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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한> 사막의 오아시스

 

에스파한은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들 한다. 모스크나 바자르 등의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이 사막의 나라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긴 강이 흐르고 그 덕분에 푸른 녹지가 시내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 도시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탄다. 이란 버스는 충분히 싸지만-우리 돈으로 25원 정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무척 많다. 다행히 남자와 여자 칸이 분리되어 있어 만원버스에서의 성추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란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길을 물어보면 거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분위기라-누구 말에 따르면 여자만 그렇다고도 한다^^- 어렵지 않게 숙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숙소는 도미토리도 싱글룸도 모두 풀이다. 쉬라즈에서도, 에스파한에서도 외국인 여행자는 거의 못 봤는데 뭔 숙소가 매번 풀인가 싶은데 아마 이란은 여행자 숙소라도 내국인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에스파한의 숙소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 특히 교통비가 상식을 초월하게 싸다 보니-최고급 볼보 에어컨 버스를 타고 대여섯 시간씩 도시를 이동해도 대략 5,000원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숙소값이 더 비싸 보인다. 숙소주인이 더블룸은 10불에, 트리풀룸은 12불에 하루만 묵으면 다음날은 싱글룸으로 바꿔주겠다고 해 방을 봤지만 방이 영 신통치가 않다. 설마 이 관광지인 에스파한에 방이 없으랴 싶어 뿌리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아보니 허걱.. 다른 숙소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그 숙소가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 번 나온 숙소를 다시 들어가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으니 길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본다. 다행히 깨끗한 현지인 숙소가 나온다. 이란의 여행자 숙소는 그리 많지도 않거니와 어차피 내외국인 겸용이니 비싼 여행자 숙소에 묵느니 발품을 조금 팔더라도 저렴하고 깨끗한 현지인 숙소를 구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단 한국인은커녕 외국인 여행자도 만날 생각은 말아야 한다^^


혼자가 되니 뒹굴거리는 시간보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시간이 많아진다. 말상대도 없는데 숙소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싸돌아다닐 수도 없는 일이니 도시에 도착하면 대략 봐야 할 곳의 동선을 미리 정해두고 움직인다. 다행히 론리에는 4일짜리 에스파한 돌아보기 코스가 나와 있다. 방향과 동선을 고려하여 짜여진 것일 테니 이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그 루트를 따라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막상 하루를 따라해 보니 그 동선의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란의 관광지는 대부분 낮 시간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데 정작 론리에서는 그 시간을 근처에 있는 비싸고 우아한 전통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로 해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혼자서 어떻게 서너 시간씩 밥을 먹는단 말이냐.. 결국 루트를 다시 짠다.


이맘호메이니 광장-이맘호메이니 모스크


이맘호메이니 광장-세익로트폴라 모스크


에스파한에서 가장 먼저 둘러보게 되는 곳은 아무래도 이맘호메이니 광장이 아닐까 싶다. 이란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맘 모스크를 비롯해 세익로트폴라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이 각 한쪽 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바자르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바자르는 또한 시가지 서쪽에 있는 메인 바자르와 연결되어 있다. 돔만 화려한 여느 곳의 모스크들과는 달리 이곳 모스크 내부는 타일을 일일이 잘라 붙인 내부 장식이 눈길을 끈다. 둥근 천정까지 빠짐없이 장식된 이 타일 장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이 느껴진다. 또한 이맘 호메이니 광장 주변 뿐 아니라 에스파한 시내 곳곳에는 오래된 궁전이나 모스크들이 산재해 있고 그 주변은 거의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오렌지 쥬스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공원에 앉아 있으면 어디서나 산책 나온 시민들과 마주치게 된다.


모스크 내부1


모스크 내부2


그렇기는 해도 에스파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아무래도 강변이 아닐까 싶다. 시내를 관통하는 자옌데강은 주변이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어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특히 시오세 다리나 카쥬 다리 근처에는 거의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린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은 잔디밭에 카페트를 깔고 앉아 차이-맑은 홍차-를 마시거나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젊은 연인들은 손을 잡고 강가를 거닌다. 이곳에도 예외 없이 서너 명씩 껄렁껄렁 몰려다니는 한량들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으니 그저 핼로우를 날리는 것 외에 별다른 짓을 하지는 못한다. 그저 강가에 앉아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까이 가보면 차이나 과자를 건네준다. 영어는 한마디도 안 통하지만 눈치껏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진심인지 아닌지 또 엄지손가락을 올려 세운다. 그저 하는 일 없이 저녁마다 강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자옌데 강변


시오세 폴 야경


하루는 버스를 타고 조금 외곽으로 나가본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테스카데라는 성터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에스파한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고 해 버스를 타고 다녀온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나르 좀반이라는 모스크가 있어 가는 길에 들러 본다. 일명 흔들리는 모스크인데 가이드북을 아무리 봐도 왜 흔들리는 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특정 시간만 되면 저절로 흔들리는 신기한 모스크인가 싶어 시간에 맞춰 찾아가 보니 모스크 첨탑에 올라가 사람이 흔드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면 반대편 첨탑에 달린 종이 울리는 건데 글쎄.. 뭐가 신기하다는 건지 그래도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현지인들을 보니 그게 더 신기하다. 뒤이어 찾아간 아테스카데는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없는 돌 언덕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저길 올라가 말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올라간다. 생각보다 힘들진 않은데 올라가 봐도 풍경은 고만고만하다. 이제 이 황량한 풍경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마나르좀반, 오른쪽 탑에 사람이 올라가 흔들면 왼쪽 탑의 종이 울린다


아테스카데, 아래에 에스파한 시내가 보인다.


다음 도시인 테헤란까지는 기차를 타기로 한다. 버스도 충분히 편하지만 이란에서 기차를 한 번 타보고 싶기도 하고 밤기차니 숙박비도 하루 절약할 수 있어 조금 늦은 출발 시간이지만 기차표를 미리 예약해 둔다. 에스파한의 기차역은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택시비도 워낙 싼 편이라 택시를 타고 가도 우리 돈으로는 2,500원이면 갈 수 있지만 시간도 많으니 그냥 버스를 타기로 한다. 미리 알아봐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기차역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없다는 건지 끊겼다는 건지 이구동성 택시를 타란다. 이란 사람들 무척 친절하긴 한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가 모르는 건 모르는 게 아니라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기차역 가는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될 일을 기차역 가는 버스는 없다고 말한 뒤 아주 친절하게(?) 택시까지 잡아 주는 것이다. 버스를 타겠다고 박박 우겨도 어찌나 택시들을 세우시는지 결국 성질을 확 부리고 나서야 주변이 조용해진다. 조금 민망하다^^.


조금 더 기다리니 기차역 가는 버스가 온다. 이번에는 이구동성 이 버스를 타라고 성화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버스를 타니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주변을 둘러싼다. 그중 하나가 느닷없이 비디오카메라를 꺼내들더니-이란의 관광지에는 디카보다 비디오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더 많다-취재 혹은 취조가 시작된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은 뭐냐, 결혼을 했냐로 시작한 취조는 결국 형제는 몇이냐, 니네 아버지 이름은 뭐냐에서 막혀 버린다. 아는 영어 밑천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지들끼리 이 말은 영어로 뭐냐를 한참이나 의논하더니 결국 웃어 버리고 만다. 그냥 나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비디오카메라를 향해서 웃어 준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기차역이라며 내리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버스는 기차역에서 2km 남짓 떨어진 캄캄한 벌판을 기차역이라고 떨궈 주고 가버렸으니 결국은 택시 타라는 사람들의 권유가 옳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기차역까지 태워주겠다는 차가 있어 올라탄다. 히치는 위험하다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다. 다행히 어리버리 떨궈진 인간 중에 일본 남자애들 둘이 같이 타게 되어 그나마 좀 안심이 된다. 결국 아슬아슬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탄다. 아마 그 차가 태워주지 않았다면 기차역까지 걸어가다가 가치사간을 놓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투덜거려도 결국은 현지인들의 친절과 도움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란의 기차는 침대시트를 별도로 챙겨 줄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기차칸도 남여가 구분되어 있어 우리 칸은 모두 여자들이다. 잠시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든다. 뭐 당연하지만 잘 때는 여자들도 스카프를 모두 벗더라는^^ 그래도 조금은 신기했다.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1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2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3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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