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칼라시밸리> 한국 아저씨들을 만나다

칼리시밸리는 파키스탄의 서북쪽에 힌두쿠시 산맥에 위치한 곳으로 파키스탄에서 거의 유일한 비무슬림 지역이다. 그뿐 아니라 칼라시밸리 사람들은 그들만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가지고 수천년간을 살아왔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들만의 전통 복장으르 한 채 살아가고 있다. 쉽게 말하면 파키스탄의 고산족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파키스탄 정부의 이슬람화 정책으로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이슬람들이 이주를 하고 있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들도 태국의 고산족처럼 관광 자원으로나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현재는 약 삼천여명의 사람들이 칼라시밸리에 위치한 봄부레트, 룸부르, 비리르라고 불리는 세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확실치는 않지만 알랙산더 대왕의 서아시아 원정 때 돌아가지 않은 병사들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복장 뿐 아니라 생김새도 여느 파키스탄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다.


전통 복장을 한 칼라시 여자 아이들


남자 아이들의 옷차림은 여느 파키스타니와 다르지 않다

 

길깃으로 돌아와 하루를 쉬고 아침 일찍 마스투지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선다. 전날 예매를 하지 못해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쉽게 표가 끊어진다. 표 파는 아저씨가 이것저것 묻더니 표를 다시 돌려 달란다. 의아한 표정으로 표를 돌려주니 좌석번호를 지우고 VIP라고 써서 돌려준다. VIP하며 웃었더니 운전석 옆의 한자리 좌석인데 정말 좌석에 VIP석이라고 써 있다^^. 덕분에 마스투지까지는 편하게 온다. 아침 8시에 출발한 버스가 마스투지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니 꼬박 12시간이 걸린 셈이다. 터미널 근처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치트랄행 차를 타보니 이번에 버스가 아니라 미니 트럭이다. 그나마 이곳부터 어느 지점까지는 길도 비포장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가다가 여기가 치트랄이라고 해서 내려보니 치트랄은 맞는데 봄부레트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대략 잘못 내린 것이다.

 

배낭을 메고 땡볕에 땀을 흘리며 길을 묻고 있는데 메이 아이 핼프 유? 마담하는 소리가 들린다. 에구 저 놈의 마담 소리는 좀 빼면 안되나 하면서 쳐다보는데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서 있다. 봄부레트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으니 여기서 제법 멀다며 자기가 지프를 태워 주겠단다. 아싸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따라가니 근처 PTDC호텔로 들어간다.-PTDC호텔은 파키스탄 정부가 운영하는 호텔로 관광지라면 예외없이 한곳씩 있는데 하루 밤에 우리돈으로 삼만원씩이나 하는 비싼 호텔이다- 그러더니 자기는 지금 휴가 중이라며 안 그래도 봄부레트에 가려고 했는데 아예 짐을 챙겨 나올테니 터미널이 아니라 봄부레트까지 그냥 같이 가자고 한다. 갑자기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이거 혹시 사기꾼은 아닌가 의심은 드는 데 지프의 유혹이 또한 만만치 않다. 칼라시밸리까지 다시 비포장도로를 트럭에 실려 갈 생각을 하니 암담한 마음도 들고 뭐 나한테 뭐 사기칠 게 있겠어.. 주는 거나 안 먹으면 되지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기로 한다.

 

자기 이름이 사이프라고 밝힌 이 남자, 꽤 특이한 구석이 있다. 파키스탄 남자라면 대부분 입고 있는 전통 복장이 아닌 청바지를 입고 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는 무슬림이 아니란다. 게다가 믿거나 말거나 나랑 동갑인데-물론 내 나이를 밝히진 않았다. 차에서 내리라고 할까 봐^^- 아직 미혼이란다. 그러더니 술도, 담배도, 춤추는 것도 심지어 하시시도 좋아한다는 이 남자 느닷없이 붐부레트에 있는 PTDC 매니저가 자기 친구이니 방을 싸게 줄 수 있을 거라며 거기서 며칠 묵으며 맛있는 거나 먹고 푹 쉬었나 가란다. 뭐 성의는 고마우나 어쩌고 저쩌고 해가며 대충 사양을 해도 차는 이미 PTDC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가운데 푸른 잔디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 호텔은 마치 우리나라 중급 리조트같은 느낌이다. 일단 따라왔으니 점심을 같이 먹고 난 뒤 싼방을 찾아보겠다며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나서니 이번에는 숙소까지  차를

태워주겠단다.

 

봄부레트의 PTDC호텔

 

대충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찾아가니 이미 방은 이미 풀이란다. 길거리에 외국인은 하나도 보이지 않은데 이상하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방이 없다는 데야 도리가 있나.. 다른 숙소를 찾아보러 나서니 이 친구 그냥 그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옮기면 어떻겠냐고 꼬드긴다. 게다가 숙소는 매니저가 이미 무료로 주기로 했다며 정 부담스러우면 100루피만 내란다. -100루피는 우리돈으로 1500원이 조금 넘는다- 점찍어둔 숙소가 만원이라니 다른 숙소찾기도 엄두가 안나 못이기는 척 그냥 호텔에 짐을 푼다. 만약 정 이상하게 굴면 방값을 내고 나오면 그만이다 싶은 생각이다. 여행 다니면서 자본 방들 중에 두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시설은 훌륭하다. 오후에는 사이프의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이 친구 여기가 처음은 아닌 듯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덕분에 간만에 편하게 이곳저곳을 다닌다.

 

저녁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이 마을에서 만든 밀주나 한잔 하자고 한다. 뭐 말은 칼라시 보드카라는데 별 맛은 없지만 도수는 장난이 아니다. 일단 긴장이 된다. 내가 어쩌자고 여기까지 따라 왔을까 하는 생각부터 괜한 의심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친다. 일단 만약을 대비해서라더도 술에 취하지는 말자 다짐하며 조금씩 마시지만 술이라는 게 마시는 데야 안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잔에 잔을 거듭할수록 약간씩 알딸딸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친구도 취하는지 말이 많아진다. 왜 결혼을 안 했는냐고 물어보니 20대에 약혼을 했다가 파혼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방탕하게도 살아봤지만 그도 별 재미가 없어 이제는 그냥 평범하게 산다며 자기는 이제는 섹스니 하는데 흥미가 없으니 그냥 친구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란다. 그제야 맘이 조금 편해진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자기는 내일 치트랄로 돌아가 이삼일 있다가 페샤와르를 거쳐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갈 생각이니 만약에 같이 갈 생각이 있으면 여기에 하루이틀 더 있다가 치트랄에 와서 자기를 찾아오란다. 어차피 지프는 비어 있고 자기 혼자 가기도 심심하니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는 이미 내려갔는지 그의 지프가 보이질 않는다. 왠지 꿈이라도 한바탕 꾸고 난 거 같다.


칼라시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1


칼라시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2

 

다음날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긴다. 마을은 이미 다 둘러보았으니 딱히 할 것도 없긴 하지만 이틀이나 차를 타고 와서 하루 만에 내려갈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저 숙소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으니 이번에 숙소 주인이 같이 놀자고 부른다. 알고 보니 잠셋이라는 이 친구,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아들이다.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아 그냥 아침 일찍 봄부레트에 도착했다고 하니 이 친구가 자기가 마을 안내를 해주겠단다. 됐다고 해도 괜찮다며 부득부득 나서길래 결국 따라나서 갔던 곳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저녁에는 여행 중에 이 마을에 반해 10주나 머물고 있다는 영국인 커플이 찾아와 또다시 술판이 벌어진다. 이번에 음주에 이어 가무도 곁들여진다.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파키스탄 노래에 맞춰 제각기 춤을 추는데 곡 우리네 춤사위랑도 제법 닮아 있는 것 같다.

 


칼라시밸리에 있는 마을, 이곳은 그나마 좀 큰 마을이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풍장을 한다는데 그 터가 마을에 있다

 

다음날이 사이프와 만나기로 한 날이라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숙소에 놀러 온 잠셋의 친구가 PTDC호텔에 한국인들이 다섯명이나 있다며 가보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반가운 마음에 따라나서면서도 그 호텔에 묵을 정도면 배낭여행자는 아닐텐데 누굴까 싶다. 따라가 보니 전형적인 우리나라 아저씨 세명과 우리나라 젊은이 두명이 술을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고 무척 반가와 하신다. 알고 보니 이 이분들 삼부건설이라는 회사분들인데 치트랄에서 페샤와르 사이에 있는 느와리라는 곳에서 터널 공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한달에 한 번 있는 휴무를 이용해 이곳까지 오셨다는데 한국 여자는 거의 팔개월만에 처음 본다며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꼭 휴가 나온 군인 아저씨들 같다. 결국 또 술판이다. 언제 가냐는 말에 내일 내려갈 생각이라고 대답하니 이분들 이틀 뒤에 현장으로 돌아가신다며 내일은 양한마리 잡을 계획인데 먹고 같이 내려가자고 하신다. 안 그래도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복잡한데 차라리 잘됐다 싶어 하루 더 있기로 한다. 사이프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뭐 그려러니 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날 저녁에 PTDC호텔 마당에서 자그마한 파티가 벌어진다. 의사소통이 잘 안된 관계로 양은 못 잡았지만 -이쪽에서 양을 잡아다가 구워달라고 했는데, 호텔 측에서는 잡아오면 구워는 주겠다 뭐 이리 대답한 듯 하다- 한편에서는 닭바베큐가 준비되고 아저씨들이 꽁꽁 챙겨오신 양주도 탁자에 나온다. 마당에서는 누가 불렀는지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숙소에 묵고 있던 파키스타니들과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까지 어울려 춤판이 벌어지고 몇 번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이건 춤이 아니라 운동이다- 자리에 돌아온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술을 마셔도, 시간이 조금 늦어져도 마음이 편하다. 결국 칼라시밸리에서 보낸 나흘간 단 하루로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며 보낸 셈이다. 대체 누가 파키스탄에서 술을 못 먹는다고 했단 말이더냐.. 이제는 속이 쓰릴 지경이다.


호텔 마당에서 열린 댄스 파티


삼부 아저씨들과 함께, 내 상태는 말이 아니다^^

 

다음날 이 분들의 차를 타고 같이 공사현장까지 이동한다. 원래 생각에는 공사현장인 느와리까지 이분들 차를 타고 나가 페샤와르까지 가는 차가 있는 디르까지 이동해 하루밤을 자고 페샤와르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이 말을 들은 삼부아저씨들 디르가 얼마나 위험한 지역인 줄 아냐면서 이구동성 말리신다. 디르가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있다고 알려진 지역이라며 언젠가 미군이 폭격도 한 곳이라며 겁을 주신다. 그러면서 공사 현장에 게스트들을 위한-회사의 높은 분이나 가족이 오면 쓰는- 숙소가 있으니 하루밤을 묵고 다음날 일찍 디르로 나가 페샤와르로 가는 차를 타라고 권하신다. 저는 여행잔데 일하시는 곳에서 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극구 사양은 했지만 사실 디르에서 하루밤을 자는 일은 나로서도 막막한 일이다. 결국 공사 현장에서 도착해 오랜만에 한식으로 된 점심을 먹고 전무님께-이 현장에서 제일 높은 분이란다- 인사를 드리니 전무님도 디르는 위험한 곳이라며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허락해 주신다. 게다가 필요한 거 있으면 관리부장에게 말해 가지고 가라며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참 여행 다니는 게 무슨 벼슬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 죄송스러워진다.


느와리 공사 현장


> 이 고개가 느와리패스인데 이 아래로 터널을 뚫는다고 한다

 

결국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는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한국분들이 한 삼사십명 정도 되어 아예 한국인 주방장을 두고 삼시 세때 한식을 드신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묵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사실 낮에 먹은 점심 때문이기도 했는데 간만에 먹은 김치찌개가 너무 아쉬워 한끼만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이번엔 휴무를 나오지 않은 아저씨들과 술을 마신다. 두 명이 한 방을 쓰신다는데 이방저방 감춰 두었던 술병들이 나오고 어디선지 나왔는지 대구포까지 안주로 올라와 있다. 나로써는 해외 공사 현장하면 그저 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로 돈 벌러 간 아저씨들밖에 떠오르지를 않는데 요즈음도 이렇게 많은 현장에서 일을 하시는구나 생각하니 나는 이 아저씨들이, 이 아저씨들은 일년 가까이 혼자 여행 다니는 내가 새삼스럽다. 파키스탄의 중부와 남부를 가로막고 있는 산에 터널을 뚫어 겨울이면 완전히 두절되는 이곳에 물류를 수송하는 동맥을 만든다는 이 공사는 앞으로도 삼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다들 가족 이야기며, 공사이야기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삭이고 있다.

 

다음날 삼부아저씨들 아침에는 페샤와르 가는 차가 있는 디르까지 차를 태워주신다. 그것도 모자라 표까지 끊어주시는데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떠나기 전에 몇몇 아저씨들은 약이며 과자 같은 것도 한아름 싸주시더니 김치도 가져가라고 성화다. 그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호의를 받으니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큰 사고 없이 모두 건강하게 일 마치시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 한국에 가서 연락하라는 메일 주소 몇 개를 쥐고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