. 사실 야즈드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라기보다는 그저 미로 같은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 묘미인데 마침 일행이 생겨 심심치 않게 하루를 보낸다. 대략 론리 플래닛에 길잃어버리기 투어라고 소개되어 있는 길을 따라간다. 투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볼거리가 나오면 잠시 들어갔다 다시 골목길을 걷는 것이 투어의 전부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골목이 이어져 길 찾기는 쉽지 않지만 또 그 골목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니 딱히 그 길이 아니어도 목적지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를 가나 진흙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골목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구시가지 골목길


아직도 벽돌을 직접 굽는다


알렉산더 프리즌이라는 데 한때는 감옥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골목길을 돌아다니기 전에 숙소 앞에 있는 모스크에 들렀다가 첨탑이 보이길래 저기 올라갈 수 없냐고 물으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무실에 가서 허가증을 받아 오면 된다고 한다. 골목길을 다니다가 마침 사무소가 눈에 띄길래 허가증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여권만 확인하곤 금세 만들어 준다. 저녁 무렵에 모스크로 가서 허가증을 보여주니 첨탑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아저씨 한 분이 앞장을 서더니 불도 없는 좁은 계단을 끝도 없이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 나가는 문이 보이길래 다 왔나 했더니 웬걸 첨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다른 문을 열고 첨탑으로 올라가야 한다. 위를 보니 까마득하다. 에구 나는 포기다. 도무지 다리가 후들거려 올라갈 수가 없다. 나는 첨탑 아래 남고 대학생 친구는 아저씨를 따라 계속 올라간다, 첨탑 아래도 제법 높아 마가 해가 진 야즈드 구시가지는 제법 불빛을 밝히고 있는데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시가지 바깥까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잠시 후 대학생 친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려온다. 저 위는 진짜 무서워요 하는데 역시 안 올라가기를 잘 했다 싶다^^


자메 모스크, 저 첨탑 중간에 있는 난간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모스크에서 내려다 본 야경


다음날은 버스를 타고 시가지 외곽까지 나가본다. 이곳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교의 발생지라는데 이.. 또 조로아스터교는 또 뭐하는 종교란 말인가.. 옛날 세계사 시간에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름 이외엔 기억나는 게 없다. 대학생 친구에게 물어봐도 조로아스터교가 한국말로 배화교라는 거, 불을 숭상한다는 거 외에는 아는 게 없다며 이 더운 나라에서 불은 왜 숭상했을까요? 하고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인 파이어 템플에 잠깐 들러본다. 정말 불을 숭상하는 종교인지 사원 한가운데는 몇 백년간 꺼뜨리지 않고 이어 왔다는 숯불이 발갛게 타고 있다. 남의 종교를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면 한 되지만 갑자기 불씨 꺼뜨리면 쫓겨나는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버스를 나고 간 곳은 조로아스터교의 풍장터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인위적인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시신을 산 위에 던져두었다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고 그 터 아래로 마을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옆에는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1960년대 이후로 풍장을 그만 둔 조로아스터 교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한다. 대학생 친구와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땐 이 곳에는 아무도 없고 팔월의 햇살만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땀을 흘리며 풍장터까지 올라가 봐도 그저 한때는 시신을 던져두었을 구덩이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저 아무런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오던 길을 되짚어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가용 한대가 태워준다고 한다. 혼자라면 타지 않았을 텐데 일행 덕을 본다. 대학생 친구는 친구대로 자기 혼자 있을 땐 차가 절대로 안 선다며 내 덕분이란다. 여튼 한참을 걸어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온 길을 한 번에 편하게 돌아온다.


풍장터앞 마을에 서 있는 침묵의 탑


풍장터, 자금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날 오후에 대학생 친구는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테헤란에서 보조 가방을 도둑맞아 거의 백만원 가까운 돈과 물품을 잃어 버렸다 면서도 씩씩하게 다니던 친구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려면 나머지 날들은 거의 이동만 해야 한다며 날짜 계산을 한참이나 하더니 그래도 훈자에서 이삼일은 보낼 수 있겠는데요 하며 좋아한다. 시간만 많은 내 여행이 갑자기 사치스러워 보이는 게 괜시리 민망해진다. 나도 내일이면 에스파한으로 떠난다. 에스파한은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데 글쎄 그곳에서 다시 한국인 여행자를 볼 수 있을지.. 저녁은 어차피 굶게 될 테니.. 하며 샌드위치를 두 개나 먹은 대학생 친구는 밤차를 타러 떠나고 나는 다시 시간의 사치를 누리며 호텔 평상에서 뒹굴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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