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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라> 가짜 학생증을 만들다

버스는 황량한 사막을 달리더니 팔미라가 가까워진 어느 길가에서 갑자기 멈춰 선다. 그러더니 반대편 호텔에서 남자 하나가 달려오더니 무조건 웰컴이란다. 이건 또 뭔가 했더니 막무가내로 내리란다. 우린 선호텔에 갈거라고 해도 일단 방부터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선호텔에 데려다 주겠다는데 안 봐도 뻔한 수작이다. 아마 이곳은 타운과는 좀 떨어진 곳일거고 주인과 기사는 이미 모종의 약속이 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결국 유리가 내리지 않고 버티자 버스는 타운 근처에 우리를 내려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번에는 택시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분명히 호텔 이름까지 대고 탔는데도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 내내 다른 호텔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니 그 말이 먹혀들지 않자 내려서는 미리 약속한 택시비보다 돈을 더 내놓으라며 시비다. 좀 싸게 왔다 싶은 생각도 있고 숙소 주인도 조금 더 주라고 하니 많지 않은 돈을 더 주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유적지 하나 파먹고 사는 마을에 온 것 같아 영 찜찜하다.

 

숙소의 도미토리가 4인실뿐이라 여자친구 넷이 한 방에 묵고 나는 그냥 싱글룸에 묵는다. 도미도리와 싱글룸의 가격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손님에 따라 방값이며 식사값이 달라진다거나, 주인이 장삿속이라거나 하는 여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굳이 이 호텔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 호텔에서 가짜 학생증을 만들어 준다는 정보 때문이다. 여자친구 네 명도 학생은 아닌지라 당연히 학생증 없이 왔다는데 너무 차이가 심한 입장료 가격에 놀라 학생증을 만들 생각을 하고 왔다고 한다. 어떻게 말을 꺼내나 고민도 무색하게 방을 잡자마자 학생이냐며 학생증은 있냐고 물어온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일인당 15불이란다. 한국에서 진짜를 발급받는데도 그만큼의 돈은 드니 할말은 없지만 어차피 가짠데 너무 부른다 싶다. 다섯명이 다 만들거라니까 가격이 12, 10, 8불까지 내려간다. 누구는 5불에도 만들었다지만 이정도면 됐다 싶어 그냥 8불에 만들기로 합의를 본다. 호텔 주인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신신당부다. 하긴 유적지가 코앞이니 신경이 쓰일 만도 하다. 다음날 받아든 학생증은 좀 조악하기는해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팔미라 유적1


팔미라 유적2

 

학생증도 받아 들었으니 일단 유적지를 향해 간다. 팔미라 유적지는 입구의 박물관을 시작으로 벨신전과 원형극장 등이 거의 걸어서 볼 수 있는 거리에 밀집되어 있다. 삼형제의 무덤이라나 하는 일군의 무덤군들은 유적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입구에서 박물관을 한바퀴 돌고 벨신전을 향해 걸어간다. 벨신전은 남아있는 팔미라의 유적지 중 가장 거대한 신전인데 2000여년 전 동서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였던 이곳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장대하다. 벨신전 앞쪽에는 길게 뻗어 있는 회랑을 따라 원형극장과 아고라, 신전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여는 유적지와는 달리 황량한 사막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주변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형극장까지 둘러보고 나니 오전이 조금 지나 있다.

 

팔미라, 벨신전


팔미라, 원형극장

 

점심을 먹고 나서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아랍성에 가려고 길을 나선다. 팔미라 유적 한 켠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아랍성이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일몰이 장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전에 맑았던 날씨는 간곳없고 어느새 길에는 돌풍이 불고 잇고 이 사막에 비라도 내리려는지 마른번개가 우르릉거린다. 설마 비야 오겠어.. 하면서 아랍성까지 올라간다. 라마단 기간이라 성문은 이미 닫힌 지 오래고 바람은 점점 심해진다. 어차피 굶 때문에 일몰은 볼 수도 없는 형편이라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온다. 일몰이고 일출이고 간에 최근에는 도무지 제대로 된 걸 볼 수가 없으니 마가 꼈냐 싶은 생각이 든다. 붉은 사막 위로 떨어지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시와 사막에서는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랍성


아랍성에서 본 팔미라

 

저녁을 먹고 나서 다마스커스로 간다는 일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차피 레바논은 하마국경이나 다마스커스 국경 어느 쪽으로 넘던 48시간은 프리 비자다. 단 한달 프리 비자는 하마국경에서만 나온다는 건데 이 친구들은 어차피 48시간안에 돌아올 생각이라 다마스커스를 돌아본 뒤 레바논으로 떠날 생각이라고 한다. 그냥 하마에서 가는 게 어떠냐고 의사를 타진해본다. 어차피 48시간 비자보다야 한달 비자가 맘 편하고 좋은 거 아니냐 그리고 다마스커스는 어차피 오는 길에 들를 수 있다고 설득을 해 본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시리아 재입국비자인데 레바논에서 시리아로 다시 오려면 정식 비자나 통과 비자 둘 중 하나를 받아야 한다. 통과비자는 역시 48시간 안에 시리아를 떠나야 하는데 다마스커스를 미리 봐두면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통과만 하면 되니 통과 비자만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통과 비자는 정시비자보다 8불 가량 저렴하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마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상당히 고역이라는 말에 일행이 있으면 택시로 넘어볼까 싶어 말을 꺼냈던 건데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국 하마 국경을 같이 넘기로 한다. 여자 친구 중 하나는 다마스커스를 보고 다시 터키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아침 일찍 다마스커스로 떠나고 나머지 세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하마로 돌아온다. 하마에서 하루를 머물고 아침 일찍 택시를 수소문해본다.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까지 500시리안 파운드 정도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행이 넷이라 그런지 400시리안 파운드까지 깍인다. 택시로 서너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그것도 국경까지 넘는데 일인당 팔천원 정도의 돈으로 가능하다니 참 시리아 물가가 싸긴 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 일찍 트렁크 가득 짐을 싣고 레바논으로 떠난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어보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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